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브랜드
2화

BTS; 진정성이라는 브랜드

인기를 역수입하다


방탄소년단(BTS)은 소위 ‘3대 기획사(SM, YG, JYP)’라고 불리는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니다. BTS를 성공시키기 전까지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더 유명했던 방시혁이 이끄는 소규모 기획사였던 빅히트(Big Hit)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2013년 6월 앨범 《2 COOL 4 SKOOL》을 통해 데뷔했다. 이들은 데뷔 해에 멜론 뮤직 어워드, 골든디스크 시상식, 가온차트 뮤직 어워즈 등 몇몇 국내 음악 시상식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인지도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중소 기획사 소속 아이돌들과는 달리 비교적 순탄하게 경력을 시작한 셈이다.

데뷔 초기 BTS에 대한 국내 케이팝(K-Pop) 팬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고는 할 수 없다. ‘학교 3부작’[1]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초기 앨범들이 발매된 2014년 무렵까지만 해도 이들의 인기와 인지도는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대단한 것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상황이었다. 케이팝 아이돌의 팬덤 크기를 한눈에 보여 주는 앨범 판매량을 통해 당시 상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화 체육 관광부가 공인해 가장 공신력 있다고 평가받는 가온차트의 2014년 연간 결산 차트에서 BTS가 2014년에 발매한 세 장의 앨범 《Dark & Wild》, 《SKOOL LUV AFFAIR》, 《O!RUL8,2?》는 각각 14위, 20위, 92위를 차지했다.[2] 중소 기획사 소속 데뷔 2년 차 그룹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다소 애매한 수준이었다.

당시 BTS는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두 가지 이유를 토대로 나름의 인지도를 쌓아 가고 있었다. 첫 번째는 독특한 느낌의 그룹 이름이고 두 번째는 팬층이었다. 영어로 된 그룹 이름이 대부분인 케이팝 아이돌 사이에서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은 팬들에게 확실히 각인되는 효과는 있었지만 다소 촌스럽다, 심지어 ‘손발이 오그라든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BTS를 일컫는 명칭은 ‘초통령’, 즉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이었다. 이들이 주로 10대 초반의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BTS의 팬 사인회나 공연 등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행사장에 모여든 팬 대부분이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이었다고 증언하곤 한다.

이러한 애매한 성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들이 미디어 산업의 ‘푸시(push)’를 기대하기 힘든 중소 기획사 소속이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데뷔 전부터 방송 출연이나 선배 가수 뮤직비디오 출연 등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과는 달리, 소형 기획사 소속의 BTS는 미디어 노출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더불어 이들은 처음부터 일반적인 케이팝 아이돌 그룹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힙합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시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 소위 ‘비주얼’에서 세련미도 다소 떨어졌고, 랩 실력은 뛰어난 데 비해 대중에게 쉽게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보컬 실력은 초창기에는 그렇게 출중하지 않았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소속사 빅히트와 BTS가 선택한 전략은 해외를 타깃으로 삼는 것이었다. 국내 시장에서 정체성과도 잘 맞지 않는 미디어 노출을 억지로 감행하기보다는, 하고자 하는 대로 음악을 만들면서 동시에 해외 케이팝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았다. 실제로 BTS는 이미 2014년부터 CJ E&M이 해외에서 주최하는 한류 콘서트 케이콘(KCON)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에는 3월부터 7월까지 뉴욕, LA, 아부다비, 파리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시기에 열린 케이콘에 모두 참석해 공연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해외 팬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흔히 이들의 글로벌한 성공 원인으로 미디어에서 되풀이되어 언급되곤 하는 화려하고 난이도 높은 안무 퍼포먼스를 해외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선보인 덕분에, 이 무렵 BTS는 국내에서의 인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해외에서 누리게 되었다. 일례로 국내 정부 관련 기관에서 매년 미국 내 케이팝 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가장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BTS는 이미 2014년부터 가장 높은 빈도수로 언급되는 가수였다.[3] 그리고 2016년 무렵에는 2위와의 격차가 세 배 이상으로 벌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1위가 되었다.[4]

 

밑바닥부터 다진 글로벌 팬덤


2017년 5월 BTS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ard Music Awards, 이하 BBMA)의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상을 수상하며 미국에서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과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같은 해 하반기 다섯 번째 미니 앨범EP인 《Love Yourself 承 ‘Her’》를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7위에 올려놓으며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같은 해 BTS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erican Music Awards, AMA) 시상식에서 초청 가수로 공연을 했고, 이어 NBC의 엘렌 쇼(The Ellen DeGeneres Show) 등과 같은 미국 지상파 방송국의 유명한 토크쇼에 잇달아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BTS가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 가수로 발돋움했을 무렵, 필자는 다수의 신문과 잡지, 방송국 기자들로부터 이들에 관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수이기에 이렇게 갑자기 미국 시장에서 주목하느냐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이미 큰 인기를 누린 바 있는 빅뱅이나 슈퍼주니어 같은 그룹이 2세대 케이팝 아이돌이라면, BTS는 3세대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3세대 아이돌 그룹 중 해외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엑소(EXO)나 트와이스는 국내에서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올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룹이었다. 반면 BTS는 국내 대중에게는 이름은 알지만 정작 노래는 들어 본 적 없고, 히트곡이 뭔지도 잘 모르는 그룹이었는데 빌보드 앨범 차트 Top 10에 들고, 미국 4대 음악 시상식[5]과 미국 주류 미디어로부터 큰 주목을 받으니 국내 미디어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팝의 팬이라면, 특히 케이팝 인기의 해외 동향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는 해외 시장,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바깥 시장에서 2017년부터 BTS가 거두기 시작한 성과가 그렇게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 현지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BTS의 인기는 이미 상당했다. 이러한 인기는 2015년 11월 그들의 네 번째 미니 앨범 《화양연화 pt. 2》가 빌보드 200에서 171위를 기록하며 첫 차트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에는 《화양연화》 pt. 1과 2를 집대성하고 신곡을 추가한 리패키지(re-package) 앨범[6] 《화양연화 Young Forever》(107위) 및 정규 2집 앨범 《Wings》(26위)를 차트에 올렸고, 2017년 2월에는 정규 2집의 리패키지 《You Never Walk Alone》(61위)를 차트에 올리는 등 《화양연화 pt. 2》 이후 발매된 모든 앨범이 빌보드 200에 점점 더 높은 순위로 꾸준히 진입하고 있었다. 게다가 해당 앨범들에 수록된 싱글들 〈불타오르네(Fire)〉, 〈피 땀 눈물〉, 〈봄날〉, 〈Not Today〉 등의 유튜브 조회 수 1억 달성 속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BBMA에서의 ‘톱 소셜 아티스트’ 분야 수상 및 AMA 시상식 무대 공연, 빌보드 200 Top 10 진입 등으로 성과가 가시화된 시기가 2017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BTS의 미국 시장 진입 성공과 인기는 〈강남스타일〉의 인기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 그전까지 빌보드 차트를 포함한 미국 시장에서 어떠한 활약상도 없던 싸이가 뮤직비디오의 화제성 하나만으로 〈강남스타일〉을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것은 분명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이것은 싸이라는 가수의 팬덤이 구축된 적 없는 상황에서, 즉 어떠한 히스토리도 없는 상황에서 싱글 하나만을 뜬금없이 히트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토대가 단단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인기는 그만큼 빠르게 휘발되기도 쉽다. 따라서 1990년대 말을 대표하는 로스 델 리오(Los del Rio)의 전 세계적인 히트곡 〈마카레나(Macarena)〉가 그랬듯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자체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일종의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즉 단발성 깜짝 히트곡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BTS는 2~3년간의 지속적인 해외 시장 활동을 통해 인기를 밑바닥부터 다져 온 케이스다. 꾸준한 빌보드 200 진입과 지속적인 순위 상승,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 증가 추세가 그 증거다. 2017년 이후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BTS의 성공과 2018년 두 장의 빌보드 차트 1위 기록 등은 절대로 아무 배경 없이 갑작스레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히트 퍼레이드는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길게 이어지진 못했지만 싸이의 성공은 분명 후배 케이팝 가수들에게 미국 시장 진입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BTS는 그러한 성공의 규모와 기간을 더 확대하며 본격적인 ‘글로벌 가수’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사례다.

 

새로운 세대의 리더


“여러분 스스로를 사랑하세요(Love Yourself).” BTS의 2018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BTS의 세계적인 위상과 연설의 훌륭한 메시지에 감동한 사람도 많았고, 한편으로는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기에 유엔에서 전 세계 청년들을 상대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비단 케이팝 가수들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젊은 수용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들 중에서 BTS가 유엔 연설 무대에까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인기 가수들 중에서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10월 세계적인 시사 전문지 《타임(Time)》은 BTS를 인터내셔널 버전의 표지 모델[7]로 싣고 ‘새로운 세대의 리더(New Generation Leader)’라고 소개했다. 이 표현은 BTS가 현재 글로벌 팬 사이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상을 반영한다. 사실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 몇 달 전 BTS는 리한나(Rihanna) 등의 글로벌 인기 가수, 세계적인 유튜브 스타 로건 앤드 제이크 폴(Logan & Jake Paul) 형제 등과 함께 이미 《타임》이 선정한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8]

BTS의 인기를 증명하는 이러한 수상 실적과 기록에는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글로벌 사이버 스페이스(cyber space), 즉 인터넷 세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BBMA의 ‘톱 소셜 아티스트’ 분야는 실물 음반 및 디지털 음원 판매량과 스트리밍 및 라디오 방송 횟수 같은 음악 산업 내 전통적인 수상 기준과 함께 공연 및 소셜 미디어 참여 지수 등의 데이터,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 팬 투표를 합산하여 선정된다. 즉 이 분야에서의 2년 연속 수상은 BTS가 인터넷 세상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지를 드러낸다. 《타임》에서 이들에게 부여한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타이틀 역시 궤를 같이한다. BTS를 ‘새로운 세대의 리더’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아미(ARMY)로 불리는 BTS의 글로벌 팬덤은 온라인 세상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존재다. BTS는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도합 1억 명이 넘는 팔로워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수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BTS의 팬들은 단순히 머릿수만 많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통해 결집한 힘을 바탕으로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즉 현실 세계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BTS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미국 주류 미디어에서 크게 다루어지기 시작하자, 국내의 미디어와 전문가들도 앞다퉈 BTS의 성공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한 내용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① 다른 케이팝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되는 박력 있는 춤과 화려한 퍼포먼스

케이팝 그룹들의 ‘군무’와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는 화려하기로 유명하고, 이것이 케이팝을 글로벌 팝 음악과 차별화하는 요소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BTS의 퍼포먼스는 다른 케이팝 아이돌 그룹과 비교해도 훨씬 뛰어나고 힘이 넘친다는 것이 팬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② 유튜브 등 인터넷 미디어를 통한 글로벌 팬덤과의 직접적인 소통

BTS는 유튜브는 물론 브이 라이브(V Live) 등에 뮤직비디오나 공연 같은 음악 관련 영상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까지도 자주 올리며 끊임없이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해 왔다. 이는 국내 팬들과는 달리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BTS를 쉽게 만나기 힘든 글로벌 팬들에게 연결된 느낌을 주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친밀감은 일반적인 글로벌 팝 스타가 주는 닿을 수 없는 별과 같은 이미지와 확실히 차별화되며 BTS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③ 한국어 가사를 비롯한 한국적인 요소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글로벌 팝 음악과의 차별화

국내 문화 산업에서는 해외 시장, 특히 미국 및 서구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한국적인 색채를 최대한 지우고 글로벌 수용자들의 보편적인 감성에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이것은 매운 고추장 양념이 아닌 간장 양념 기반의 ‘단짠’ 떡볶이를 만들어야 서구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전략과 비슷한 개념이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된 가사를 붙이고 음악은 미국과 유럽 작곡가 및 프로듀서들에게 의뢰하는 식이다. 이 전략을 가장 노골적으로 추구해 온 기획사는 SM이다. 이들은 보아의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해 해외 작곡가가 작곡한 곡에 영어로 된 가사를 붙여 앨범을 발매했고, 소녀시대의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해 테디 라일리(Teddy Riley) 같은 유명한 미국 작곡가와 함께 작업한 곡 〈The Boys〉에 영어 가사를 붙여서 공개하는 등 일찍부터 이 전략을 실행해 왔다.

이는 사실 과거 일본의 인기 가수들이 많이 의존했던 전략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가수인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 구보타 도시노부(久保田利伸), 우타다 히카루(宇多田ヒカル) 등은 모두 일본 히트곡이 아닌, 글로벌 수용자들의 취향을 겨냥하여 해외 작곡가들이 만들고 영어 가사를 붙인 노래들을 수록한 해외(미국) 시장용 앨범을 발매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의 문화 연구 학자 이와부치 고이치(岩淵功一)는 ‘(지역색이 결여된) 무취의 문화(odorless culture)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일본 (및 동아시아) 문화가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9]

그러나 BTS는 해외 작곡가에게 곡을 받거나 영어 앨범을 내는 것을 피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한국어 속어와 유행어, 심지어 한국 전통 음악의 추임새까지 활용하며 한국의 특색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소속사 빅히트의 방시혁 대표는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미국에 진출해서 영어로 된 노래를 발표하는 부분은 저희가 가고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며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한국 색을 지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드러낸 바 있다.[10] 케이팝이 해외 팬들, 특히 미국 및 서구 팬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반적인 서구‧글로벌 팝 음악과는 다르다’는 점임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취한 전략이다. 사실 케이팝을 듣는 해외 팬들은 일반적인 서구‧글로벌 팝 음악에 대한 일종의 대안 개념으로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것이므로[11] 한국어 가사나 한국적인 요소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④ 전자 음악과 힙합이 적절하게 결합된 수준 높은 음악

음악적으로도 BTS는 현재 글로벌 시장의 주요 인기 장르인 전자 댄스 음악(EDM)과 힙합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팝 음악에 뒤지지 않는 좋은 질감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특히 이들이 처음부터 전형적인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아닌 힙합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향하며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로 인해 BTS는 단순히 기획사에 소속된 작곡가 및 전문 프로듀싱 팀이 만들어 준 곡들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것이 이들을 단순한 틴 팝(teen pop) 스타가 아닌 주체적인 실력파 아티스트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존 레전드(John Legend),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 스티브 아오키(Steve Aoki), 니키 미나즈(Nicki Minaj) 같은 해외의 인기 실력파 음악인들이 이들에게 꾸준히 협업을 제의하는 이유도 단지 이들의 인기 때문만이 아니라 음악적 실력에 대해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전문가들이 분석한 이러한 요소들이 BTS의 전 세계적인 성공에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이들은 인터넷 기반의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직접 소통을 통해 단단한 팬층을 구축했고, 차별화된 음악적 실력과 무대 장악력을 통해 일반적인 음악 팬마저 사로잡았다. 거기에 한국적인 요소를 굳이 제거하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강조함으로써 전형적인 글로벌 팝 음악과는 다른, (서구 팬들의 입장에서는) 이국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색채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바로 다른 글로벌 틴 팝 스타들은 물론 정상급 케이팝 아이돌들과도 다른 BTS만의 힘, 바로 이들이 보여 주는 진정성이다.

 

BTS의 진정성과 아미


사실 진정성은 수치로 계량하여 측정할 수 없는, 어찌 보면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케이팝 아이돌들은 무대 위에서, TV 버라이어티 쇼와 드라마에서, 브이 라이브 방송에서, 팬 미팅에서 진심을 다해 열심히 임하고 있다. 이 성실함이야말로 해외의 팝 스타들과 비교했을 때, 케이팝 아이돌만이 갖추고 있는 미덕이기도 하다.[12]

흥미로운 점은 국내외 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BTS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른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 비해 진정성과 열정이 강하게 느껴진다’라는 점이다.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다른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 가령 BTS의 라이벌로 일컬어지는 엑소나 2세대 아이돌 중 가장 성공한 그룹인 빅뱅과 슈퍼주니어, 혹은 현재 국내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인 트와이스와 레드벨벳(Red Velvet), 블랙핑크(BLACKPINK) 등의 팬과는 달리 BTS의 팬들이 유달리 진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BTS의 글로벌 인기 형성 과정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위의 글로벌 인기 그룹들은 모두 3대 기획사 소속으로, 데뷔하기도 전부터 소속사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데뷔하는 즉시 커다란 인기를 얻은 후, 그 인기를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도 비교적 빠르게 알려졌다.[13] 그런데 다른 글로벌 인기 그룹들과는 달리, BTS는 중소형 기획사 소속이다. 국내 미디어의 지원도, 이미 확고히 구축되어 있는 소속 기획사 팬덤의 지지와 관심도 얻지 못한 채 출발한 소위 ‘흙수저 아이돌’인 셈이다. 이렇게 밑바닥부터 출발한 아이돌 그룹이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팬층을 다져 온 끝에 전 세계 최고의 틴 팝 스타가 되었다. 즉, BTS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것은 대형 기획사의 든든한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과 실력,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고 인정한 팬들의 입소문 덕분이었다. 이 점이야말로 다른 아이돌들과 차별화되는 이들만의 진정성 서사를 구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데뷔 초기부터 유명 작곡가나 프로듀싱 팀에게 곡을 받기보다는 자신들 스스로 만든 곡을 통해 활동하기를 선호했다는 점 역시 BTS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해외에서는 스스로 곡을 만들고 부른다는 것이 독립된 아티스트로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 점에서 BTS는 기획사의 관리‧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기획사가 선택하여 작업을 의뢰한 작곡가와 프로듀싱 팀에게 수동적으로 곡을 받아 그들의 의도에 충실하게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직접 제작하고 만든다는 점은 분명 진정성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인기 요인으로 지목하는 ‘직접 소통’에서도 BTS는 진정성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물론 BTS뿐 아니라 많은 케이팝 아이돌들도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브이 라이브 등을 활발히 이용해 국내외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BTS가 이러한 소통을 처음 시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BTS는 다른 아이돌들과 비교해서 가장 자주, 가장 많은 개수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실시간으로 팬들과 만났다. 여기에 BTS를 스타로 만든 것은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과 전략 및 미디어의 억지스러운 지원 사격이 아니라, 팬들의 자발적인 선택과 힘이라는 점이 겹쳐지며 이들이 구축한 진정성 서사와 이미지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BTS와 그들의 팬덤 및 소속 기획사와의 관계는 다른 아이돌-팬덤-기획사의 관계와는 조금 다른, 독특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일례로, BTS는 BBMA에서 상을 받았을 때건 빌보드 200에서 1위를 했을 때건 항상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아미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팬이라는 용어가 아닌 팬클럽인 ‘아미’를 특정하여 부름으로써 BTS는 ‘우리의 음반을 사주고, 우리 콘서트에 와주고,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즐겁게 향유해 주며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바로 너희’를 특별히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BTS의 직접 소통은 단지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브이 라이브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팬들이 ‘나와 BTS가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라는 인식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에 직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관계는 기획사 혹은 미디어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팬과 BTS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다. 아미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그들을 특별히 신경 쓰는 BTS의 모습이 이들의 진정성을 더욱 강화하는 이유다.

이들의 관계는 BTS가 시혜적 위치에 있는, 즉 스타가 팬에게 사랑을 베풀고 팬들은 거기에 감동하는 일방통행식 관계가 아니다. BTS와 아미가 친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다른 케이팝 아이돌-팬덤 관계보다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이 관계가 상호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가령 BTS의 리더 RM의 믹스테이프 수록곡 〈농담〉, 〈호르몬 전쟁〉 등에 여성 혐오적인 가사가 들어 있다는 논란이 팬덤으로부터 제기되었을 때, BTS와 소속사 빅히트는 이에 대해 재빠르게 공식 사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팬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14] 또한 2018년 9월 일본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와 BTS의 협업 계획 발표에 아미 측에서 ‘아키모토는 일본 우익 인사이므로 그와의 협업을 반대하며, 만일 협업을 강행할 경우 불매 운동 등의 보이콧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피드백을 요구한 일 역시 BTS와 아미의 독특한 관계를 잘 드러낸다.[15] 여기에 대해서도 BTS와 빅히트는 발 빠르게 ‘팬들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후, 논의 끝에 결국 아키모토와의 협업을 취소했다.[16]

이에 대해 케이팝 연구자 김정원은 ‘BTS-아미-빅히트’라는 세 주체가 일종의 삼각관계를 형성하여 서로가 서로를 돕고 지원하는 동시에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17]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쪽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협업과 견제를 하는 비교적 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획사의 뜻에 따라야 하는 아이돌 그룹과 그들이 베푸는 팬서비스에 의존하는 팬’이라는 기존 케이팝 산업 구조와 차별화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360도 마케팅; 모든 것을 콘텐츠로 만들다[18]


BTS가 보여 준 진정성 담긴 직접 소통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이들이 가수라는 직업인으로서 수익을 얻기 위해 시장에 내놓는 대표적인 상품인 음악 상품(여기에서 음악 상품은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실물 음반, 뮤직비디오, 공연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외에도 사적인 삶 거의 대부분을 콘텐츠화하여 그것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브랜딩(branding)이다.

사실 이러한 브랜딩 작업은 BTS뿐 아니라 최근 케이팝 아이돌과 기획사들의 기본적인 인터넷 미디어 활용 방식이기도 하다. 단순히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을 제공하는 것을 떠나 팬들과 실시간으로 직접 소통을 하며 음악 외적인 부분까지도 모두 콘텐츠화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 대학교의 음악 산업 연구자인 캐서린 래드빌(Catherine Radbill)은 음악 관련 상품뿐 아니라 패션과 사생활 등 자신의 모든 부분을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노출하고 그것을 또 다른 콘텐츠로 활용하는 최근 음악 산업의 흐름을 ‘360도 마케팅(360-degree marketing)’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19] 가수의 음악적 역량(여기에는 노래나 악기 연주, 춤과 무대 퍼포먼스 등이 모두 포함된다)이라는 특정한 각도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각도에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노출하는 360도 마케팅은 음악인을 넘어 ‘토털 패키지(total package)’로서의 종합 연예인을 꿈꾸는 케이팝 아이돌에게는 사실 오래전부터 필수 요소나 다름없었다. 특히 케이팝 시장이 날이 갈수록 세계화되면서 세계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해외 팬들에게 효율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방식으로 인터넷 미디어를 활용한 360도 마케팅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3세대 아이돌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BTS는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거기에 진정성을 더해 성공적으로 글로벌 팬덤을 구축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글로벌 팬덤의 힘을 바탕으로 자국의 팬층을 더욱 확장한 흥미로운 사례다. 물론 그들의 음악적 역량과 실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360도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자체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 및 그를 통한 노출이 온갖 종류의 다양한 이야깃거리인 속칭 ‘떡밥’을 제공했고,[20] 그것이 자신들만의 ‘진정성 가득한 서사’를 만들어 낸 것은 BTS가 인기의 역수입을 이뤄 내는 데에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서사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소 기획사 소속으로서 대형 기획사의 거대한 힘을 등에 업은 다른 그룹 및 그 팬들과의 경쟁, 굉장한 미남이나 교포 혹은 외국인 멤버는 없지만 능력 있고 의욕적이며 소탈한 한국 청년들의 성장기, 때로는 전형적인 ‘중2병’ 감성처럼 느껴지지만 그만큼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솔직히 담아내기에 그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가사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이다. 진심을 담아 음악 외에도 일상생활까지 모두 팬들과 공유하며 소통하고자 한 BTS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소통이라는 이름의 감정 노동


그러나 음원을 통해 전달되는 노래와 춤, 랩 및 무대에서의 퍼포먼스와 같은 나의 ‘음악적인 자아’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나의 패션과 언행 하나하나가 콘텐츠가 되어 수용자에게 제공된다는 것은, 아이돌 입장에서는 그렇게 달가운 상황일 수만은 없다. 이는 직업인으로서의 아이돌이라는 공적인 영역과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후 자연인으로서의 사적인 영역의 구분이 희미해짐을 의미한다. 게다가 케이팝의 세계화가 심화되는 요즘이라면 극단적으로 낮과 밤의 구분 없이 매일 24시간을 아이돌로서 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케이팝 아이돌에게는 남녀를 불문하고 음악적인 역량 외에 훌륭한 인성, 즉 ‘팬에 대한 겸손과 헌신, 그리고 팬들의 요구에 응하는 데 거리낌이나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태도’[21]를 지니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가 된 지 오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태도가 국내 팬은 물론 글로벌 케이팝 팬들에게도 호소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케이팝 아이돌의 성실함과 친근감, 우호적인 분위기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거리감을 주는 해외 팝 스타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으로 자리 잡았다. 언제나 열정적이고 겸손하며 동시에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 주어야 하는 케이팝 아이돌의 감정 노동[22]은 인터넷 미디어를 통한 직접 소통의 활성화와 케이팝 산업의 세계화로 인해 그 강도가 더욱 세졌다.

BTS가 구축한 진정성은 결국 자신들에게 부과된 감정 노동을 (그것이 스스로의 의지였건 혹은 마케팅적인 필요에 의해서였건) 거의 극한까지 수행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래드빌은 음악 산업에서 소셜 미디어가 차지하는 영향력의 확장은 ‘글로벌한 차원의 연중무휴 감시 체제(global 24/7 surveillance)’를 제공했고, 그 결과 팬들은 가수들이 제공하는 전통적인 음악 상품 외에 사생활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상품과 서비스를 요구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음악 콘텐츠 자체의 매출보다 오히려 비음악 콘텐츠의 매출과 중요성을 더욱 확장했다.[23] 음악 콘텐츠를 많이 팔기 위해 활용된 음악 외적인 것들이 더 잘 팔리는,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공적인 아이돌 그룹이 되기 위한 조건도 과거에 비해 굉장히 까다로워졌다. 일단 외모만 수려하면 노래는 조금 못해도 괜찮았던 1세대 아이돌과는 달리 2세대 아이돌은 수준급의 라이브 실력과 ‘칼군무’라는 음악적 역량, 방송에서의 ‘예능감’까지 갖춰야 했다. 그리고 2010년대 중반 이후의 3세대 아이돌들은 그 모든 것에 더해서 글로벌 팬덤과 자국 팬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감정 노동을 바탕으로 한 좋은 이미지의 사적인 영역까지도 콘텐츠로 만들어 제공하게 되었다. 극단적인 완벽을 요구하는 이러한 경향은 어떻게 보면 대학 입시와 취직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날이 갈수록 더 높은 ‘스펙 쌓기’를 요구받는 현재 우리나라 20대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이러한 360도 마케팅과 글로벌 연중무휴 감시 체계는 케이팝 아이돌에게 일종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의 음악과 생활은 물론 개인적인 사상과 취향까지도 공유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주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적힌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가 엄청난 악플 세례를 받은 후 게시물을 삭제하고 소속사가 해명까지 내놓았던 에이핑크의 손나은, 그리고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이야기했다가 남성 팬들에게 뭇매를 맞은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대표적이다. 소지품 혹은 독서 취향으로 인해 이들은 남성 팬들로부터 페미니스트라고 비난받았으며, 해당 팬들은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아이돌은 필요 없다. 탈덕하겠다.’며 이들의 사진을 불태우고 음반을 부수는 등의 행위를 소셜 미디어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불만 사항을 표출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이러한 집단행동은 물론 아미가 BTS에게 끼치는 영향력, 방향성과는 다르지만, 본질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변화된 음악 산업의 환경 속에서 이제 아이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반강제적으로 다양한 측면을 지속적으로 모두 보여 줘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고, 이는 팬들에 의한 또 다른 감시와 통제로 기능하게 된다. 모두가 BTS처럼 즐겁게 거의 모든 모습을 보여 주며 팬들과 진정성 담긴 직접 소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무리 자기 스스로가 택한 아이돌이라는 직업인으로서 갖춰야 하는 미덕일지라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한국 아이돌 스타와 글로벌 팝 스타 사이


BTS가 전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후로 많은 이들이 ‘제2의 BTS’, 즉 ‘BTS만큼 세계 시장에서 스타가 될 수 있는 케이팝 그룹이 또 나올 것인가’, 혹은 ‘이제 케이팝이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았는가’ 등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당장 블랙핑크가 유튜브 및 소셜 미디어상의 글로벌한 인기를 바탕으로 ‘제2의 BTS’로 불리고 있으며,[24] 그 외에도 많은 가수들이 BTS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는 유망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제2의 BTS’가 등장할 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인터뷰했던 대형·중소형 케이팝 기획사 관계자들은 ‘BTS의 미국 시장 진입은 영미에는 없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신선함을 통해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일 뿐, 케이팝 시스템 자체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이들은 ‘미주 및 유럽 지역 시장 진입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 수고를 들이면 이미 팬이 많고 구매력 확실한 일본에서 더 많은 공연을 할 수 있고, 수익 면에서도 이쪽이 훨씬 낫다’며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바깥 시장은 투자 대비 수익의 측면에서 손해가 많이 나는 비효율적인 시장이므로 업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시장 진입을 위해 노력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다.

심지어 ‘BTS를 케이팝 그룹의 범주에 넣는 것이 타당한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BTS가 전형적인 케이팝 그룹과는 다른 예외적인 존재로서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었으므로, BTS의 성공을 케이팝의 성공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의미다. 대중음악 비평가이자 아이돌 산업 전문가인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은 ‘해외 팬들은 예쁘고 화려한 군무를 앞세운 케이팝을 좋아하면서도 그런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혹사당하는 등의 인권 문제가 존재함을 알고 나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반면 BTS는 그것을 뒤집은 팀이고, 따라서 케이팝 그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케이팝의 안티테제(반례)에 가깝다’고 주장한다.[25] BTS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일반적인 케이팝 기획사-아이돌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 점이야말로 과거 다양한 그룹들을 좋아했던 해외 케이팝 팬들을 모두 팬으로 흡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물론 BTS는 케이팝 특유의 기획사 시스템하의 아이돌 그룹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1세대 케이팝 아이돌이 개척하고 2세대 아이돌과 싸이 등이 활약해 자리 잡은 케이팝 세계화의 성과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글로벌 스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일반적인 케이팝 아이돌 스타의 테두리를 넘어선 것도 사실이다. 히트곡 〈IDOL〉의 가사를 통해 스스로 외친 것처럼,[26] 사람들이 그들을 아이돌로 부르건, 다른 무엇으로 부르건 BTS는 이제 케이팝이라는 범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BTS가 정말로 마냥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케이팝의 테두리를 넘어선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BTS에 대해 이야기할 때 케이팝의 케이K를 떼어 버리고 단순한 팝 스타로 취급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아키모토와의 협업 취소는 팬들의 영향력이 커진 새로운 삼각관계와 함께 BTS가 케이팝, 곧 한국의(Korean) 음악 그룹이라는 국적성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극명히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는 〈프로듀스 48〉을 통해 결성된 한일 합작 프로젝트 그룹 ‘아이즈원(IZ*ONE)’의 일본인 멤버들이 아키모토가 기획한 아이돌 그룹 AKB48 소속이며 일본에서 아키모토가 프로듀싱한 곡으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잡음이 나오지 않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BTS가 국내외에서 케이팝을 대표하는 최고의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그룹으로서의 그들의 국적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에 대한 국내 팬들의 요구가 더 강해지고, 그 결과 역설적으로 BTS의 국가 정체성이 더욱 확고해지는 것이다.

또한 민요의 추임새가 가사에 들어가고 뮤직비디오 속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들이 묘사되는 싱글 〈IDOL〉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BTS 및 빅히트 스스로가 인기 비결이 글로벌한 보편성과 공존하는 (해외 팬들이 보기에는 이국적인) 한국적 요소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케이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BTS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 준 그들의 진정성 역시 케이팝 아이돌들이 일반적으로 갖추고 있는 (혹은 갖춰야 하는) 이미지인 성실함과 팬들에 대한 친절함 및 자상함, 쉽게 접근 가능한 친근함 등 지극히 케이팝적인 가치를 극단까지 추구한 결과 얻어 낸 특성이다. 이는 BTS의 장점인 동시에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실천에 옮기고, 때로는 뜻도 굽히는 것은 팬과 가수, 기획사의 관계를 좀 더 새롭고 평등한 것으로 만들었지만 아티스트로서 자유롭게 자신의 창작력을 펼치는 데에는 족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거의 모든 것을 팬들과 공유하고 콘텐츠화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행동의 제약을 가져온다.

BTS는 케이팝 산업 구조에서 탄생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겨냥함으로써 소형 기획사 소속이라는 한계를 딛고 케이팝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글로벌 팝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퍼포먼스를 포함한 이들의 음악적인 실력이 뒷받침된 것은 물론,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분과 성실함 및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 있는 태도 등 음악 외적인 자아까지 적극적으로 콘텐츠화하여 진정성 있게 팬들에게 제공한 것이 매우 주효했다. 그러나 아무리 케이팝의 테두리를 벗어났다고 해도 이들이 케이팝 산업 구조에 여전히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를 지향하지만 국가주의(nationalism)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케이팝의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1]
《2 COOL 4 SKOOL》, 《O!RUL8,2?》, 《SKOOL LUV AFFAIR》 세 앨범을 일컫는 말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10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3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냈기 때문에 ‘학교 3부작’이라고 불린다.
[2]
가온차트, 《2014년 앨범 차트》, 2014.
[3]
김주옥, 〈미국에서의 BTS 수용〉,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제32회 월례정책포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018. 7.
[4]
2014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BTS를 언급한 빈도수는 199회로, 2위인 EXO의 119회와 비교하여 80회 차이가 났다. 그런데 2016년 결과에는 BTS 언급 빈도수가 784회, 2위 EXO 언급 빈도수가 235회로 약 3.3배의 차이를 보였다.
[5]
미국 4대 음악 시상식은 그래미 뮤직 어워드(Grammy Music Awards),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엠티비 뮤직 어워드(MTV Music Awards),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일컫는다.
[6]
기존에 발매된 앨범에 신곡 혹은 리믹스 곡 등을 추가한 후 새로운 포장과 디자인을 덧입혀 다시 내놓는 앨범을 말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영미권 음악 시장에서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싱글 및 미니 앨범(EP) 발매가 많은 케이팝 산업에서는 2010년 이후 보편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7]
《타임》은 크게 북미판과 세 개의 인터내셔널판(유럽, 아시아, 남태평양) 등 4개의 판본으로 발매되며 내용과 표지는 발매 판본별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일부는 겹치기도 한다. 2018년 10월 BTS가 커버로 등장한 《타임》 판본은 아시아와 남태평양 판이다.
[8]
〈The 25 Most Influential People on the Internet〉, 《TIME》, 2018. 6. 18.
[9]
이와부치 고이치(히라타 유키에‧전오경 譯), 《아시아를 잇는 대중문화》, 또 하나의 문화, 2004.
[10]
이혜인, 〈방시혁이 말하는 ‘방탄소년단’ 성공 요인?〉, 《경향신문》, 2017. 12. 10.
[11]
‘일반적인 영국 팝 음악에 질린 이들이여, 케이팝을 들어 보라’고 권유하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기사 참조.
Edwina Mukasa, 〈Bored by Cowell pop? Try K-pop〉, 《The Guardian》, 2011. 12. 15.
[12]
김수아,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아이돌 그룹의 ‘공정한’ 선발을 위한 모험〉, 《문화과학》 92, 2017.
[13]
데뷔하기 전부터 국내외 케이팝 팬들로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은 후 첫 싱글 〈달라 달라(Dalla Dalla)〉를 공개하자마자 일주일도 안 돼서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 5000만 회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JYP의 신인 걸 그룹 잇지(ITZY)를 예로 들 수 있다.
[14]
조인우, 〈방탄소년단, ‘여성 혐오’ 논란 입 열다…“사회의 조언 귀 기울이겠다”〉, 《뉴시스》, 2016. 7. 6.
[15]
김하진, 〈방탄소년단 측 “日 아키모토 야스시와 협업 취소”〉, 《텐아시아》, 2018. 9. 16.
[16]
김정원, 〈BTS 트라이앵글〉, 《한국대중음악학회 제24회 정기학술대회》, CKL 기업지원센터, 2018.
[17]
본 소챕터 및 다음 소챕터는 2018년 《문화과학》 93호에 실린 이규탁의 논문 〈방탄소년단: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소통 방식, 그리고 감정 노동〉 중 일부를 발췌하여 재편집한 것이다.
[18]
Catherine F. Radbill, 《Introduction to the Music Industry: An Entrepreneurial Approach》, Routledge, 2012.
[19]
강명석, 〈방탄소년단이 ‘떡밥’들로 만든 세계〉, 《IZE》, 2016.4.
[20]
김수아,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아이돌 그룹의 ‘공정한’ 선발을 위한 모험〉, 《문화과학》 92, 2017.
[21]
김수아,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아이돌 그룹의 ‘공정한’ 선발을 위한 모험〉, 《문화과학》 92, 2017.
[22]
Catherine F. Radbill, 《Introduction to the Music Industry: An Entrepreneurial Approach》, Routledge, 2012.
[23]
민경원, 〈걸 그룹 블랙핑크 ‘거침없는 직진’…제2의 BTS 되나〉, 《중앙일보》, 2019. 1. 18.
[24]
서정민, 〈BTS, 팬클럽 ‘아미’와 때론 돕고 때론 견제한다〉, 《한겨레》, 2018. 12. 9.
[25]
〈IDOL〉 가사 중 일부 (‘You can call me idol (idol) / 아님 어떤 다른 (다른) 뭐라 해도 I don’t care / I don’t care / I’m proud of it (proud of it) / 난 자유롭네 (자유롭네)’)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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