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행동주의
1화

정치적인 CEO

미국에서 비즈니스와 정치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비즈니스와 정치가 뒤섞여 있다고 하면 제도적 부패와 정실 자본주의, 또는 권위주의의 신호로 간주하곤 한다. 그런 일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를 비롯한 몇몇 주에서 투표권 제한법이 추진되자 CEO들이 항의한 것처럼 때로는 고결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고, 때로는 정치인 같은 CEO(statesman-ceo)에게서 볼 수 있는 일이다. JP모건 체이스의 회장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은 최근 선언문을 통해 군수품 조달과 사법 제도를 포함해 여러 가지 중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 대부분은 기업 이익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1]이 기업과 지역 사회,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 기업의 목적은 (주주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투표권 보호를 강력히 지지한다. 우리는 경쟁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사회 발전을 촉진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전 자유주의자로서 권력의 집중이 위험하다고 믿는다. 기업인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 로비하며, 정부와 가까워질수록 경제와 정치 모두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미국은 19세기에 유한 책임 회사의 설립 인가 요건을 없애면서 정치로부터 사업을 분리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 혁신은 정치 후원을 줄이고, 미국을 부유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남북 전쟁 이후 도금 시대(Gilded Age)[2]의 야망과 부패에서부터, 1945년 이후 조합주의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기업의 관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최근 수십 년간 지배적인 사고방식은 20세기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주주 자본주의다. 경영진의 권한은 기업의 소유주인 주주로부터 비롯되고, 주주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장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그 이상에 부합하는 기업은 드물었지만, 오늘날 기업은 몇 가지 힘에 의해 이를 공공연히 거부하고 있다. 많은 시민이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기업들이 지지해 주기를 바라면서, 침묵을 지키는 CEO들은 공모죄로 비난을 받을 위험이 있다. 펀드 매니저들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 또한 더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기 위해 ― 기업의 사회 책임과 거버넌스에 점수를 매긴다. 기술 회사들은 정치적 발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많은 미국인이 워싱턴의 정부가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기업들이 공백을 메울 수 있기를 바랄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제계를 윽박지르고 (감세를 제공하며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를 재건하고, 기후 변화와 싸우고, 중국의 부상에 맞서기 위해 기업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

이런 목표들은 개별적으로는 좋게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비즈니스의 역할 변화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위험은 과소평가되고 있다. 모든 사람을 깎아내리는 위선은 그중 하나다.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여러 투자 펀드는 독점 금지법 위반으로 기소된 거대 기술 기업의 지분을 잔뜩 쥐고 있다. 모든 이해관계자를 배려하겠다고 선언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회원사들은 지난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삭감했고, 판데믹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투표권을 옹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연방 투표법, 대법원 개혁, 신장 인권 탄압에 대한 중국 보이콧 등 다음 시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도덕적 행위에 일관성이 있을 수 있을까?

경제의 활력도 위태롭다. 기업이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는 상충되는 주장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이나 CEO들의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거의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공허해질 위험이 있다. 건강한 기업 현장은 획일적이지 않다. 이질적이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경제에서도 일부 기업은 사람들을 해고해야 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는 국가에서도 여전히 일부 기업은 석유를 팔아야 한다. 오늘날 상당수 기업은 정부와의 관계 덕분에 보호를 받고 있다. 정부와 그런 관계가 없는 혁신적인 외부인들을 희생시키면서 말이다. 미국 조지아주의 투표법을 개정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 델타 항공을 생각해 보자.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과점 기업인 데다, 바로 얼마 전 정부 돈 85억 달러(9조 4877억 원)를 받았고, 판데믹 기간에 인력을 19퍼센트 줄였으며,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정치인에 대한 위험은 더 미묘하다. 정치인들은 일관성이 없다. 한때 기업의 정치 개입을 혐오했던 진보 세력은 이제 기업에 정치 참여를 요구하고 있고, 대기업에 동조했던 공화당 지도자들은 이제 기업이 침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치인은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일상적으로 모면한다. 투표 개혁과 같은 정치적 문제 해결에 기업을 끌어들일 때 진정한 위험은, 기업인이 자신만의 좁은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CEO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해소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심각한 부조화가 있다.

프리드먼이 말한 경쟁은 기업과 정치에 더 이로운 것이다. 경쟁은 사회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합법적이고 이익이 되게 한다. 시장에서 기업은 사회의 선호도를 예상하고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소비자는 더 인도적이며 덜 낭비적인 제품을 원하기 때문에 비욘드 미트(Beyond Meat, 식물성 고기 제조사)부터 테슬라(Tesla)까지, 맥도날드(McDonald’s)와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까지 이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혁신하고 있다.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기업은 점점 더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기업은 장기적으로 번성하기 위해 여론 변화에 따라 법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 신장의 노동 수용소에서 나오는 용품이나, 탄소 배출에 세금이 붙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자본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새로운 기업 어젠다는 아마도 인재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경쟁의 또 다른 전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홈디포(Home Depot)가 시행한 프로그램처럼 더 좋고 더 효과적인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3] 분명히, 기업은 효과적인 정부를 대체할 수 없다. 국가는 시장이 독점과 부패로 왜곡되지 않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한다. 오직 정부만이 환경 오염 같은 외부 효과에 세금을 부과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미국의 쓰라린 분열을 중재하고 기본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방법은, 사장실이 아니라 정치 절차와 법원을 통하는 것이다.
 
[1]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미국 200대 대기업들의 협의체로,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해당한다.
[2]
1873년부터 1893년까지 이어진 미국의 대호황 시대를 말한다. 남북 전쟁 이후의 사회상을 풍자한 마크 트웨인의 동명 소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시기에 미국은 철도, 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카네기, 록펠러 등 재계 거물이 탄생했고, 마침내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경제의 일인자가 된다.
[3]
홈디포는 조지아주 투표법에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이 투표할 수 있는 정보와 자원을 확보하는 데 노력해 왔다. 직원의 유권자 등록을 확인하고, 직원이 투표소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와 연결한다. 최근에는 투표소 안전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지아주 전역의 투표소에 유리 칸막이 9200개를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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