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일 이란에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란 공습과 관련해 “4~5주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오래 작전을 지속할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상군 투입 여부에 대해 “나는 거기에 대한 울렁증(yips)이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말했듯 역대 모든 미국 대통령이 ‘지상군 투입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왔으니까요. 공화당 내부에서도 지상군 투입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MAGA 진영은 미국의 국익과 직결되지 않는 해외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을 지지하고 있고요.
boots on the ground
지상군 투입(boots on the ground)은 전쟁을 끝낼 마지막 카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지막이 아니라 다른 게임의 시작입니다. 공중 폭격이 적의 시설을 무너뜨리는 동안, 지상군은 사회를 다뤄야 합니다. 말 그대로 땅에 발붙이고 서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폭격이 화학과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의 결합이라면, 점령은 사회학입니다. 인간의 두려움, 체면, 복수, 협력, 배신의 문제입니다.
폭격은 목표를 파괴하면 그만이지만, 지상군은 목표를 통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치란,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훨씬 비싸고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조차 지상군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상군을 투입하면 전사자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전쟁이 통제 불능의 장기 프로젝트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었던 대로 말입니다.
공중전의 한계
정치학자 로버트 페이프는 걸프전을 포함한 30건의 공중 작전을 분석해 《승리를 위한 폭격(Bombing to win)》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공중 폭격만으로 상대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습니다. 첨단 정밀 유도 기술의 등장도 이러한 사실을 거의 바꾸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전쟁 이론가들의 기대처럼 공군력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고, 값싼 승리의 수단도 아니라는 겁니다.
전쟁의 목적은 시설 파괴가 아닙니다. 정치적 상태의 변화입니다. 폭격은 물리적 인과관계를 만듭니다. 이 건물을 부수면 저 능력이 약해진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인과관계는 인간의 반응으로 만들어집니다. 폭격이 커질수록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외부 위협이 내부 결속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페이프가 지적하듯, 폭격이 오히려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권 교체를 목표로 삼는 순간, 지상군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됩니다. 그리고 지상군을 선택하는 순간, 전쟁은 더 이상 4~5주짜리 타격이 아니라 몇 년짜리 사회 재건의 문턱으로 넘어갑니다.
이란의 방어 체계
지상전의 관점에서 이란은 지리 자체가 방어 체계입니다. 광활한 국토, 산악 지형, 인구 규모, 대도시 분포는 지상군에게 네 가지 부담을 동시에 안깁니다.
산악 지형은 기동을 느리게 만들고, 감시와 사격의 이점을 방어자에게 줍니다. 드론과 위성 기술로 보는 것은 쉬워져도, 들어가서 점령하고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느립니다. 기동이 느려지면, 매복과 급조 폭발물(IED), 소형 드론 공격에 취약해집니다. 게다가 이란은 땅까지 넓습니다. 남한 면적의 16배입니다.
현대전의 사망과 부상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도시전은 센서와 정밀 유도 무기의 우위를 약화시키고, 소규모 전투와 식별 문제를 극단적으로 키웁니다. 민간인인지 전투원인지 제대로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술적으로는 승리해도 정치적 역풍을 맞아 전략적으로 패배할 수 있습니다. 민간인 사상자가 늘면 전쟁의 정당성은 빠르게 닳습니다.
지상군은 탄약, 연료, 식수 같은 보급이 생명선입니다. 보급선이 걸어질수록 방어해야 할 목표물이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그 늘어난 목표물은 전쟁의 성격을 정규군이 맞붙어 결전을 치르는 식이 아니라, 상시 벌이는 대반란전으로 바꿔 놓습니다. 기지, 항만, 공항, 주요 도로에 대한 드론, 미사일, 특수 작전 위협이 커질수록, 투입 가능한 전력보다 지켜야 하는 시설이 더 빨리 늘어납니다.
국가 또는 네트워크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이 배운 가장 쓰라린 교훈은, 적은 종종 국가가 아니라 네트워크였다는 것입니다. 정부를 무너뜨려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무장 단체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위협을 가했습니다. 이때 지상군의 임무는 탱크전이 아니라, 정보전, 치안, 테러 대응, 사회 재건으로까지 확장됩니다.
미국은 이란 수뇌부를 제거했지만, 혁명수비대와 민병대 네트워크는 건재합니다. 이러한 네트워크형 무장 세력은 공중 타격으로 상층부가 제거되어도, 하부 조직들이 지역, 민족, 종파, 경제적 이해관계로 재결합합니다.
또한 식별 불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공격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무장 조직이 미군 기지를 공격했는데, 그 조직이 이란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면 그 의혹만으로 이란을 공격해도 괜찮을까요. 결국 민병대나 대리 세력이 미국을 공격하면, 공격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흐려져서 상대에게 보복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 벌인 전쟁에서 이기려면 점령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현지 사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협력은 총구로 강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총구는 협력을 더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란은 종교적 영향력이 큰 나라입니다. 종교적 정당성, 순교의 서사, 외세 저항의 전통이 있는 사회에서는 저항의 힘은 미국의 첨단 군사 기술만큼 강력합니다.
민주주의의 제약
지상군 투입이 어려운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간과 전장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가만히 놔두면 무질서도가 증가합니다. 전쟁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은 늘 깊어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정치는 늘 짧아지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최소 2년마다 다가오는 선거 때문입니다.
전쟁 사상자가 늘수록 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하락합니다. 이번 이란 국면에서도 공중전 단계에서부터 이미 미국 내 다수의 반대 여론이 확인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상군까지 투입하면 사상자 수가 폭증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올해 11월 중간 선거가 치러집니다. 정치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하기에 가장 좋지 않은 시점입니다.
트럼프는 지상군 투입에 “울렁증(yips)이 없다”고 했습니다. ‘입스’는 원래 스포츠에서 심리적 경직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단어를 전쟁에 가져오면, 역설적으로 ‘나는 심리적 제약을 극복했다’는 이미지를 주는 동시에, 사실상 국내 정치 때문에 행동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 제약을 외교 협상에서 압박 수단처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은 충분히 상대를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국 국민도 흔들 수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생긴다면 미국 내 여론이 급작스럽게 요동칠 수 있겠죠. 이 전쟁은 처음에는 이기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여론이 나빠지면 어떻게 끝낼 것인지가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전략의 중심이 승리에서 탈출로 바뀌는 겁니다.
재고
현대전은 산업전입니다. 정밀 유도 무기와 방공 미사일은 고가, 고난도 생산품입니다. 재고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이란이 날린 5000만 원짜리 자폭 드론 한 대를 격추시키는 데 60억 원짜리 미사일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간 전쟁 오래하고 싶어도 오래 못합니다. 미국이 이란을 공습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미국의 미사일 재고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무기 재고 부족은 지상군 투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지상군이 들어가면, 보호해야 할 것이 늘어납니다. 그 보호는 요격 체계와 방공 자산에 더 큰 부담을 줍니다. 즉 지상군 투입은 단지 병력의 문제가 아니라, 탄약, 요격, 정비, 의무후송, 수송선단의 총체적 소비 문제입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적의 전력보다 아군의 재고가 먼저 말라버리는 역소모전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라크·아프간의 유령
숫자보다 무서운 것은 기억입니다. 이라크와 아프간은 미국 사회에 전사자 통계 이상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미국은 두 전쟁을 겪으며 전쟁의 목표가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대량 살상 무기 제거에서 민주주의 국가 건설로, 테러 소탕에서 국가 재건으로 전쟁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미국 사람이, 미국 돈을 들여서, 남의 나라를 건설해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 MAGA의 씨앗이었죠. 이 경험이 지상군이라는 단어를 금기로 만들었습니다.
전쟁 상대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미국인에게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은 악몽이었습니다. 두 전쟁에서 미국인 6800명이 죽었습니다. 예산도 수천억 달러를 썼습니다. 베트남전보다 많이 썼습니다. 그사이 미국인은 금융 위기, 공교육 붕괴, 공중 보건 위기, 인프라 낙후 등을 겪었습니다. 남의 나라에 가서 벌이는 전쟁에 정치적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는 입스를 극복했다고 주장하지만, 공화당 주류와 유권자 다수는 여전히 입스에 빠져 있습니다.
요약하면, 미국의 지상군 투입은 불가능합니다. 그 순간부터 승리 조건이 파괴에서 통치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치는 군사력만으로 달성되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에는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자원이 부족합니다. 정치적 시간도 없고, 무기 재고도 없고, 동맹국의 지원도 없고, 미국 내 우호적 여론도 없고, 현지 협력도 없습니다. ‘거래의 달인’ 트럼프가 지는 거래를 할 리 없습니다.
결국 트럼프의 발언은 이란을 압박하는 협상 카드입니다. 전략적 모호성을 택한 겁니다. 그리고 그 모호성이 남긴 약간의 여지 때문에, 국제기구부터 각국 정부, 기업, 금융, 개미 투자자까지 모두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