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조선의 내면이 주권을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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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 수교 140주년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1886년, 조선의 내면이 주권을 만났을 때

2026년 3월 27일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를 맺은 지 140년 되는 해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각종 전시, 문학, 영화, 웹툰 등 다양한 문화 교류 행사가 마련됩니다. 프랑스 가수의 공연, 프랑스 화가의 전시, 국내 미개봉 프랑스 영화 상영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6월에 개최되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선 프랑스가 주빈국으로 초청됩니다. 성악가 조수미의 공연도 열립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한불 수교 140주년 명예 홍보대사로 배우 전지현과 그룹 스트레이키즈 멤버 필릭스를 선정했습니다. 두 사람은 올해 열리는 각종 기념행사에 참석해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증진하고 한불 수교 140주년의 의미를 알리게 된다고, 여러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들이 알리게 된다는, 한불 수교 140주년의 의미가 뭘까요?

내면의 자유

한불 수교가 시작된 날은 고종 23년, 1886년 6월 4일입니다. 이날 조선과 프랑스는 조불 수호 통상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보다 몇 해 앞서 조선은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와 조약을 체결한 상태였습니다. 조불 조약 역시 개항, 관세,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앞선 불평등 조약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조불 수호 통상 조약은 표면적으로 보면 통상과 외교의 문을 연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조약의 핵심은 물건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조불 조약의 내용은 조미, 조영 조약과 거의 같습니다. 딱 하나가 다릅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포교 권리를 사실상 허용한 제9조입니다. 조선 정부가 더 이상 백성의 내면을 통제할 수 없음을 시인한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조약은 조선이라는 사회가 처음으로 내면의 자유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승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조선은 19세기 내내 하나의 질문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국가는 그 믿음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선의 지배층에게 천주교는 단순한 외래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질서를 흔드는 사상이었습니다. 조상 숭배를 거부함으로써 가통을 부정하고, 왕 위의 초월적 권위를 상정함으로써 국체를 위협하는 사악한 사상, 즉 ‘사학(邪學)’이었습니다. 유교적 국가 질서와 천주교는 공존할 수 없는 체계였습니다. 지배층에게 천주교 박해는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불 조약은 이 선택의 조건을 바꿨습니다. 박해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박해를 비용이 큰 선택으로 만들었습니다. 천주교인을 처벌하는 행위는 더 이상 내부 치안의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라는 강대국과의 충돌을 감수해야 하는 외교적 비용으로 변모했습니다.

조선의 종교 자유는 자생적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함포와 외교적 압박이 가져온 ‘수입된 관용’이었습니다. 조선 백성은 믿음의 자유를 일부 얻었지만, 그 대가로 국가 주권은 흔들렸습니다. 프랑스는 자국의 선교사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선의 사법 주권에 균열을 냈고, 훗날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충돌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탄생

그럼에도 저는 1886년의 조불 조약이 한국 근대의 진짜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로부터 독립된 개인의 내면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제도 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조선 왕조에서 인간은 관계 속에서 정의되었습니다. 충(忠)과 효(孝)라는 윤리는 개인의 행위뿐 아니라, 그 내면까지 규율하는 원리였습니다. 그러나 이 조약 이후, 국가는 더 이상 개인의 믿음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국가와 개인 사이에 처음으로 간격이 생겼습니다.

비록 외세에 의해 강제된 변화였지만, 한번 열린 내면의 영역은 다시 닫히지 않았습니다. 통치자가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근대적 의미의 ‘개인’이 비로소 조선에도 탄생했습니다.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올해 6월 4일이면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습니다. 이제 질문은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해야 할까요. 양국 외교 관계의 시작일까요, 조선이 맞은 근대의 문턱일까요. 아니면 두 나라가 140년을 이어 온 정치·경제·문화 교류일까요.

어쩌면 가장 정직한 답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더 이상 인간의 내면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음을 처음으로 인정한 순간. 그 순간을 기념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그 인정은 자발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 밀려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내면의 자유를 얻었지만, 우리 힘만으로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일은 축하이면서 동시에 질문이어야 합니다. 다채로운 축하 공연을 즐기며 내면의 자유를 얻은 그날을 기뻐하고 기념하면서, 인터미션에는 잠시 자문해 봐도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자유를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가를 말입니다.
* bkjn review 시리즈는 월~목 오후 5시에 발행됩니다. 테크와 컬처, 국제 정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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