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하는 케이, 팝
1화

프롤로그; 케이팝이라는 장르

케이팝(K-pop)의 세계적인 성공과 인기는 21세기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새로운 흐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탄소년단(BTS)은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미국 대표 음악 차트 빌보드(Billboard)의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 자리에 세 장의 앨범을 올렸고, 2019년 10월에는 케이팝 최대 기획사 SM의 프로젝트 그룹 슈퍼엠(SuperM)이 또 다른 1위 앨범을 배출했다. BTS를 비롯한 몇몇 그룹만 성공한 것도 아니다. 다른 글로벌 인기 장르처럼 빌보드 차트 내에 케이팝만의 순위를 집계하는 ‘케이팝 차트’가 2017년 말 생겼고, 아이튠즈(iTunes) 등 글로벌 디지털 음원 서비스도 케이팝에 독립된 장르 카테고리를 부여했다. 대표적인 소셜 미디어 트위터(Twitter)가 트위터와 케이팝의 상부상조 관계를 언급할 정도로[1] 케이팝이 글로벌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과거 한국인들이 ‘두 유 노 김치(Do you know Kimchi?)’를 외국인에게 물어보며 한국 문화의 인지도를 확인하려 했다면, 케이팝은 이제 그런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인만 만나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케이팝 가수는 누구니?’를 물어보는 통에 케이팝에 관심 없는 일부 한국인들이 당황할 정도로 케이팝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이자 글로벌한 성공을 거둔 음악이 되었다.

케이팝은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여겨지고 있다. 케이팝이라는 용어 자체는 Korean Popular Music의 준말이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한국 대중음악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국내 팬, 정부 관계자, 미디어, 음악 산업 종사자 및 대중문화·음악 평론가와 연구자들은 케이팝을 한국 대중음악과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이미자와 조용필, 김건모, 신승훈 등의 음악도 서태지와 아이들, H.O.T., 빅뱅, 트와이스, BTS의 음악과 함께 케이팝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쓰이는 방식, 특히 해외 케이팝 팬들에게 인식되는 의미를 살펴보면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와 동의어가 아니다. 케이팝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말 즈음 중국어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2]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해 2000년대 초반부터 동아시아 각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도 정작 본국인 한국에서는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고 2007~2008년 무렵에서야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몇몇 한국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가 동아시아를 넘어 동아시아 바깥 지역에서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더 넓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즉 케이팝이라는 용어는 국내 미디어나 음악계 내부, 팬, 혹은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라 해외에서 먼저 널리 쓰이고 있던 용어가 한국으로 역수입된 경우다. 특히 동아시아 바깥 지역(특히 미국과 서유럽)에서 이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한 이후에야 한국에서도 활발히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케이팝은 해외에서 정의된 장르다. 따라서 한류라고 불리는 일련의 문화 현상과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아무리 ‘이런 음악도 케이팝이고 저런 음악도 케이팝이다’라고 규정하려고 해도 케이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음악이 존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케이팝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한국 대중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해외 팬들은 한국의 록, 힙합, 인디 음악을 케이팝 카테고리에 포함시키지 않고 케이록(K-rock), 케이힙합(K-hip hop), 케이인디(K-indie) 등의 용어를 새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정의하는 케이팝은 무엇일까? 케이팝은 ‘팝’ 앞에 국가와 지역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붙은 다른 음악들, 즉 브릿 팝(Brit pop)이나 스웨디시 팝(Swedish pop), 제이팝(J-pop), 라틴 팝(Latin pop) 등과 공통점이 있다. 음악의 국적이 장르를 정의하는 중요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일반적인 장르들과는 달리 음악적인 특징이 장르를 정의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록, 재즈, 힙합 등은 장르 규정에 있어서 리듬 패턴, 악기 구성, 가창 방식 등의 음악적 특징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케이팝은 음악적 스타일에 대한 공유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 브릿 팝보다는 스웨디시 팝이나 제이팝, 라틴 팝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들어진 지역, 음악 스타일, 그 외 다양한 요소를 통해 수용자들은 케이팝을 다른 음악들과 구분되는 하나의 독립된 음악 장르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록이 그랬고 힙합이 그랬던 것처럼, 케이팝의 범주와 스타일 역시 과거의 음악을 포함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해 가고 있다. 가령 1980년대의 올드 스쿨(old school) 힙합과 1990년대의 갱스터 랩(gangsta rap)[3]은 힙합의 일부이지만, 현재의 힙합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한류 초기, 케이팝이라는 장르명이 해외 시장에서 통용되기 시작하던 때의 케이팝과 지금의 케이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법 차이가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보통 케이팝을 세 세대로 나누어 구분한다. 1990년대 후반 H.O.T.의 등장에서 시작해 그들의 해체로 마무리되는 시대를 1세대, 2007년 원더걸스의 〈Tell Me〉 열풍으로 재점화된 케이팝의 인기가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된 시기를 2세대, 2013년 이후 등장해 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BTS와 트와이스로 대표되는 최근의 케이팝을 3세대로 구분하는 식이다.

각 세대 가수들은 연령대가 다르다. 1세대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이 중심이라면 2세대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 태생, 3세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태생이 주축이다. 음악적으로도 가벼운 전자 댄스 음악 일색이던 1세대와는 달리 2세대와 3세대로 넘어오며 힙합, EDM, R&B를 기반으로 록, 팝, 심지어 재즈에 포크 음악까지 모두 아우르는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전문 작곡·작사가에게 일임하고 대신 무대 퍼포먼스에 ‘올인’하던 1세대 케이팝 가수들과는 달리 2세대부터는 스스로 작사·작곡 및 편곡을 담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3세대에 와서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심화되어 멤버가 작사·작곡에 참여하지 않는 그룹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또한 화려한 춤과 외모에 비해 음악적 실력이 부족해 라이브 무대를 소화하지 못하고 립싱크에 의존하면서 ‘붕어 가수’[4]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1세대와는 달리 2세대부터는 가창력이 뛰어난 케이팝 가수가 많이 등장했고, 3세대에는 이것이 더욱 보편화되었다.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등 각종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뛰어난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케이팝 가수가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케이팝 세대 구분의 더 중요한 기준은 음악 시장의 변화다. H.O.T.나 N.R.G., 베이비복스, S.E.S. 등 해외 시장 진입에 성공하여 인기를 누린 팀들도 있었지만, 1세대 케이팝 가수들은 사실상 국내 시장만을 대상으로 음악을 만들고 활동했다. 해외 수용자들이 자신의 음악을 들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은 채 한국 수용자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은 예기치 않은 행운 또는 부수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2세대로 들어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세대와 2세대 사이인 2000년대 초중반에 등장해 국제적인 인기를 얻었던 보아와 동방신기처럼 해외 수용자들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본격적인 해외 시장 진입을 목표로 하는 기획사와 가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이라는 특정 지역(local)의 음악이었던 케이팝이 본격적으로 ‘국제적 음악’이 된 2000년대 후반부터 더욱 강해졌다. 기획사들은 소속 가수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해외 시장에서 활동할 것을 전제 조건으로 그룹을 구성하고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거기에 맞게 가수들을 준비시켰다. 중국과 대만, 일본, 태국 등 동아시아 출신 멤버를 그룹에 포함시킨다거나, 연습생 때부터 중국어와 일본어를 교육한다거나, 중국어와 일본어로 된 앨범·싱글을 발매하는 등의 활동은 모두 케이팝의 국제화를 위한 전략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3세대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세계화된 세대다. 걸 그룹 트와이스는 9명의 멤버 중 4명이 외국인이며, 아이즈원(IZ*ONE)은 일본 기획사와 한국 기획사가 합작하여 만든 그룹이다. 심지어 EXP 에디션(EXP Edition)이나 지보이즈(Z-Boys)·지걸즈(Z-Girls) 같은 그룹에는 한국인 멤버가 없다. BTS는 한국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그 인기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된 역수입 사례다. 케이팝이 지역 음악의 범주를 넘어 글로벌 대중음악의 한 장르가 된 지금, 케이팝 가수들에게 해외 시장 진입은 더 이상 신기하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음악과 가수뿐만 아니라 국내 수용자들이 케이팝을 즐기는 방식까지도 해외 수용자들에게 ‘수출’되고 있다. 케이팝이 생산과 소비 양쪽에서 점차 지역성을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케이팝이 아무리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수용자들에게 향유되고 있다고 해도, 국내외 수용자 모두 케이팝을 한국과 분리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음악 장르로 여기지는 않는다. 국내외 대중은 여전히 케이팝을 한국 문화의 일부로 여긴다. 케이팝이 ‘한국의 것’으로서의 특수성을 유지해 주길 바라는 이들도 많다. 가령 다수의 국내 케이팝 팬과 미디어는 케이팝을 ‘한국 문화의 대표 선수’로 여긴다. ‘BTS가 훌륭한 이유는 그들이 한국말로 노래를 부르면서 해외에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케이팝은 한국말로 가사를 써야 하는 음악이며, 영어나 일어로 만들면 케이팝이 아니다’ 같은 주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케이팝의 위상과 한국인들이 케이팝에 갖는 기대치를 시사한다.[5] 외국 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케이팝 음악에 한국어가 아닌 영어(혹은 일본어) 가사를 붙이는 것에 오히려 해외 팬들이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한국인이 아닌 가수들이 케이팝 음악을 재현하려 하는 시도에 생경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만일 케이팝이 한국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록이나 재즈, 힙합처럼 일반적인 대중음악 장르로 자리 잡았다면, 그것을 어떤 언어로 부르건 어떤 나라 사람이 구현하건 별다른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케이팝은 다른 장르들과는 달리 특정한 국가 및 인종·민족적 요소와 강하게 묶여 있다. 이는 글로벌 문화 상품으로서 케이팝이 추구하는 초국가성(transnationality)과 때때로 충돌을 일으킨다.

이 책은 케이팝의 양면성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 양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이를 통해 케이팝 산업의 변화를 전망할 수 있다. 지역 음악이자 세계화·국제화에 성공한 글로벌 음악으로서 케이팝이 갖는 독자적인 특성과 이것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방식, 두 양면적인 성격이 야기하는 갈등과 충돌, 이것이 케이팝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다. 이는 글로벌 인기 장르로 자리 잡은 케이팝이 앞으로 나아가게 될 방향에 대한 전망이기도 하다.
[1]
Arin Kim, 〈Twitter: K-pop’s great leveler〉, 《The Korea Herald》, 2019. 1. 31.
[2]
이 책에서 ‘동아시아’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모두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3]
올드 스쿨 힙합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후반 사이의 초기 힙합 음악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다. 비교적 단순한 랩핑에 복잡하지 않은 간결한 비트를 결합한 형태다. 반면 갱스터 랩은 1990년대 초중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행한 힙합 음악 스타일로, 뒷골목 갱스터들의 삶을 직설적인 언어로 묘사한 가사와 겹겹이 쌓아 올린 묵직한 펑크(funk) 비트를 음악적인 특징으로 한다.
[4]
라이브 공연 시 실제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틀어 놓은 반주 음원에 맞춰 입만 벙긋거리는 가수들을 냉소적으로 일컫는 말.
[5]
다음 영상의 댓글 참조. KLCL, 〈SHAWN STOCKMAN (of BOYZ II MEN) ON BTS’S ROSE BOWL SHOW〉, 2019.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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