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대한 의무
4화

콘크리트 잔혹사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물질


당신이 이 문장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 동안, 전 세계 건설업계에서는 욕조 1만 9000개 이상을 채울 수 있는 양의 콘크리트가 쏟아져 나온다. 이 글의 절반가량을 읽었을 때쯤엔 쏟아져 나온 콘크리트가 로열 알버트 홀(Albert Hall)[1]을 가득 채우고 하이드 파크(Hyde Park)로 흘러넘칠 것이다. 하루만 더 두면 콘크리트의 양은 중국의 싼샤(三峽) 댐만 한 규모가 될 수 있다. 여기서 1년이 더 지나면 잉글랜드의 모든 언덕과 계곡을 비롯한 구석구석을 덮어 테라스를 만들 수 있다.

콘크리트는 지구상에서 물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물질이다. 시멘트 산업을 하나의 국가라고 가정하면, 중국과 미국의 뒤를 이어서 28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세계 세 번째 탄소 배출국이 될 것이다.

이 물질은 현대 문명 발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수십억 명의 머리 위에 지붕을 얹어 주고, 자연 재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고, 보건, 교육, 운송, 에너지, 산업의 구조물을 제공하고 있다.

콘크리트는 우리가 자연을 길들이는 방식이다. 콘크리트 석판은 여러 요소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머리 위로 비가 들이치거나, 뼛속에 한기가 들거나, 발이 진흙탕에 잠기지 않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방대한 면적의 비옥한 토양을 파묻고, 강의 흐름을 막고, 동물들의 서식지를 숨 막히게 만들기도 한다. 바위처럼 단단한 콘크리트는 또 하나의 피부 역할을 하면서, 도시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푸른빛과 초록빛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세계는 시시각각 회색으로 변해 가고 있다.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의 2018년 연구[2]에 의하면, 콘크리트의 탄소 질량 총합은 이미 지구상의 모든 나무, 덤불, 관목들을 합한 것보다 많을 수도 있다. 우리가 건설한 환경이 자연 환경보다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환경은 자연과는 달리 스스로 성장하지 않는다. 콘크리트의 특징은 견고함이다. 아주 서서히 분해되는 것이다.

지난 60년 동안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총 80억 톤에 달한다. 시멘트 산업은 그보다 많은 양을 2년마다 쏟아 낸다. 플라스틱보다 심각한 콘크리트 문제를 사람들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콘크리트는 화석 연료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고래나 갈매기의 뱃속에서 발견되지도 않는다. 의사들이 우리의 혈액 속에서 콘크리트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참나무에 엉켜 있다거나, 지하의 팻버그(fatberg·하수구에서 발견되는 기름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콘크리트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안다. 정확하게는, 콘크리트가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안다. 콘크리트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콘크리트에 의존해 왔다.

인류는 견고함을 갈망해 왔다. 콘크리트는 무게와 내구성 때문에 사랑받았다. 시간과 자연, 천재지변, 불확실성 등을 막아 주면서 현대 생활의 근간 역할을 했다. 콘크리트는 철근과 결합하면 댐이 붕괴하지 않게, 고층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도로가 뒤틀리지 않게, 전력 공급망의 작동이 중단되지 않게 해주는 견고한 물질이 된다.

견고함은 혼란스러운 변화의 시대에는 더욱 매력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과해서 좋은 것은 없듯이, 콘크리트로 해결하는 문제보다 콘크리트가 유발하는 문제가 많아질 수도 있다.

때로는 확고한 우군이고, 때로는 믿을 수 없는 친구인 콘크리트는 수십 년 동안 자연에 맞서 저항하다가 갑자기 자연의 영향을 증폭시킬 수 있다. 미국 뉴올리언스와 휴스턴은 각각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하비의 영향으로 홍수에 휩쓸렸는데, 도심과 교외 지역의 거리가 일반적인 평야처럼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피해가 더 심각해졌다. 빗물 배수 시스템은 기후가 파괴된 시대의 새로운 극한 상황에 처참할 정도로 부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뉴올리언스 17번가 운하의 제방.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에 붕괴되었다. ©Nati Harnik/AP
극한의 날씨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던 콘크리트는 기후를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생산의 전 과정을 합하면 콘크리트는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8퍼센트를 차지한다. 콘크리트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원료는 석탄, 석유와 가스뿐이다. 콘크리트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절반은 클링커(clinker·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혼합재)라는 상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다. 시멘트 제조 공정에서 에너지가 가장 집중되는 단계다.

콘크리트가 환경에 미치는 다른 영향은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콘크리트는 갈증을 느끼는 거대한 짐승처럼 세계 공업용수의 거의 10분의 1을 빨아들인다. 이 때문에 종종 식수와 관개용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콘크리트가 소비하는 물의 75퍼센트가 가뭄 지역이나 물 부족 지역에서 공급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태양의 열기를 흡수하고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가스를 가두면서 열섬 현상(heat-island effect)을 부추긴다. 콘크리트가 어두운 아스팔트보다는 낫지만 말이다.

콘크리트는 규폐증(silicosis)을 비롯한 호흡기 질환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인도 델리에서는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시멘트와 혼합물에서 나오는 먼지가 도시를 질식시키는 미세 먼지의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2015년 연구자들은 이 도시의 대규모 건설 현장 19곳의 대기 오염 지수가 안전 기준치의 최소 세 배 이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석회석 채석장과 시멘트 공장은 물론, 여기에서 건설 현장으로 재료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도 오염원이 된다. 이 정도 규모에서는 콘크리트의 재료인 모래를 채취하는 것조차 자연에 치명적일 수 있다. 전 세계의 해변과 강줄기를 파괴하는 모래 채굴 사업은 최근 범죄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모래 채굴을 둘러싸고 살인까지 벌어지기도 했다.[3]

이런 사실은 콘크리트의 가장 심각하지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악영향을 보여 준다. 콘크리트는 자연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수정(授精)과 수분(受粉), 홍수 조절, 산소 생산, 수질 정화 등 인류가 의존하고 있는 자연의 생태적 기능을 되돌려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콘크리트는 우리의 문명을 하늘을 향해 나아가게 해줄 수 있다. 두바이에 있는 163층 높이의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가 공중에서 생활 공간을 창출해 낸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생태 발자국을 더 밀어내서 비옥한 표토와 동물의 서식지를 가로질러 멀리까지 나아가게 만든다. 많은 과학자들이 기후 혼란만큼이나 위협적이라고 여기는 생물 다양성 위기는 주로 야생 지역을 농업 및 산업 용지나 주거 지구로 전환하면서 발생한다.

수백 년 동안 인류는 콘크리트가 주는 확실한 혜택의 대가로 콘크리트가 환경에 미치는 이러한 부작용을 기꺼이 감내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균형추가 반대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기를 부양하는 시멘트 축제


로마에 있는 판테온 신전과 콜로세움은 콘크리트의 내구성을 보여 주는 증거다. 여기에 쓰인 콘크리트는 모래와 골재(일반적으로 자갈이나 돌), 물에 석회 반죽을 섞어 굳힌 것이었다. 현대의 산업화된 접합재인 포틀랜드 시멘트[4]는 1824년에 영국 리즈 출신의 조지프 애스프딘(Joseph Aspdin)이 ‘인조석’의 형태로 특허를 받으면서 탄생했다. 포틀랜드 시멘트는 이후에 철골 또는 철망과 결합한 강화 콘크리트로 재탄생하면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같은 아르데코(art deco)식 고층 건물의 기반이 되었다.

콘크리트의 물결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저렴하고 간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바로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같은 건축가가 주도한 브루탈리즘(Brutalism) 건축의 시대였다.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의 자유롭게 흐르는 초현대적인 곡선과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우아한 선들이 그 뒤를 이었다. 수많은 댐, 교량, 항만, 시청, 대학 캠퍼스, 쇼핑센터, 한결같이 암울한 주차장들이 계속해서 늘어난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50년대의 시멘트 생산량은 철강 생산량과 비슷했다. 그 이후로 2019년 현재까지 시멘트 생산량은 25배 증가했다. 이는 건축 파트너인 금속 재료보다 세 배나 빠른 속도였다.

콘크리트의 미학에 대한 논쟁은 전통주의적인 입장과 현대주의적인 입장으로 양분된다. 전통주의를 옹호하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오웬 루더(Owen Luder)가 설계한 브루탈리즘 양식의 트라이콘 센터(Tricorn Centre)를 두고 ‘흰 곰팡이가 핀 코끼리 똥 덩어리’라고 비난했다. 반면 현대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콘크리트를 질량을 견디면서도 스타일, 규모, 견고함을 만들어 주는 수단으로 보았다.

콘크리트의 정치학은 미학만큼 분열되지는 않았지만, 점점 부식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관성이다. 이 물질이 정치인과 관료, 건축 기업을 한번 연결하게 되면, 이들의 굳건한 결합을 깨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당 지도자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건설 회사의 후원금과 뒷돈이 필요하고, 정책 입안자는 경제 성장을 위해 더 많은 건설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건설 회사 간부는 돈을 굴리고 직원을 고용하고 정치적인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계약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효과가 미심쩍은 사회 기반 시설 프로젝트, 올림픽, 월드컵, 국제 전시 같은 시멘트의 축제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20세기 후반에 콘크리트를 열성적으로 포용했다. 이 나라의 지배 구조와 관련해 ‘토건 국가’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일본 가스가베(春日部)시에 있는 압력 조절 저수 시설. 폭우와 태풍 시즌에 도시의 주요 수로와 강물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홍수와 범람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Ho New/Reuters
애초에 콘크리트는 2차 세계 대전에서 폭탄과 핵탄두로 파괴된 도시들을 재건하는 데 사용되는 저렴한 재료였다. 이후 콘크리트는 초고속 경제 성장을 위한 새로운 모델의 근간 역할을 하게 되었다. 초고속 열차 신칸센의 철로가 깔리고, 고가 고속 도로를 놓기 위해 교량과 터널이 건설되고, 공항에 새로운 활주로가 닦이고,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가 열릴 경기장, 새로운 시청, 학교, 스포츠 시설들이 지어지는 데에 콘크리트가 동원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경제는 1980년대 후반까지 거의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이는 높은 고용률과 함께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에게 권력을 안겨 주었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와 같은 당대의 정계 거물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얼마나 거대한 프로젝트를 유치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받았다. 거액의 리베이트는 일상적이었다. 야쿠자들도 중개자와 집행자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몫을 챙겼다. 시미즈(清水), 다이세이(大成), 카지마(鹿島), 다케나카(竹中), 오바야시(大林), 구마가이(熊谷) 등 빅6라고 불리는 건설사들이 담합 입찰로 거의 독점을 하면서 수익성 좋은 계약을 보장받았고, 정치인에게는 엄청난 뒷돈을 건넸다. 토건 국가는 국가적인 규모의 부정한 돈벌이였다.

하지만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콘크리트의 양은 제한되어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콘크리트를 사용하는 사업의 수익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현상이 확연하게 나타났다. 이 시기에는 가장 창의적인 정치인조차도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출을 정당화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에 엄청나게 비싼 다리가 지어졌고, 작은 시골 마을 사이에 왕복 4차선 이상의 넓은 도로가 깔렸다. 얼마 남지 않은 강변에는 시멘트가 덮였다. 일본의 해안선 40퍼센트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방파제를 만들기 위해 전례 없이 막대한 양의 콘크리트를 쏟아붓기도 했다.

오랜 기간 일본에 거주한 작가 알렉스 커(Alex Kerr)는 저서 《치명적인 일본(Dogs and Demons)》에서 홍수와 산사태 방지라는 미명하에 강둑과 산비탈이 시멘트로 덮이는 현실을 통탄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무수한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산과 강, 하천, 호수, 습지 등 모든 곳에 말로 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혀 왔고, 이제 그 기세를 더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 일본의 실체입니다. 그 숫자는 실로 엄청납니다.”

커에 따르면, 1제곱미터당 콘크리트의 양은 일본이 미국보다 30배 많고, 총량은 두 나라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니까 캘리포니아 정도 크기의 나라에 미국 전체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양의 콘크리트가 덮여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상업화와 도시화 현상에 30배를 곱하면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전통주의자와 환경 보호론자들은 경악하지만, 이런 생각은 무시당한다. 일본의 시멘트화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그들의 전통적인 미학적 이상이나 무상(無常·덧없음)이라는 정서와 반대되는 방향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 중 하나로서 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공포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회색으로 뒤덮인 강둑과 해안이 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가정을 홍수로부터 지킬 수만 있다면 그런 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2011년에 도호쿠(東北) 지역을 강타했던 지진과 쓰나미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이시노마키(石巻), 가마이시(釜石), 기타카미(北上)와 같은 해안 마을에서는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대한 제방이 단 몇 분 만에 사라져 버렸다. 약 1만 6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채의 건물이 부서지거나 피해를 입었다. 마을의 도로는 떠내려온 선박들로 막혔고, 항구의 물 위는 떠다니는 자동차들로 가득했다. 후쿠시마에서는 훨씬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밀려든 바닷물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외측 방어벽을 집어삼켰고, 레벨 7의 멜트다운(meltdown·원자로의 중심부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사고)이 일어났다.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이 사고는 일본에게 크누트 왕(King Canute)의 이야기[5]와 같은 사건이었다. 자연의 힘에 의해 인간의 오만한 어리석음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업계의 로비는 여전히 강력했다. 자민당은 이듬해에 정권을 다시 찾아오면서 향후 10년 동안 공공 부문에 200조 엔(2169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는 일본 GDP의 40퍼센트에 달하는 수치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감옥에 갇힌 느낌이에요.” 일본 이와테(岩手)현의 야마다(山田)시에 있는 방파제, 2018년. ©Kim Kyung-Hoon/Reuters
건설사들은 다시 바다를 막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높고 두터운 장벽이 만들어졌다. 이 장벽의 효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12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이라면 쓰나미를 막아 내거나 적어도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이런 약속은 전부터 들어 왔던 이야기다. 방어 시설이 지키고 있는 지역들은 이제 인간의 거주 가치가 낮은 지역이 되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논과 양식장이 차지하고 있다. 환경 보호론자들은 맹그로브 숲이 훨씬 더 저렴한 완충 수단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조차도 그들과 대양 사이를 가르는 콘크리트를 대단히 혐오한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감옥 안에 갇힌 느낌이에요.” 굴 양식업자인 후지타 아쓰시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선 이제 더 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아요.” 도쿄 태생의 사진작가인 오노 다다시(小野規)의 말이다. 그는 이 거대한 새로운 구조물을 담은 아주 강력한 이미지를 촬영했다. 그는 거대한 건축물을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유기(abandonment)라고 설명한다. 그는 말한다. “일본의 문명으로서의 풍요로움은 대양과의 교류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본은 언제나 바다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는 바다로부터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 정부는 바다를 차단해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단 지어 놓으면’


콘크리트를 사용한 개발에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콘크리트는 개발의 동의어가 되었다. 인류 발전이라는 훌륭한 목표는 이론상으로는 기대 수명, 유아 사망률, 교육 수준과 같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지표들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에게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지표는 경제 활동을 측정하는 GDP였다. GDP는 대개 경제 규모를 계산하는 용도로 사용되며, 각국 정부가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콘크리트만큼 국가를 키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러한 사실은 일정 수준 이상의 단계에 진입한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 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마치 복싱 선수가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경제 구조에서 이런 프로젝트는 나이 든 운동선수가 거의 효과를 볼 수 없음에도 더 강력한 스테로이드를 주입하는 것처럼 해롭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케인스주의 성향의 경제 자문 위원들은 일본 정부에게 GDP 성장을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이를 채우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가급적 시멘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고, 구덩이는 클수록 더 좋다. 이것은 이윤과 일자리를 의미한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훨씬 쉬운 방법은 국가를 동원하는 것이다. 콘크리트는 어떤 방식으로든 정책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생각이 1930년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의 배경이었다. 뉴딜 정책은 불황을 타개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라고 칭송받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역대 가장 많은 콘크리트를 쏟아부은 일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후버(Hoover) 댐 한 곳에만 330만 세제곱미터의 콘크리트가 필요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 기록이었다. 건설업계는 이 댐이 인간 문명보다도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후버 댐은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비하면 몸집이 작은 편이었다. 21세기의 콘크리트 초강대국인 중국은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어떻게 문화(자연과 연계된 문명)를 경제권(GDP 통계에 잡히는 생산 단위)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지를 거대한 스케일로 보여 준다. 베이징이 개발 도상국 단계에서 차기 초강대국의 지위까지 급속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산을 이룰 만큼의 시멘트와 해변 하나만큼의 모래, 호수만큼의 물이 필요했다. 이런 재료들이 콘크리트를 만들기 위해 섞인 속도는 아마도 현대 통계에서 가장 놀라운 수치일 것이다. 2003년 이후로 중국은 미국이 20세기 내내 사용한 양의 시멘트를 3년마다 쏟아붓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시멘트의 거의 절반을 사용한다. 도로, 교량, 철도, 도시 개발, 그 외에 시멘트 및 철강 산업 같은 토건 분야는 2017년에 중국 경제 성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모든 대도시에는 건물 한 층 면적으로 도시 개발 계획을 보여 주는 모형이 있는데, 거대 쇼핑몰이나 주거 단지, 고층 콘크리트 빌딩이 들어설 때마다 작은 흰색 플라스틱 모형들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일본, 한국 등 ‘개발된’ 모든 다른 나라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은 이제 단순히 콘크리트를 퍼붓는 것만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아지는 경계선을 지나고 있다. 유령 쇼핑몰, 텅 빈 마을과 하얗고 거대한 스타디움은 낭비를 보여 주는 신호다. 뤼량(呂梁)에 새롭게 들어선 거대한 공항은 하루에 겨우 다섯 차례의 비행편만으로 개항했고, 베이징 올림픽의 주경기장이었던 냐오차오(鳥巢) 스타디움은 이제는 이용률이 저조해서 경기장이 아니라 오히려 기념물에 가까운 시설이 되었다. ‘일단 지어 놓으면 사람들이 찾아올 것’[6]이라는 말은 과거에는 사실이었지만, 이제 중국 정부는 걱정하고 있다. 중국 국가 통계국에서 주거용 건물의 미분양 면적이 45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시진핑 국가 주석은 과도한 개발을 전면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중국 양쯔강에 건설된 싼샤(三峽) 댐은 세계 최대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Laoma/Alamy
텅 비고 허물어져 가는 구조물들은 흉물스러울 뿐만 아니라 경제를 소모시키고, 생산적인 대지를 낭비한다. 더 큰 건축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멘트와 철강 공장이 필요하고, 이는 더욱 많은 유해 물질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중국의 조경 건축가인 위쿵젠(俞孔坚)이 지적하듯이, 콘크리트는 비옥한 토양, 자정 능력을 갖춘 하천, 폭풍우에 견디는 맹그로브 습지, 범람을 막아 주는 숲 등 인간이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있다. 이는 그가 ‘생태 안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위협이다.

콘크리트에 대한 공격을 이끌고 있는 위쿵젠은 강둑과 자연 식생을 복원하기 위해서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있다. 그가 펴낸 영향력 있는 책 《생존의 기술(The Art of Survival)》은 중국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도교의 이상으로부터 위태롭게 멀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지금 따르고 있는 도시화 과정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위쿵젠은 정부 관료들에게 자문을 하고 있다. 이들도 현재 중국의 성장 모델이 가진 허점을 점점 더 인식해 가고 있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콘크리트 경제의 초기 동력이 사라진 이후에는 언제나 콘크리트 정치라는 관성이 나타난다. 시진핑 주석은 ‘아름다운 나라’와 ‘생태적인 문명’을 만들기 위해 연기를 내뿜는 중공업 위주에서 첨단 제품 생산으로 경제의 초점을 바꿀 것을 약속했다. 중국 정부는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건설 붐을 자제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건설업계의 고용 인원이 영국 인구와 비슷한 규모인 5500만 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분야를 그렇게 쉽게 약화시키기는 어렵다. 대신 중국은 다른 나라들이 해왔던 일을 하고 있다. 환경에 대한 부담과 여분의 능력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다.

베이징이 거창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은 마셜 플랜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해외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다.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도로, 아프리카에 있는 최소 15개의 댐, 브라질의 철로, 파키스탄과 그리스, 스리랑카의 항만 등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이를 비롯한 다른 프로젝트에 공급하기 위해 중국 최대의 시멘트 생산 기업인 중국 건축 재료 집단(中国建筑材料集团)은 50개국에 100개의 시멘트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콘크리트 부패 공식


이런 계획을 보면, 확실히 더 많은 범법 행위가 벌어질 것이다. 건설 산업은 과도한 공공 건축물을 공급하는 수단이자 뇌물이 오가는 거대한 통로다. 여러 국가에서 이 공생 관계가 너무나 강력해서, 콘크리트가 늘어날수록 부패도 늘어난다는 것은 하나의 공식처럼 되었다.

부패 감시 단체인 국제 투명성 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건설업은 채굴업, 부동산업, 에너지 산업, 무기 시장을 모두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산업이다. 그 영향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브라질의 건설업계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충격적인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남아메리카 최대 국가인 브라질의 콘크리트 열풍은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도의 선에서 출발했다. 그 후에는 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추진되었다. 그리고 콘크리트는 결국 정치적 편의주의와 개인의 탐욕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이런 변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됐다. 1950년대 말에 시작한 최초의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내륙의 고원에 새로운 수도인 브라질리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고지대의 토지를 둘러싸고 새로운 정부 청사와 주택들을 짓기 위해 불과 41개월 동안 100만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가 투입되었다.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 위치한 오스카 니마이어가 설계한 브라질 국립 박물관. ©Image Broker/Rex Features
뒤를 이어서 아마존 우림을 관통하는 새로운 고속 도로인 아마존 횡단 고속 도로(Rodovia Transamazônica)가 개통되었고, 1970년부터는 파라과이와의 접경 지역에 있는 파라나강에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수력 발전소인 이타이푸(Itaipu) 댐이 지어졌다. 이 댐은 후버 댐보다도 약 네 배 더 거대한 규모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들은 이 댐이 세계 최대의 축구 경기장인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Maracanã) 스타디움을 210번이나 채울 수 있을 정도인 1230만 세제곱미터의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중국에서 2720만 세제곱미터의 콘크리트를 이용해서 양쯔강의 목을 조르는 싼샤 댐을 짓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 기록이었다.

군부가 권력을 차지하고, 언론은 통제되며 사법부는 독립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얼마나 많은 예산을 군 장성들과 도급업자들이 빼돌렸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부패 문제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독재가 끝난 1985년부터였다. 이때는 사실상 어떤 정당도, 정치인도 깨끗한 사람이 없었다.

파울루 말루프(Paulo Maluf)는 그중에서도 악명 높은 인물이다. 그는 거대한 고가 고속 도로 건설 당시 상파울루 시장으로 재직했다. 고속 도로는 ‘커다란 벌레’라는 뜻의 미뇨꺼웅(Minhocão)이라고 불렸고, 1969년 개통했다. 이 프로젝트의 공로를 차지한 말루프는 불과 4년 동안 공공사업 부문에서 10억 달러(1조 1700억 원)를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 중 일부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비밀 계좌에 있는 것으로 추적된다. 인터폴의 수배를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루프는 수십 년 동안 정의의 심판을 피해 다니며 수차례 고위 공직에 진출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적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착복했지만, 어쨌든 일을 해냈다.” 말루프에 대해서 말할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전 세계 콘크리트 산업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2016년 브라질리아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지우마 호세프의 탄핵에 대한 토론에 참석한 파울루 말루프. ©Ueslei Marcelino/Reuters
하지만 브라질에서 가장 부패한 인물이라는 말루프의 수식어는 지난 5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세차 작전(Operation Car Wash)’ 수사로 빛을 잃었다. 입찰 담합과 자금 세탁의 거대한 네트워크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면서 오데브레시(Odebrecht), 안드라디 구티에레스(Andrade Gutierrez), 카마르고 코헤아(Camargo Corrêa) 같은 거대 건설 기업들의 비리가 밝혀진 것이다. 정치인, 관료, 중개인들이 벨루 몬치(Belo Monte) 댐,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을 비롯한 브라질 전역 수십 개의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최소 20억 달러(2조 34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받은 것으로 수사 기관은 보고 있다. 검찰은 오데브레시 한 곳만 추산해도 415명의 정치인과 26개의 정당이 뇌물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부는 몰락했고, 브라질의 전직 대통령과 에콰도르의 부통령은 수감되었다. 페루 대통령은 사임해야 했고, 그 외 수십 명의 정치인과 기업 임원이 철창신세를 졌다. 부패 스캔들은 유럽과 아프리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미국 법무부는 이 스캔들이 ‘외국에 뇌물을 준 사례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라고 밝혔다. 이 사건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2017년 말루프가 마침내 체포되었을 때는 아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견고함에서 비옥함으로


부정부패는 단순히 세금을 도둑질하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환경 범죄를 부추기기도 한다. 사회적인 효과가 미심쩍은 사업을 진행해 수십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벨루 몬치 댐 사례처럼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환경 관련 허가 당국도 깊은 우려를 표하는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다.

위험성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이제 막 고도의 콘크리트 발전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향후 4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새로 지어지는 면적은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일부는 보건적인 측면에서 혜택을 주기도 할 것이다. 환경 과학자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은 전 세계 극빈층 가정의 흙바닥을 콘크리트로 대체하면 기생충 감염을 거의 80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콘크리트를 실은 손수레들이 이 세계를 생태계 붕괴로 더 가까이 몰아붙이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영국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 채텀 하우스(Chatham House)는 도시화, 인구 증가, 경제 발전으로 인해 전 세계 시멘트 생산량이 매년 40억~50억 톤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경제 및 기후에 관한 글로벌 위원회(Global Commission on the Economy and Climate)에 따르면, 만약 개발 도상국이 인프라 설비를 현재의 전 세계 평균 수준으로 늘린다면 건설 부문은 2050년까지 470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이는 기후 변화에 관한 파리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정부는 지구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에서 2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시멘트 산업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최소 16퍼센트 감축하는 것에 동의했다. 게다가 시멘트 생산량 증가는 인간 복지에 필수적인 생태계에 현재보다 훨씬 심한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위험이 감지되고 있다. 채텀 하우스에서 작년에 발간한 보고서는 시멘트의 생산 방식을 재고할 것을 촉구한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재생 자원을 사용하고,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며, 클링커를 대체하는 물질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을 보다 넓게 적용하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들고, 아직 산업계에서 상용화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기술이지만 말이다.

건축가들이 제시하는 해답은 건물의 거품을 제거하고, 가능하다면 집성 교차목(Cross Laminated Timber, CLT과) 같은 대체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건물의 외관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콘크리트의 시대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앤서니 시슬턴(Anthony Thistleton)은 말한다.

그는 《건축 저널(Architects Journal0》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콘크리트는 아름답고 용도도 다양하지만, 불행하게도 환경에 대해서는 모든 부분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질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강철과 아스팔트, 석고 보드를 만드는 데에는 콘크리트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전 세계의 숲은 목재 수요가 특별히 늘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우려스러울 만큼 빨리 줄어들고 있다.

리즈 대학교의 재료구조학 교수 필 퍼넬(Phil Purnell)은 세계가 ‘콘크리트 정점’에 다다르는 순간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콘크리트의) 원재료는 사실상 무한하고, 도로든 교량이든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건설하는 한 수요가 있을 겁니다. 다른 어떤 재료와 비교해 봐도 콘크리트가 가장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는 재료입니다.”

대신 그는 기존 구조물을 더 잘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재활용을 해야 한다. 현재 콘크리트 폐기물은 매립지로 향하거나 부서져서 골재로 재사용된다. 퍼넬은 이 과정이 더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콘크리트 패널에 ID 태그를 삽입하면 필요한 곳을 찾아 재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퍼넬의 리즈 대학교 동료들은 포틀랜드 시멘트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찾고 있다. 배합을 다르게 하면 접합재의 탄소 발자국을 최대 3분의 2까지 줄일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발 모델 위주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개발 모델은 살아 있는 자연을 건축된 환경으로, 자연에 기반한 문화를 데이터가 주도하는 경제로 바꿔 놓았다. 변화를 위해서는 콘크리트 위에 축조된 권력 구조에 제동을 걸고, 견고함보다는 비옥함이 성장을 위해 더 중요한 기반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1]
1871년에 지어진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 남쪽 길 건너의 콘서트 홀.
[2]
Brian Resnick and Javier Zarracina, 〈All life on Earth, in one staggering chart〉, 《Vox》, 2018. 8. 15.
[3]
Michael Safi, 〈Villagers pay tragic price as Indian building boom drives demand for sand〉, 《The Guardian》, 201
[4]
포틀랜드 시멘트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시멘트다.
[5]
신하들과 바닷가 산책을 하던 중, 파도를 보고 멈추라고 명령했다가 멈추지 않는 파도에 휩쓸릴 뻔한 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는 일화가 있다.
[6]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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