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의 구조
6화

동아시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미국 헤게모니와 동아시아의 형성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체계의 변방에 불과했던 동아시아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성장의 중심지이자 지정학적 요충지로 성장했다.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중국의 부상이 지속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지역의 주요 국가 사이의 상호 작용이 만들어 낼 동아시아의 미래는 단지 지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헤게모니와 세계 체계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다.

2007~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형성과 변화라는 역사적 관점 속에서 동아시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호 작용을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형성과 변화 과정은 지역 체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헤게모니 국가 미국의 영향력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역으로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특성도 미국의 전략과 그 전략이 실행되는 방식,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다. 미국이 가진 능력은 모든 지역에 동일한 방식으로 투사되지 않는다. 또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지역 체계의 특성이나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조정될 수 있다.

따라서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분석을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역사적 특성에 관한 논의와 결합해야 한다. 세계적인 것(the global)과 지역적인 것(the regional), 역외(extra-region)와 역내(intra-region)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1]

19세기 중반, 서구의 팽창으로 인해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전통 지역 체계는 해체됐다. 이후 동아시아의 지역적 정체성은 지역 외부의 힘에 의해서 규정됐다. 2차 세계 대전 종전과 탈식민화 이후 현대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헤게모니 국가 미국의 세계 전략이었다. 미국은 유럽이 ‘극동’으로, 일본이 ‘대동아’로 규정한 중국, 일본, 한국, 타이완, 베트남 등을 ‘동아시아’로 규정했다. 그러나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냉전의 최전선인 일본, 한반도, 타이완, 그리고 필리핀에 이르는 지역은 여전히 ‘극동’으로 지칭됐다.[2]

전후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핵심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서 규정된 샌프란시스코 체제였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과 지역 국가들 사이의 안보적·경제적 비대칭성이었다. 미국은 압도적인 국력을 토대로 미국 중심의 양자 동맹을 축으로 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s) 체제를 만들었다. 미국의 냉전 전략 속에서 동아시아는 냉전의 대립 구도를 따라 분할됐다. NATO와 같은 다자 안보 제도가 부재한 상황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지역 국가 사이의 수평적 관계보다는 미국과의 수직적 관계가 더 중요했다.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질서는 부재했고, 이에 따라 파편화된 형태의 분절적 지역주의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냉전 전략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 지역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됐다. 미국은 지역 주요 동맹국들의 안보를 보장하는 동시에 막대한 원조와 차관을 제공했다. 또 초국적 자본의 동아시아 진출을 억제하고 자국 시장을 개방하는 역개방(reverse open door) 정책을 채택해 수출 주도 산업화를 지원했다. 특히 고도성장을 지속한 일본의 수출 주도 산업화 모델이 동아시아 지역 전체로 확산됐다. 일본이 지역의 나머지 국가들을 위계적으로 통합하는 경제 질서는 동아시아 지역 체계가 형성되고 확장되는 가장 중요한 계기였다.

1970년대 초반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 징후가 나타나고 미국의 세계 전략이 변화하면서 동아시아의 독자적인 의미는 오히려 더 확고해졌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일본에 대한 경제적 압력의 증가였다. 미국 경제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중국과의 데탕트(détente)로 동아시아의 냉전이 완화되면서 미국은 일본의 시장 개방과 엔화 평가 절상을 강력히 요구했다. 일본은 네 마리 용이라 불리는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에 대한 투자를 통해 대응했다. 일본의 해외 직접 투자가 급증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위계적인 다층적 하청 체계가 조직됐다. 이를 바탕으로 네 마리 용은 신흥 공업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1980년대의 변화에서도 미국의 전략과 이에 대한 지역 국가들의 대응이 가장 중요했다. 미국이 통화·금융 권력을 활용해서 일본에 환율 조정을 요구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로 엔화가 급격히 평가 절상됐다. 이로 인해 자산 버블이 형성되고 국내 생산 비용이 급증하자 일본 자본이 동남아로 대거 투자됐다. 플라자 합의 이후 저달러, 저유가 현상 속에서 수출 호황을 누린 한국과 타이완의 자본도 대거 동남아로 진출했다. 그 결과 일본 중심의 경제 구조는 동남아까지 확대되었고, 동아시아가 동남아를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형성은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이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 대응의 과정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 전략하에서 다수의 제3 세계 국가들이 발전 전망을 상실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헤게모니의 변화 과정에 편승해서 수출 주도 발전 전략을 추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지역 차원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지역 체계의 재편과 지역주의의 발전


동아시아 지역의 형성과 성장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미국과 동아시아의 관계는 미국의 일방적인 영향력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상호 작용을 내포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정치적·경제적 역량을 축적하면서 초보적인 수준의 지역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통화·금융 권력을 중심으로 재편된 미국 헤게모니와 동아시아 지역 경제의 특수한 관계가 성립되면서 미국과 동아시아는 더 긴밀하게 결합됐다.

군사·안보 측면에서는 탈냉전 이후에도 냉전기의 안보 구조와 지정학적 긴장이 잔존했고, 지역 협력은 여전히 취약했다. 미국은 지역 다자 안보 협력에 비협조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국 중심의 양자 관계, 특히 미·일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자국 중심의 양자 관계로 지역 안보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이 때문에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질서의 형성이나 지역 협력은 여전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ASEAN에서 파생된 지역 다자 안보 제도인 ARF가 1994년에 창설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제도화 수준이 낮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경제적 차원에서는 동아시아 외환 위기를 계기로 지역 협력의 시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례적인 경제 성장은 지역 체계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성장은 미국 시장으로의 상품 수출과 기축통화 달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외환 위기의 발생과 그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이런 한계는 명확히 드러났다.

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은 지역 국가들과의 마찰 속에서도 위기의 해결을 주도했다. 미국은 일본 주도의 아시아 통화 기금(AMF) 같은 지역 다자 제도를 통한 해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역 국가들은 위기의 해결과 지역 경제의 안정을 위해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과 IMF는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개방 확대와 구조 개혁을 요구했다. 이런 결정의 과정에서 위기 당사국들은 물론, 지역적 지도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일본 또한 철저히 배제됐다.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정책에 대한 불만, 국제 금융 기구의 지배 구조 개혁에 대한 요구, 독자적인 동아시아 지역 질서 형성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ASEAN+3, EAS 같은 지역 제도들이 출현했다. 2000년 5월 ASEAN+3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외환 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지역 국가들의 양자 간 통화 스와프 협정인 CMI가 체결됐다. 또 세계적인 금융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한 아시아 채권 기금(Asian Bond Fund)이 설립되는 등 지역 통화 협력의 초석도 마련됐다.[3]

이런 시도는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도화 수준이 여전히 낮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CMI의 기금 중 90퍼센트는 IMF의 승인을 받아서 집행하도록 규정된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미국,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제기구들이 여전히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지역 경제의 핵심으로 등장하면서 동아시아는 위기에서 신속하게 회복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 속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유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의 구조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지역 없이는 미국의 우위가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위상이 성장한 것이다.

물론 그 한계는 분명하다. 200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 경제의 성장 또한 통화·금융 권력을 중심으로 한 미국 헤게모니 변화 과정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 이후에도 실효성 있는 지역적 차원의 대응은 사실상 부재했다. CMI가 다자화되어 CMIM이 출범했지만, IMF의 동의 없이 가능한 거래 규모는 전체 기금의 20퍼센트로 제한되어 있었다. 지역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미국으로의 수출을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통화 스와프 등의 형태로 달러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주도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확립이라는 문제가 현실적인 중요성을 갖게 됐다. 중국은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으로서 헤게모니 국가 미국의 핵심적인 파트너인 동시에 경쟁자다. 거대한 규모의 중국 경제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군사·안보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독자적인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부상은 지역 체계의 지정학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미국 주도 지역 질서의 틀을 깨고 대안적인 지역 체계의 발전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 질서를 둘러싼 주요국들 사이의 전략적 경쟁 또한 심화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의 구상은 동아시아를 태평양으로 끌어내고, 아시아­태평양이라는 틀을 통해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결합하는 새로운 지역을 형성하는 것이다. 미국은 금융 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 중동·유럽보다 더 많은 군사적 자원을 투입했다. 또 아시아­태평양 경제 통합의 경로로 TPP와 FTAAP를 제시하며 아시아가 태평양의 일부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4]

반면, 중국은 아시아인들의 아시아(Asia for Asians)를 내세운다. 아시아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동아시아를 지역주의의 단위로 제시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아시아인 스스로 아시아의 안보를 지켜야 함을 역설하면서 미국 주도의 지역 안보 질서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간 중국은 ASEAN+3가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기본적인 단위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해 왔다. 최근에는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괄하는 ASEAN+6을 지역 협력의 틀로 인정하는 등 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제안하는 그 어떤 지역 협력 구상에도 미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국의 등장과 함께 지역 국가들에게도 전략적 공간이 개방됐다. 주요국 사이의 전략적 상호 작용 또한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와 규범이 취약한 상황에서 미국의 강력한 개입이 미·중 간의 긴장을 심화할 경우 동아시아 지역에서 불안정성이 야기될 위험이 있다. 다수의 지역 국가들이 미국 시장과 달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또한 지역의 불안정을 심화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강력한 동아시아 전략이나 미국 경제의 경착륙이 지역 체계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미국 대외 정책을 주도해 온 주류 엘리트들은 미국의 전통적인 헤게모니 전략을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전략을 이로부터 완전히 이탈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들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미국은 국제법과 규범, 그리고 다자 제도를 존중했다. 또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때때로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기도 한 예외적인 국가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런 전통을 역전시키면서 미국의 대외 전략은 물론, 세계 질서 자체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헤게모니의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자국 우선주의, 공세적인 일방주의, 세계 체계의 불안정을 담보로 한 국익 추구는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1970년대의 헤게모니 위기에 대한 일방주의적 대응, 그리고 1980년대 이후 통화·금융 권력 강화를 통한 헤게모니 부활의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 질서의 안정성과 다른 국가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약탈적이고 착취적인 행위자였다. 이는 헤게모니 안정론, 즉 헤게모니 국가가 국제 관계의 안정을 보장한다는 주장이 갖는 한계를 명확히 보여 준다.[5]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는 헤게모니의 중대한 전환점인 금융 위기 이후 동일한 양상이 반복될 수도 있으며,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인 대외 전략하에서 이러한 경향이 극대화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동아시아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동아시아의 지역 협력은 취약하고,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방주의적인 개입을 강화할 것이며,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능력을 견제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헤게모니의 변화 과정에서 지역 체계의 형성과 성장을 경험한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역사는 이러한 숙명론적 인식을 반박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세계 체계 수준에서 작동하는 힘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줬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이 글로벌 불균형 조정 비용을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효과적으로 전가해 통화·금융 권력을 유지한다면 미국 헤게모니는 유지될 것이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지정학적 도전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지역 국가들의 불만이 누적되면서 미국 헤게모니의 토대가 상당히 취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지속되고 위안화 국제화, 일대일로 전략이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중국이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만큼은 미국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이러한 역량을 축적하고, 지역 체계를 재편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헤게모니 이행이라는 힘의 정치(Realpolitik)의 논리가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협력을 통해 대안적인 지역 체계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 체계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과연 동아시아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어떤 길을 가든 동아시아가 세계사적 변화의 핵심이며, 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한국이 그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점이다.
[1]
동아시아 지역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에 주목하는 논의들이 확산됐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동아시아의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우선, ASEAN의 동남아 국가들과 한·중·일의 동북아 3국의 문화적 이질성은 매우 크다. 또 전통 시대 동아시아의 역사가 오늘의 동아시아 지역 체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불명확하다. 오히려 지역의 정체성이나 전통을 지나치게 강하게 인식할 경우 세계 체계와 지역 체계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나타난 단절의 계기들, 즉 자본주의적 현대화, 식민화와 탈식민화, 냉전과 탈냉전, 지역 경제의 성장과 위기, 금융 세계화로의 통합 등이 갖는 의미가 과소평가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2]
미국에게 동아시아 지역의 전략적 핵심은 일본이었고, ‘동아시아’와 ‘극동’은 주로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를 의미했다. 동남아시아라는 지역 규정은 태평양 전쟁 중이었던 1943년 퀘벡 회의에서 설정된 영·미 연합군의 전구(戰區) 명칭 동남아시아 사령부(South East Asia Command)에서 유래한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동남아시아가 독자적인 지역으로 확립되어 갔고, 동북아와 동남아가 동일한 지정학적 단위로 결합되기 시작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지역 경제가 확립되면서 비로소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규정이 동남아를 포괄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오늘날 동아시아로 통칭되는 지역, 즉 ASEAN과 한·중·일의 내생적인 지역적 정체성이 취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3]
ASEAN+3는 1997~1998년 동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동북아와 동남아를 경제적으로 연결하는 핵심 고리였다. ARF나 APEC과 달리 미국을 배제하고 있는 ASEAN+3는 금융 위기 해결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태도에 대한 불신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틀에 호주와 뉴질랜드, 나아가 미국과 인도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중국은 일본의 이러한 제안에 반발해서 ASEAN+3의 틀을 안보 영역으로 확장하는 EAS의 창설을 주도했고, 경제적 차원에서는 EAFTA를 제안했다. 일본은 2005년 1차 EAS 회의에서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EAS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가 이러한 제안에 동의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5년 12월 인도, 호주, 뉴질랜드가 EAS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러시아와 미국도 참여하고 있다.
[4]
미국은 1960년대 중후반 일본, 호주 등과의 동맹 관계 강화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새로운 지역 통합의 방향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
[5]
헤게모니 국가의 기능에 관한 국제 관계론의 일반적인 설명은 헤게모니 안정론(hegemonic stability theory)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헤게모니 국가의 존재는 국제 체계의 안정성을 보장하며, 체계의 안정성은 헤게모니 국가의 힘의 우위에 비례한다. 그러나 헤게모니 국가의 존재와 체계의 안정성 사이의 강력한 인과 관계는 이론적으로도 취약하고, 현실의 역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1970~1980년대 이후 미국 헤게모니의 변화에 대한 분석은 헤게모니 국가가 국제 체계의 불안정을 담보로 자국의 헤게모니를 변형하고 강화하는 불안정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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