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통한 최후의 수단

12월 10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혐의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공식화했다. 침통한 순간이었고, 트럼프가 탄핵을 당하는 세 번째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전조였다. 물론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하원을 통과해 상원의 탄핵 심판으로 무효화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이 단 한 명이라도 당론에 반하는 표를 던진다면 뉴스거리가 될 것이다.[1] 탄핵에 필요한 만큼의 찬성표가 나오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미 의회에 부당한 선택을 강요했다. 그는 2020년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지난 3개월간 진행돼 온 탄핵 절차는 공화당원들을 결집하게 만들고, 유권자들을 분열시킬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남을 것이다. 미국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핵심적인 증거들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3억 9100만 달러(4555억 1500만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폭동 세력에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의 새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에게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우크라이나가 수행한 임무와 (더 중요하게는) 2020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꼽히는 조 바이든(Joe Biden) 전 부통령과 아들 헌터(Hunter)의 혐의를 수사한다면 백악관에서 회담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이 부통령 재직 시기 아들 헌터가 이사진에 올라 있었던 우크라이나 가스 회사에 대한 현지 검찰의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한다.

법률 또한 명백하다. 그 자체로 범죄가 아니더라도 국가에 위협이 되고 공공의 신뢰를 위배하는 ‘중대 범죄와 경범죄(High Crimes and Misdemeanours)’도 탄핵 사유가 된다.(2화 참조) 경쟁자를 비방하기 위해 외국 정부를 교묘히 조종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미국 건국의 정신을 위배하는 선거 조작의 일종이다. 대통령이 동맹국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은 더욱 나쁜 행위다.

그러나 논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에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 측근들은 그가 바이든을 비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부정부패에 대해 정당한 우려를 드러내고,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와 그의 방식대로 관계를 쌓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럴 만한 권리가 있다. 그들은 심지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억 9100만 달러의 지원금이 늦어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원금은 결국 모두 지급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또 이 지원금이 우크라이나의 수사를 담보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젤렌스키 대통령이 밝혔다고 주장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사를 요구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의도라는 것은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처럼 일상이 자기모순인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런 방어는 진실인 것 같지 않다. 우크라이나 관료들은 실제로 미국의 지원금이 지연되는 것을 알고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 고발자가 그의 행동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직후에 돈을 풀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상황이 복잡해진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선 잃을 것이 많다. 그래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밝힌 입장 역시 의심스럽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관련 혐의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그가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를 원했다면, 외국 정부를 이용할 것이 아니라 미국 연방 수사국(FBI)으로 사건을 이첩하는 등 적절한 과정을 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난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혐의가 상당한 것인지 아닌지 물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러시아 전문가는 2016년 우크라이나의 미국 대선 개입설은 러시아의 선전 캠페인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몰아낸 우크라이나 검사는 부패한 회사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이든은 아들을 보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검사의 수사를 받게 만든 것이다.

“누가 정의 위에 군림할 수 있습니까? 가장 큰 불의를 저지른 사람이 정의 위에 군림할 수 있습니까?”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메이슨(George Mason)은 헌법의 탄핵 조문 초안을 작성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의 이미지를 훼손함으로써 2020년 대선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백악관의 재량을 바탕으로 권력을 고수하려는 그의 불법적인 노력은 계속될 수도 있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되어야 할 이유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탄핵을 위해서는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이 대통령에 대한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 상원 100석 가운데 47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과반만 달성해도 승리라고 해석할 것이다. 탄핵이 처음 거론됐던 9월 탄핵을 지지하는 여론은 50퍼센트 가까이 치솟았지만, 이후의 온갖 조사들과 청문회는 여론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현재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는 비율이 과반을 넘은 지역은 21개 주에 불과하다.(2화 참조)

민주당원들은 백악관이 의회를 방해하기 위해 관료들의 청문회 증언을 거부하거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미국 폭스뉴스나 다른 곳에서 사주받은 공화당원들이 다양한 술책과 일관되지 않은 방어로 유권자들의 눈에 모래를 뿌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맞다. 트럼프 대통령의 어떠한 혐의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공화당원들은 경멸할 만하다. 많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방식을 혐오한다. 그러나 국익과 관련한 측면에서 대통령과의 관계를 깨면서까지 경력을 버릴 위험을 지지는 않는다.

공화당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여론에서 나온다. 그리고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추동할 잠재력은 있다. 여론 조사 관계자들은 유권자의 3분의 1이 부동층이라고 보고했다. 이들 중 탄핵에 반대해 온 일부는 결정을 바꿀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백악관은 대중이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증인인 존 볼턴(John Bolton) 전 국가 안보 보좌관과 믹 멀베이니(Mick Mulvaney) 비서실장 직무 대행의 발언을 듣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선서를 바탕으로 한 핵심층의 증언은 마음을 흔들 수 있는 특별한 힘과 진실, 통찰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탄핵 심판에서 핵심 증인들의 증언과 관련 서류 제출을 강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원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그와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원들은 법의 굴레에 복종하기보다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표결 절차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원들은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고 주장한다. 또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고 강조한다. 하원이 탄핵안 발의 권한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트럼프의 의회 방해를 증명하기 위해 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내리지 못하더라도 탄핵안 발의 자체가 충분한 제지의 수단이 된다고 본 것이다.

탄핵은 최후의 수단이다. 상원의 심판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민주당 지도부는 증인들이 증언을 하기까지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선거 일정을 고려한 상원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쪽을 택할 수도 있다. 상원이 심사숙고하는 동안 탄핵 조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억누를 수 있다. 이는 트럼프의 또 다른 권한 남용을 막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내년 초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는 효과가 클 것이다. 기한 만료로 탄핵안이 소멸해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탄핵안이 다시 발의되어 트럼프를 백악관에서 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원들은 민주당이 내년 선거에서 고전할 가능성에 더 집중하고 있다.

물론 선거 승리 전략을 우선순위에 둘 수 있다. 공화당원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선거 승리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으로) 당이 혜택을 얻을 때, 미국은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을 가볍게 모면하고 있다. 내년에 상원이 사면하면, 그는 무죄가 입증됐다고 주장할 것이다. 증거만 보면 그의 백악관 권한 남용 혐의는 유죄다. 그런데도 그는 자리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의 뻔뻔함은 전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탄핵은 또 다른 당파 싸움의 수단이 아니라, 침통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만들어졌다. 오늘 불운한 탄핵 소추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새로운 내일을 이끌 것이다. 탄핵이 정치적인 제스처가 되어 버린다면, 탄핵이 갖고 있는 억제의 효과는 훼손될 것이다. 당론에 위배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탄핵의 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관리 감독은 약해지고, 대통령직은 더욱 제왕적으로 변할 것이다. 상원의 심판이 다가올수록 미국은 아무것도 기뻐하지 못할 것이다.
[1]
현재 미국의 상원은 공화당이 100석 중 53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상원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