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가 참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특히 러닝의 인기가 압도적이죠. 한 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러닝 인구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트레일 러닝이나 등산도 연령대를 확대하고 있고요. 그런데 모든 스포츠가 함께 상승한 것은 아닙니다. 상승 종목이 있으면, 하락 종목도 있죠. 대표적인 하락 종목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스키입니다.
최근 4년 사이 우리나라 스키장 17곳 중 4곳이 폐업했습니다. 20퍼센트가 넘는 숫자입니다. 시설보다 사람이 더 줄었습니다. 한때 68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던 스키 인구가 최근 140만 명 수준까지 감소한 겁니다. 이쯤 되면 신규 유입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죠. 산업 자체가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질퍽하고 딱딱한 눈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기후 위기입니다. 21세기 중반에는 동계 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국가가
20개국 미만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정도니까요. 문명의 이기가 충분히 닿는 곳 중에서 동계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춥고 눈이 오는 지역을 포함하는 국가의 수가 20개국이 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당연히 스키장을 운영해 수익을 내기는 극도로 어려워졌습니다. 2014년 12월 강원도 평창 지역의 평균 기온은 영하 7.7도였습니다. 2024년에는 영하 4도로 올랐고요. 상대적으로 해발 고도가 낮은 경기도 이천 지역은 더욱 심각합니다. 2014년에는 영하 4.1도였던 것이 2024년 영하 0.5도에 머물렀습니다. 해가 나는 낮 시간에는 눈이 질퍽하게 녹는 정도의 온도입니다.
기온의 상승은 비용의 상승으로 곧장 이어집니다. 인공눈 비용입니다. 용평리조트의 경우 2010~2011년 시즌 비용이 10억 5천만 원 수준에서 2019~2020년 시즌에는 14억 9천만 원 수준으로 상승했습니다. 반면, 스키장을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은 줄었습니다. 한 때 140일 안팎이었던 것이, 지금은
90일대로 줄어들었죠. 이래서는 수익성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보다 스키를 더 먼저, 대중적으로 즐겨왔던 지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캐나다 워털루 기후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스키 산업은 지난 20년간 약 5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추산했습니다.
유럽의 알프스 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에서도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부터 스키 시즌을 단축하거나 스키장을 폐쇄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부유하고 안목 있는 소비자
기후 위기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스키라는 스포츠의 가격 자체도 점차 비싸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스키를 즐기기 위한 비용은 2015년 이후 평균적으로 34.8퍼센트 상승했습니다. 물가 상승률보다 높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직접적인
반발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스키 리조트 운영 회사들이 전반적으로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스키를 탈 수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스키가 부유층만을 위한 활동이 되었다고 말이죠.
미국의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분석은 더욱더 노골적입니다. 2025년 시즌 스키장을 찾는 가구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퍼센트 이상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스키에 2000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가구는 2018년 이후 거의 세 배로 증가했습니다. BoA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스키 산업이 부유하고 안목 있는 소비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관찰됩니다. 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더 저렴하게, 더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홍보 전략보다는 프리미엄 시즌권이나 가족 대상
상품을 내세워 더 편리하고
질 좋은 방문 경험을 약속하는 방향으로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중산층이 만든 산업
원래 스키는 아주 오래전부터 생존과 이동, 사냥과 군사 기술이었습니다.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등 유라시아 북부의 이동을 위해 존재했죠. 1000년도 더 된 스키 장비가
발굴되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즐길 거리’로서의 스키의 기원은 19세기 후반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1850년대 이후 노르웨이에서 본격적으로 스포츠화했고, 이후 알프스 주변 국가들로 확산했습니다.
다만, 알프스산맥을 넘어 스키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미군이 유럽의 겨울 산악전 가능성에 대비해 특수 산악부대를
조직한 겁니다. 이 특수부대 출신들이 전후 미국 전역에 스키 리조트, 스키 학교, 장비 및 리조트 사업 등에 나섰습니다. 마침, 미국은 전후 중산층이 성장하고, 경제는 호황을 누렸죠. 겨울 시즌,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새로 산 자동차를 몰고 온 가족이 스키를 타러 갈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스키의 대중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키 산업은 중산층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1990년대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한 이후 주5일제 시행, 자동차 보급 증가 등과 맞물려 인기를 얻게 됩니다. 무엇보다, 대학 동아리를 통한 또래 집단의 즐길 거리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회사 워크숍으로 스키장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스키는 한 때 중산층의 계급을 상징하는 생활 양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건설사의 비즈니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호황은 끝났습니다. 전 세계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스키 산업은 호황기에 맞춰 설계되었고, 진화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시즌권’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미리 지불하고 한 시즌 전체의 이용권을 미리 구입하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런 시즌권을 ‘메가 패스’라고 합니다. 시즌 내내 여러 스키장의 봉우리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환불은 불가능하며, 연초에 판매를 시작해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매진되거나 판매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체로서는 무조건 남는 장사입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고정 수익을 미리 확보해 둘 수 있습니다. 시즌 중에 날씨 등으로 스키장을 찾는 고객 수가 줄어들어도, 이 수익에는 변함이 없으니까요. 패스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음식, 강습, 장비 할인 등의 혜택도 제공됩니다. 스키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이 메가 패스를 미리 구입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대형 스키 리조트 체인은 2024년도 시즌 방문객의 75퍼센트가
패스를 소지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스키를 자주 타는 사람들에게는 효율적인 제도입니다. 하지만 초보자나 큰맘 먹고 스키장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습니다. 이 패스를 구매하지 않고 일일 리프트권을 구매하면, 상대적으로 너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즌권 시스템은 스키라는 스포츠에의 진입 장벽을 높입니다. 스키를 사랑하게 될 기회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스키장에서 눈에 띄는 고령화가 관찰됩니다. 미국 스키장 협회(National Ski Areas Association, NSAA) 2024~2025년 시즌 미국에서 스키장을 찾은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7세로, 10년 전에 비해 7세 높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다만, 언론은 저출산에서 그 원인을 주로 찾고 있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50만 원짜리 시즌권을 끊고 강습부터 들어야 하는 스키장은 2026년의 20대에겐 몹시 부담스럽습니다. 취미를 ‘찍먹’해 보기엔 효율이 너무 떨어집니다. 일부러 먼 곳까지 이동해 리조트에서 스키에만 집중하는 방식도 시성비가 좋지 않죠. 무엇보다 90년대의 20대, 30대는 주임님과 대리님이었을 겁니다. 지금의 20대와 30대는 취준생이자 인턴사원, 신입 사원입니다.
결과적으로 스키는 시대와 불화하는 스포츠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공눈 없이는 운영하기 힘듭니다. 이번에 동계 올림픽을 치른 알프스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낮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 인공눈이 만들어지지 않아
밤새 작업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인공눈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하고, 물을 끌어 쓰게 됩니다. 기후 위기에 악영향을 더 얹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개인의 무한 경쟁을 요구하는 시대에도 맞지 않습니다. BoA의 분석은 조금 냉담하게 보이지만, 사실입니다. 스키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문화가 발생하고 지속적인 유입도 발생합니다. 하지만 스키 산업의 시스템은 불황기에 저변을 넓히기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스키는 여전히 매력적인 스포츠입니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경험이죠. 하지만 산업은 그 매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