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배우고 싶다는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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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입니다.

대통령이 배우고 싶다는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

2026년 3월 18일

이달 초 싱가포르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 대통령을 만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의 유사점 중 하나는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점은 이 좁은 국토에서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으면서도 주택 문제나 부동산 문제가 전혀 사회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재직 시절부터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많이 배워 가겠다고도 했죠.

한국 역시 국토는 좁고 인구와 경제 활동은 특정 지역에 밀집해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같은 제약 조건 아래에서도 집값이 잡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값이 불평등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싱가포르의 해법은 한국에도 통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싱가포르의 주거 시스템은 한국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그대로 이식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참고할 점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제도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도 뒤에 있는 국가의 선택과 철학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국가가 설계한 주거 시스템

싱가포르 주택 정책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국가가 토지를 통제하고, 국민 대부분을 공공 주택에 거주하게 합니다. 그 결과 현재 싱가포르 인구의 80퍼센트는 공공 주택인 HDB(주택개발청) 아파트에 삽니다.

이 주택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취약 계층 중심의 공공 임대와는 다릅니다. 싱가포르의 공공 주택은 국가가 공급하지만, 개인이 장기적으로 점유하고 자산처럼 보유하는 구조를 띱니다. 다시 말해 싱가포르는 공공성과 소유를 대립시키지 않고, 국가가 통제하는 틀 안에서 둘을 결합해 왔습니다.

이 시스템은 세 가지 축으로 작동합니다. 먼저, 토지의 공공성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토의 90퍼센트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거나 통제합니다. 토지라는 가장 근본적인 자원을 국가가 쥐고 있기 때문에, 주택 가격도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지지 않습니다. 또한 싱가포르는 주택 구매를 강제 저축과 결합합니다. 싱가포르 국민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중앙적립기금(CPF)에 의무적으로 저축하고, 이 자금을 활용해 HDB 주택을 구매합니다. 주택 정책이 단순한 공급 정책이 아니라, 노동·소득·저축·복지를 함께 묶는 사회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강한 수요 관리입니다. 외국인 구매 제한, 재판매 규제, 최소 보유 기간 같은 장치들은 주택을 투기 자산으로 바꾸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 세 요소가 맞물리면서 싱가포르의 주택은 시장의 자유 경쟁 상품이라기보다, 국가가 설계한 사회 안정 장치가 됩니다. 집은 단지 거래되는 물건이 아니라, 결혼과 가족 형성, 중산층의 형성, 정치적 안정까지 떠받치는 제도의 일부가 됩니다. 싱가포르에서 주택이 상대적으로 덜 폭발적인 사회 갈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집값이 오르지 않아서라기보다 주택이 처음부터 시장의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만든 자산

한국의 주택 시스템은 정반대에 있습니다. 토지는 대부분 민간이 보유하고, 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됩니다. 국가는 공급을 늘리거나 세금과 대출 규제를 조정하면서 시장에 개입하지만, 시장의 기본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국가는 플레이어라기보다 심판이고, 그것도 경기 도중 끊임없이 룰을 수정하는 심판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는 제도 운영 방식의 차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택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한국에서 주택은 거주 공간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자산 축적 수단입니다. 집값 상승은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자산 증식과 계층 이동의 기회로 인식됩니다. 반대로 집을 사지 못하는 것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에서 밀려난다는 뜻이 됩니다.

특히 수도권 집중은 이 구조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집은 그냥 집이 아닙니다. 그 사람 자체입니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몇 동에 사는지, 몇 평에 사는지,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가 그 사람의 계층을 설명하는 지표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계층 재생산 구조의 문제로 번집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자기 강화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는 매수 수요를 키우고, 매수 수요는 다시 가격을 밀어 올립니다. 사람들은 집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집을 사려 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흔히 말하는 공급 부족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공급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깊은 층위에는 주택을 자산 증식의 핵심 장치로 보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구조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모델의 유혹

이런 상황에서 싱가포르 모델은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집값의 급등이 구조적으로 억제되고, 국민 다수가 자가 비슷한 안정성을 누리며, 주택이 시장 불안보다 사회 통합에 더 가까운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처럼 주택이 불평등과 정치적 분열의 핵심 변수가 된 나라에서는, 싱가포르식 시스템이 일종의 대안적 상상력으로 비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요소도 분명 있습니다. 우선, 공공 주택의 범위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에만 가두지 않는 발상입니다. 중산층까지 포괄하는 소유형 혹은 준소유형 공공 주택 모델은 한국에서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과 주택을 분리해서 보지 않는 접근도 검토할 만합니다. 싱가포르는 저축, 복지, 주택 구매를 하나의 시스템 안에 넣어 설계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주택 정책, 연금 정책, 가계 부채 정책이 따로 움직입니다. 시장을 부정하지 않되, 투기적 수요에는 명확한 한계를 두는 태도도 배워야 합니다. 한국 역시 수요 억제 정책을 써왔지만 대체로 일시적이었고 오락가락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규제의 강도만이 아니라 규제의 일관성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한계도 분명해집니다. 싱가포르 모델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와, 그것을 한국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이유는 사실 같은 데서 나옵니다. 싱가포르의 성과는 몇 개의 영리한 정책 수단이 아니라 국가 구조 전체와 맞물린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토지 체제부터 다릅니다.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이자 강한 토지 공공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반면 한국은 이미 민간 소유가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고, 토지는 개인 자산과 지역 정치, 개발 이익이 복잡하게 얽힌 공간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국가가 토지를 대규모로 확보해 싱가포르처럼 주택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정치적 저항을 동반합니다. 제도적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점 자체가 다릅니다.

사회적 합의의 조건도 다릅니다. 싱가포르는 장기 정책을 비교적 일관되게 밀어붙일 수 있는 국가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주택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조가 흔들렸습니다. 어떤 정부는 규제를 강화하고, 어떤 정부는 공급을 강조하며, 또 어떤 정부는 둘 다 말하지만 둘 다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낮은 환경에서는, 장기적 주거 시스템 개혁도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문화적 요인 역시 가볍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주택은 단지 거주의 수단이 아닙니다. 노후 대비의 수단이고, 상속의 수단이며, 한국 중산층의 가장 익숙한 자산 축적 방식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주택의 투자 기능을 약화하는 정책은 시장 논리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중산층의 생애 전략 전체를 흔드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항은 경제적일 뿐 아니라 정서적이기도 합니다.

결국 싱가포르 모델은 복제가 아니라 번역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제도의 외형을 베끼는 것으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참고해야 할 것은 HDB라는 형식 그 자체가 아니라, 주택을 사회 안정의 기반으로 놓고, 그에 맞게 토지, 금융, 공급, 수요를 함께 설계하는 사고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 필요한 것은 ‘싱가포르처럼 보이는 정책’이 아니라, 한국 조건에서 작동할 수 있는 한국식 공공성의 재설계입니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논의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입니다. 싱가포르의 성공은 정책 설계의 정교함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주택 시장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하는 대신 가격 안정과 보편적 주거를 우선하겠다는 선택에서 나왔습니다. 주택을 통해 큰 자산 이익을 얻을 자유를 일부 포기하고, 대신 넓은 계층에게 예측 가능한 주거를 제공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한국이 같은 방향을 고민한다면, 질문도 정책 기술의 차원을 넘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주택을 계속 큰돈을 벌 수 있는 자산으로 둘 것인지, 아니면 가격 상승의 여지를 줄이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살 수 있게 만들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공급 물량을 얼마나 늘릴지, 대출을 얼마나 조일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선택입니다.

이 선택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릅니다. 전자를 택하면 시장의 활력과 자산 축적의 기회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개발 유인도 살아 있고, 기존 자산 보유자의 불만도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격차는 확대되고, 무주택자의 진입 장벽은 높아집니다. 반대로 후자를 택하면 가격 안정과 주거 접근성은 개선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자산 보유자의 반발은 커질 것이고, 성장 둔화 논란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정부는 집값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와 누구에게 부담을 감수하게 할 것인지 사이에서 균형을 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균형이 경제학 교과서의 계산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의 이익과 아직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기회, 단기 경기와 장기 안정, 개인의 재산권과 사회 전체의 접근성 사이에서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는 숫자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은 늘 흔들립니다. 정부가 유독 무능해서만은 아닙니다.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말하지만, 급락은 원하지 않습니다. 너무 오르면 무주택자의 분노가 커지고, 너무 내리면 보유자의 반발이 커집니다. 이 딜레마 속에서 정책은 늘 조정에 머물고, 구조를 바꾸는 선택은 미뤄집니다. 한국 부동산 정책이 반복해서 미세 조정의 늪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해외 사례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한국 주택 정책의 기준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다시 묻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호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싱가포르를 모방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한국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균형, 이를테면 가격을 얼마나 억제할 것인지, 자산 이익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공공이 시장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것인지에 대한 더 솔직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결국 주택 문제는 집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회가 부를 어떻게 나누고, 기회를 어떻게 배분하며, 미래의 불안을 누구에게 얼마나 떠넘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주택 정책의 핵심은 공급량이나 대출 금리 같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런 수단들은 방향이 정해진 뒤에야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 결정되어야 하는 것은, 집값 상승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는 구조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격차와 배제를 사회가 어느 수준까지 감당할 것인지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의 영역입니다. 어떤 집값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를 감당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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