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장은 이제 컴퓨터가 장악하고 있다

자본 시장의 임무는 처리한 정보를 바탕으로 예금을 가장 적합한 프로젝트와 기업들에 공급하는 것이다. 대형 금융 거래를 간단히 설명하면 그렇다. 실제로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도취적이지만 말이다. 금융 시장은 변화하는 세계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시장은 무역 전쟁과 저금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금융계 내부의 변화도 반영된다. 금융 거래는 끊임없는 전투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재창조된다. 금융 시장에서는 최신의 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기계들이 투자의 통제권을 장악한 것이다. 기계들은 증권을 사고파는 단순한 업무뿐 아니라, 경제 상황을 모니터하고 자본을 배치하는 일을 지휘하고 있다.

인간이 설정한 규칙에 따라서 컴퓨터가 운용하는 자금은 미국 주식 시장의 35퍼센트, 기관 자산의 60퍼센트, 전체 거래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은 스스로 투자 규칙을 수립하는데, 그들의 주인인 인간은 일부만 이해할 수 있다. 피자 배달부터 할리우드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들은 모두 기술로 인해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은 조금 독특하다. 이 산업은 기업에 대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부를 재분배하며,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이 다루는 자본의 규모는 거대하다. 그래서 금융은 새롭게 나타나는 변화에 조기 적응할 수 있는 현금을 항상 보유하고 있었다. 1866년에 완공된 최초의 대서양 횡단 해저 케이블은 영국 리버풀과 미국 뉴욕 사이에서 면화 가격 정보를 실어 날랐다.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1980년대부터 엑셀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그 이후로, 컴퓨터는 금융 산업계를 장악해 나갔다. 컴퓨터가 처음 수행한 업무는 매수와 매도 주문을 “실행”하는 허드렛일이었다. 오늘날 거래소에서는 중개인들의 고함 소리가 아니라 서버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게 된다. (컴퓨터가 수행하는) 초단타 매매는 집중적인 거래를 통해 비슷한 주식에서 발생하는 작은 가격 차이를 노린다.

지난 10년간 컴퓨터는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를 직접 운용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상장 지수 펀드(ETF)와 뮤추얼 펀드는 주식과 채권의 지표를 자동적으로 추적한다. 컴퓨터가 운용하는 이 펀드들은 지난 9월 4조 3000억 달러(5147조 1000억 원)어치의 미국 기업 지분에 투자했다. 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운용하는 금액을 뛰어넘은 것이다. 스마트베타(smart-beta)라고 알려진 이 전략은 (변동성 같은) 어떤 통계적 특성만을 따로 떼어내고 그 특성에 부합하는 증권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 이런 퀀트 헤지 펀드(quantitative hedge fund)를 운용하는 엘리트 집단은 대부분 미국 동부 해안에 자리를 잡고,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수학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1조 달러(1197조 원) 상당의 투자를 한다. 주식과 파생 상품 시장에서 효용을 증명한 기계들은 이제 채권 시장에서도 지배력을 키우고 있다.

컴퓨터는 자율성을 획득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전략을 고안한다. 물론 인공지능에 회의적인 헤지 펀드들도 있다. 그러나 컴퓨터의 처리 능력이 발달하면서 컴퓨터의 역량도 향상되고 있다. 시장의 생명이 정보의 흐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라. 인간 펀드 매니저들은 내부 거래와 공시에 관한 엄격한 법률하에서 보고서를 읽고 기업들을 만난다. 이러한 기준은 공공의 영역을 규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한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무한대에 달하는 새로운 데이터의 양과 컴퓨터의 향상된 처리 능력으로 인해 투자를 평가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일부 펀드들은 위성을 이용해서 소매점의 주차장을 추적하고, 전자 상거래 사이트에서 물가 상승에 관한 데이터를 긁어모으려 하고 있다. 결국 그들은 그 회사의 임원들보다도 더 빠르게 최신의 정보들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컴퓨터의 성장은 비용 절감을 통한 금융의 민주화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ETF 펀드는 1년에 0.1퍼센트의 수수료를 받는데, 일반적인 펀드 수수료인 약 1퍼센트에 비하면 훨씬 적다. ETF 펀드는 전화로도 구입할 수 있다. 지속되는 수수료 전쟁은 거래 비용을 사실상 붕괴시키고 있다.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유동적이다. 특히 요즘처럼 대부분의 투자 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도 ETF의 수익률은 조금씩 오르고 있다. 그러나 기계가 장악한 금융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계의 혜택이 다양한 원인으로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우려의 원인 중 하나는 금융 안정성이다. 노련한 투자자들은 수많은 알고리즘이 설정된 기준에 맞는 특정 주식을 추적하다가 갑자기 버려 버리는 과정에서 자산 가격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규제 당국은 시장이 위축되면서 유동성이 증발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인간 역시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컴퓨터는 오히려 그런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플래시크래시(flash-crashes·갑작스런 폭락)”와 섬뜩한 사고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는 2010년에 있었던 ETF 가격의 폭락을 포함해 2016년 10월의 파운드화 급락, 그리고 작년 12월의 채권 시장 부진 등이 있었다. 이러한 혼란은 컴퓨터가 강력해지면서 더 심각한 수준으로,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

또 하나의 우려는 컴퓨터화된 금융 기법이 부를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수익이 연산 능력과 데이터에 좌우되면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사회적 균형을 해칠 정도로 많은 양의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퀀트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경쟁 우위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펀드들은 데이터 독점을 위해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예컨대, 아마존(회장인 제프 베조스는 퀀트 펀드에서 일했었다)이 전매특허인 전자 상거래 정보를 이용해서 거래를 시작했다거나, JP모건체이스가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관련한 내부 데이터를 이용해 국채 시장에서 거래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러한 가상의 갈등 상황은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 한 가지 우려는 기업 지배 구조에 관한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업의 임원진을 임명하고 해임하는 투표를 해온 이들은 고객들의 위임을 받은 펀드 매니저들이었다. 만약에 그러한 투표권을 가진 지분을 이사회에 관련된 사항을 전혀 모르는 컴퓨터가 다룬다면, 혹은 더 심각하게는 어떻게 해서든 배당금을 지급하게 하라는 식의 제한된 목표만을 추구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인간은 컴퓨터를 무시할 수 있다. 최대 규모의 ETF 운용사인 블랙록은 사업 전략과 환경 정책에 관한 지침을 기업들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소수의 대형 펀드 매니저들에게 자산이 흘러들어 간다면 그들은 경제 전반에 대해서 막대한 의결권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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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의 거대한 혁신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혁신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대규모 비즈니스가 시작된 19세기 이전의 18세기에도 합자 회사들은 거품을 만들어 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일으킨 자산 유동화는 지금은 리스크를 회피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모든 고객에 대한 동등한 처우, 정보에 대한 동등한 접근, 그리고 경쟁의 촉진이라는 시장 규제의 폭넓은 원칙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컴퓨터 혁명은 오늘날의 규제들을 엄청나게 구식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다. 인간 투자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업계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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