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파국으로 인해 인류가 구체적으로 겪게 될 변화 중 매우 치명적인 것으로 식량 위기를 꼽았다. 기술 발전으로 넘어설 순 없을까?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풍요는 모두의 것이 아니다. 100억 명 이상을 먹이고도 남을 식량의 3분의 1이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동안, 여전히 수억 명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칼로리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한 진정한 위기는 식량의 절대 부족이 아니라, 부의 불평등이 낳은 ‘분배의 실패’이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농업의 토대를 흔들고, 그 피해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식량 위기는 곧 정의의 위기이며, 기후 위기 시대의 생존 경고다.
세계 인구는 80억 명에 도달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는 2050년 인구가 91억 명에 이르고 경제 성장으로 1인당 식량 소비 또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인구 증가뿐만 아니라 먹는 욕망까지 충족시키려면 식량 생산이 현재보다 60퍼센트 이상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곡물 수요를 따라잡을 만큼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식량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시대는 저물고,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동원해도 식량 생산은 결국 기후 조건의 제약을 크게 받는다. 농작물은 저마다 생육에 필요한 최적의 기온과 강수량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식량 생산은 몇몇 곡창지대에 의존한다.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된 기온과 강수 패턴에 적응해 왔다. 문제는 주요 곡물 생산 지역의 상당수가 이미 최적 생산 온도에 가까워, 기온이 조금만 더 상승해도 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경제 논리에 기후 관련 정책이 후퇴하는 모습이 세계 각국에서 관찰된다. 파리협정이 이루어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등을 포함해 다자주의에 기반한 기후 협상이 계속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기온 상승 마지노선 1.5도, 2도는 단순한 정치적 타협점이 아니다. 수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규명된, 인류 문명과 지구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위험에 빠지기 직전의 마지노선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과학적 문제도 아니다. 인류 전체의 연대와 정의의 문제이며, 우리가 어떤 문명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도덕적 질문이다.
기후 위기는 국경을 넘어 인류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생존의 과제다. 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유엔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또는 2도 이내로 제한하자’라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집단적 지혜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시험받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모든 나라와 세대가 함께 책임을 나누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1.5도와 2도의 목표를 지키는 것은 숫자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우리 세대의 마지막 결단이다.
한편에는 기술 낙관주의가 존재한다. 탄소 포집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기후 시스템에 인간이 개입해 온난화를 늦추겠다는 ‘태양 지구 공학(Solar Geoengineering)’과 같은 분야도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도전적인 기술들에 희망을 걸어도 될까?
해수면 상승, 극심한 가뭄과 홍수, 파괴적인 폭풍 등 기후 위기의 그림자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드리워져 있다. 이제 인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하나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여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체제 전환과 사회 전반의 변혁을 요구하기에 결코 쉽지 않다. 이때 등장한 또 하나의 유혹적인 선택지가 있다. 기술만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대안, ‘지구 공학’이다. 태양 빛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거나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지구 온도를 낮추려는 기술적 접근이다. 하지만 지구 공학은 기후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을 외면한 채 증상에 매달리는 방식이다. 이 기술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대응을 미루면 미룰수록 검증되지 않은 지구공학 기술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강요당할 것이다. 기후 위기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그 성공으로 일어난 문명 위기이다. 지구 공학은 기후 위기를 몰고 온 원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더 밀고 나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가당착적 방안이다. 병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여 건강한 몸을 되찾아야 하듯, 우리의 삶의 방식을 먼저 고쳐야 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지구를 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기술은 수단일 뿐 그 자체로 구원이 될 수 없다.
IPCC AR6(WG III)[1]는 기후변화 대응 방안에 관해 “이미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비용이 떨어지며”, “시민의 지지를 받는다”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2030년 기준으로 예상되는 저감 잠재력(potential of mitigation)의 기술 목록을 제시했다. 저감 잠재력은 특정 저감 방안의 선택을 통해 달성 가능한 온실가스 순 배출 감축의 추정량을 의미한다. 온실가스 1톤을 줄일 때 100달러 이하의 저감 방안만으로도 배출량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은 비용이 20달러 미만인 방안으로 이룰 수 있다. 여기에는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에너지 효율 개선, 자연 생태계 파괴 방지, 메탄 배출 감축 등이 포함된다. 심지어 상당수 기술은 투자 비용보다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단, 저감 비용은 지금 발생하지만, 그로 인한 편익, 즉 위험 감소는 미래에 나타난다는 점이 문제다. 하지만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이 나중에 피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싸다. 탄소 비용을 바로 세우고 저감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곧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지는 최소한의 책임이며, 동시에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투자다. 결국,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돈과 기술이 아니라 의지와 추진력이다.
세계 재생에너지 기구(IRENA)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100퍼센트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 GDP의 약 4퍼센트의 투자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의 규모와 중요도를 감안하면, 놀랄 만큼 낮은 수치다.
이제 우리는 ‘기후 위기에 대응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기후 붕괴로 무너질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개인의 실천, 기업의 양심, 정책의 방향성 모두 중요하다. 다만, 결정적 동력은 존재할 것이다. 기후 재난 문제를 풀어낼 열쇠는 누가 쥐고 있나?
우리는 세상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이 동시에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는 기후 티핑 포인트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티핑 포인트다. 식량, 물, 건강, 빈곤, 불평등, 정의 문제가 모두 기후 위기와 얽혀 있다. 그래서 기후 위기 대응은 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사회적 티핑 포인트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기후 티핑 포인트를 넘기 전에 사회적 티핑 포인트를 먼저 일으켜야 한다.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경고는 내일의 재난이 된다.
이제 시민들은 정치인의 선의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시민의 잠재된 힘을 깨워 기후 위기를 행동의 동력으로 바꿔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은 기득권의 하사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연대와 투쟁 끝에 이루어져 왔다. 역사는 알려준다. 그 어떤 막강한 권력도 저항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