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의 구조
4화

금융 위기와 새로운 세계 전략

동아시아로의 귀환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국무장관은 2009년 첫 순방지로 아시아를 택했다. 이런 이례적인 선택은 세계 전략의 중심축을 동아시아로 이동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동아시아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국무부가 커트 캠벨(Kurt Campbell), 제임스 스타인버그(James Steinberg) 같은 아시아주의자를 기용한 데서도 드러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일본에서 새로운 아시아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클린턴 장관은 2010년 1월 하와이대학 연설에서 미국의 세계 전략의 최우선 순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며, 미국의 미래가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태평양을 최우선시하는 대외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부시 행정부는 대테러 전쟁을 대외 전략의 우선 목표로 설정했고, 이로 인해 중국의 부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동아시아 지역 다자 제도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고, 동아시아에 대한 관여는 최소화됐다. 반면 중동 지역에서는 변환 외교로 대표되는 강력한 개입 전략을 추구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실익이 없는 중동 자유 무역 지대(Middle East Free Trade Area)를 추진해 국내외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동 지역에 무리하게 집중시킨 군사력을 재조정하기 위한 출구 전략을 제시했다. 태평양 국가로서 지도력을 확보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는 동아시아에서 모든 외교적 자원을 동원하는 전진 배치 외교로 집약되어 나타났다. 우선 일본, 호주, 한국 등 주요 동맹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또 아세안(ASEAN) 상주 대사를 임명하고, 아세안 정상들과 매년 정례 회담을 갖기로 했다. 동남아 우호 협력 조약(TAC),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RF)과 동아시아 정상 회의(EAS) 같은 다자 제도에도 적극 참여해 중국 주도의 ASEAN+3(한·중·일)라는 틀을 견제하고자 했다.

경제 전략의 핵심은 TPP였다. 미국은 TPP를 ASEAN+3에 기반한 동아시아 자유 무역 지대(EAFTA), 그리고 ASEAN+6에 기반한 동아시아 포괄적 경제 파트너십(CEPEA),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 등 동아시아 국가 주도의 경제 통합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했다.[1] 나아가 TPP를 매개로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를 아시아-태평양 자유 무역 지대(FTAAP)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TPP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것은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이 미국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글로벌 불균형 조정을 위해 동아시아와의 관계가 중요해졌고, 미국 경제의 연착륙과 향후 성장세의 회복을 위해서도 지역 경제 질서를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기준과 규범으로 통합해야 했다. 2010년 《국가 안보 전략》을 통해 경제적 불균형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주도할 것을 규정한 것이나, 이에 따라 국가 수출 구상(NEI)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2]

동아시아를 최우선시하는 미국의 대외 전략 전환은 2011년에 아시아-태평양으로의 회귀(pivot)·재균형(rebalancing) 전략으로 공식화됐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 안보 전문 매체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기고한 〈미국의 태평양 세기(America’s Pacific Century)〉라는 글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여기에서 그는 미국을 “태평양의 강대국(Pacific power)”으로 규정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관여가 미국의 핵심 과제이며, 미국의 경제와 안보에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미국 최초의 태평양 대통령(America’s first Pacific president)”을 자임한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1년 호주 의회 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을 미국 대외 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으로 귀환했고, 또 계속 머무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


재균형 전략은 경제, 군사·안보, 외교 등 대외 전략의 전 영역에서 광범위하고 실제적인 변화를 수반했다.[3] 가시적인 변화는 군사 전략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이는 작전 개념, 그리고 장비 및 병력의 배치라는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군사 전략 전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견제하고 미국 헤게모니의 유지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인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우선, 중국과의 군사적 갈등을 고려한 새로운 작전 개념이 확립됐다. 미국은 중국의 해양 전략을 미국의 제해권에 도전하는 반접근/지역 거부(Anti-Access/Area Denial·A2/AD) 전략으로 규정했다. A2/AD는 제해권을 직접 장악하는 해상 통제 전략과 구별되는 해상 거부 전략으로, 인도양과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협하는 중국에 대한 강력한 대응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2012년 발표된 국방부 보고서 《미국 리더십의 유지: 21세기 국방의 우선순위》에서는 서태평양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작전의 우선순위가 육군 중심의 공지전(AirLand Battle)에서 해군­공군 중심의 공해전(Air-Sea Battle)으로 전환됐다.[4] 새로운 작전 개념은 2014년의 《4개년 국방 계획 검토》와 2015년의 《아시아-태평양 해양 안보 전략》에서 더 체계적으로 제시됐다. 여기에서도 해공군 중심의 전력 운용, 신속하고 유연한 작전 수행, 군 조직의 경량화와 같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작전 개념이 나타났다.

한편, 리언 패네타(Leon Panetta) 국방장관은 국방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장비와 병력은 오히려 증강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태평양과 대서양의 해공군 전력 비중을 5:5에서 6:4로 조정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전력 투사 능력을 배가할 수 있는 최신 장비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는 동남아의 미군 전력을 동북아 수준으로 강화하려는 동남아 해양 안보 구상(Southeast Asia Maritime Security Initiative)을 추진했다. 그 핵심은 괌을 새로운 전략 허브로 발전시켜 서태평양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지역 국가들과의 군사적 협력도 강화했다. 2014년 필리핀과 방위 협력 확대 협정(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을 체결해 수빅(Subic)만의 군사 기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남중국해의 전력을 강화했다. 베트남과는 방위 협력 조약에 서명하고, 공동 훈련을 실시했으며, 인도네시아와는 포괄적 파트너십(US-Indonesian Comprehensive Partnership)을 통해 군사 교류를 강화했다. 호주, 일본, 한국 등 전통적인 동맹 관계 강화와 동남아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 확대 또한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었다.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3년 이후 재균형 전략의 중심축은 경제 전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 토마스 도닐런(Thomas Donilon)은 재균형 전략의 목적이 경제적 번영이라고 강조했고, 국방장관 척 헤이글(Chuck Hagel) 역시 재균형 전략이 군사 전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TPP의 성공이 항공 모함의 추가 배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국방장관 애쉬턴 카터(Ashton Carter)의 2015년 발언도 재균형 전략의 중심이 경제 전략으로 이동했음을 보여 줬다.[5]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전략의 핵심은 TPP였다. TPP는 2006년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가 합의한 자유 무역 협정인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TPSEP)으로 소급한다. 2008년 TPSEP에 다섯 번째 협상국으로 참여한 미국은 기존 회원국 4개국(P4)에 미국, 호주, 페루, 베트남이 추가된 TPP(P8)를 제안했다. 최초 4개국의 협상은 경제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 못했지만, 미국이 참여하고 이를 FTAAP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TPP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재균형 전략의 초기 국면에서는 경제 전략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고, TPP 협상도 더디게 진행됐다. 또 미국 의회가 행정부의 무역 촉진권(Trade Promotion Authority) 승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자유 무역을 공세적으로 추진하면서 TPP도 급진전됐다. 이에 따라 참여국의 수도 계속해서 늘어났고, 협정이 포괄하는 경제 규모도 더 커졌다. 2010년에는 말레이시아가 협상에 참여하기 시작했고(P9), 2012년에는 캐나다와 멕시코가 협상에 참여해 참여 국가는 11개국(P11)으로 확대되었으며, 2013년에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2년여의 협상을 거쳐 12개국(P12)이 TPP 협상에 합의했다.

2015년 타결된 TPP는 통상적 무역 협정의 범위를 넘어섰다. 외국인 투자 차별 철폐, 투자자-국가 분쟁 중재 등을 포함하고 있는 투자 관련 조항, 국영 기업 관련 조항 등은 WTO의 기준을 초과하는 소위 WTO+의 높은 기준을 지향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해외 자본의 활동에 대한 제약을 철폐하고 금융 세계화를 더 확대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무역 협정 중에서는 최초로 환율과 관련된 조항을 포함했다는 점이다. TPP 협정문에 포함된 환율 관련 조항은 환율 조작에 관한 제재, 외환 보유의 투명성 확보, 거시 경제 정책 및 국제 수지 불균형에 관한 정기적 협의 등을 규정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무역 정책에서는 환율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무역 자유화를 위한 수단으로는 보조금이나 관세 축소 등이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이중 적자 규모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위안화 평가 절상을 요구해 왔고, 금융 위기 이후에는 세계적 저축 과잉론과 중국 책임론에 입각해서 중국과 신흥국에 대한 압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TPP에도 환율 관련 조항이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이런 시도는 환율 조정을 통한 글로벌 불균형 조정 비용의 전가라는 목표의 전략적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TPP에서 나타난 공세적 무역 정책은 상품 수출의 확대를 통해서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통상적인 전략과는 차이가 있었다. 금융 위기 직후의 NEI나 TPP의 핵심은 서비스 시장의 개방, 지적 재산권 관련 조항의 강화, 환율 조정, 금융 개방과 투자 자유화, 국영 기업 독점의 철폐 같은 요구다. 이는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 그리고 미국의 통화·금융 권력 유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TPP는 아시아­태평양에서 새로운 경제 규범을 확립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은 TPP를 통해서 WTO의 틀을 우회하는 동시에, WTO 같은 다자주의적 틀을 활성화하는 부가적 효과도 기대했다. 이런 점에서 TPP는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활용한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 전략,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의 일부이기도 했다.

양자주의나 소다자주의는 1980~1990년대 이후 미국의 공세적인 경제 전략에서 다자주의를 보완하는 틀로 종종 활용됐다. WTO의 다자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으면서 미국 무역 정책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부상했고, 2000년대 초반에 특혜 무역 협정PTA을 통해 다자주의를 대체하는 이른바 경쟁적 자유화 전략으로 공식화되었다. 경쟁적 자유화 전략은 미국 시장을 둘러싼 경쟁을 유발해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상대국들의 시장 개방을 강제하고, 주요 수출국들이 미국의 경기 부양과 수요 팽창을 뒷받침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TPP는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양자 간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나아가 ASEAN+3나 ASEAN+6처럼 미국을 배제한 틀에 기초해서 지역 질서 건설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TPP를 미국이 지역에 적극 관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는 상황에서, TPP의 실패는 미국 리더십의 후퇴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TPP는 서비스 부문 및 금융·투자의 개방, 환율 등 갈등 쟁점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에 TPP의 틀에서 미국이 현실적인 성과를 남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TPP를 통해서 미국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을 TPP의 틀로 끌어들이기 힘들다면 TPP의 틀을 고집하기보다는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틀을 통해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확산됐다.

 

중국이라는 변수


재균형 전략은 단기적인 외교 정책이나 지역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 전략의 핵심 요소다. 재균형 전략은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세계 전략의 핵심적 고려인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과 그 비용의 전가, 그리고 이를 위한 안정적인 환경 구축을 목표로 했다. 이와 같은 전략적 목표에서 동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미국이 강력한 동아시아 전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향후 지역 정세 변화에 따라 지역의 긴장이 증폭될 위험도 없지 않다.

2011년 이후 재균형 전략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으며, 실질적인 변화가 수반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오바마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무장관인 존 케리(John Kerry)의 성향을 근거로 미국 대외 전략의 초점이 중동이나 유럽으로 다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출현했고, 실제로 아시아 전문가들이 국무부에서 대거 이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케리 역시 재균형 전략이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네타의 뒤를 이어 국방장관이 된 헤이글과 카터, 그리고 도닐런의 뒤를 이어 국가 안보 보좌관이 된 수전 라이스(Susan Rice) 등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주요 각료도 재균형 전략이 미국 대외 전략의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했다. 2015년 《국가 안보 전략》에도 재균형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조가 반영되어 있었다.

재균형 전략의 초기에는 예산 제약을 근거로 재균형 전략의 실현 가능성을 비판하는 논의가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나타난 세계 전략의 변화는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서 예산 제약이 완화될 수 있으며, 미국은 이를 위한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적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6] 또 중국과 북한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 역시 대체로 미국의 전략 전환을 지지했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몇몇 극단적인 입장들을 논외로 한다면 재균형 전략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균형 전략을 중심으로 한 세계 전략 재편과 향후 세계 체계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부상이라는 도전과 미·중 관계 관리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 체계로 완전히 통합된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성장했고, 금융 위기 이후에는 G2의 일원으로 위기 해결을 주도했다. 특히 중국은 과거의 다른 어떤 국가들과도 비교하기 힘든 거대한 규모의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군사적 현대화를 추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런 이유로 집권 초기부터 미·중 관계 관리에 공을 들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미·중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포괄적인 틀로 전략 및 경제 대화S&ED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미국은 재무부가 주관하는 전략 경제 대화(SED)와 국무부가 주관하는 고위급 대화(SD)를 S&ED로 통합하고 그 위상을 장관급 연례 회담으로 격상시켜 미·중 관계에 과거보다 더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

금융 위기 직후 미·중 양국은 금융 위기 대응에 대해서 원활한 합의를 도출했으며, 위안화 환율 문제, 중국 인권 문제 등 민감한 현안들은 우회하는 전략으로 협력을 강화했다. 또 미국은 중국 등 신흥국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IMF의 거버넌스 구조 개혁을 약속하는 등 중국의 요구도 전향적으로 수용했다. 중국도 IMF의 자본 확충에 참여하는 등 금융 위기 해결과 국제 경제의 안정을 위한 노력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큰 틀에서는 미·중 양국의 협력 기조가 지속됐다.

그러나 중국의 금융 개방이나 위안화 평가 절상에 관해서는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금융 위기가 수습 국면으로 전환된 이후 중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으며, S&ED 경제 트랙에서 위안화 평가 절상과 중국의 금융 개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을 강조하면서 공세적인 경제 전략을 천명하고 그 핵심 대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제시하자 환율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더 심화됐다.

미국의 강력한 압력에 직면한 중국은 미국 중심의 지역 체계와 세계 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위안화 국제화를 시도하고 지역 경제 통합 의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재균형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서 미국을 상대화하고 지역적, 세계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과 통화·금융 권력 유지라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서 중국은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일 수밖에 없다. 미·중 관계의 동학이 미국 헤게모니의 미래,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 체계와 세계 체계의 장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변수인 것이다.
[1]
ASEAN+6는 ASEAN+3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추가한 것이다. 중국이 지역 경제 통합의 틀로 ASEAN+3에 기반한 EAFTA를 추진하자, 일본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ASEAN+6을 토대로 한 CEPEA를 제시했다. 중국은 일본의 이러한 제안을 부분적으로 수용해서 RCEP을 지역 경제 통합의 새로운 틀로 제시했다.
[2]
NEI에 따라 상무부·재무부·국무부·농무부 장관, 수출입은행장, 중소기업청장, USTR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 수출 진흥 각료 회의(Export Promotion Cabinet)가 설치되어 수출 지원 정책을 대폭 강화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연두 교서에서 2014년까지 수출을 2배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수출 확대를 위한 우선적인 대상 지역으로 아시아-태평양을 강조했다.
[3]
재균형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간략한 평가는 다음의 보고서들을 참고할 수 있다.
Mark E. Manyin et al., 〈Pivot to the Pacific? the Obama Administration’s ‘Rebalancing’ toward the Asia〉,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2012.
David J. Berteau et al., 〈Assessing the Asia-Pacific Rebalanc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2014.
Michael Green et al eds., 〈Asia-Pacific Rebalance 2025: Capabilities, Presence, and Partnership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2016.
[4]
여기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양대 전쟁 전략의 폐기였다. 미국의 양대 전쟁 전략은 2차 세계 대전으로 소급하며, 냉전 시기에도 유지되었다. 베트남전 시기에는 2개의 전면전과 하나의 국지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2+0.5 개념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중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유럽에서의 전면전과 나머지 지역에서의 국지전이라는 1+0.5로 변화되었다. 탈냉전 직후 기존의 전략은 윈-홀드-윈(win-hold-win) 전략, 즉 한곳에서 우선적인 승리와 다른 곳에서의 현상 유지 이후 승리라는 전략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걸프전과 북핵 위기를 거치면서 중동과 동아시아를 염두에 두고 양대 전쟁에서의 승리를 추구하는 윈-윈(win-win) 전략이 다시 채택되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윈-윈 전략은 2010년의 《4개년 국방 계획 검토》까지 유지되었다. 재균형 전략이 제시되면서 양대 전쟁 전략은 1+ 전략 혹은 윈-스포일(win-spoil) 전략, 즉 하나의 주요 전쟁과 다른 하나의 억지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5]
이는 ‘회귀’와 ‘재균형’이라는 두 용어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잘 나타난다. 재균형 전략이 발표된 직후에는 회귀라는 용어가 더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회귀가 다소 공세적인 전략, 특히 군사 전략을 연상시키고, 중동이나 유럽으로부터의 철수를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용어법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점차 재균형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군사 전략에서 공세적인 변화를 강조하는 정책 기조가 완화되면서 재균형이라는 용어가 더 선호되기 시작했다. 2014~2015년 이후에는 행정부나 주요 싱크탱크 대부분이 재균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
2014~2015년에는 의회와 행정부의 합의로 2년간 국방 예산의 감소가 유예되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2015 회계 연도 예산안에서 7퍼센트 증액된 국방 예산안을 제출하는 등 국방 예산에 대한 제약을 무력화하려 했다. 나아가 오바마 대통령은 국방 예산 증액을 주장하면서 2016 회계 연도 국방 수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5년의 초당적 예산 법안(Bipartisan Budget Act)에 따라 정부 전체 예산의 상한선이 상향되었다. 그 결과, 국방 예산이 2016년에 4960억 달러에서 5200억 달러로, 2017년에는 5230억 달러로 증액되어 예산 제약이 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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