연애 정경
10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사랑이 어려운 우리

그는 차일피일 만남을 미루었다. 어디에도 적을 두지 못해 남 보기가 거북했다. 낮에는 열람실 구석에 숨어 영어 단어를 외웠고, 밤이면 좁다란 방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이따금 회신 없는 자기소개서도 썼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이겨 냈는가?’라는 질문을 접할 때마다 웃음이 났다. 바로 지금이며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두 해 전 대학을 졸업한 그는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없는 존재’였다. 이 시대 청춘의 초상이다.

사회학자 김홍준의 말마따나 생존 경쟁의 시대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체제가 외려 개인의 삶을 갉아먹는다. 신자유주의 시대 청년들은 스스로를 수저에 비유해 금, 은, 동, 흙으로 계급을 나눈다. ‘흙수저’ 계급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좋은 직장에 들어가 계급 상승에 성공하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취업에 실패한 자책감과 스트레스로 삶을 비관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청년의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간신히 얻었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한 달을 버틴 대가는 도시에서 한 달을 지내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언제 사라질지 몰라 오늘도 전전긍긍한다.

기진맥진한 나날 속에도 사랑은 있다. 다만 열병이 아니라 지병 같은 사랑이다. 공개된 사랑이며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사랑이다. 후일을 약속하고 싶어도 지킬 가망이 없어 말을 멈추고 얼굴을 훔치는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이 해체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연애는 종착지를 잃었다. 수지 타산에 맞지 않으면 바로 내치는 사회에서 내 사랑만은 계산적이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나는 사회를 닮아 있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사랑마저 흔들리는 우리가 연애 이후를 쉽게 기약하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의 고통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워 누군가를 부양할 수 없는 현실이 뒤섞인 복합적 상황이랄까.

계산하지 않으면 순진한 ‘호구’ 취급을 받는 서글픈 현실에 연애가 사랑인지 거래인지 헷갈릴 정도다. 마음 가는 대로 전심 다해 상대를 대하면 ‘지루하다’는 반응이 공허하게 돌아온다. 왜 유독 내 사랑만 힘겨울까. 그러나 사랑이 잘 안되는 것이 당신만은 아니다. 당신 탓도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같은 고민을 하는 동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누군가 ‘너희’를 조망하고 쓴 이야기가 아니라 난파선에 탄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들여다본 연애의 정경이라 더욱 와 닿았다. 본래 공감이란 ‘들어가서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를 관찰한 이 책을 당신이 읽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우리 존재 파이팅”이다.

박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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