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람코의 사상 최대 IPO
2화

석유 업계 최강자의 불확실성

아람코는 석유 산업의 골리앗이지만, 여러 문제를 겪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기업의 본사로 들어가려면, 경비가 삼엄한 정문을 지나서 길을 하나 건너고, 또 한 번 보안 출입문을 통과해야 한다. 뜨거운 뙤약볕을 피해서 시원한 오피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돌이 담겨 있는 상자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수천 미터 아래의 지하에서 채취한 경석고, 셰일, 백운석, 입자암의 표본이다. 검은색 표면에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약 1억 년 전에 아라비아반도를 뒤덮었던 해상 동물과 식물들의 잔해가 들어 있다. 이 돌에서는 희미하지만 친숙한 냄새가 난다. 석유 냄새다. “돈 냄새죠.” 임원 한 명이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1110억 달러(130조 4500억 원)의 돈 냄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소유한 석유 기업인 사우디 아람코의 작년 순이익은 1110억 달러였다.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기업인 애플이 거둔 순이익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리고 아람코를 제외한 세계 5대 석유 기업(엑손모빌, 로열 더치 셸, BP, 셰브론, 토탈)의 수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방대한 석유 매장량은 오로지 사우디아라비아만의 자산이었다. 사우디 왕국의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은 이를 바꾸려 하고 있다.


2016년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왕국의 경제를 다변화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람코의 지분 일부를 상장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지연되기는 했지만, 마침내 그의 계획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아람코의 신임 회장으로 왕국의 국부 펀드 이사장인 야시르 알-루마얀(Yasir al-Rumayyan)을 임명하고 상장을 계속해서 진행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11개의 은행과 금융 자문단이 그 목표를 향해 열정을 쏟고 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11월 초에 왕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식 시장인 타다울(Tadawul)에 아람코의 지분 2~3퍼센트를 상장한다고 발표할 것이다. 아람코가 상장하면 300억 달러(35조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에 250억 달러(29조 원)를 모으며 뉴욕 증시에 상장한 알리바바(Alibaba)의 기록을 넘어서는 역사상 최고액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에는 외국 증시에도 상장할 전망이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IPO에 대한 포부를 밝힌 지 거의 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연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동안 기업 가치 평가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인해 IPO가 미뤄져 왔기 때문이다. 아람코 상장 계획은 당초 10월에 발표될 예정이었다. 왕세자가 만족할 만한 기업 가치가 얼마인지는 불명확하지만, 2016년에 그는 2조 달러(2350조 원)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아람코는 잘해야 1조 5000억 달러(1760조 원) 정도의 가치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아람코의 심장부에 존재하는 모순을 보여 준다. 아람코는 한때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석유 업계의 최강자였지만, 지금은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다. 2019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 있는 아람코의 정유 시설 두 곳이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생산량 절반 이상의 피해를 입었고, 추가 공격의 위험도 있다. 미국은 이 공격이 이란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10월에는 신용 평가 회사인 피치(Fitch)가 아람코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지정학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군주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 유가를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일고 있다. 2019년 4월에 배럴당 75달러였던 유가는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해 약 60달러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은 이제 석유 산업에 관심이 없다. S&P 500 지수에서 에너지 부문의 가중치는 2019년 6월에 5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2008년 수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석유 시장은 변동이 심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해 석유 소비가 타격을 받으면 변동성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 금융 기업 번스타인(Bernstein)의 오스왈드 클린트(Oswald Clint)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15년 전에 기업 공개를 했다면, 아마도 투자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석유 수요나 에너지 분야의 전망이 불확실합니다.”

석유 시장은 전반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아람코는 자신이 계속해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아람코는 새로운 사업 조직을 만들고 계약을 체결해 고객을 확보하고 수익원을 다각화하면서 자신이 가진 석유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세계의 석유 산업이 끝날 때까지도 사우디아라비아는 계속해서 원유를 뽑아낼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행보다. 그런 먼 훗날의 가능성을 투자자들이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석유 기업과 산유국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아람코를 능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회사의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의 국영 석유 대기업과 비슷한 면도 있다. 1938년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유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업을 이끈 아람코(Aramco)라는 회사 명칭은 중동 미국 석유 기업(Arabian American Oil Company)을 줄인 것이다. 아람코 본사는 한때 뉴욕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1973년부터 1981년까지 꾸준히 국가의 지분을 늘려서 완전한 국영 기업이 되었다. 이는 당시 베네수엘라에서부터 말레이시아까지 불어닥친 석유 산업 국유화라는 거센 바람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람코는 여느 평범한 국영 석유 기업들과는 다르다. 전문적인 경영진과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가졌으며, 업계에서도 운영이 잘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람코의 본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부주(Eastern Province)에 위치한 다란(Dhahran)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만 5000명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하나의 세계다. 여러 학교와 체육 시설, 식료품점이 갖추어져 있으며, 길거리에는 멋진 집들이 줄지어 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좀 많을 뿐, 언뜻 보면 애리조나의 교외 지역이 연상된다. 아람코의 직원들 중 약 90퍼센트는 사우디아라비아인이며, 여성 직원들은 아바야(abaya)라는 의상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여느 평범한 산유국과는 다르다. 이 나라의 보물인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은 주로 동부주 지역이다. 여기에는 483억 배럴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축복받은 가와르(Ghawar) 유전이 있다. 이곳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무용수가 발끝으로 선 모양처럼 보인다. 석유는 룹알할리 사막의 사구 아래와 걸프만 해저에도 매장되어 있다. 아람코가 확보하고 있는 유정은 500군데 이상이며, 이들 모두의 매장량은 확인된 것만 해도 2600억 배럴 가량이다. 다른 상위 5개 업체들의 매장량을 합친 것보다도 세 배나 많은 양이다. 2018년에 아람코가 뽑아 올린 원유의 양은 전 세계 생산량의 8분의 1에 달한다.

이처럼 놀라운 규모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해왔다. 미국 셰일 가스 업체들의 석유 생산량을 모두 합친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업체들은 모두 개별 기업이다. 변동성이 큰 석유 시장을 길들이기 위해 생산량을 빠르게 조절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석유는 사우디 왕국에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민들에게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최저 소득 보장 제도와 같은 안전망을 제공하면서 절대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 내에도 천연자원의 혜택을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누리는 곳이 있다. 리야드(Riyadh), 담맘(Dammam)의 부유한 지역에서는 푸르른 숲을 볼 수 있다.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이 지역과 먼지 쌓인 서민 주거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에 위태롭게 의존하고 있다.

석유는 사우디 정부 수입(收入)의 70퍼센트와 수출의 80퍼센트 가량을 책임진다. 비석유 분야의 경제 활동은 대부분 정부 지출로 인한 것인데, 그조차도 결국은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석유나 천연가스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나 서비스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조한 기후 때문에 물을 얻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드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사용해야 한다. 물까지도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스윙 컨슈머[1]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랫동안 유가 변동에 취약했다. 게다가 세 가지 새로운 문제점을 마주하고 있다. 첫째, 셰일 가스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변신한 미국은 유가를 높은 가격으로 꾸준히 유지하려는 OPEC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둘째, 사우디아라비아에 청년 인구가 급증했다. 석유 산업은 자본 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따라서 넘쳐나는 젊은이들을 전부 고용할 수 없다. IMF는 앞으로 5년 안에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 100만 개의 일자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페트로폴리스(Petropolis).
세 번째 문제는 세계의 석유 수요가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크고 불확실한 문제다. 경제 성장과 석유 수요는 함께 성장해 왔지만, 기후 변화 위기가 부각되면서 둘 사이의 연관성이 끊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 일어난다면 언제일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내의 에너지 담당 부서인 미국 에너지 정보 관리청(EIA)은 세계가 여전히 석유에 목말라 있으며 2050년까지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엑손모빌 역시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람코의 업스트림(원유 생산) 부문 회장인 모하메드 알-카타니(Mohammed al-Qahtani)는 “향후 20년 동안은 수요가 끄떡없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들의 사업 모델은 자신들의 유정이 2200년까지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일부 석유 기업들은 발 빠르게 다양한 시나리오를 살펴보고 있고, OECD 산하의 연구 기관인 국제 에너지 기구(IEA) 역시 석유 산업의 위기에 대한 대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IEA의 보고서 초안을 검토했던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예측이라고 해도 여러 추정을 담고 있고 논란의 여지도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무함마드 왕세자는 다각화를 원하고 있다. ‘비전 2030’이라는 그의 구상을 보면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경제를 변화시키려는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제조업과 ‘경제 특구’에 전략적 투자를 한다는 방안이 있는데, 그중에는 홍해 근처에 네옴(NEOM)이라는 스마트 계획도시를 건설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은 아람코의 IPO에 의해 마련될 것이다.

그간 아람코의 IPO가 미뤄진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상장을 하게 되면 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아람코는 사우디 국부 펀드가 소유한 거대 석유 화합 기업인 사빅(Sabic)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공을 들이기도 했다. 아람코의 기업 가치 평가에 대한 의견 조율도 필요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반체제 저널리스트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면서 아람코의 IPO가 무기한 연기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람코는 690억 달러(8조 원)에 사빅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19년 4월 120억 달러(14조 원)어치의 채권을 발행했고, 투자자들은 이를 즉시 전부 사들였다. 이때 469페이지 분량의 채권 공모 안내서가 발행되면서, IPO를 하면 아람코의 장부가 전 세계에 공개된다는 부담감은 줄어들었다. 한편 경제 다각화 프로젝트의 기금 마련을 위해 상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채권을 발행한 후 IPO 준비에는 탄력이 붙었다. 회사는 2019년 8월 처음으로 투자자들에게 수익 결산 자료를 공개했다(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을 애널리스트들은 이 자리에서 이례적일 만큼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사우디 정부는 상장을 주관할 기관으로 여섯 곳의 다국적 은행(JP모건, 골드만삭스, 크레디트 스위스, 시티, HSBC,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삼바(Samba), 국영 상업 은행(National Commercial Bank)을 선정했다.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티 그룹 출신의 마이클 클라인(Michael Klein)과 금융 컨설팅 그룹인 모엘리스(Moelis)와 라자드(Lazard)가 자문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이제 투자자들이 아람코의 주식을 손에 쥐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주식을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기업 가치를 시장이 결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왕세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자국의 타다울 증시에 상장한 이후에 주식 거래의 변동성을 제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떠받치기 위해서 자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이 주식을 열심히 매입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리야드에서 활동하는 노련한 사업가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충성심을 보여 주는 방법이 될 겁니다.” 또 다른 사람은 “그런다고 어떤 보상이 약속되지는 않는다”며 선을 그었지만, “사우디에서는 권력층의 지원을 받지 않고 사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우디의 은행들은 자국 내 투자자들에게 여신 한도를 늘려 주면 지분 보유량을 늘릴 의향이 있는지 묻고 있다.

하지만 IPO가 실행되면 아람코의 기업 가치에는 사업 그 자체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회사의 엄청난 규모와 공격적인 전략, 그리고 특수한 문제점이 반영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람코는 기존의 사업을 강화하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카타니 부회장은 이러한 시도를 방어적인 것이 아니라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역 부문을 설립하고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전략적 변화는 바로 석유 화학 제품과 같은 다운스트림 분야로 확장하는 것이다. 2019년 3월 아람코는 사빅의 지분 70퍼센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 펀드에 현금을 조달함과 동시에 수익 원천도 다각화할 수 있게 되었다. IEA의 예상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석유 수요의 성장을 이끄는 데 있어서 석유 화학 제품이 절반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세계 4위의 석유 화학 기업인 사빅은 지난해에 140억 달러(16조 4560억 원)의 영업 이익을 기록했다. 사빅의 사업 영역은 인도의 비료에서부터 레인지로버 차량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있다.

아람코는 아시아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자금력도 동원하고 있다. 2019년 8월 인도의 재벌 기업인 릴라이언스는 아람코가 자신들의 정유 화학 부문 지분 20퍼센트를 약 150억 달러(17조 6300억 원)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아람코는 한국, 말레이시아,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다양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2] 정유와 화학 제품 업체들과 합작 사업을 함으로써 아람코는 낮은 유가로 인한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아람코는 합작 투자를 체결할 때 자신들이 해당 프로젝트의 장기적이며 독점적인 원유 공급자라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여러 협약을 통해서 아람코는 석유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크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 아시아에서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아시아는 아람코가 해외에 수출하는 원유의 71퍼센트를 사들인다.

다른 나라의 국영 석유 기업들도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 석유 회사인 아드녹(ADNOC)은 인도의 대규모 정유 시설 운영에 있어서 아람코와 협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람코를 가장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석유를 매우 싼값에 퍼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석유 자원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환경에서 매끄러운 기반 시설을 바탕으로 수십 년 동안 시추해 오면서, 아람코는 배럴당 겨우 2.8달러의 비용으로 석유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다국적 석유 기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아람코는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거대 기업인 로즈네프트(Rosneft)보다 두 배 이상, 쉘(Shell)보다 네 배 이상의 이윤을 남기고 있다(표 1 참조).
훨씬 더 많은 석유/ 에너지 기업/ 일간 석유 및 가스 생산량, 원유 환산 배럴(100만 단위)/ 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10억 달러/ EBITDA, 수익률/ 자료: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



더 싸게, 더 깨끗하게


《이코노미스트》는 리서치 기업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와 함께 석유 수요가 줄어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정이 얼마나 가치를 갖게 될지에 대해 조사했다. 미국 대선 이후에 기후 관련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을 예측해 본 것이다. 석유 기업들은 보통 손익을 맞추려면 10퍼센트의 수익률을 거두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가격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계산함으로써 각 나라의 유전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살펴볼 수 있다. 석유의 시추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지도 살펴보았다. 에너지 사용은 탄소 배출을 의미하며, 추후 탄소세가 부과되면 추가 비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경쟁력이 있었다.
탄소 발자국/ 석유 생산에서 방출되는 탄소량, 2015년 100만 줄당 탄소 배출량(그램 단위)/ 손익 평형 가격(세전), 배럴당 달러/ 자료: 스탠퍼드 대학교, 라이스타드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데이터에 따르면 아람코가 새 유전 프로젝트를 실시할 때 손익 분기 가격은 세금이 붙은 후에도 31달러였다. 이란이나 이라크, 쿠웨이트보다는 약간 높지만, 러시아에 비해서는 절반도 되지 않으며, 미국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시추 과정과 유증기를 불태우는 플레어링(flaring) 과정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평균의 절반을 밑돌았다. 스탠퍼드 대학교와 아람코의 연구원들이 별도로 분석한 자료도 있는데, 이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표 2 참조). 실제로 아람코는 동종 업계가 얼마나 석유 수요 감소에 취약한지를 보여 주고 있다. 캐나다와 베네수엘라는 비용도 많이 들고 품질도 떨어지기 때문에 특히 위태롭다.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해 봐도, 수요가 어떻게 되든 아람코의 유전이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아람코는 여러 가지 커다란 리스크를 마주하고 있다. 사우디 영토의 소중한 석유 자산들은 무장 공격에는 여전히 취약하다. 지난 9월의 공격을 ‘사고’라고 표현하는 아람코 임원들은 부서진 시설들이 빠르게 수리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공격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9월 이전에도 사우디의 수송관, 공항, 유전에 대한 공격이 있어 왔다. 이런 ‘사고’들이 더 일어난다면 장기적인 고객 확보를 위한 아람코의 노력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사우디 왕국이 갖고 있는 아람코에 대한 권리도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아람코에 적용되는 세율을 85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낮추는 세제 개혁안이 발표되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아람코의 새로운 배당 정책이 공개되었다. 2020년 이후 모두 750억 달러(88조 원)의 배당금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이외의 투자자들이 총 배당금을 비례해서 나누어 받게 될 것이며, 아람코의 배당금 총액이 감소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배당금 절대 수령액은 보호받을 것이라는 발표였다. 그리고 사우디 정부는 배당금 총액이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기업 가치를 1조 5000억 달러(1760조 원)로 본다면, 아람코의 배당금은 유럽의 절대 강자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저유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일어날 일에 대해 여전히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아람코는 여전히 수익을 낼 수 있겠지만, 사우디 왕국의 예산을 떠받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비전 2030’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우디의 국부 펀드 중 한 곳이 대규모 초기 투자를 했던 곳으로는 소프트뱅크의 비전 펀드(Vision Fund)가 있다. 알다시피 이 펀드는 위워크(WeWork)라는 대참사를 일으킨 곳에 판돈을 걸었던 곳이다. “유가가 낮아지면 국가가 세금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용 평가 기관 피치의 드미트리 마린첸코(Dmitry Marinchenko)의 말이다. 국가 이외의 투자자들에게 높은 배당금을 유지하겠다는 약속도 법적으로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 사항은 아니라고 그는 지적한다.

아람코의 상장이 OPEC에게 어떤 의미인지, 즉 석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석유 생산량을 제한해 왔다. 때로는 OPEC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생산을 억제하기도 했다. 칼리드 알-팔리(Khalid al-Falih)는 에너지부 장관이자 아람코의 회장으로 오랜 기간 재직했다. 2019년 9월 사우디 정부는 그를 두 직위에서 모두 해임했다. 이제 아람코와 에너지부는 각각 다른 사람이 맡고 있다. 상장 기업 아람코의 합리적인 목표는 생산을 늘려서 가격을 낮추고 경쟁자들을 압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OPEC의 역사적인 목표와는 크게 다르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상장 전후로 아람코에 가중될 것이다. 경쟁자들은 이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의 새 시대에 맞게 변모하려는 노력은 이처럼 고통스럽다. 생산 비용이 높고 현금이 적은 국가들에게는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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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기업 #세계경제 #경제 #마켓 #돈 #이코노미스트
[1]
전 세계 석유 시장의 수급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거대 산유국을 말하는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의 반대 개념이다. 스윙 프로듀서는 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의미한다. 스윙 프로듀서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반대로 소비국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스윙 컨슈머(swing consumer)라는 개념이 나왔다.
[2]
아람코는 에스오일의 지분 63.5퍼센트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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