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없는 여자들
6화

에필로그; 기회의 평등을 말하다

고학력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을 위해 우리 사회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공정한 기회다. 어떤 정책이 새롭게 만들어지든, 기회 제공이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설계해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채용 면접은 출신 학교와 출신 지역 등의 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됐다. 면접에 참여한 심사 위원을 제외하고는 채용 과정에 대한 정보가 내부자들에게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면접 질문은 논문 내용에 집중됐다. 난생 처음 받아 보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고, 심사 위원이 내 논문을 세심하게 검토하고 왔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논문의 한계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지적하신 분도 있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지원자의 논문을 이토록 성실히 검토해 줬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른 면접에서 경험했던 말꼬리를 잡거나 비아냥대는 질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내가 얻은 기회에 대해 돌아봤다.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인문 사회 계열에서 보기 힘든 10년간의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약 6년 동안 연구 실적을 쌓으면서 연구 보조원에서 전임 연구원으로 경력 기반을 다졌다. 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위 과정을 마쳤을 무렵 새내기 박사가 차지하기 어려운 강의 기회도 얻었다. 학과에서 신규 박사를 우선 배정한다는 규칙을 새롭게 만든 교수가 있었던 덕이다.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교육과 취업이 연계되는 형태의 가교형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채용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환경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녀의 유무나 나이, 성별이 아니라 능력과 직무에 기반을 두고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양재진 교수, 임재현 교수, 하연섭 교수, 주재현 교수, 정헌주 교수께 특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능력에 기반해 기회를 주려는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다. 내가 성실하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됐다. 기회의 균등은 우리 사회의 성실한 여성들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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