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맨, 혁신을 실험하다
1화

프롤로그; 버닝맨은 축제가 아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네바다 사막에 수만 명이 모인다. 주어진 시간은 열흘 남짓, 세상에 없었던 도시와 건축물을 세우고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특별한 운송 수단을 만든다. 열흘의 끝자락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거대한 조형물을 태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과 함께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지만, 의식이 끝난 뒤 사막은 다시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 단 하나의 작은 쓰레기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이 원상태로 말끔히 돌아온다. 매년 여름 네바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열리는 버닝맨 축제의 모습이다.

2016년 여름, 나는 첫 버닝맨 티켓을 끊었다. 구글의 두 창업자와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전 알파벳 회장,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Elon Musk),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등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기업가들이 좋아하는 축제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는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가야 할 이유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버닝맨에 다녀온 지인의 사진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아마존에 인수된 온라인 신발 회사 자포스의 최고경영자(CEO) 토니 셰이(Tony Hsieh)였다. 예전에 국내 한 컨퍼런스에서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창출한 셰이를 연사로 초빙하려 한 적이 있다. 삼고초려 끝에 강연비 7000만 원을 주면 참석하겠노라는 답변을 받았지만 이내 당혹스러운 두 번째 피드백을 받았다. 자신이 꼭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과 함께,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거절하겠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결국 초빙은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인이 건넨 사진에서 그 자포스의 셰이가 누워서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매년 버닝맨에 참여해 며칠씩 머물다 간다는 말까지 들었다. 실리콘밸리 기업가 외에도 윌 스미스(Will Smith), 수잔 서랜든(Susan Sarandon)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매년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어지간한 돈으로도 시간을 살 수 없는 바쁜 사람들이 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참여할까? 구글의 문화와 철학이 버닝맨과 닮았다는데 그 비밀은 무엇일까? 이 독특한 축제가 도대체 구글이나 실리콘밸리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유가 궁금해졌다.
맨 조형물

버닝맨이라는 이름은 사람 형상을 한 조형물(man)을 불태우는(burn) 의식에서 나왔다. 해가 가장 긴 하지에 모닥불을 피워 태양을 찬양하는 유럽과 미국의 전통 의식에서 유래했다. 버닝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버너(Burner)라 불린다. 그들은 세상을 둘로 나눠 구분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속한 세상, 즉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나 저절로 일원이 되어 살아가는 세상인 ‘디폴트 월드(Default World)’와 내가 스스로 선택해 진짜 나로 살아가는 세상 ‘리얼 월드(Real World)’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면 영화 〈매트릭스〉 때문이리라.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파란 약을 먹으면 지금껏 살아온 대로 매트릭스 안에서 꿈으로 이뤄진 가짜 삶을 살게 되고, 빨간 약을 먹으면 매트릭스를 벗어나 진짜 내가 존재하는 세상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한다. 버너들에게 영화 속 디폴트 월드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성공하기 위해 애쓰고, 승진하기 위해 경쟁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버는, 그러나 실상은 꿈만 꾸면서 매트릭스 안에 갇힌 세상이다. 반면 있는 그대로 존재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리얼 월드다.

그래서 버너들은 버닝맨 축제가 열리는 블랙 록(Black Rock) 사막을 ‘홈(Home)’이라 부른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디폴트 월드에 살다가 사막의 리얼 월드로 돌아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산다고 여긴다. 디폴트 월드에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이해관계를 따지고, 속마음을 숨긴다. 정작 자신이 원하는 모습은 마음속이나 요원한 미래에 있다. 그러나 버닝맨에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표현할 수 있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버너에게 블랙 록 사막은 리얼 월드이자 홈이기 때문이다.

홈에서는 거의 완벽한 자유를 보장받는다. 게임이나 영화 캐릭터 복장을 하든, 아무것도 입지 않고 돌아다니든, 무엇을 표현하든 상관없다. 참가자는 수동적인 관객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가 된다. 다른 사람 또한 무엇을 하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인정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며 표현할 자유가 있듯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은 기다림이라는 인내의 과정이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초월적 존재가 되기까지 자기 부정과 깨달음의 시간을 가졌듯 버닝맨 참가자도 시행착오와 숙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축제 참가만으로 모두가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며 주체적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혼돈을 느끼거나 디폴트 월드와의 괴리로 방향성을 잃을 수도 있다.

모피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문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문을 통해 온전한 존재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스스로 겪어 내야 한다.” 버닝맨 또한 그렇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모든 실험이 용인되는 장일 뿐 진정한 리얼 월드를 인지하고 살아 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Admission for one polymath.’

버닝맨 티켓에서 낯선 단어를 하나 발견한다. 폴리매스(polymath)란 르네상스맨처럼 다방면에 박식하고 전문적인 깊이가 있는 사람을 뜻한다. 버닝맨은 매년 달라지는 주제에 맞춰 참가자를 칭하는 단어를 티켓에 표기한다. 2016년의 주제는 ‘다 빈치의 작업실(Da vinci’s Workshop)’이었고 참가자들은 다 빈치와 같은 폴리매스로 불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다양성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사막으로 오는 걸까? 궁금하면서도 의심스러웠다. 누가 전문가냐는 논쟁이 자주 생길 정도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도 힘든 세상에 다재다능한 사람이 수만 명이나 모일 수 있을까?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본업이 무엇이냐?” 삼성에서 일한 10년 동안은 한 번도 받아 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하드웨어인지 소프트웨어인지, 가전제품인지 반도체인지 정도의 분류만 있었을 뿐 삼성전자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은 너무도 확고했다. 삼성이라는 견고한 울타리를 나온 지금은 몇 개의 회사를 설립했고, 사물인터넷 솔루션을 개발하고, 아시아 혁신가들을 연결하며 혁신을 추구하는 콘텐츠와 프로그램, 그리고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동시에 강연, 방송, 투자, 자문 등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은 내 일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도대체 넌 누구냐고 묻는다. 그래서 흔들릴 때가 있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 이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 어떤 이는 잘하려면 하나에 집중하라 조언하고, 어떤 이는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만 잘하는 전문가를 바라는 세상에서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 다재다능한 사람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 말이다.

명함에 적힌 타이틀 하나로 자기소개가 압축되는 현대 사회에서 나는 무엇이어야 할까. 이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예술가이자 과학자,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한 단어로 대체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그해 여름 사막에서 나는 현대의 수많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만났다.

“가서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절대 본질을 알 수 없다.”

버닝맨에 참가했던 일론 머스크가 남긴 말이다. 허허벌판인 사막에 열흘간 도시가 생기고 모두의 욕망을 담았다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30년간 반복되고 있다. 매년 7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버닝맨은 그저 단순한 축제의 장이 아니다. 괴짜들만의 축제도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 깊이 있는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 그리고 비즈니스가 시작되는 장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새로운 일과 영역을 창조하는 사람, 변화와 혁신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바친다.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