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3일 사회
설문: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웹툰의 선정성과 여성 혐오가 논란이 되고 있다. 웹툰 작가 기안84가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복학왕’이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이자, 동료 작가 주호민은 “시민 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했다.

핵심 요약: 여성 혐오냐, 표현의 자유냐. 웹툰의 내용을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혐오의 자유까지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설문: 웹툰 속 혐오 표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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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웹툰: 국내 웹툰 시장 규모가 올해 1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 잡았지만, 선정성과 여성 혐오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 웹툰 작가 기안84가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복학왕’이 문제가 됐다. 무능한 여성이 남자 상사와 성관계를 맺고 정직원에 채용된 듯한 상황이 연출됐다. 여성 혐오 지적이 일자 작가는 해당 장면을 수정하고 사과문을 냈다.
  • ‘헬퍼2: 킬베로스’도 선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 웹툰에는 강간, 불법 촬영, 아동 성 착취 장면이 예사로 등장한다. 18세 등급임을 감안해도 참기 힘들 정도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작가는 사과문을 내고 휴재를 선언했다.
  • 작가들의 사과로 논란이 가라앉는 듯했지만, 주호민의 발언이 불을 다시 지폈다.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인 웹툰 작가 주호민은 “과거에는 국가가 검열을 했지만 이제는 시민이 한다. 시민 독재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이번 논란을 단순히 일부 작가의 문제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웹툰의 위상이 커진 만큼 웹툰 내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에 대한 공론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 현재 웹툰은 국가의 검열을 받지 않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한국만화가협회에 웹툰 규제를 맡겨 왔다. 협회 내 심의 기구가 자율적으로 웹툰을 조사해서 문제가 있을 경우 내용 수정 등 권고 조치를 내리지만 강제성은 없다.
  • 이번에 문제가 된 작품과 작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가 혐오할 자유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차별과 혐오 문제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한편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헬퍼2: 킬베로스’의 경우 애초 18세 등급이라 문제될 것이 없고,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외부에서 작품에 개입한다면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던 군사 독재 시절의 검열과 다를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뉴욕대 로스쿨에서 법·정치철학을 가르치는 제러미 월드론은 말할 권리가 있다면 막을 권리도 있다고 주장한다.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표현의 자유가 한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공격하고, 공공의 선(善)을 파괴한다면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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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6일 사회
예술이냐, 사기냐…조영남의 무죄
다른 사람을 시켜 그린 그림을 자신의 그림으로 팔면 사기일까? 보조 화가가 그린 그림에 가벼운 덧칠만 한 그림을 팔았다가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 씨가 25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조 씨가 그림 구매자들에게 조수가 참여한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핵심 요약: 예술이냐, 사기냐. 조 씨의 그림 대작을 둘러싼 오랜 논쟁 끝에 대법원은 조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조 씨의 아이디어가 작품의 핵심이며, 보조 화가는 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조수일 뿐”이라는 2심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안 샀을까: 재판부는 조 씨가 직접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작품을 산 사람들의 구매 동기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 구매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의 진품 여부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해당 작가가 그렸느냐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구매자들이 조 씨의 그림을 산 동기는 다양했고, 조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 1,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조 씨의 창작적 표현물로 보기 어렵고, 그림 대작은 구매자들을 속인 행위”라며 유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미술사적으로도 도제 교육의 하나로 조수를 두고 제작을 보조하게 하는 건 널리 알려진 관행이고, 이 방식을 범죄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손끝의 예술 vs. 영감의 산물: 전통적인 작품의 개념이 사라진 현대 예술의 의미에 대한 논쟁은 풀리지 않는 숙제다.
  • 먼저 예술의 핵심 가치는 ‘아이디어’라는 주장이 있다. 세계적인 거장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은 작품을 만들 때 본인들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작업은 조수에게 맡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가들이 수개월간 역사화 한 편을 그리던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화가 제임스 휘슬러와 평론가 존 러스킨이 명예 훼손 소송을 벌였다. 러스킨 측은 이틀 만에 그린 그림에 200기니(옛 영국 화폐 단위)를 받는 게 공정하냐고 했고, 휘슬러는 “일생에 거쳐 깨달은 지식의 가치에 매긴 값”이라고 맞받았다. 승자는 휘슬러였다.
  • 실제 작업이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유시민 작가는 “창작 활동은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동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작품 전시회 포스터에 “여기 있는 작품들은 예술가 자신의 손으로, 개인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적었다. 호크니는 “실행을 조수에 맡기는 것은 공인들(craftsmen)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무명 화가가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조 명목으로 대작하는 오랜 관행에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도 있다.

조영남이 던진 화두: 법원은 위작이나 저작권 다툼 등의 문제가 없는 한 작품의 가치 평가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 자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수를 이용하는 제작 방식을 일반인이 용인할 수 있는지 등은 법률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예술에서 창작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