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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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6·3 지방선거 국민의힘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는 이길 수가 없다

2026년 3월 9일

3월 8일은 6·3 지방선거 국민의힘 공천 신청 마감일이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천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 시장은 “당 노선 정상화”를 선결 과제로 내걸었습니다. 지금 국민의힘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후보 선정보다 ‘윤 어게인(again)’ 세력과의 절연이라는 겁니다. 오 시장 측은 당 지도부가 노선을 바꾸지 않으면 ‘중대 결단’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오 시장은 훼손된 정당 브랜드를 단 채로는 서울 수성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최근 여론 조사에서 오 시장은 민주당 후보들과 오차 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거나, 심지어 뒤처지는 결과까지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이라는 간판이 걸림돌이 된 상황에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며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정치학자 올리 헬만은 한국 정당 정치의 허약함을 두고 “정당 없는 정당 체계(Party system without parties)”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정당의 뿌리가 약하다 보니, 위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당을 구하기보다 당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합니다. 오 시장의 이번 선택 역시 이러한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당이 후보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후보가 당과의 거리를 조절하며 스스로 생존 공간을 설계하는 모습입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무게 중심은 이제 정당이라는 거대 담론을 넘어, 정치인 개인의 고유한 캐릭터와 실질적 성과가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정치의 개인화’ 시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당이 점차 거대하고 추상적인 조직으로 관성화되는 사이,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얼굴과 화법, 캐릭터, 구체적인 행정 성과, 그리고 소셜미디어 이미지를 통해 정치인을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최전선에 서울시장 같은 대도시 광역단체장이 있습니다. 대도시 유권자들에게 이념적 선명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교통, 주거, 문화, 안전 등 일상의 삶을 결정짓는 도시 브랜드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모든 정책적 성과가 정당의 이름이 아닌, 시장 개인의 브랜드로 고스란히 수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대도시 시장은 당의 후광에 기대기보다, 스스로가 곧 도시의 상징이자 독자적인 브랜드가 되어 유권자와 직접 마주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오세훈 시장은 애초부터 정당의 후광보다는 자신의 개인 브랜드에 승부수를 던져 온 정치인이었습니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시장직 사퇴, 그리고 2021년 보궐 선거를 통한 극적인 복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력은 ‘정당인 오세훈’보다 ‘승부사 오세훈’의 서사 위에서 쓰여 왔습니다.

이번 공천 미등록 사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스스로 판을 흔들고 승부의 책임을 자신이 온전히 감당하겠다는 특유의 방식입니다. 다만 유념할 지점은 결단의 성격입니다. 2011년의 사퇴가 복지 국가로 넘어가던 시대 변화에 대한 오판이었다면, 2026년의 미등록은 시대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낸 결과에 가깝습니다.

특히 복합 도시인 서울에서는 이러한 판단이 더욱 중요합니다. 플랫폼 노동자, 1인 가구, 디지털 전문직부터 고령층까지 혼재된 서울에서는 전국 단위 정당의 이념 구호보다 섬세한 도시 운영의 신뢰가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오 시장이 당과의 거리를 전시한 것은 보수의 전통 지지 기반만으로는 더 이상 서울 전체를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보는 해외 대도시 시장들의 전략과도 닮아 있습니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2007년 공화당을 떠나 무소속이 되며 뉴욕을 실용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했고, 보리스 존슨은 런던시장 시절 보수당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국제도시 런던’의 위상에 걸맞은 온건하고 코즈모폴리턴한 보수주의자의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이들은 거대 도시 시장이 당의 한계를 넘어서는 독자적 브랜드를 확보할 때, 그것이 훗날 중앙 정치로 나아가는 강력한 발판이 된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엘레오노라 파소티는 현대 도시 정치에서 브랜딩이 단순한 홍보를 넘어 통치의 핵심이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도시와 지도자는 서로를 상징하는 하나의 상표가 되며, 유권자들은 정당의 노선뿐 아니라 도시가 자신에게 어떤 정체성과 자부심을 제공하는가까지 고려해 정치적 선택을 합니다. 오 시장은 그동안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스마트시티 같은 구체적인 정책 자산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꾸준히 축적해 왔습니다.

문제는 그가 만들어 온 서울과 개인의 브랜드가 정당 브랜드와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서울은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데, 당은 2024년 12월 3일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결국 이번 선택은 공격인 동시에 방어입니다. 오 시장은 ‘이대로는 진다’는 공포를 극대화해 당 지도부를 압박하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책임론을 사전에 차단하는 강력한 방어막이기도 합니다.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그는 “나는 이미 분명히 경고했다”고 말할 수 있고, 당이 노선을 바꾸고 혁신에 성공한다면 그 변화를 견인한 리더로 추대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손실을 줄이려는 치밀한 계산입니다.

2025년 조기 대선에 나서지 않았던 오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더 큰 승부수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기기 위한 출마가 아니라, 지더라도 어떻게 져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선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부 이후 한국 보수 정당은 처음으로 “누구를 내보낼까”라는 인물론적 접근을 넘어, “이 정당의 간판으로 승부가 가능한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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