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는 시간

bkjn review

과학자들은 영구 동토층을 ‘탄소 시한폭탄’이라고 부릅니다.

얼음이 녹는 시간

2026년 3월 11일

아마도 이번 겨울의 마지막 꽃샘추위가 끝난 것 같습니다. 지난주, 해발고도가 높은 산에는 눈이 내려앉았죠. 다 녹아내리기 전에 올해 마지막 설산을 보겠다는 등산객들이 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눈과 얼음이 녹아내리면, 생명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새순이 돋고, 365일간의 순환이 다시 시작됩니다.

하지만 해빙과 함께 재앙을 예감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북방 영구 동토층입니다. 학술적으로는 2년 이상 섭씨 0도 이하의 기온이 유지되는 지층을 일컫습니다. 웬만해서는 녹지 않는 땅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곳이 서서히 녹고 있습니다. 온난화 영향입니다. 얼음이 녹아내리며 기이한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는 중입니다. 아직 인류는 미처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이 지표면 위로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붉은 강

미국 알래스카의 브룩스산맥 근처에는 주황색 강이 흐릅니다. 일부 구역에 드문드문 보이는 현상이 아닙니다. 인공위성으로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엄청난 규모입니다. 마치 강줄기 전체가 불타는 듯 보입니다. 가까이 가 보면, 주변의 암석과 토양까지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최근 몇 년간 더 많은 영구 동토층 지역에서 더 심하게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 기괴한 모습은 철 때문입니다. 근처에 광산이라도 있어 오염수가 흘러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로 얼어 있던 땅, 즉 영구 동토층이 녹아 내라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토양에 섞여 있던 철 성분이 산성수에 노출되어 녹슬고, 이것이 씻겨 내려오면서 강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북극 주변 지역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북서부, 시베리아 지역 등에서 붉게 녹슨 강의 모습이 위성 이미지를 통해 관찰됩니다.

철뿐만 아니라 망간, 니켈 등 중금속도 함께 녹아들고 있습니다. 유럽 알프스산맥, 피레네산맥 등지에서는 하얗게 변한 강이 관찰되고 있는데, 알루미늄 때문입니다. 이런 강을 더 많이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자들은 2100년까지 지표면 근처의 영구 동토층이 거의 다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 게이츠 오브 더 악틱 국립공원의 쿠툭 강의 항공 사진.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광물들이 풍화 작용을 받아 산성도가 높아지고, 철, 아연, 구리 등의 금속이 녹아들고 있습니다. / 출처: National Park Service
거품의 정체

온난화 현상은 이제 놀라운 뉴스가 아닙니다. 몇십 년 동안 인류가 알면서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재난일 뿐이죠. 단, 지구 전역에서 온난화가 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북극권은 지구의 다른 지역보다 4배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 중입니다. 이 현상을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이라고 합니다.

북극 증폭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알베도 피드백’입니다. 흰 눈과 얼음은 태양 빛의 80~90퍼센트를 반사합니다. 그런데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 상대적으로 어두운 바다나 육지가 드러나게 되죠. 이 어두운 표면은 태양열을 80~90퍼센트 흡수하게 됩니다. 온난화의 악순환에 가속이 걸리는 겁니다. 얼음이 녹을수록 북극이 따뜻해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집니다.

이 가속에 더욱 불을 붙이는 것이 영구 동토층의 해빙입니다. 이곳에는 전 지구 평균 기온을 섭씨 3도 이상 올릴 수 있는 양의 탄소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영구 동토층을 ‘탄소 시한폭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소규모 폭발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극권 근처에 생긴 호수들에서 이상한 거품이 올라오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는 겁니다. 이산화탄소보다 온실 효과가 20배 이상 강력한 메탄가스입니다.
영구 동토층 지역이었던 곳들이 이제는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끝없이 솟아오릅니다. 출처: NOVA PBS
일반적인 생태계에서는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합니다. 이 탄소는 먹이 사슬을 따라 순환하다 생물체가 죽으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서 다시 방출됩니다. 탄소는 이렇게 생명을 따라 흡수와 방출을 반복하며 순환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북극 툰드라 지방에서는 좀 다릅니다. 얼어 있기 때문입니다. 온도가 낮고 산소가 부족해 미생물이 사체를 분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기물이 분해되지 않은 채 땅속에 켜켜이 쌓이게 되죠. 그대로 얼어붙어 영구 동토층 깊숙이 봉인됩니다.

그런데 기온이 상승해 얼음이 녹으면서 서서히 미생물들이 깨어났고, 수천 년에서 수만 년 동안 정지되었던 분해 작용이 시작된 겁니다. 지금 솟아나고 있는 메탄가스는 긴 시간 쌓여 왔던 냉동고가 열리면서 시작된 거대한 부패의 일부일 뿐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해빙된 영구 동토층의 유기 탄소 중 절반 이상이 해빙 후 일주일 만에 분해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수천 년간 쌓인 탄소가 방출되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습니다.

다음 팬데믹

그나마 붉은 강이나 솟아오르는 메탄가스는 정체가 분명한 위험입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지역이 품고 있는 바이러스와 병원균입니다.

이미 경고 신호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탄저균 집단 발병이 발생했습니다. 사람은 수십 명이 감염되었고, 2000마리 이상의 순록이 죽었습니다. 기록적인 무더위로 얼어 있던 땅이 깊은 곳까지 녹으면서 수십 년 된 순록 사체에 잠들어 있던 균이 부활했던 겁니다.

영구 동토층 해빙으로 인해 매년 방출되는 미생물의 수는 40해(垓)입니다. 1해는 10의 21승을 의미하고요. 연구자들은 이 미생물들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얼마나 위험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탄저균 이외에도 어떤 병원균이 묻혀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얘깁니다. 현대의 인간을 어떤 식으로 공격할지 그 어떤 힌트도 없다는 것이죠. 

실제로 수만 년 전에 활동했던 ‘좀비 바이러스’를 찾아낸 사례도 있습니다. 시베리아에 냉동된 채로 잠들어 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바이러스는 수만 년 전의 생물을 공격합니다.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 말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우리 모두 배웠듯, 바이러스는 빠르게 진화합니다. 2023년 추가로 발표된 연구에서는 시베리아 곳곳에서 다양한 바이러스 변종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바이러스들은 인간에 해를 입힐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경험한 적 없는 존재입니다.

또, 냉동 보관된 위험은 몇 세기, 몇만 년 전의 세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20세기의 위험도 묻혀 있습니다. 냉전 시대 핵잠수함이나 원자로에서 나온 방사성 폐기물은 물론, DDT와 같이 이제는 금지된 살충제까지 방출될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위험을 모르는 체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위험을 더욱 급격하고 포악하게 만들 뿐입니다. 지금 당장 이 위험에 눈을 감고 나면 북극에 새로 뚫릴 항로라는 노다지가 보일 겁니다. 그렇게 더 많은 배가 북극 주변을 항해하게 되면, 얼음 속에 잠들어 있던 위험은 해류를 타고 더 빠르게, 더 멀리 퍼져 나갑니다.

올겨울은 너무 춥기도 하고, 또 따뜻하기도 했습니다. 북극이 따뜻해 지면서 찬 공기를 막아주던 제트 기류가 출렁였던 까닭입니다. 이제 봄입니다. 하지만 북극에 따뜻한 봄이 찾아올수록 지구는 위험해집니다. 녹지 말아야 할 얼음이 녹고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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