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의 덫
완결

에어컨의 덫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우리는 에어컨을 더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에어컨을 사용할수록 날씨는 더 따뜻해진다. 이 덫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무더운 7월의 목요일 저녁, 뉴욕 전역의 사람들은 올해 가장 더운 주말이 될 것이라는 기상학자들의 예측에 대비하고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뉴욕의 전력 사용량 최고 기록은 폭염 기간에 발생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에어컨을 켰기 때문이다. 1000만 명 이상의 뉴욕 시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회사 콘 에디슨(Con Edison)이 미드타운의 본사 19층 회의실에 비상 지휘 센터를 설치한 이유다.

80명에 가까운 기술자와 회사 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는 뉴욕시 비상 관리 부서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도시 전력망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지상팀을 지휘하며 각 자치구의 전기 사용량이 표시되는 눈금판을 지켜보았다. “《스타 트렉(Star Trek)》의 함교와 비슷한 풍경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전직 시스템 운영자였던 앤서니 수오조(Anthony Suozzo)가 나에게 말했다. “모두가 준비되어 있었고, 스코티(Scotty·스코틀랜드 남자를 부르는 흔한 별명)에게는 수리를 지시했죠. 시스템은 최대치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전력망의 규모는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는 전기의 양으로 측정된다. 뉴욕시와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를 가로지르는 62개의 변전소와 13만 마일(20만 9214킬로미터) 이상의 송전선 및 케이블을 갖춘 콘 에디슨의 전력망은 매초 1만 3400메가와트의 전기를 보낼 수 있다. 대략 1800만 마력에 해당하는 규모다.

평상시 뉴욕시의 전기 사용량은 1만 메가와트가량이다. 폭염 기간에는 1만 3000메가와트를 초과하기도 한다. “계산을 해보세요. 둘 사이의 차이가 얼마든 그건 냉방 때문에 발생한 겁니다.” 콘 에디슨의 대변인 마이클 클렌데닌(Michael Clendenin)의 말이다. 극도로 높은 기온과 폭증하는 전력 수요의 조합은 일부 시스템의 과열 및 고장으로 이어지고 정전을 일으킬 수 있다. 2006년 전력 장비의 고장으로 뉴욕 퀸스(Queens) 지역의 주민 17만 5000명이 일주일간 정전 상태로 생활했다. 40명이 사망한 폭염이 지역을 휩쓸었을 때였다.

2019년 7월 20~21일 콘 에디슨은 뉴욕의 브루클린과 퀸스의 고객 5만 명에게 공급되는 전력을 24시간 동안 차단했다. 36도가 넘는 기온 속에 초당 1만 2000메가와트를 넘는 전력 수요로 뉴욕의 송전망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송전망이 붕괴되면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며칠간 전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주 정부는 주민 지원을 위해 경찰을 파견했고, 콘 에디슨 직원들은 냉방에 활용할 수 있는 드라이아이스를 나눠 줬다.

세계가 더워질수록 이런 일들은 점점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에어컨 구입은 더위에 대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에어컨은 유난히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이다. 방 하나를 시원하게 만드는 소형 에어컨은 4개의 냉장고를 가동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평균적인 집 한 채를 냉방할 수 있는 에어컨은 냉장고 15개 이상의 전력을 소비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존 둘락(John Dulac)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베이징에 폭염이 발생했을 때, 전력 용량의 50퍼센트가 냉방에 쓰였다”면서 “이럴 때 당황스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에 10억 개가 넘는 싱글 룸 에어컨이 있다. 일곱 명당 한 대꼴이다. 많은 보고서들은 2050년까지 에어컨의 수가 45억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에어컨이 휴대 전화만큼이나 흔해지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매년 영국의 전체 전기 사용량에 맞먹는 수준의 전기를 에어컨에 사용하고 있다. IEA는 전 세계 국가들이 미국과 비슷한 상황이 되면서 에어컨에 전 세계 전력의 약 13퍼센트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에어컨은 현재 세계 3위의 탄소 배출국 인도와 같은 수준인 연간 2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이 모든 보고서들은 이 순환 고리의 끔찍한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더워질수록 더 많은 에어컨을 만들고, 에어컨이 많아질수록 온도는 더 올라간다. 에어컨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는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와 유사하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해결책은 결국 우리를 근원적인 문제에 더 가까이 묶어 둘 뿐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에어컨 사용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1990년만 해도 전 세계에 에어컨은 약 4억 대에 불과했는데, 대부분 미국에 있었다. 당초 산업용으로 만들어진 에어컨은 현대성과 편리함의 상징이 되면서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세계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기후 위기의 다른 원인들과 마찬가지로 에어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쩌다 우리를 집어삼키는 기술에 이렇게까지 밀접하게 얽매이게 되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에어컨은 신의 선물이었다. 건축가와 건설 회사들은 더 이상 지역의 기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수도관이나 자동차처럼 에어컨은 세상을 변화시킨 기술이다.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초대 총리는 에어컨을 “역사적으로 귀중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했다. 열대 기후인 싱가포르의 급속한 현대화를 가능케 해준 기술이라는 이유에서다. 1998년 미국의 학자인 리처드 네이선(Richard Nathan)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에어컨이 “민권 혁명”과 더불어 미국의 인구 구조와 정치를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에어컨으로 인해 날씨는 덥고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미국 남부에서 광범위한 택지 개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만 해도 현재와 같은 상황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입 초기의 50년 동안 냉방 설비는 주로 공장과 일부 공공장소에 제한적으로 공급되는 시스템이었다. 에어컨은 1902년 브루클린의 인쇄 공장에서 습도 저감 문제를 담당했던 난방·환기 장치 기업의 미국인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Willis Carrier)가 최초로 발명했다. 오늘날 우리는 에어컨의 목적이 더위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엔지니어들은 온도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산업 생산을 위해 가능한 한 가장 안정적인 조건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인쇄 공장에서는 습도가 종이를 감기게 하고 잉크를 번지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캐리어는 공장의 공기에서 열을 제거하면 습도가 낮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초기의 냉장고에서 기술을 빌려 확장된 냉장고 형태를 만들었다. 에어컨은 지금처럼 따뜻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차가운 표면을 지나면서 시원하고 건조한 공기를 내뿜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발명은 섬유, 군수품 및 제약 공장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뒀고, 이후 다른 영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원 의회는 1928년에 에어컨을 설치했고, 1929년에는 백악관과 상원이 뒤를 이었다. 그 사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극장이나 백화점과 같은 장소에서만 에어컨을 접했다. 에어컨은 기쁨을 주는 신기한 물건으로 인식되었다.

1940년대 후반, 에어컨이 일반 가정에 들어오면서 미국을 정복했다. 사학자 게일 쿠퍼(Gail Cooper)에 따르면, 업계는 에어컨을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에어컨 업계 초기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 《에어컨디셔닝 아메리카(Air-Conditioning America)》에서 쿠퍼는 당시의 잡지들이 에어컨을 실패작으로 묘사했다고 지적한다. 《포천(Fortune)》은 에어컨을 “1930년대의 가장 큰 대중적 실망”이라고 지칭했다. 1938년까지 미국에서 400가구당 1가구만 에어컨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늘날 에어컨 보유 비율은 열 가구 중 아홉 가구에 가깝다.

에어컨이 늘어난 이유는 소비자 수요의 폭증이 아니라, 전후 주택 건설 붐을 배경으로 한 산업의 동향이었다. 1946~1965년 미국에서 3100만 채의 새로운 주택이 건설되었다.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에어컨은 신의 선물이었다. 건축가와 건설 회사들은 더 이상 지역의 기후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남부 뉴멕시코에서도 북부 델라웨어와 같은 스타일의 집을 팔 수 있었다. 미국 건축학회가 1973년에 발표한 연구대로 “더 많은 에어컨의 맹목적인 적용으로” 무더운 기후, 값싼 건축 재료, 허술한 디자인 또는 열악한 도시 계획으로 야기된 어떤 더위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쿠퍼는 “건축가, 건설업자, 은행가들이 에어컨을 먼저 수용했고, 소비자들은 단순히 허락만 하면 되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한다.

에어컨 증가에 필수적인 또 다른 요소는 발전소를 운영하고 소비자에게 전기를 판매하는 회사들의 전기 설비였다. 전력 회사는 모든 신규 주택이 전력망에 연결될 때마다 이익을 얻는다. 그들은 20세기 초 내내 새로운 고객들이 집에서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하게 만들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 프로세스는 한 번에 사용하는 전기의 양을 의미하는 산업 용어(load)를 따서 ‘건물 부하(load building)’로 불린다. 버지니아 공대의 기술 역사학자 리처드 허쉬(Richard Hirsh)는 이렇게 말한다. “전기 요금은 저렴했지만, 전력 회사들의 불만은 없었다. 단순히 전력 소비를 늘리고, 더 많은 고객들이 전기를 쓰도록 독려하는 것만으로도 새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윌리스 캐리어가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에어컨을 소개하고 있다. ©Bettmann Archive.
전력 회사는 에어컨이 심각한 수준의 부하를 발생시킨다는 것을 금세 인식했다. 일찍이 1935년에 현재의 콘 에디슨의 전신인 커먼웰스 에디슨(Commonwealth Edison)은 연말 보고서에서 에어컨의 전력 수요가 연간 50퍼센트 증가했다면서 “미래에 대한 상당한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언급했다. 같은 해, 산업 무역 잡지인 《일렉트릭 라이트 앤 파워(Electric Light & Power)》는 대도시의 전력 회사들이 “현재 에어컨 보급을 촉진시키고 있다”면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전력 회사들이 매우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1950년대에는 바로 그 미래가 왔다. 전력 회사는 에어컨을 홍보하는 인쇄, 라디오, 영화 광고를 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설 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1957년 커먼웰스 에디슨은 처음으로 난방 기기를 작동시키는 겨울이 아닌, 에어컨을 켜는 여름에 전력 사용량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970년까지 미국 주택의 35퍼센트가 에어컨을 사용했는데, 이는 불과 30년 전의 200배가 넘는 수치였다.

동시에 미국 전역에는 에어컨이 탑재되어야 할 상업용 건물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었다. 햇빛 반사력이 약하고, 환기 기능이 부족해서 전력 소비의 절반 이상을 냉방에 써야 하는 통유리 고층 건물이 대세가 되었다. 1950~1970년 상업용 건물의 평방피트당 평균 전기 사용량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1974년에 완공된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World Trade Center)에는 9개의 거대한 엔진과 270킬로미터가 넘는 냉난방용 배관을 갖춘,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에어컨이 설치됐다. 당시 논평가들은 세계 무역 센터가 매일 인구 8만 명의 인근 도시 스키넥터디(Schenectady) 전체와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에어컨 업계, 건설 회사, 전력 회사는 모두 전후 미국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있었다. 그들은 이익을 추구하면서 에어컨을 미국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었다. 에어컨 회사의 한 임원은 1968년 《타임》에 “우리 아이들은 냉방 문화에서 자란다”며 “그들이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은 에어컨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용량은 계속 증가했다. 2009년에는 미국의 에어컨 사용 가구가 전체의 87퍼센트에 달했다.

전후의 건설 붐은 이 모든 새로운 건물들이 엄청난 양의 전력을 소비할 것이지만, 이로 인해 미래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92년 학술지 《에너지 앤드 빌딩스(Energy and Buildings)》는 미국인의 에어컨 중독이 엄청난 타락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영국의 보수주의 학자 그윈 프린스(Gwyn Prins)의 논문을 실었다. 프린스는 미국을 지배하는 신조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시원할 것이다. 우리의 접시는 가득 찰 것이고. 가스는 갤런당 1달러가 될 것이다. 아멘.”

 

에어컨 지지자들에게 에어컨은 소비자의 경제적 계층이 상승하면서 삶을 개선하는 간단한 선택지로 인식된다.


에어컨은 미국의 도시를 재편했지만, 다른 지역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얼리 어답터였던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그렇다.) 그러나 이제 에어컨은 마침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미국 전역에 걸친 에어컨의 발달이 전후의 건설과 소비 붐에 따른 것이었다면, 최근의 확산은 세계화의 과정을 따르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화된 건축 방식과 생활 방식을 채택하면서 에어컨도 받아들인 것이다.

1990년대에 아시아 전역의 많은 국가들이 외국에 투자를 개방하고 전례 없는 도시 건설에 착수했다. 지난 30년 동안, 인도에서는 약 2억 명의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했다. 중국에서는 그 수가 5억 명 이상이다. 뉴델리에서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에어컨이 완비된 오피스 건물, 호텔, 쇼핑몰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건물들은 뉴욕이나 런던의 건물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다. 실제로 같은 건축가와 건설업자들이 만든 건물도 많았다. 에너지 절감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주거 공간 설계에 집중하는 인도 건축가 아쇼크 랄(Ashok Lall)은 “고급 건물을 짓기 위해 전 세계에서 돈이 들어올 때, 미국이나 유럽의 디자이너나 자문 회사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며 “그리고 그들은 에어컨과 패키지로 온다. 사람들은 그것이 진보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축의 규모가 커지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온도를 낮추는 전통적인 건축 기술들은 폐기되었다. 호주 시드니 공과대학의 인도인 건축학 교수인 리나 토머스(Leena Thomas)는 나에게 1990년대 초반 델리에서 창문 방충망이나 건물 입구의 외벽, 브리즈솔레이유(brise-soleils·햇볕을 가리기 위해 건물의 창에 댄 차양)를 통해 열기에 대응했던 오랜 건축 디자인 형태가 미국이나 유럽식으로 서서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이 국제적인 양식이 책임져야 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20세기의 미국처럼, 그러나 훨씬 더 큰 규모로, 에어컨을 필수 불가결하게 만드는 방식의 집과 사무실은 더 많이 건설되고 있다. 인도 아마다바드(Ahmedabad) 셉트대학교의 건축 및 도시 계획 전공 교수인 라잔 라왈(Rajan Rawal)은 “개발자들은 생각 없이 건물을 짓고 있었다”며 “공사 속도를 맞추라는 압박을 받았고,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일단 짓고 나중에 기술로 문제를 바로잡으려 했다”고 말했다.

랄은 저렴한 주택도 신중하게 설계하면 에어컨의 사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열린 공간의 크기, 벽면의 면적, 내열 설계, 그늘, 방향으로 균형을 맞추면 된다”고 강조하면서, 부동산 개발 업자들은 보통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적정한 규모의 옥상 그늘이나 단열재 같은 작은 부분도 저항을 받습니다. 건설업자들은 이런 요소에서 어떤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서로 붙어 있는 10~20층짜리 건물을 지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비즈니스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도시가 요구하고 있는 건축입니다. 모두 투기와 땅값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러한 에어컨에 대한 의존은 중국 미술 평론가 호우 한루(Hou Hanru)가 ‘탈계획의 시대(epoch of post-planning)’라고 지칭하는 흐름과 맞물린 하나의 현상이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던 중앙 집중화되고, 체계적이며 발전적인 개발 계획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시장은 놀라운 속도로 개발을 지시하고 할당하며, 실제 거주자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은 나중에 단편적인 방식으로 제공한다. 필리핀에서 에어컨의 사용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말린 사하키안(Marlyne Sahakian)은 “거대한 타워들은 올라가고 있고, 그것은 이미 에어컨의 필요성이 건물 내부에 고착화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말레이시아의 영향력 있는 건축가 켄 양(Ken Yeang)은 최근 런던에서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화석 연료에 의존하여 환경을 통제하는 건축가와 건설업자로 인해 그렇지 않은 한 세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한탄했다. 그는 “건물들은 이미 많은 피해를 일으켰고, 내 세대에서는 완전히 희망을 잃어버렸다”면서 “아마도 다음 세대에나 구조 작업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어컨 지지자들에게 에어컨은 소비자의 경제적 계층이 상승하면서 삶을 개선하는 간단한 선택지로 인식된다. 일본의 거대한 에어컨 제조 회사인 다이킨(Daikin)의 인도 지사 임원은 지난해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에어컨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며 모든 사람은 에어컨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7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이 지금 인도 라자스탄(Rajasthan)에서 반복되고 있다. 일단 사람들의 삶에 에어컨이 자리 잡으면, 그들은 에어컨을 계속 쓰기를 원한다. 이런 현상은 소비자의 선택이 통제 불가능한 힘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만든다. 메리 매카시(Mary McCarthy)는 1967년 출간한 책 《베트남(Vietnam)》에서 미국에서 생활할 때 경험한 선택의 미묘한 제약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 호텔 객실에서 당신은 에어컨을 켤지 말지 결정할 수 있지만, 창문을 열 수는 없다.”

 

기술 발명과 구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기간은 너무 짧아서 믿기 어려운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술을 기후 변화에 대한 첫 번째이자 최선의 대응책으로 논의해 왔다.


현대 도시를 전면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서 에어컨이 발생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 나은 에어컨을 만드는 것이다.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 에어컨의 발명은 최초의 비행기, 라디오 방송보다 앞섰다. 그러나 에어컨의 기반 기술은 1902년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건축 서비스 연구 정보 협회의 기술 이사 콜린 굿윈(Colin Goodwin)은 “에어컨의 모든 것은 여전히 냉장고와 동일한 증기 압축 냉동 회로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100년 전과 사실상 동일한 과정”이라면서 “에어컨 구매력은 엄청나게 확대됐지만, 효율성 측면에서는 일부 개선되었을 뿐 도약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한다.

더 효율적인 에어컨을 만들 수 있도록 엔지니어들을 독려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지난해 미국의 에너지 정책 싱크탱크인 로키 마운틴 인스티튜트(Rocky Mountain Institute·RMI)는 세계 냉각상(Global Cooling prize)을 신설하고 300만 달러(35억 5800만 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목표는 기존의 표준 모델보다 5배 이상 효율이 높으면서도 생산 비용은 2배 이상 투입되지 않는 에어컨 설계다. 유엔 환경 프로그램과 인도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시상식은 개인 발명가부터 저명한 대학,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가전업체의 연구팀들로부터 100개 이상의 출품작을 받았다.

그러나 기후 변화에 대한 기술적 대응책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에어컨의 등장이 세계 배기가스 배출량을 현저히 감소시킬지는 확실하지 않다. RMI에 따르면, 혁신적인 에어컨으로 전 세계의 탄소 배출량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수상작인 효율 높은 에어컨이 늦어도 2022년에는 판매되기 시작해야 하고, 2030년까지는 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신제품은 10년 안에 경쟁 상품들을 거의 완전히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 간 기후 변화 협의체(IPCC)의 차기 보고서 집필을 이끌고 있는 벤자민 소바쿨(Benjamin Sovacool) 서섹스 대학 에너지 정책 교수는 이 목표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기술이 우리를 살린다는 생각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 단순함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죠.” 소바쿨의 말이다. 기술로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실제로 큰 위안이다. 심지어 기술 발명과 구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기간은 너무 짧아서 믿기 어려운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술을 기후 변화에 대한 첫 번째이자 최선의 대응책으로 논의해 왔다.

중앙 유럽 대학의 기후 변화 및 에너지 정책 교수이자 곧 발표될 IPCC 보고서의 주요 저자인 다이애나 우르지 보르사츠(Diana Ürge-Vorsatz)는 새로운 에어컨 기술은 환영받을 것이지만, 에어컨의 배기가스를 줄이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해야 할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일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언급하는 더 높은 우선순위의 임무로는 나무 심기, 낡은 건물에 적절한 환기 장치 설치하기, 더 이상 ‘폭염을 견디지 못하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우리(cage)’를 짓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이러한 전략은 기술적으로는 더 저렴하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과 주요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공공연한 비밀은 그 누구도 이 심각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체계적이고 전 세계적인 변화를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에어컨 사용을 줄이라는 요구는 사람들이 폭염 속에서 죽어야 한다는 제안으로 오해받거나, 부유한 나라의 시민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악의적 욕망의 증거로 취급당한다.


만약 기술이 당장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전 세계의 정책 변화가 멀리에 있는 희망처럼 보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생태 경제학자이자 IPCC 보고서의 저자인 줄리아 스타인버거(Julia Steinberger)가 쓴 것처럼 운전, 비행, 아보카도 수입을 줄이는 것처럼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는 진지한 제안들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이단적이며, 거의 미친 짓”으로 간주된다. 에어컨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에어컨 사용을 줄이라는 요구는 사람들이 폭염 속에서 죽어야 한다는 제안으로 오해받거나, 부유한 나라의 시민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악의적 욕망의 증거로 취급당한다.

올여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기사 ‘미국인은 에어컨이 필요한가’는 수천 건의 격노한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촉발시켰다. 그중에는 유명 인사들도 있었다.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평론가인 록산 게이(Roxane Gay)는 “그러는 너도 에어컨 없이 플로리다에서 여름을 보내지 않을 거잖아. 정신 차려”라고 썼다. 보수 성향의 교수이자 전문가인 톰 니콜스(Tom Nichols)는 “에어컨은 우리가 동굴을 떠난 이유”라면서 “당신은 내 손이 꽁꽁 얼었을 때에나 나에게서 에어컨을 빼앗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에어컨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합리적인 사례는 존재한다. 이상적인 실내 온도로 알려진 기준은 오랫동안 에어컨 기술자들이 결정해 왔다. 거의 모든 인간이 항상 같은 온도 범위를 원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기저에는 안락함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자카르타에 있는 건물이 보스턴의 건물과 동일한 온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리나 토머스는 이런 기준에 따라 에어컨이 가동되는 대부분의 건물은 온도를 “20도에서 1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수준”으로 유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객관적으로 ‘적당한’ 온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남성에게 이상적인 온도는 여성과는 다르다. 2015년 《텔레그래프(Telegraph)》는 세계 곳곳의 사무실에서 “남성이 원하는 온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여성은 추위에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과학적 연구로 확인해 주는 결과는 이외에도 많다.
홍콩의 건물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들. ©Andrew Aitchison/ Getty Images.
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매우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높은 실내 온도에 있을 때 안락함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구자들은 그것이 마음의 상태이건 생물학적 적응이건 인간의 안락함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적응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더운 나라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시각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다. 내가 최근 참석한 런던의 에어컨 관련 콘퍼런스에서 인도인 대표 한 사람은 “내가 30도에서 일하고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당신들도 할 수 있다. 나를 믿고, 당신을 믿으라”고 참석자들을 꾸짖었다.

‘이상적인’ 온도라는 발상을 반박하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또 있다. 심리학자이자 미국 난방 냉동 공조 학회의 회원인 프레드릭 롤스(Frederick Rohles)는 시원한 실내에서 실제 온도보다 높은 온도를 표시한 가짜 온도계를 보여 주면 피실험자들이 덥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롤스는 2007년 이렇게 썼다. “이런 결과는 기술자 동료들을 미치게 만들 것이다. 안락함은 마음의 상태야!”

아쇼크 랄은 사람들이 일단 건물의 온도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에어컨을 첫 번째 단계가 아닌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는 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광범위한 문화나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진영은 결정론자들이다. 그들의 관점은 전 세계의 건축 법규와 기준에 계속해서 반영되고 있다.

 

에어컨이 기온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인식되면서 에어컨 없는 대처법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아무도 이후에 벌어질 일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제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냉방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최악의 기후 위기 영향을 피하기 위한 해법의 양극단에 기술과 습관을 놓고 연속선을 그린다면, 에어컨은 아마도 중간쯤의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고기를 먹는 습관을 줄이기보다는 더 어렵고,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없애는 것보다는 더 쉬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둔 기후 정치 자문 회사 E3G를 운영하는 전직 고위 공무원 닉 매비(Nick Mabey)에 따르면, 에어컨 문제는 대부분의 정부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채로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대부분의 소비재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향식 규제로 성공한 전례는 거의 없다. 그는 “이 일을 처리하는 부서도 없고, 당신이 가서 이야기할 만한 에어컨 관련 담당자도 없다”고 지적한다.

매비는 통제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거기서부터 밀고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모든 에어컨의 효율을 향상시켜 배기가스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UN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에어컨에 붙어 있는 촌스러운 소비자 기준표와 관련이 있다. 현재 시중의 평균적인 에어컨은 사용 가능한 최고의 장치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의 효율성을 갖고 있다.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히면 미래의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는 약간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뉴욕 시의회는 2030년까지 도시의 모든 대형 건물들이 전체 탄소 배출량을 40퍼센트 줄이고, 2050년에는 80퍼센트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향력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위반 시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법안을 주도한 코스타 콘스탄티니데스(Costa Constantinides) 시의원은 “모든 도시에서 의무화한 탄소 배출량 규제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말한다. 로스앤젤레스 시장실은 2050년까지 모든 건물의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기 위한 비슷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도시들은 훨씬 더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여러 지역보다 따뜻한 지역인 스위스 제네바의 지방 정부는 1980년대부터 특별한 허가 없이는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스위스 전역에서 비교적 일반화되어 있다. 그 결과, 스위스에서 에어컨은 모든 전기 사용량의 2퍼센트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이 에어컨을 그리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스위스에서 에어컨의 부재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어컨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

에어컨이 비교적 낯선 국가에서는 에어컨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기 전에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있다. 토머스는 ‘서방에서 벌어진 최악의 일’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인도 정부는 토머스, 라왈 등이 제시한 권고안을 자국의 국가 주택 건축 법규(“대단히 강력한 조항”이라고 라왈은 말한다)로 채택했다. 이 법규는 인도에서 이뤄진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인도인의 안락함 수준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내 온도를 높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에어컨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건물의 “보급 증대”를 강조하고 있다.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것은 현대성으로부터 멀어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에어컨으로 인해 일어날 일들을 직시하라는 요구다. 켄 양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로 돌아갈지 말지를 논하는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기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에어컨이 기온을 제어하는 방법으로 인식되면서 에어컨 없는 대처법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아무도 이후에 벌어질 일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제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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