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녹은 뒤
완결

빙하가 녹은 뒤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빙하가 줄어들고,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기후 붕괴의 위협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알래스카의 데날리 국립 공원 및 보존 구역 ©Dahr Jamail
추락하던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빙하의 얼음 속에서 영겁의 시간에 걸쳐 위로 솟구치고 있던 푸른색 얼음 줄기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주 깊이 떨어졌는데, 하마터면 등반 동료인 션(Sean)까지도 크레바스 안으로 떨어질 뻔했다. 산에서 죽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렸다.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자마자, 등반 로프가 내 클라이밍 벨트를 강하게 튕겨 올렸다. 나는 위아래로 무기력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마치 로프 안에 내재된 물리 역학이 저절로 발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빙하 위에서 버티고 서 있던 션이 가까스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머리칼과 팔뚝과 가슴 위로 쏟아진 눈덩어리들을 털어 내고 윗옷 소매를 걷어 내렸다. 클라이밍 바지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빙하용 선글라스는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몸에 부상이 있는지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다친 곳은 없었다. 션이 버티고 있는 내 몸무게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지만, 발을 디딜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는 션이 나를 끌어 올릴 도르래를 설치할 수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커먼 암흑이었다. 나는 바로 눈앞의 푸른 얼음을 쳐다보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내가 발을 빠트린 작은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크레바스 위를 스노우 브릿지(빙하의 크레바스 위에 눈이 쌓여 다리처럼 형성된 것)가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이로 떨어졌다. 그런 스노우 브릿지는 우리가 추가치산맥(Chugach Range)의 마커스베이커산(Mount Marcus Baker)으로 가면서 마타누스카 빙하(Matanuska Glacier)를 오를 때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건넜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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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때는 끝장이야.” 나는 나 자신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래에서는 적막하고 거대한 구덩이가 입을 벌린 채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소리까지도 말이다. 복부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션, 괜찮아?” 나는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하기 위해 기계식 등강기를 로프에 고정시키며 외쳤다.

“어, 괜찮아. 근데 나도 거의 끝에 매달려 있어.” 그가 대답했다. “앵커를 박을 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시간이 흘러갔다. 저체온증이 시작되어 이따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렇게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바로 앞에 있는 얼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빙하 맨 꼭대기 근처의 조금 더 밝은 얼음 안에는 공기층이 있었다. 그 공기층은 아주 오래전에 그 안에 갇혔을 것이고,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만년설 아래의 청록색 얼음에 아름다운 매력을 더해 주고 있었다. 크레바스의 조금 더 깊은 곳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하기도 전부터 존재했던 얼음이 보였다.

나는 션이 끌려 내려오지 않도록 가만히 매달려 있었다. 눈앞의 얼음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 위에서부터 잔잔하게 굴절되어 들어온 태양빛이 어떻게 해서 이 완벽하게 매끈한 빙벽 속으로 스며들어 비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푸른 빛깔이 끝없이 깊게 이어지고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빙하의 아름다움은 경이 그 자체였다.

마침내 우리 팀의 다른 동료 두 명이 도착해서 션을 끌어 올렸다. 션은 크레바스 가장자리에서 겨우 15센티미터만을 남겨 두고 버티던 중이었다. 셋은 삼방향 도르래를 설치했다. 동료들이 힘을 합해서 한 번에 조금씩 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거의 무덤에 파묻혔던 나를 다시 파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빙하의 위쪽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얼음 안의 푸른 음영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료들이 크레바스 입구까지 나를 끌어 올렸다. 나는 계속해서 얼음도끼를 눈 속에 처박으면서 겨우 빠져나왔다. 빙하의 위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일어서서 서쪽에 있는 산과 그 뒤로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산마루 한쪽에서 피어오른 눈보라가 저무는 태양에 물들어 붉은 리본을 만들었다. 눈송이들이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 반짝거렸다.

안도감으로 몸이 떨렸고, 나는 감사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에 압도되어, 그리고 산악 세상의 아름다움에 둘러싸인 채로, 등반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끌어안았다. 내가 죽음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었는지 그제야 뼈저리게 느껴졌다.

이 사고가 있었던 건 2003년 4월 22일이다. 지나고 나서 보니, 내가 그때 느꼈던 그 특별했던 감흥이 조금씩 부서져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보았던 얼음들은 당시에도 이미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에서 7년 동안 등반을 했던 나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 파괴의 극적인 순간을 맨 앞에서 지켜본 관객이었다. 매년 우리는 빙하의 앞부분이 점차 줄어드는 걸 발견했다. 매년 이 빙하 위에서 열리는 얼음 등반 축제 시즌이 되면, 빙하의 말단 부분이 점점 더 후퇴해서 우리는 딱딱하게 얼어 있는 진흙길을 점점 더 걸어가야 했다. 매년 등반인들이 차를 세워 놓는 주차장의 위치는 빙하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이동했으며, 기존에 주차장으로 활용되던 얼음이 사라진 자리는 빙하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은 6000미터 이상의 산봉우리들로 이뤄진, 북극권에서도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데날리(Denali) 국립 공원에서도 이미 2003년부터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빙하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해양으로 흡수되기까지는 2만 5000년이 걸릴 것이다.


우리의 지구는 빠르게 변해 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인류의 역사나 지질학의 역사에도 없던 일이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라는 온실가스가 열을 가둔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나사(NASA)의 발표에 따르면 “온실가스의 수준이 증가하게 되면 그 영향으로 지구가 따뜻해진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온실가스 배출은 자연스런 과정보다 10배나 빠르게 지구를 덥히고 있고, 이러한 결과는 지구 생물권 전반에 걸쳐 체감되고 있다.

대양의 수온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고, 발생 빈도와 피해 규모가 점점 증가하는 가뭄과 산불은 지구촌 곳곳의 삼림을 없애고 있으며, 지구의 빙하권(온도가 극히 낮아서 물이 얼음이나 눈 등으로 얼어붙는 지역)에서는 미증유의 가속도로 얼음이 녹고 있다. 북극 바닷속 영구 동토층이 해빙기를 맞으면서 옛날부터 그 안에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이제 녹아서 배출될 텐데, 이는 인류가 대기 중에 배출했던 이산화탄소 전체 배출량보다 몇 배나 많다. 그 결과는 대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기후 파괴는 허리케인이나 홍수 범람과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따뜻한 공기는 더 많은 수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2017년 여름에 휴스턴을 직격했던 허리케인 하비(Hurricane Harvey)와 같은 거대하고 심각한 강우 현상의 발생 빈도를 증가시키게 된다. 허리케인 하비가 쏟아부은 비의 양은, 지구의 지각 전체를 2센티미터 두께로 덮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약 300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Pliocene) 시대 이후로 지구의 대기에 지금처럼 이산화탄소가 많았던 적은 없다. 현재의 이산화탄소 중 4분의 3은 500년 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온실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려면 아직도 1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대기 중의 온실가스가 해양으로 흡수되기까지는 2만 5000년이 걸린다.
알래스카 데날리 국립 공원 및 보존 지구의 빙하 사이에 고여 있는 물 ©Aaron Huey
기후 파괴는 예전보다, 그리고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웠던 연도를 18개 꼽으면, 그중에서 17번이 2001년 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지구가 과열되었다는 고통스러운 신호는 뉴스와 연구 자료, 그리고 매일매일 증가하는 날씨 경보와 같이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IPCC)가 기온이나 극한의 기상 현상, 해수면 수위, 그리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양에 대해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조차도 실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빙하들과 강들, 호수들, 숲들, 그리고 수많은 생명종들이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속도로 이미 사라져 가고 있는데, 이 모든 결과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겨우’ 섭씨 1도 상승해서 벌어진 일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2100년이 되면 10도 정도까지 더 상승할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나사 고다드 우주 연구소(Nasa’s Goddard Institute for Space Studies)의 전직 소장이었던 제임스 핸슨(James Hansen)이 이끈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진행된 기온 상승만으로도 이미 남극과 그린란드 모두에서 얼음층이 녹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경고한다.

기후가 파괴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산에 오른다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노력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빙하들은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져 가고 있고, 전례 없는 수준으로 줄고 있으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캐나다 서부에 존재하는 빙하의 70퍼센트가 2100년이 되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몬태나주 빙하 국립 공원에는 2030년이 되면 더 이상 빙하가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타누스카 빙하의 선사 시대 얼음은 이미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지구의 가장 높고 추운 지역에서도 이런 극적인 변화는 벌어지고 있다. 에베레스트산조차도 변해 가고 있는데, 2100년이 되면 히말라야 전역에 있는 수천 개의 빙하들 중에서 99퍼센트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태어나는 아이들은 아마도 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에베레스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 인간은 지구 공학의 미래라는 우리 스스로 파놓은 깊은 구렁 위에 매달려 있다.


나는 1996년부터 10년 동안 알래스카에 살면서, 그곳의 빙하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주 초기였던 1990년대 말, 겨울 휴가철이었음에도 앵커리지(Anchorage)의 땅 위에는 거의 눈이 쌓여 있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빙벽을 오르곤 하던 폭포가 겨울에도 거의 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가로지르곤 했던 빙하들이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

네팔의 성스러운 산인 마차푸차레(Machapuchare)는 안나푸르나 보호 구역의 동쪽 경계에 불쑥 솟아 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지리 교과서에서 이 산 정상의 사진을 접하자마자 그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물고기의 꼬리처럼 생긴 정상 주위의 깎아지른 능선은, 종잇장처럼 가는 바위의 날들이 양쪽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는 형태로 봉우리 능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 산의 꼭대기는 데날리 정상보다 800미터 정도 높은데, 가장 경이로운 모습의 산봉우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걸작이다.

나는 열 살 때 콜로라도의 로키산맥을 처음 보았다. 석양에 비친 모습에 압도당했다. 세월이 흘러 알래스카로 여행을 가서 데날리 국립 공원 및 보존 지구까지 짧은 거리를 운전해서 갔다. 오후의 구름이 일부 걷히면서 데날리 정상의 위용이 드러났을 때, 나는 그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알래스카로 이사를 하고 1년 뒤, 나는 속세의 폭력과 속도와 탐욕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서 있는 이 성역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등반 기술을 스스로 연마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감정은 스코틀랜드 태생의 미국인 박물학자이자 작가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자연 보호 운동의 선구자였던 존 뮤어(John Muir)의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나는 소중한 날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나는 돈벌이 기계로 전락해 가고 있다. 나는 남자들의 이 하찮은 세계에서 아무것도 배우는 것이 없다. 나는 이곳을 박차고 산으로 올라가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만 한다.”
알래스카에서의 다르 자메일(저자) ©Dahr Jamail
빙하는 본질적으로 유예된 에너지이며 유예된 힘이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시간 속에 얼어붙은 생명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스스로 시간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지구의 생태 환경은 인간이 만들어 낸 외상과 스트레스를 더 이상 견뎌 낼 수 없는 나머지, 이제 자유 낙하를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내가 크레바스 안으로 떨어지면서 빙하의 얼음 속에서 빛나고 있던 수백 년의 응축된 시간을 겨우 몇 초 만에 다 목격했던 것처럼, 자연계의 어떤 시대라는 것은 지질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찰나에 불과해서 순식간에 잊히고 말 것이다.

현대적인 생활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겨우 몇 시간 만에 지구를 가로지를 수도 있고, 클릭 한 번으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바로 얻을 수 있게 하려면, 우리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구라는 행성의 본연적인 속성을 완전히 거슬러야 한다.

내가 야생과 산 속으로 모험을 떠난 것은, 시간과 공간에게 본연적인 속성을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삶은 지구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류는 지표면 위 얼음이 없는 땅의 절반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대기의 성분과 생명이 태어난 대양의 화학 성분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이제 지구 표면을 흐르는 깨끗한 물의 절반 이상을 손쉽게 사용하고 있으며, 세계의 주요한 강들 대부분은 댐으로 막혀 있거나 물줄기의 방향이 바뀌었다.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 인간은 지구 공학의 미래라는 우리 스스로 파놓은 깊은 구렁 위에 매달려 있다. 우리는 고집스럽고 탐욕스러운 입맛으로 자연 그 자체를 먹어 치우고 있다. 우리는 자연이 보내는 경고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경로 위에는 구조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얼지 않은 바다가 훨씬 가까이에 있어서, 겨우 며칠이면 닿을 수 있다.


나는 2017년 7월 말 알래스카의 북부 해안으로 날아갔다.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 북극해를 따라 아침 산책을 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부츠를 신고 서 있는 해변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작은 돌들이었다. 북극점으로부터 겨우 2092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는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다. 시간은 하염없이 지속된다.

이 지역에 남아 있는 여러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인 우투키아비크(Utqiagvik)는 미국 영토의 최북단이다. 이곳의 원주민인 이누피아트(Iñupiat)들은 툰드라의 경계와 바다에서 고래와 새들, 그리고 부빙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왔다.

나는 55살의 마빈 카나유라크(Marvin Kanayurak)를 만났다. 그도 부모처럼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고래잡이 어부이자 의용 구조대원이다. 그는 바다에서 두 개의 부빙이 부딪쳐 형성되는 얼음 산등성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전에는 겨울이면 이런 얼음 산등성이가 15~18미터 정도로 높았는데, 이제는 ‘운’이 좋아야 6미터 정도 되는 능선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봄철에도 얼지 않은 바다로 나가려면 얼음을 가로질러 2주 동안 지도를 보면서 걸어가야 했다. 이제는 얼지 않은 바다가 훨씬 가까이에 있어서, 겨우 며칠이면 닿을 수 있다.

카나유라크는 한때 마을에서 무덤 파는 일을 도왔다고 한다. 영구 동토층이 눈 덮인 표면에서 3~3.5미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무덤 하나를 파기 위해서는 얼음송곳으로 사흘 동안을 쪼아 대야 했다. 이제 영구 동토층은 눈 표면에서 겨우 1~2미터 아래에 있고 얼음도 부드러워져서, 무덤 하나를 파는 데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영구 동토층이란 2년 이상 계속해서 얼어 있는 지층을 말한다. 그 안에는 죽은 식물들과 수 세기 전에 대기에서 스며든 이산화탄소가 흡수되어 있다. 그리고 부패가 시작되기도 전에 얼어붙었다. 이곳이 해빙되면 미생물 활동으로 인해 많은 양의 유기물들이 메탄과 이산화탄소로 바뀌어 대기 중으로 다시 방출될 것이다. 나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수십만 년에 걸쳐서 “북극 영구 동토층의 토양에는 엄청난 양의 유기탄소들이 축적되어 왔다.” 그 양은 1400~1850기가톤(gigatonnes)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지구 대기의 탄소량은 850기가톤이다.

지구의 토양 안에 존재하는 전체 유기탄소 추정량의 거의 절반이, 해빙에 취약한 토양의 3미터 깊이에 대부분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도 이제는 북극의 영구 동토층이 그 이름과는 다르게 영구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영구 동토층이 해빙되면서 방출될 탄소의 양은 연간 15억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이 1년 동안 화석 연료를 연소시켜 배출하는 탄소량과 거의 비슷하다. 국립 빙설 데이터 센터(National Snow and Ice Data Center)의 과학자인 케빈 셰퍼(Kevin Schaefer) 박사는 영구 동토층에서의 ‘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표면의 온도 상승(PCF)’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PCF를 2100년까지 0.2도 또는 그 이상으로 예측한다. 이는 대기 온도 상승을 2도로 제한한다는 목표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PCF만으로도 장기적인 기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산악인이 데날리 국립 공원의 루스(Ruth) 빙하에서 빙하천 위를 건너고 있다. ©Aaron Huey
우투키아비크에 있는 동안, 나는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대학교(University of Alaska Fairbanks)의 지구 물리학자이자 영구 동토층 전문가인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스키(Vladimir Romanovsky)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연구실은 매년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온도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주로 알래스카와 캐나다, 러시아의 데이터들이다.

로마노프스키 박사는 말한다. “해빙점에 가까워지면 영구 동토층은 불안정해집니다. 영구 동토층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이겁니다. 어떤 온도까지 얼마나 안정적일 것인가?”

그의 연구실이 확보한 데이터의 규모는 독보적이어서 폭넓은 지역에 대한 거의 40년 동안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온도가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영구 동토층 온도 모델을 만들었다.

알래스카의 노스슬로프(North Slope)에서 일어났던 영구 동토층의 변화는 세계의 온도가 극적으로 상승한 데 따른 것이었다. 로마노프스키 박사는 이곳에서만 35년째 온도를 측정하고 있는데, 지표면 20미터 아래의 온도가 처음 측정했을 때보다 3도 올랐다고 한다. 지표면 아래 1미터 지점에 있는 영구 동토층 경계면의 평균 온도는 1980년대 중반보다 무려 5도나 상승했다. 이제 조금만 상승해도 영구 동토층의 온도는 0도에 이르게 된다. 그 선을 넘는다는 것은, 이제 영구 동토층이 해빙되기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노스슬로프 지역의 영구 동토층은 안정적이며, 이번 세기 안에 해빙이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 왔다. 로마노프스키 박사는 말한다. “하지만 기록을 보세요. 지금까지의 추세가 계속된다는 가정하에 30년 후를 추정해 보면, 늦어도 2050년이나 2060년이면 노스슬로프 영구 동토층의 온도가 0도를 돌파하게 됩니다. 아무도 이걸 예상하지 않았어요.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겠죠.”

셰퍼 박사 또한 영구 동토층의 해빙이 북극권의 사회 시설과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영구 동토층의 해빙은 북극권의 환경과 삶의 방식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어요.” 그에게 알래스카 북부 해안 마을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주민을 이주시켜야 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영구 동토층이 녹게 되면, 해빙으로 인해 주요 시설들이 파괴될 것입니다. 보수를 하거나 옮겨 가야겠죠. 마을 전체에 피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바다 바로 옆에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이 녹기 시작한다면 이주를 해야 하겠죠. 이건 알래스카 내륙의 강 주변을 따라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북극권 전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극권의 도로와 철도, 기름과 가스 수송 시설, 공항, 항구, 이 모든 것들은 영구 동토층이 계속 얼어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건설되었다. “영구 동토층은 얼어 있을 때는 단단한 것이었지만, 해빙이 되면 진흙으로 바뀔 겁니다. 그러니 이런 사회 시설들에 많은 피해가 발생할 거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죠.” 셰퍼 박사의 말이다.

메릴랜드 주립 대학교 볼티모어 카운티 물리학과의 선임 연구원이자 지구 시스템 테크놀로지 합동 센터(Joint Center for Earth Systems Technology)에서 일하고 있는 레오니드 유르가노프(Leonid Yurganov) 박사는 북극권 메탄량 원격 측정의 전문가다. 그의 연구팀은 북극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메탄의 양이 장기간에 걸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포착했다. 그리고 메탄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오게 된다면 지표면 근처의 기온에 영향을 주고 북극권의 온난화를 가속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구의 대기는 북극과 적도 사이의 온도 차로 인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입니다. 차이가 줄어들게 되면, 서에서 동으로의 공기 이동이 느려지고, 북에서 남으로의 기류가 강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중위도에서는 날씨가 요동을 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기후가 변하게 될 것이다.

서구의 식민주의 문화에서는 ‘권리’를 믿는 반면, 많은 원주민 문화에서는 우리가 태어나서 해야 할 ‘의무’에 대해 가르친다.


우투키아비크를 떠나고 이틀이 지나, 나는 앵커리지에서 시애틀에 있는 집으로 날아왔다. 착륙하기 45분 전 우리가 탄 비행기는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 위의 1만 미터 상공을 날고 있었는데, 발아래의 146군데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비행기는 회갈색 연기구름 속을 통과해야 했다. 그 시각 산불은 2428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불태웠고, 7000명의 주민들이 대피해야 했다. 시애틀에 착륙할 때에도 도시가 연기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갈색 연기를 뚫고 하강해야 했다.

며칠 후 미국 13개의 연방 기관에 소속된 과학자들이 작성한 보고서 초안이 유출되었는데, 최악의 경우 북극권에서 2071년부터 2100년 사이에  7.78도가 상승하는 온난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북극에서 10년마다 북극해를 뒤덮고 있는 얼음 면적의 3.5퍼센트가 사라지고 있고, 9월의 북극해 얼음 면적은 10년마다 1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으며, 지표면의 얼음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고, 북극권의 따뜻해진 기온의 영향으로 인해 혹독한 겨울 폭풍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음울한 소식은 끝이 없었다. 알래스카의 노스슬로프에서는 1년 중 눈이 내리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2016년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의 115년 중에서 눈이 덮이지 않는 기간이 가장 길었던 해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지난 40년 동안의 평균보다 45퍼센트 긴 수치였다. 우투키아비크의 10월 기온은 1979년에서 2012년 사이에 7.2도라는 경이적인 수준으로 상승했다.

우리는 대량 멸종의 시대를 이미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열은 그대로 대양으로 흘러 들어가며, 우리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는 매년 400억 톤씩 대기 중으로 분출된다. 지금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맞서야만 하는가?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왔다. 우리 모두는 이제 우리가 초래한 결과에 대해 진실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브라질에 있는 친구인 카리나 미오토(Karina Miotto)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그녀는 생애 전부를 아마존을 지키는 데 헌신해 왔다. 그녀가 사랑하는 밀림에서 삼림 벌채가 증가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그녀는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과 공동체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의 일부에 대한 애정을 더욱더 키워 나가며, 아마존을 지키기 위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나는 카리나와 같은 사람들이 수백만 명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지구라는 행성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런 위안을 느낀다.

나는 산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지구와의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나는 20대 초반에 콜로라도로 이주해서 산에 둘러싸여 살았다. 그곳에서 산과의 관계가 깊어졌고, 그들의 목소리가 정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산봉우리들 사이에서 몇 시간 동안이고 산을 바라보면서 그냥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일기장에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다. 오늘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깊이 새겨듣는 방법을 배우고, 역시나 그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널리 공유하는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다.

서구의 식민주의 문화에서는 ‘권리’를 믿는 반면, 많은 원주민 문화에서는 우리가 태어나서 해야 할 ‘의무’에 대해 가르친다. 우리의 앞에 왔던 사람들, 우리의 뒤를 이을 사람들, 그리고 지구 그 자체에 대한 의무다. 그렇다면 나의 의무는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았는데,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보다 궁극적인 질문이 생겨났다. 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일생 동안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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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기후 #세계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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