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의 시대에서 유틸리티의 시대로

bkjn review

혁신은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시작되지만, 시장은 결국 가장 많이 쓰이는 곳에서 완성됩니다.

데모의 시대에서 유틸리티의 시대로

2026년 3월 25일

2024년 2월 15일 오픈 AI가 영상 생성 AI 소라(Sora)를 공개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난리가 났죠. 몇 줄의 프롬프트로 단숨에 영화적 미장센을 구현하는 능력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소라는 복잡한 모델 성능 소개 없이 영상 하나로 일반인에게 AI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깨닫게 했습니다. 소라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 혹은 위협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서비스가 2년여 만에 조용히 퇴장합니다. 오픈AI 소라 팀은 24일 엑스 공식 계정에 “소라 앱에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며 서비스 철수 소식을 알렸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공개(IPO)를 앞둔 선택과 자원 재배치가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번 철수는 AI 산업의 지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비싼 픽셀의 경제학

영상은 기술적으로 가장 직관적이고 가장 화려한 결과물입니다. 동시에 가장 비싼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고해상도 영상 한 편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연산량은 텍스트 수천 페이지를 훌쩍 넘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AI 산업의 구조적 제약과 맞닿아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AI 연구자들은 “컴퓨트는 새로운 자본이다”라는 명제를 반복해 왔습니다. 리치 서튼(Rich Sutton)이 설파한 ‘비터 레슨(The Bitter Lesson)’은 더 많은 컴퓨팅 자원을 투입하는 쪽이 결국 승리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그 계산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픈AI가 최근 강조하는 “전례 없는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은 단순한 시설 투자가 아닙니다. AI 기업이 소프트웨어 기업을 넘어, 일종의 에너지 및 인프라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전력,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급망, 이 세 가지가 AI 경쟁의 핵심 변수입니다. 그리고 영상 생성은 이 세 요소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영역입니다. 텍스트는 가볍습니다. 코드는 더 가볍습니다. 그러나 영상은 무겁습니다. 매우 무겁습니다. 게다가 아직은 돈도 되지 않습니다.

데모의 시대에서 유틸리티의 시대로

AI 산업은 지금, 보여 주는 기술에서 쓰이는 기술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영상 생성은 데모로는 탁월합니다. 투자자를 설득하기 좋습니다.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기업 고객이 비용을 지불하는 영역은 다릅니다. 그들은 화려한 영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생산성을 원합니다. 코드 자동화, 업무 워크플로우 최적화, 의사결정 지원 같은 실질적 생산성을 원합니다.

오픈AI의 선택은 낯설지 않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오피스와 개발 환경에 AI를 통합하며 ‘일하는 AI’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구글 역시 검색과 문서, 클라우드 중심으로 AI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영상은 여전히 연구 대상이지만, 핵심 수익원이 아닙니다.

기술보다 느린 사회적 합의

영상의 약점은 또 있습니다. 영상 AI의 발목을 잡는 것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사회적 비용입니다. 영상은 텍스트보다 훨씬 강력한 ‘증거력’을 가집니다. 인간의 뇌는 시각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먼저 믿습니다. 딥페이크와 저작권 침해 논란이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미국영화협회(MPA)의 반발과 시민단체의 경고는 영상 AI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는 속도보다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IPO를 앞둔 기업에 이런 불확실성은 치명적인 리스크입니다. 투자자들은 혁신만큼이나 안정적인 법적 울타리를 원합니다. 영상 AI는 현재 그 울타리 밖에 놓여 있는 가장 위험한 야생 구역입니다.

사이드 퀘스트의 종말

이번 철수는 AI 기업 내부의 더 중요한 긴장을 드러냅니다. 범용성과 집중 사이의 선택입니다. 초기의 AI 기업들은 모든 것을 하려 했습니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코딩.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택이 필요해졌습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점점 치열해집니다. 특히 차세대 모델 개발이 경쟁의 핵심이 되면서, 주변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피지 시모 오픈AI 사업 부문 CEO는 최근 전사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사내 생산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이드 퀘스트(부차적 프로젝트)에 한눈을 팔며 중대한 순간을 놓쳐선 안 된다.”

사이드 퀘스트는 게임에서 본래 목표와 무관한 부가 미션을 의미합니다. 오픈AI 내부에서 영상 생성이 이제 그 위치로 밀려났다는 의미입니다. 영상 생성은 한때 미래를 상징했지만, 지금은 중심이 아닙니다. 앤스로픽에 쫓기고 있는 상황도 한몫했을 겁니다.

이 판단은 냉정합니다. 그리고 방향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AI 기업의 진짜 전장은 창작이 아니라, 추론과 자동화입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확장하고, 그것을 얼마나 싸고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가. 승부는 그 지점에서 갈립니다

인프라 산업

결국 소라의 퇴장은 하나의 변화를 분명히 합니다. AI는 콘텐츠 혹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영역에서 시작해, 인프라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기술을 자랑하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이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영상 생성은 콘텐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오픈AI가 강조하고 나선 것은 데이터센터, 공급망, 로봇공학입니다. 층위가 다릅니다. 콘텐츠는 소비되지만, 인프라는 그 소비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 흐름은 낯설지 않습니다. 인터넷 혁명 초기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끈 것은 화려하고 신기한 웹사이트와 자극적인 콘텐츠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을 장악한 것은 그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클라우드, 운영 체제, 그리고 플랫폼을 구축한 기업들이었습니다. AI 역시 같은 경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소라의 퇴장은 그 전환의 시작을 보여 줍니다. 이제 AI는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쓰이는가”로 평가됩니다. 이 변화는 불과 3년 만에 일어났습니다. 혁신은 언제나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시작되지만, 시장은 결국 가장 많이 쓰이는 곳에서 완성됩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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