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쿠바 주식회사 인수 합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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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쿠바 위기를 부실 기업 인수 합병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쿠바 주식회사 인수 합병기

2026년 3월 23일

3월 21일 쿠바 아바나의 불이 꺼졌습니다. 주민들은 손전등을 켜고 길을 걸었고, 대중교통은 운행을 멈췄습니다. 병원 수술까지 미뤄지고 있습니다. 이달 들어 벌써 세 번째 정전입니다. 미국의 압박을 받은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이 올해 초부터 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쿠바는 전력을 자체 생산해 왔는데, 하루 수요의 40퍼센트밖에 충당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전력망이 낡아서 전력 손실률이 높고 고장도 자주 납니다.

석유 봉쇄 조치를 단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쿠바를 접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은 미국이 이란에 취해 온 접근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이번 사태를 일종의 ‘부실 기업 인수 합병(M&A)’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이어진다면, 쿠바는 올해 말까지 베네수엘라의 델시 로드리게스 모델과 유사한 경로 — 미국의 요구에 일정 부분 순응하며 체제의 생존을 도모하는 형태 — 로 전환될 가능성이 큽니다.

검은 기사의 역설

초강대국 미국의 코앞에서 미국에 반기를 든 쿠바에는 항상 외부 후원자가 필요했습니다. 냉전기에는 소련이, 그 이후에는 베네수엘라의 값싼 석유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초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를 축출하면서 쿠바의 에너지 생명줄이 끊겼습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주도한 미국의 에너지 봉쇄는 쿠바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트럼프식 외교의 기묘한 역설이 드러납니다. 수십 년간 쿠바를 경제적으로 압박해 온 미국이, 이제는 쿠바의 생존을 좌우하는 유일한 흑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겁니다. 다만 접근 방식은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아바나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시도했던, 국가 대 국가 간의 대등한 관계 정상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트럼프의 목표는 쿠바 민주화가 아니라, 쿠바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종속 국가(client state)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쿠바의 전력망은 단순히 낡은 수준을 넘어 회생 불능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2024년부터 반복된 전국적 블랙아웃은 쿠바 정권이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자력으로 유지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쿠바 최대 화력 발전소인 안토니오 기테라스 역시 수명을 다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발전소를 수리하거나 대체할 자본이 쿠바 내부에는 없습니다. 결국 외부 자본과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그 ‘외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과거 후원자였던 러시아는 전쟁으로 여력이 없고, 베네수엘라는 대통령이 축출된 마당에 쿠바까지 신경 쓸 형편이 못됩니다. 중국 역시 쿠바의 부채 상환 능력을 의심하며 추가 원조를 끊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쿠바 앞에 실질적인 선택지로 남은 국가는 미국뿐입니다. 트럼프가 미국의 셰일 가스와 전력 인프라 투자를 미끼로 던질 경우, 쿠바 정권이 이 제안을 거부할 여지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에너지는 더 이상 경제 문제가 아니라 체제 유지의 조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패라는 지렛대

쿠바 경제의 중심은 공산당이 아니라, 군부가 운영하는 기업 집단 가에사(GAESA)입니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이 집단은 국내 총생산의 30~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국가의 주요 외화 흐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데올로기 신봉자가 아닙니다. 제복을 입은 경영인들입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무리한 정권 교체보다 ‘거래’를 선호하는 인물입니다. 군부 지도층의 기득권과 자산을 보장하는 대신, 미국이 설계한 투자 규칙을 따르게 하는 일종의 ‘라이선스 정치’를 구상할 가능성이 큽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닙니다. 과거 파나마의 노리에가 정권이나 동남아 일부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있었습니다. 독점적 권력을 쥔 엘리트들은 체제의 붕괴를 감수하기보다, 자신들의 부를 보존해 줄 외부 세력과의 결탁을 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트럼프의 쿠바 정책 역시 정교한 채찍과 당근의 조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금수 조치는 형식적으로 유지되지만, 각종 면허와 예외 조항을 통해 미국의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들만 선택적으로 시장 진입을 허용받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특히 트럼프가 선호해 온 고급 리조트 개발은, 쿠바가 미국의 경제적 영향권 안으로 편입되었음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상징이 되겠죠.

위험 요소

물론 위험 요소는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에너지망이 사실상 붕괴된 국가를 떠안는 일은, 미국에도 상당한 재정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적 반작용입니다. 쿠바 정권이 미국의 대리인으로 인식되는 순간, 혁명의 기억을 간직한 쿠바 민중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국내 정치 역시 변수입니다. 트럼프가 쿠바와 거래를 추진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플로리다의 쿠바계 유권자들입니다. 다만 쿠바 이민자 가정 출신인 마르코 루비오 같은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이 거래를 ‘쿠바 군부의 항복을 받아낸 승리’로 포장할 여지는 있습니다. 협상이 아니라 항복으로 포장하는 겁니다.

베네수엘라의 델시 로드리게스 사례가 보여 주듯, 겉으로는 반미적 수사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정책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거의 전면 수용하는 실무형 대리인 모델은 이미 검증된 방식입니다. 트럼프에게 이 방식은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승리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흐름은 그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는 듯합니다.

결국 관건은 이 타협을 어떻게 정당화하느냐에 있습니다. 루비오가 주도하는 강경 진영이 ‘민주주의 없는 타협’을 쿠바계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설득할지, 그리고 이를 ‘민주화를 향한 과도기적 단계’로 포장하는 논리가 실제로 수용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카리브해의 면세점

종합하면, 2027년 상반기에는 아바나와 워싱턴의 대사관이 다시 고위 관료들로 붐빌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오갈 의제는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력망 현대화와 관광 개발권에 관한 계약일 것입니다.

트럼프는 이를 두고 “50년 넘게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승리”라고 자평하겠죠. 하지만 그것은 쿠바인들이 꿈꿨던 자유와는 거리가 멀 겁니다. 쿠바는 혁명의 기치 대신 미국이 발급한 경제적 라이선스 아래 운영되는, 거대한 ‘카리브해의 면세점’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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