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때때로 기술의 방향을 바꾸는 장소가 됩니다. 20세기 후반 담배 회사들이 법정에서 패배했을 때, 그 재판은 단순한 배상 판결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정당성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이번 ‘KGM v. 메타·유튜브’ 재판 역시 유사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번 재판으로 어쩌면 소셜 미디어가 작동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1심 법정에서 KGM이라는 이니셜로 불린 20대 여성은 6살 때 유튜브, 9살 때 인스타그램에 중독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결과 정신 건강이 악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0살 때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해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신체장애도 겪었다고 합니다. KGM은 이 모든 증상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사용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재판은 6주간 이어졌습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 애덤 모세리 인스타그램 CEO도 법정에 출석했습니다. 배심원들은 메타와 유튜브의 경영진, 내부 고발자, 중독 전문가, 그리고 KGM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9일간 심의해 평결을 내렸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청소년에 미치는 악영향을 이유로 제기된 소송이 중도 합의 없이 재판까지 간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2026년 3월 25일 배심원단은 메타와 유튜브가 원고에게 6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평결을
내렸습니다. 보상적 손해배상금 300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금 300만 달러를 합한 금액입니다. 평결이 확정되면 배상금의 70퍼센트는 메타가, 30퍼센트는 유튜브가 물게 됩니다. 배심원단은 메타와 유튜브가 사용자, 특히 미성년자를 ‘중독되도록 설계된 제품’에 노출시켰으며, 그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소셜 미디어 중독에 6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물렸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법원이 처음으로 ‘설계된 중독’이라는 개념을 법적 책임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입니다.
이 배심 평결은 기술 기업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방어 논리를 정면으로 흔듭니다. 그 논리는 단순합니다. 플랫폼은 도구일 뿐이며, 사용자의 행위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질문을 뒤집었습니다. “사용자가 선택한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 과연 존재했는가.”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추천 알고리즘 같은 기능들이 사용자의 선택을 구조적으로 왜곡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사용이 아니라 유도된 행위라는 겁니다.
1990년대 담배 소송과 비슷합니다. 그때까지 필립모리스 같은 거대 담배 회사들은 니코틴의 중독성을 축소하거나 부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기업이 이미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법원이 그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핵심 쟁점은 유사합니다. 기업이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 위험을 숨겼는가입니다.
외신들은 이번 배심 평결을 두고 ‘소셜 미디어 업계의 빅 토바코(Big Tobacco) 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와 담배 회사 재판의 유사성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섭니다. 실제로 법적 프레임 자체가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기술 규제는 주로 콘텐츠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무엇이 게시되고, 무엇이 삭제되어야 하는지를 주로 살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콘텐츠가 아니라 구조를 문제 삼습니다. 즉, 무엇을 보여 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계속 보게 만드는지가 책임의 대상이 됩니다.
이 변화는 기술 철학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전환을 의미합니다.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했죠. 그는 매체의 형식 자체가 인간의 인식과 행동을 바꾼다고 봤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이 명제를 극단적으로 구현한 사례입니다. 플랫폼은 단순한 전달 채널이 아니라, 인간의 주의(attention)를 재구성하는 환경입니다. 이번 평결은 맥루한의 통찰을 법적 책임으로 옮긴 첫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플랫폼이 ‘주의를 설계하는 기술’이라면, 그 책임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요.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청소년 정신 건강과 소셜 미디어의 관계를 둘러싼 연구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나선 하이트는 《불안 세대》에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반론도 존재합니다. 기술이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반영된다는 주장입니다. 인과관계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번 배심 평결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법원은 과학적 합의가 완전히 형성되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당한 기여(substantial factor)’라는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즉, 소셜 미디어가 유일한 원인이 아니더라도, 피해를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향후 수많은 소송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강력한 선례입니다.
이번 결정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점진적이지만 깊을 겁니다. 우선 제품 설계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일부 플랫폼은 ‘스크린 타임 관리’, ‘자동 재생 제한’ 등의 기능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부가적 기능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반대로, 중독성을 낮추는 설계가 기본값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존의 광고 기반 비즈니스 모델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것은 곧 수익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규제의 방향도 달라질 겁니다. 지금까지의 규제는 주로 데이터 보호나 콘텐츠 관리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설계 규제(design regulation)’가 본격화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무한 스크롤이나 자동 재생 같은 기능 자체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규제는 기술 산업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기능 하나를 끄는 수준이 아니라, 제품의 설계 원리 자체를 다시 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수익과 직결된다는 점입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문화적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스마트폰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이해해 왔습니다. “덜 써라”, “자제하라”는 식의 권고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배심 평결은 그 프레임을 무너뜨립니다. 문제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환경의 설계에 있다는 겁니다. 소셜 미디어가 알코올, 담배, 도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유사한 경로를 따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기업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메타는 청소년 정신 건강이 단일 앱으로 설명될 수 없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주장은 일견 타당합니다. 인간의 심리는 복잡하며, 단일 원인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법은 항상 완전한 인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책임의 범위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이번 평결은 그 경계를 한 걸음 확장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이 사건은 ‘벨웨더(bellwether)’ 재판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수천 건의 유사 소송이 뒤따를 예정입니다. 만약 유사한 판결이 반복된다면, 기술 기업들은 더 이상 “우리는 플랫폼일 뿐”이라는 방어선 뒤에 숨을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제품 제조업체처럼 취급될 것입니다. 즉, 결함 있는 설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산업으로 재정의되는 겁니다.
20세기 산업이 물질을 생산했다면, 21세기 산업은 주의를 생산합니다. 그러나 주의는 단순한 자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이며, 결국 삶의 형태를 구성하는 단위입니다. 인간의 삶은 행위와 경험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데, 주의는 그 연속의 방향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이번 결정은 그 힘이 더 이상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으며, 공적 책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법의 언어로 선언한 사건입니다.
앞으로 쟁점은 콘텐츠가 아니라 구조 설계로 이동합니다. 무엇을 보여 주느냐보다, 사용자를 오래 머물게 하는 구조 자체가 책임의 대상이 됩니다. 무한 스크롤과 자동 재생 같은 기능은 더 이상 편의로만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오래 머물게 할수록 좋은 서비스라는 논리가, 그대로 법적 리스크가 되는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KGM v. 메타·유튜브’ 재판이 던지는 질문은 간명합니다. 사용자를 붙잡아 두는 설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법원이 일부 선을 긋기 시작했고, 기업은 그 선 안에서 다시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경계가 어디에 그어지느냐에 따라, 지금의 플랫폼은 전혀 다른 형태로 재편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