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0일 정치
관록의 드리블, 골로 이어질까?
7월 1일이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의 ‘수술 집도의’로 나선 지 한 달이 된다. 그동안 정계의 관심은 온통 ‘김종인의 입’에 쏠렸다. 출근 첫날 ‘진보보다 앞선 진취적인 정당’을 만들겠다고 한 이후 기본소득제, 전일 보육제 등 보수 정당 리더로서는 파격적인 정책 구상들을 잇따라 내놨다.

핵심 요약: 갑자기 튀어나온 ‘백종원 대선 주자론’도 김 위원장의 작품이다. 하는 말마다 정치권을 들썩이게 만들며 이슈 선점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미래통합당 대신 “김종인만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흥행 보증 수표가 된 김종인의 말을 통해 지난 한 달간 정계의 핵심 이슈들을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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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3일 정치
이번 선거에도, 그가 나타났다
4월 15일 총선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서 정치 뉴스에 ‘김종인’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제1야당 미래통합당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해결사’, ‘여의도 차르’ 등의 수식어와 함께 선거 판세를 좌우할 주요 인물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핵심 요약: 김종인 위원장의 선거 지휘 경력은 화려하다. 2016년에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는 여당 더불어민주당을 이끌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그러나 수차례 당적을 옮겨 온 노정객의 전략이 이번에도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의 멘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김종인 위원장이 멘토 역할을 했던 거물 정치인들이다. 소속 정당이 모두 다른 대통령 두 사람과 대선 후보 한 사람의 스승이었던 그에게는 ‘철새’라는 비판과 ‘선거의 왕’이라는 찬사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는 김종인 위원장의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차였던 2013년 “경제 민주화가 될 것처럼 얘기해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밝히고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결별했다.
  • 2016년 총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대표의 권유를 받고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해 비례대표 2순위로 입후보했다. 이해찬 현 대표를 공천에서 탈락시킬 정도로 강력한 리더십으로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당의 경제 민주화 의지를 비판하며 입당 1년 2개월 만인 2017년 3월 탈당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직을 상실했다.
  • 2017년 5월 대선에서는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을 맡아 안철수 후보를 도왔다. 두 사람은 2011년에도 멘토-멘티 관계로 알려졌으나 안철수 대표 측이 부인하면서 결별했던 적이 있다.

정치 인생 40년: 김종인 위원장의 정치 이력은 올해 햇수로 40년을 맞는다. 비례대표로만 다섯 차례나 의원직에 올랐다. 1981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11대 국회에 입성한 이래, 12대, 14대, 17대, 20대 국회에서도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 김 위원장은 단 한 차례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8년 총선에서 여당 민정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맞붙어 패했다. 김 위원장은 3선에 도전하는 49세의 중견 정치인이었고, 이 대표는 당시 서른여섯의 청년 정치인이었다.
  • 박정희 정부 시절, 의료 보험 제도 도입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 수석을 지냈다.     
  • 노태우 정부 경제 수석 시절 동화은행에서 2억 1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993년 구속됐다가 집행 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두 번의 승리, 두 번의 실패: 김종인 위원장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이렇게 썼다. “나는 국민 앞에 두 번 사과해야 한다. 하나는 박근혜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했던 일이다.” 그의 두 번의 선택은 승리였으나 실패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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