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번 전쟁은 좀 다릅니다.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의
발언은 한술 더 뜹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도 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이란이 동맹인 미국에도 위협을 가할 것이기 때문에 선제공격했다는 논리죠. 이건 ‘내 친구가 이란을 때리면 이란이 나를 때릴 것 같아서 그냥 내가 먼저 때렸다’라는 얘깁니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전쟁을 시작할 명분이 되질 않습니다. 아니, 설령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 가정하더라도 이런 발언은 나와서는 안 됩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포장이라도 했어야죠. 그런데 그러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를 정하고 유려하게 다듬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요.
왜 그렇게 급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는 정황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지역의 질서 변화에 있어 ‘지금이 한 세대에 단 한 번 있을 기회’이며 ‘위험도, 수확도 클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란이 위험하기 때문이라거나, 미국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식의 이유가 아니었던 겁니다. 엄청난 성과를 낼 기회였던 겁니다. 정치와 외교의 우선순위가 성과주의로 옮겨가고 있는 시대를 잘 반영합니다.
성과주의의 핵심은 효율이겠죠. 미국 행정부는 원래
짧고 강한 작전을 통해 상황을 빠르게 종료하고자 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죠.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 암살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는 수년간 테헤란의 거의 모든 교통 카메라를 사찰해 왔습니다. 특정 지역의 휴대 전화 기지국도 해킹해 왔고요. 이렇게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복잡한 ‘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특수 경비 구역의 일상까지 파악할 수 있었죠. 즉, 모사드와 미국 CIA는 토요일 아침 하메네이가 정확히 몇 시에 집무실에 있을지, 누구와 함께 있을지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전쟁에 기계 지능이 참전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의 눈으로 확인해야 했던 표적 추적 작업이 이제는 알고리즘 기반 시스템에 의해 처리되고 있습니다. 인간을 기술이 대체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비약적으로 만들어 낸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정보전의 역량 차이가 압도적인 비대칭을 만듭니다. 생성형 AI와 같은 분야의 기술 격차가 실질적인 안보 위협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그래서 앤트로픽과 같은 AI 기업이 미국 국적이라는 점이 미국엔 다행입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앤트로픽의 AI 모델을 신뢰할 수 있으며, 경쟁사 제품에 비해 쉽고 신속하게, 안정적으로 변경 사항을 적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죠. 그 결과 앤트로픽은 국방부와 기밀 클라우드 서비스를 포함한
계약을 체결한 최초의 생성형 AI 기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일이 터졌습니다.
앤트로픽은 국방부와의 계약에 있어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감시와 인간의 결정이 개입되지 않는 공격 가능성, 즉 자율 무기 시스템에 자사의 AI 모델이 사용될 수 없는 안전장치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국방부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하고 모든 정부 사업으로부터 배제되었죠. 심지어 적국에나 적용되는 ‘공급망 위협 기업’ 지정까지 받았습니다. 이제 이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 번진 상황입니다.
갈등의 시작은 베네수엘라 침공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두로 체포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군인 47명을 포함해 총 83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작전에 앤트로픽과 팔란티어의 협력으로 개발된 시스템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요. 앤트로픽 측의 한 임원은 팔란티어에 연락해 클로드가 정말 작전에 사용되었는지 문의했고, 팔란티어는 이 사실을 미 국방부에 알렸습니다. 국방부는 앤트로픽이 전투에 자사 모델이 사용되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민간 기업이 미국의 군대를 압박하려는 시도로 규정했고요.
한편, 앤트로픽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달한 AI 모델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안전과 정렬 문제로 오픈AI를 떠나 직접 회사를 차린 다리오 아모데이 CEO 같은 인물은 더욱 그렇겠지요. 앤트로픽의 요구 조건은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와 백악관은 앤트로픽을 ‘애국’적이지 않으며, ‘통제 불능의 급진 좌파 AI 기업’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얄궂은 점은, 이번 이란 공격에 앤트로픽의 클로드 AI 모델이 여전히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팔란티어는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을 통합하여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백악관의 한마디에 바로 국방부 시스템에서 클로드 모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트럼프로서는 썩 면이 서는 일은 아니죠. 하지만, 기술적 우위가 정치적 권력을 압도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생성형 AI 시대의 전쟁은 더 빠르고 정확합니다. 승리와 함께 따라오는 더럽고 추악한 전리품은 더욱 고약해지고 있고요. 동시에 선출된 권력의 결정이 아닌, 민간 기업이 개발한 기계 지능의 결정에 따라 미사일이 발사되는 시대도 너무 가까이 왔습니다.
새로운 전문가가 나타났다.
이번 전쟁의 발발과 함께 분란이 일어난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예측 사이트 ‘칼시’입니다. 무엇이든 주제를 정해 베팅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이란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첫 미사일 공격이 언제 시작될지, 누가 피해를 당할지 등을 두고 수억 달러 규모의 거래가 발생했죠.
그중에는 하메네이가 ‘국가 최고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날지 여부’에 관한 베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메네이는 사망했죠.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이 있기 전까지는 ‘사망한 것 같다’는 소식이 떠돌았고요. 바로 이 시점에 ‘Yes’에 베팅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칼시는 상황이 종료된 후 하메네이의 사망 직전 시점을 기준으로 베팅 결과를 정산했습니다.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예상했던 정산금을 받지 못했던 이용자들은 화가 났겠지만, 칼시와 같은 플랫폼의 지명도와 신뢰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쟁과 같이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지정학 전문가의 예측보다 칼시나 폴리마켓과 같은 베팅 사이트의 거래 상황이 더욱 큰 주목을 받는 겁니다.
2026년 3월 3일 현재 폴리마켓 홈페이지의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베팅 주제는 ‘이란 정권이 6월 30일까지 무너질 것인가?’입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Yes’에 돈을 건 비율이 35퍼센트네요. 이 질문에 600만 달러 이상이 베팅되었습니다. 이 숫자의 크기를 능가할 정도로 믿을만한 전망이 과연 가능할까요? 〈CNN〉, 〈CNBC〉,〈
AP〉 등 주요 매체들이 예측 사이트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미래를 보도하겠다며 말이죠.
이와 같은 현상은 전쟁의 개념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인 전문가 집단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투표와 분석에 근거한 결론은 다릅니다. 어느 쪽의 적중률이 더 높은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때로는 투표 결과가 근사치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수 집단에 이익이 되는 결과와 옳은 결과가 늘 일치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 집단의 의견은 정책 결정자가 무시할 수 없는 경고였지만, 이제 그 힘은 약화합니다. 포퓰리즘 성향의 정치가에게는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 비관적인 부분은 우리가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입니다. 사진으로 전쟁의 참상을 접하게 되면서 ‘타인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TV를 통해 24시간 전쟁을 생중계하게 되면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미지’로 전쟁을 소비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전쟁을 두고 베팅을 합니다. 전쟁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시대에서 전쟁을 투자 상품으로 소비하는 시대로의 이행입니다.
새로운 전쟁의 결과
보통 전쟁이 터지면 미국 국채 가격이 오르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장은 물리적 파괴와 시스템적 혼란보다는 인플레이션을 더 걱정합니다. 이란 전쟁 이후 미국 국채 가격은 고꾸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강대국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만들기 위해 전쟁에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하곤 했습니다. 구호 활동을 지원하는 수준부터 직접 군대를 투입하는 방법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란의 비빌 언덕인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어떤 입장 조차 내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협력과 지정학적 문제는 별개인 시대가 온 겁니다.
이번 전쟁이 얼마나 갈지, 그리고 어떤 상흔을 남길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를 기준으로 미래를 전망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미국이 주장하는, 그리고 전 세계가 어쩔 수 없이 함께 올라탄 ‘힘에 의한 평화’의 시대에는 양심과 체면, 규칙과 반칙, 승리와 패배의 경계가 예전과는 다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