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는 컴퓨터가 아니다
완결

우리는 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컴퓨터로서의 뇌’는 수십 년간 신경 과학을 지배해 온 은유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가장 거대한 과학적 노력이 이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물체, 즉 뇌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다. 과학자들은 아주 작은 동물의 뇌에서 우리 인간의 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고 있다. 수만 명의 연구자들은 뇌가 무엇을 하는지를 밝혀내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놀라운 신기술들은 우리가 뇌의 활동을 설명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한다.

이제 우리는 생쥐가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냄새를 기억하게 할 수 있고, 생쥐가 가진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꿀 수 있으며, 전기 자극을 통해 사람들이 얼굴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종들의 뇌에 대한 상세하고 복잡한 기능 지도를 그리고 있다. 특정 종에 한해서는 뇌의 구조를 바꿔 결과적으로 그 동물의 행동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뇌 연구 발전의 가장 심오한 성과 중 일부는 팔이 마비된 사람이 정신의 힘으로 로봇 팔을 제어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마음 읽기, 범죄자 탐지, 혹은 컴퓨터 업로드 등 실현하기 어려운 일들을 가능하게 해줄 새로운 기술들의 가능성(혹은 이 기술들의 위협)과 더불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새로운 발견들을 매일 접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뇌를 설명하는 서적들이 끊임없이 발간된다.

그러나 일부 신경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는 확신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최신의 흥미로운 실험 접근법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독일의 신경 과학자 올라프 스폰스(Olaf Sporns)가 지적한 것처럼 “신경 과학에는 뇌의 데이터를 근본적인 지식과 이해로 전환하기 위한 이론적 체계나 원리의 조직화가 여전히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에 대한 이해는 교착 상태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프랑스의 신경 과학자 이브 프레낙(Yves Frégnac)은 고비용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현재의 경향에 주목하고, 이러한 데이터의 쓰나미는 신경 과학 연구의 병목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가 함축적으로 말했듯 “빅데이터는 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정신(mind)과 관련된 과정에 대한 이해는 손에 금방 닿을 것처럼 충분했던 반면, 뇌의 신경 해부학적, 신경 생리학적 정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프레낙은 썼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뇌에 대한 모든 방면의 보편적 이해가 모두 씻겨 나갈 위험에 처해 있다. 기술 장벽의 극복은 매번 뇌의 숨겨진 변수와 메커니즘, 비선형성을 드러내며 새로운 수준의 복잡성을 더하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다.”

신경 과학자 앤 처치랜드(Anne Churchland)와 래리 애벗(Larry Abbott) 또한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해석하는 어려움을 강조했다. “이렇게 마구 쏟아지는 데이터로부터 깊은 이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실험 기술의 정교하고 창의적인 적용 외에도 데이터 분석법의 상당한 진보와 이론적 개념, 모델의 강도 높은 적용이 필요하다.” 

뇌의 기능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법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인간의 뇌가 할 수 있는 가장 불가사의한 일인 의식의 생성에 대한 접근을 포함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접근의 틀 중 어느 것도 실험 조사를 거친 결정적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더 많은 이론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가 우리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뇌는 단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지어 벌레의 뇌에서 조차 뇌기능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이론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과학자들에게는 뇌가 무엇인지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DNA 이중나선의 공동 발견자인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이 관찰한 대로 뇌는 진화의 매 순간에 새롭게 나타나 각기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응하며 통합, 진화된 구조체다. 뇌의 작동과 관련한 현재 우리의 이해는 극히 부분적이다. 예를 들어, 신경 과학에서 감각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시각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비해 후각에 대한 연구는 개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각과 시각이 작동하는 방식은 계산적, 구조적으로 다르다. 시각 연구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뇌가 감각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매우 제한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동시다발적으로 통합되고 구성되는 뇌 본연의 특성은 뇌의 이해에 대한 우리의 미래가 불가피하게 단편화되어 각기 다른 부분에 대한 다양한 설명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처치랜드와 애벗에 따르면 “우리가 뇌에 대한 보편적 이해에 도달하게 된다면, 이는 굉장히 다양한 조각들이 느슨하게 이어진 조각보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을 것이다.”

 

뇌는 단순히 자극을 수동적으로 흡수하고 이를 신경 부호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시험하기 위한 가능성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뇌는 정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한다는 것이다.


반세기가 넘게 다양한 조각들로 구성되어 온 뇌 연구는 뇌의 작동 과정이 컴퓨터의 작동 방식과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쓰였다는 것이 이 은유가 앞으로도 계속 유용하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초창기인 1951년, 신경 과학의 선구적 연구자인 칼 래슐리(Karl Lashley)는 그 어떤 기계 기반 은유에도 반대했다.

래슐리는 “데카르트는 왕실 정원의 수압 시스템의 형태에 깊은 인상을 받아 뇌의 작용에 대한 수력학적 이론을 발전시켰다”고 썼다. “우리는 전화 이론, 전기장 이론을 거쳐 이제 계산 기계와 자동 방향타를 기반으로 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가 연관성이 작은 물리적 유사성에 기반한 비유에 빠지는 것 보다 뇌 자체와 행동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유에 대한 이러한 일축은 최근 프랑스의 신경 과학자인 로맹 브레트(Romain Brette)가 뇌기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은유인 부호화(coding) 은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확장되었다. 신경 부호(neural code)라는 개념은 1920년대에 등장한 이래 지난 10년 동안 이 주제에 대해 1만 1000개 이상의 논문이 발표되었을 정도로 신경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브레트의 근본적인 비판은 이것이다. 뇌 연구자들이 코딩이라는 은유를 기반으로 뇌에 대해 고민하면서 의도치 않게 기술적 의미와 표상적 의미를 혼동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뇌에 가해지는 자극과 뉴런 활동 사이에 단순한 관찰로써 생기는 연관성을, 뉴런이 발송하는 코드가 자극을 대표하는 의미가 있다고 잘못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신경 부호에 대한 설명에서 언급되지 않는 부분은 신경망 활동이 최적의 신호 해독 방법에 접근할 수 있는 이상적인 관찰자 혹은 해독자의 역할을 통해 제시된다는 것이다. 이 이상적인 해독자는 '하위 구조(downstream structures)'라는 이름으로 종종 불린다. 그러나 그러한 하위 구조들이 신호를 처리하는 정확한 방법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가장 단순한 신경망 기능 모델에서조차 명시적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MRI 촬영한 뇌의 이미지. ©Getty/iStockphoto
신경 부호의 작동은 일반적으로 도미노와 같이 일련의 선형적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뇌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세계와 이어져 상호 연결된 매우 복잡한 신경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그 뇌를 가진 동물의 행동과 연결하지 않고 단순한 감각과 신경 세포의 집합에 초점을 두게 되면 모든 뇌 활동의 요점을 놓치게 된다.

입력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터라는 관점에서 뇌를 보게 되면, 우리는 뇌가 신체의 일부로서 바깥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구조와 기능을 형성한 진화적 과거가 있는 활성 기관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뇌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헝가리의 신경 과학자 뇨르지 부자키(György Buzsáki)의 최근 저서인 〈뇌의 모든 것 (The Brain from Inside Out)〉에 드러나 있다. 부자키에 따르면, 뇌는 단순히 자극을 수동적으로 흡수하고 이를 신경 부호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시험하기 위한 가능성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한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을 따른 그의 결론은, 뇌는 정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부호화, 배선도(wiring diagrams) 등의 신경 과학적 은유는 필연적으로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과학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사고하는 방식의 중심에서 다뤄진 은유법의 본질이다. 하지만 은유는 풍부하기도 하고, 통찰력과 발견을 허용하기도 한다. 은유를 바탕으로 한 이해가 은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뇌를 컴퓨터와 유사한 기관으로 보는 은유법의 경우에는 그러한 순간이 도래했다는 합의가 아직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은유의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명확하지 않은 것은 이 은유를 무엇으로 대체 할 것인가다.

과학자들은 종종 그들의 관점이 은유를 통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깨달을 때 열광하고, 그 은유가 그들의 연구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새로운 실험을 고안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은유를 생각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 뇌와 관련해 사용된 은유들 대부분은 새로운 종류의 기술과 관련이 있었다. 이것은 뇌와 이의 기능에 대한 새롭고 통찰력 있는 은유가 수력, 전화 통신, 혹은 컴퓨터에 견줄 만한 미래의 기술 혁신에 달려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그러한 혁신의 징후는 없다. 블록체인, 양자 우위(혹은 양자에 관련된 그 어떤 것), 나노 기술과 같은 새로운 분야들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야들이 기술이나 뇌 기능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가장 단순한 두뇌조차도 그 복잡성의 규모는 현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기계도 작고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앞으로 수십 년, 수세기 동안 특이점은 과학이 아닌 공상 과학의 소재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은유법이 설명력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징후가 있다. 단순한 구조에서 인간 의식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신경계의 작동과 관련한 많은 부분이 구성 요소에 대한 분석이 아닌, 시스템이 기능하는 과정에서 예측할 수 있는 창발적 특성(emergent properties, 조직적으로는 나타나지만 개별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특성)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1981년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그레고리(Richard Gregory)는 뇌기능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창발(emergence)에 의존하는 것이 이론적 체계의 문제점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창발의 등장은 결국 더 일반적인 (혹은 최소한 다른) 개념 구조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것이다. 창발의 출현을 없애는 것이 좋은 이론의 역할이다(그렇게 해서 창발에 기인한 설명은 허위가 된다).”

창발에 대한 의존은 창발에도 약한 것과 강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상어에 반응하는 작은 물고기 떼의 움직임과 같은 약한 창발은 행동을 지배하는 규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 언뜻 신비해 보이는 집단행동은 옆 동료의 움직임과 같은 요소나 포식자의 접근과 같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개별 행동에 기인한다.

약한 창발은 가장 단순한 신경계의 활동도 설명할 수 없다. 뇌의 작동을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는 개별 구성 요소들의 활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강한 창발로 되돌아가게 된다. 당신과, 당신이 읽고 있는 이 페이지는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읽고 이해하는 당신의 능력은 단순히 원자의 상호 작용이 아니라 신경 세포와 그 발화 패턴 등 상위 체계를 이루는 신체의 원자들을 통해 나오는 특징에서 비롯된다.

강한 창발은 최근 일부 신경 과학자들에 의해 ‘형이상학적 비개연성(metaphysical implausibility)’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비판받아왔다. 이는 창발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명백한 인과 관계나 설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와 마찬가지로, 이 비평가들은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창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연금술에서 화학으로의 느린 변혁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중요한 역사적 시점에 신경 과학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경 과학의 수수께끼에 직면한 우리에게 창발은 종종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창발은 그렇게 허술한 개념은 아니다. 딥러닝(deep-learning) 프로그램의 놀라운 속성은 결국 이를 설계한 사람들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본질적인 창발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일부 신경 과학자들이 창발의 형이상학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반면,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현대 컴퓨터의 복잡함이나 혹은 인터넷을 통한 컴퓨터 간의 상호 연결성이 극적으로 알려진 특이점(singularity)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이를 즐긴다. 기계가 의식을 갖게 될 것이란 얘기다.

기계가 의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한 많은 (종종 모든 것에 좋지 않은 결과로 끝을 맺는) 가상의 탐구들이 있고, 그러한 주제는 확실히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별개로, 그런 일이 실제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는 없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정신은 물질의 산물이라는 작업 가설에 따라 정신을 기기에서 재현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지어 가장 단순한 두뇌조차도 그 복잡성의 규모는 현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기계도 작고 하찮은 것으로 만든다. 앞으로 수십 년, 수세기 동안 특이점은 과학이 아닌 공상 과학의 소재가 될 것이다.

의식의 본질에 대한 견해는 ‘컴퓨터로서의 두뇌’에 대한 은유를 기계적 유추로 바꿔 놓는다. 어떤 연구자들은 인간의 정신을 신경 하드웨어에서 구현되는 일종의 운영 체제로 보고, 특정 계산 상태로서의 정신이 어떤 기기나 다른 뇌에 업로드될 수 있다고 본다. 제시되는 일반적인 방식을 보면, 이러한 관점은 틀렸거나,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물질주의적 작업 가설에 따르면 인간, 구더기,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 뇌와 정신은 동일하다. 신경 세포와 이의 (의식을 포함한) 작동 과정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뇌와 정신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는 완전히 얽혀 있다. 그런 관점에서 웨트웨어(wetware)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신경계의 용도를 변경해 다른 프로그램을 실행하거나 서버에 우리의 정신을 업로드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데카르트 혹은 그 너머로 회귀하는 비물질적인 견해가 숨어 있다. 이는 우리의 정신이 우리의 뇌 어딘가에 부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른 머리로 옮기거나 다른 정신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일련의 신경 세포의 상태를 읽고 이를 새로운 물질, 유기체, 혹은 인공체에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 때에나 겨우 과학적 존중을 표할 수 있는 견해다.

실제로 어떻게 작용할지 상상하려면, 현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너머의 신경 세포의 기능에 대한 이해와, 역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계산 성능, 그리고 문제의 뇌의 구조를 정확하게 모방하는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론적으로라도 가능하려면 우선 생각을 제외하고 단일한 상태를 유지한 상태의 신경계 활동을 완전히 모형화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는 이 첫걸음을 내딛는 것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적어도 먼 미래까지는 정신을 업로드하는 가능성은 공상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뇌는 컴퓨터다’ 같은 은유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논쟁은 시간 낭비다. 이러한 은유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그 효과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음에도, ‘컴퓨터로서의 뇌’의 은유는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5년 로봇 공학자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는 《사라져야 하는 생각들(This Idea Must Die)》 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에서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것을 특별히 아주 싫어 하는 것으로 꼽았다. 20여 년 전 역사가 라이언 요한슨(Ryan Johanson)은 브룩스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말을 했다. “‘뇌는 컴퓨터다’ 같은 은유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은 시간 낭비다. 이러한 은유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인공지능 전문가 게리 마커스(Gary Marcus)는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것을 강하게 변호한다. “컴퓨터는 간단히 말하자면 입력을 받고, 이를 코드화하고 정보를 처리하여 입력물을 출력물로 바꾸는 체계적인 구성체이다. 뇌는 우리가 이해하는 한, 정확히 그와 같다. 중요한 질문은 뇌가 정보 처리 장치 자체이냐가 아니라, 뇌가 어떻게 정보를 저장하고 코드화하는지, 그리고 코드화된 정보에 대해 어떤 작업을 수행하느냐다.”

마커스는 컴퓨터의 구성 요소와 상호 연결을 조사하여 작동 방식을 해독하는 것처럼 뇌를 ‘역설계(reverse engineer)’ 하는 것이 신경 과학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제안은 예전부터 있었다. 1989년 크릭은 이 아이디어의 흥미로움을 인식했지만 뇌의 복잡한 진화의 역사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에 대해 마치 ‘외계의 기술’을 역설계하는 시도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뇌의 구조를 논리적으로 따르면서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려는 시도는 시작점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에 실패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뇌에는 전체적인 논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는 이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뇌를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으로 종종 사용된다. 이러한 사고 실험은 필연적으로 성공한다. 그래서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 물렁한 장기를 이해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계속 시도하게 만든다. 하지만 2017년 두 명의 신경 과학자들이 명확하게 설계된 기능, 실제 논리와 실제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실험을 실제 컴퓨터 칩을 이용하여 진행했을 때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두 신경 과학자, 에릭 조나스(Eric Jonas)와 콘래드 폴 코르딩(Konrad Paul Kording)은 평소 뇌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던 기술을 동키콩(Donkey Kong)이나 스페이스 인베이더스(Space Invaders)와 같은 비디오 게임을 실행할 수 있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생산된 컴퓨터에 내장된 MOS 6507 프로세서에 적용했다.

먼저 그들은 칩에 들어 있는 3510개의 강화 모드 트랜지스터를 스캔하고, 그 장치를 최신 컴퓨터에서 (10초간의 게임 프로그램 실행을 포함해) 시뮬레이션해 칩의 커넥톰(connectome, 연결망 지도)을 얻었다. 그런 다음, ‘병변(lesions[뇌의 한 영역을 제거함으로써 그 영역의 기능을 유추하는 것과 같이 시뮬레이션에서 트랜지스터를 제거하는 것])’, 가상 트랜지스터의 ‘스파이킹(spiking, 전기 자극)’ 활동 분석과 연결성 조사, 게임 실행 기능으로부터 측정된 다양한 조작이 시스템의 동작에 미치는 영향 관찰 등 모든 범위의 신경 과학적 기법을 적용했다.

이렇게 강력한 분석 무기를 배치하고 칩의 작동 방식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기술 용어로 ‘실측 자료(ground truth)’)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칩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의 계층 구조를 알아내는 데 실패했다. 조나스와 코르딩의 표현대로, 그 기법들은 ‘의미 있는 이해’를 만들어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결론은 암울했다. “궁극적으로, 문제는 신경 과학자들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들이 취하고 있는 접근 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 점이다.”

이 냉정한 결과는 ‘컴퓨터로서의 뇌’의 은유가 가지고 있는 매력, 뇌가 실제로 정보를 처리하고 외부 세계를 표상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진보를 이루기 위해 상당한 이론적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설령 우리의 뇌가 논리적 선형을 따라 설계되었다 하더라도 (하지만 뇌는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개념적, 분석적 도구는 뇌를 설명하는 작업에 완전히 불충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시뮬레이션 작업이 부질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뇌를 모델링(또는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가설을 시험할 수 있고, 정밀 조작이 가능한 확립된 시스템과 그 모델을 연결함으로써 실제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매우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와 관련한 주장들에는 어느 정도의 주의가 요구된다. 뇌와 인공 시스템 사이의 평행적 유사성을 이끌어 내는 어려움에 관련해서는 사실주의가 필요하다.
현재의 역설계 기술은 인간의 뇌뿐 아니라 게임기 아타리(사진)의 칩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도 부적절하다. ©Radharc Images/Alamy
뇌의 저장 용량을 계산하는 것처럼 복잡해 보이지 않는 일조차 막상 시도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한 계산에는 개념적이고 실제적인 어려움이 많다. 뇌는 디지털 장치가 아닌, 자연스러운 것, 진화된 현상이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뇌에서도 특정 기능들이 밀접하게 편재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뇌 영역 사이의 예상치 못한 연결에 대한 새로운 신경 해부학적 발견, 특정 행동과 연결된 영역 없이도 정상 기능할 수 있는 뇌의 놀라운 가소성(plasticity, 고체가 외부의 힘으로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이 없어져도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으로 이런 주장은 반박당한다.

실제로, 뇌와 컴퓨터의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2006년 신경 과학자 래리 애벗(Larry Abbott)은 〈이것의 스위치는 어디에 있는가?(Where are the switches on this thing?)〉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전자 장치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스위치의 잠재적 생물 물리학적 기초를 탐구했다. 억제성 시냅스(신경 접합부)는 ‘하류(downstream)’ 신경 세포를 반응하지 않게 해서 활동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러한 상호 작용은 뇌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신경 세포는 배선도(wiring diagram)를 형성하며 켜지거나 꺼질 수 있는 2진의(binary) 스위치가 아니다. 대신, 신경 세포는 자극의 변화에 반응해 자신의 활동을 연속적으로 변화시키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반응한다. 신경계는 많은 단위로 구성된 세포의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활성화 패턴의 변화에 의해 작동을 변경한다. 네트워크는 활동을 연결하고, 옮기고, 방향을 바꾸게 한다. 인간이 구상해 낸 그 어떤 장치와도 다르게, 이러한 네트워크의 교점(nodes)은 트랜지스터나 밸브와 같은 안정적인 지점이 아니다. 구성 세포가 일관되지 않은 행동을 보이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관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수백, 수천, 수만 개에 달하는 네트워크로서의 신경 세포의 집합이다.

그중 가장 단순한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조차 현재 우리에게는 능력 밖의 일이다. 브랜다이스대 신경 과학자인 이브 마더(Eve Marder)는 바닷가재의 위 속에 있는 수십 개의 신경 세포가 어떻게 리듬감 있는 분쇄를 만들어 내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에 연구의 상당 부분을 투자했다. 엄청난 노력과 창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단순한 두뇌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 작은 네트워크에서 한 구성 요소가 변화하면서 일으키는 효과를 예측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큰 문제다. 한편으로 뇌의 구조는 시냅스의 활동뿐 아니라 신경 전달 물질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 활동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상호 작용하는 신경 세포와 다른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뇌의 기능에는 인구 집단 수준에서의 복잡한 동적 패턴이 관여되어 있다. 나는 이 두 단계의 분석 사이에서 연관성을 찾는 것이 남은 세기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정신 질환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훨씬 더 먼 일이다.

모든 신경 과학자들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새로운 수학적인 방법의 적용이 인간의 두뇌의 무수한 상호 연결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나를 포함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척도의 반대편에 있는 동물들로부터 시작해 벌레나 구더기 같은 작은 뇌에 집중하여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접근 방식으로 간단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먼저 이해한 다음, 이를 더 복잡한 시스템에 적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많은 신경 과학자들은 뇌에 대한 통합된 이론이 우리 가까이에 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뇌 연구의 진보는 필연적으로 단편적이고 느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뇌에 대한 이해가 미래에 어떻게 펼쳐질 수 있는지와 관련해서는 많은 대안적인 시나리오들이 있다. 어쩌면 다양한 계산 과제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이론 과학자들은 모든 뇌의 기능을 알아낼 것이다. 혹은 커넥텀(connectomes, 도식화한 신경망)이 숨겨져 있는 뇌 기능의 원리를 드러낼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방대한 양의 영상 자료들 속에서 어떤 이론이 튀어나올 것이다. 혹은 우리가 일련의 개별적이지만 만족스러운 설명들 속에서 하나의 이론(또는 이론들)을 천천히 구성해 나갈 것이다. 혹은 단순한 신경망 원리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더 높은 단계의 조직을 이해할 것이다. 혹은 생리학, 생화학 그리고 해부학을 통합하는 어떤 급진적이고 새로운 접근법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혹은 새로운 비교 진화 연구가 어떻게 다른 종의 동물들이 의식을 갖고 있는지 보여 주고, 인간 뇌의 기능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혹은 지금껏 상상된 적 없는 새로운 기술이 뇌에 대한 급진적이고 새로운 은유를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관점을 바꾸어 버릴 것이다. 혹은 우리의 컴퓨터가 의식을 갖게 되면서 걱정스럽고도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혹은 인공 두뇌학, 제어 이론, 복잡성과 역동성 시스템 이론, 의미론과 기호학에서 새로운 이론적 체계가 나올 것이다. 혹은 우리는 뇌에는 전체 논리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단지 각각의 작은 부분에 대한 적절한 설명만 가지고 있다고, 그렇기에 뇌에 대한 이론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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