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수 없는 여자들
8화

[북토크] 위커넥트X북저널리즘 ‘일할 수 없는 여자들’

들어가기 전에 


스타트업과 프로페셔널한 경력 보유 여성을 연결하는 채용 플랫폼 위커넥트와 혁신가를 위한 콘텐츠 커뮤니티 북저널리즘이 공동 기획한 북토크 ‘일할 수 없는 여자들’의 강연과 대담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2019년 2월 2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카우앤독에서 열린 북토크는 《일할 수 없는 여자들》의 저자 최성은 대전세종연구원 연구 위원의 강연,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와 곽민해 북저널리즘 에디터가 참여한 토크로 구성되었습니다.

 

공부한 여자들은 왜 밀려나는가


반갑습니다. 대전세종연구원에서 여성과 아동 정책을 연구하는 최성은입니다. 저는 2016년 2월 박사 학위를 받은 새내기 박사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이 《일할 수 없는 여자들》이라는 콘텐츠 제목만 보고 여성의 어려움을 절절하게 토로하고, 공감하는 글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읽어 보면 조금 다릅니다. 최성은의 어려움에 눈물이 나려 할 때쯤에, 정책과 제도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책이죠. (웃음)

행정학 전공자인 저는 여성주의와 젠더 문제를 깊이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이 주제를 연구하게 된 계기도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여성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의 복지 정책과 노동 시장을 연구하는 센터에서 일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한국 노동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리 잡았는지 연구하는 곳이었어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는 곳에서 여성 문제는 주목받지 못했어요.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고, 또 밀려나는 여성의 노동에 대한 연구는 저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정책 연구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리는 구조적인 성차별 문제를, 남녀가 섞여 앉아서 토론할 수 있는 주제로 만드는 것입니다.

공론장에서 토론을 벌이고 협상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차별을 주제로 토론이 열리면 여성 패널이 남성 패널의 차별적인 논리를 반박하려다 감정을 못 이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논리가 아니라 당위로 설득하게 되는 거죠. 저는 차별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회 구조의 문제를 지적한 저의 글이 우리 사회의 성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여성 정책 담당자들과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전장에 나서 싸우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필한 글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국 여성의 일자리


여기 오신 분 중에는 지금 일을 하는 분도, 구직 중인 분도 있을 겁니다. 경력 단절 상태로 아이를 보거나 재취업을 계획하는 분들도 있겠죠. 여성의 일자리 문제에 왜 주목해야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한국 여성의 노동 환경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은 실제로 노동 시장에서 일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일하고 싶은 의사가 있는 여성까지 포함한 수치입니다. 한국은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이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일하고 싶은 마음도 갖지 않는, 취직 자체를 포기한 여성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입니다.

합계 출산율

합계 출산율은 15세~49세까지의 가임 여성 인구가 살면서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 것인지를 추정한 것입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에 관한 기사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최근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명도 되지 않습니다.

경력 단절 정도

경력 단절 정도를 보겠습니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1980년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OECD 국가의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과 경력 단절 정도를 비교 연구했습니다. 연구 대상인 17개 국가 중에 여성의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는 어디였을까요? 일본일까요? 아닙니다. 한국의 경력 단절 수준이 가장 높습니다.

유리 천장 지수

한국이 또 꼴찌인 게 있습니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해마다 여성의 날이 되면 OECD 국가들의 유리 천장 지수를 발표합니다. 국가별로 근무 여건을 파악해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인지 점수로 나타낸 것입니다. 점수가 낮을수록 직장 내 여성 차별이 심하다는 뜻입니다. 한국은 유리 천장 지수가 2012년 이래 매년 가장 낮습니다.

 

기업은 여성에게 투자하지 않는다


2017년 연세대에서 복지 정책을 강의할 때의 일입니다. 한 여학생에게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 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해요. “교수님, 결혼은 여자의 무덤이잖아요. 전 무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어떤 설명도 못 하겠더라고요. 행정학 전공자로서는 출산과 인구, 국가 발전의 상관관계에 관해 이야기하며 출산의 중요성을 언급해야 했지만, 당시 저도 아이를 키우며 일·가정 양립은커녕 균형이 철저히 망가진 삶을 살고 있었거든요. 오히려 “네 말이 맞다”고 해주고 싶었습니다. 결국 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서둘러 강의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의 대학 졸업자 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분에게 여쭤볼게요. 아이를 대학에 보내실 건가요? (아이의 의사를 묻겠다고 하자) 거짓말! 어머니는 무조건 대학을 보내게 됩니다. (웃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학에 가는 것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청소년이, 어머니처럼 아이의 의사를 묻겠다는 부모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얼마나 좋은 대학에 가느냐가 삶의 지위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부모님들은 열심히 공부를 시키고, 아이들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예서처럼 공부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공부해 사회로 나왔더니 뒤처지는 사람이 생깁니다. 언젠가부터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대신 ‘취직만 하자’가 목표가 됩니다. 왜 그럴까요?

저와 같이 공동 연구원으로 일했던 하버드대 출신의 정치학자 에스테베즈-아베(Estévez-Abe)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열심히 공부한 여성이 시장 경제 체제에만 들어가면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고, 낮은 지위에 있을까?’ 에스테베즈-아베는 여성만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노동 시장에서 선호 대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일 잘하는 직원을 뽑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신입 사원을 뽑는다고 처음부터 일을 잘하지 않습니다. 비용을 들여 직원 교육을 해야 하죠. 미래에는 이 직원이 투자 대비 이익을 가져다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같은 조건의 남녀 신입 사원 지원자가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떤 고민을 하실 것 같나요?

많은 돈을 들여 교육한 직원이 직장을 그만두면 기업에는 엄청난 손해입니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 여성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원입니다. 결혼, 출산, 육아 등이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죠. 저는 출산, 육아 등을 가정에서 발생하는 무급 가사 노동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무급 가사 노동으로 인해 여성은 퇴사할 확률이 높은 존재가 됩니다. 결국 기업은 같은 조건이라면 남자 직원을 선호하고, 여성에게 핵심 능력을 교육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환경에서는 여성도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성들은 선배들이 결혼, 출산 등으로 퇴사하는 모습을 보아 왔고, 자신도 언제든 회사를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을 바꿀 확률이 높을 때, 노동자는 보통 어느 환경에서나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일반 숙련을 익히게 됩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나 컴퓨터 활용 능력 같은 것들이 전문 숙련과 반대되는 일반 숙련에 해당합니다.

기업이 여성에 투자하지 않고, 여성도 자신의 전문 역량에 투자하지 않는 환경에서 여성은 전문 기술을 보유한 핵심 인력과 반대되는 주변 인력으로 남습니다.

 

여성이 차별받는 이유


그렇다면 국가가 나서서 기업이 근로자를 쉽게 해고하지 못하게 만들면 어떨까요? 기업이 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국가 규제로 인해 채용 후에는 그 직원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습니다.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해야 하죠. 여성이 출산이나 육아,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그만둘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정부의 고용 보호 제도가 강화되면 기업은 퇴사로 인한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려고 아예 여성을 뽑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고용 보호가 약하면 약해서, 강하면 강해서 여성이 차별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성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육아 휴직을 확대해야 한다고 하죠. 저는 사실 현재의 육아 휴직 제도와 그 활용 실태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부부 중 한쪽이 육아 휴직을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남편 월급은 300만 원이고, 아내 월급은 200만 원이라고 해보죠. 누가 육아 휴직을 쓰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육아 휴직을 선택할 때 가장 큰 고려 대상은 가정의 경제력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를 보면 남편이 아내보다 임금을 많이 받을 확률이 일반적으로 높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여성이 육아 휴직을 쓰는 것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합리적인 결정이 됩니다. 노동 시장에서의 성별 격차가 가정에서의 차별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육아 정책은 은근슬쩍 여성만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 휴직을 한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육아 휴직 제도가 아무리 쓰기 쉬워져도, 이 제도가 남녀 모두에게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여성만 육아 휴직의 당사자가 되는 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육아 휴직이 경력 단절로 연결된다는 점은 더 설명드리지 않아도 익히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제 일자리의 함정


저는 2018년 1월 초에 지금의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이전까지는 비정규직 연구원 자리를 전전하며 궂은일을 많이 했어요. 듣고 싶지 않은 말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지금 직장이 제게는 무척 소중합니다. 게다가 여기는 채용 과정에서 3차 면접까지 지원자의 학력이나 나이, 결혼 여부를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진행했습니다. 제 연구 경력을 토대로 공정하게 평가받은 결과라는 생각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여성의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정규직이면서 근로 시간을 줄이는 시간 선택 근무도 등장했습니다. 저처럼 일자리가 너무나 소중한 사람에게 근무 시간을 줄여 줄 테니 아이를 돌보는 데 시간을 더 쓰라고 하면 그러고 싶을까요? 결혼했거나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배려받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 많은 여성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평균 근로 시간이 하루 여덟 시간인데, 여성들만 여섯 시간을 일하면 남성 동료를 이길 수 있을까요? 여성이 아이를 잘 돌보도록 근무 시간을 줄여 주는 제도는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고 유리 천장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가능합니다. 남녀 모두가 여섯 시간만 일해도 되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웨덴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비정규직 일자리는 아닙니다.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입니다.
 

남아 있는 질문들


여성이 특정 전문직에 더 많이 종사하는 현상은 유리 천장이 깨지고 있다는 증거일까?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를 두신 분 있나요? 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많나요, 여자 선생님이 많나요? 한국에는 유독 여성 비율이 높은 전문직들이 있습니다. 교사나 공무원, 법조인 등입니다. 여성들이 이런 직종을 택하는 이유는 시험을 통해 점수로 사람을 뽑는 채용 방식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정 전문직에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것은 유리 천장이 해소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성 평등한 일자리가 적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의 중요한 역할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것일까?

저는 이 전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일·가정 양립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의 정책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합니다.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한 사회가 유지되려면 남녀가 가정을 꾸리고 2.1명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합니다. 밀레니얼 세대 학생들에게 출산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같은 질문을 남학생에게 하면 다릅니다. “내 능력이 된다면 네 명까지 낳고 싶다”는 대답도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그럴 때마다 남학생들에게 말합니다. “‘정부가 여성을 위한 정책만 만든다’라거나 ‘이럴 거면 여자로 태어날 걸 그랬다’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은 다르다. 너희가 아이 셋을 낳는 가정을 꿈꾼다면, 반드시 여성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라고요.

여성이 노동 시장의 주변부에 머무는 현상이 계속되면 여성은 굳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성이 일하면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혼 여성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을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어요. 자아실현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사회에서 멋지게 일하기 위해 꿈을 키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출산 장려금이 아니라 핵심 노동 시장 안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케이트가 “예스!”를 외칠 수 있었던 이유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케이트는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느라 늘 산발 머리를 하고 다닙니다. 경쟁 상대인 남자 동료는 “지금쯤 네 남편은 젊은 베이비시터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며 빈정대죠. 이런 상황에서 상사가 제안합니다. “내가 너와 큰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싶은데, 전 세계로 다녀야 해. 가능하겠어?”라고요. 케이트가 말합니다. “날 힘들게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럴 때 대답은 하나다. 예스다!”

케이트는 어떻게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영미권 국가의 6개월 된 자녀를 둔 여성의 유급 노동 복귀 비율을 보면, 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노동 시장으로의 복귀가 빠릅니다. 게다가 다 정규직으로 복귀합니다. 개인이 빠르게 일자리를 찾으려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노동 시장에서 이런 여성들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미국은 스웨덴과 같은 복지 국가도 아닌데 말이죠.

스웨덴은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정규직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에 반해 노동 시장이 유연하고, 해고와 이직이 자유롭습니다. 그런데도 유자녀 여성의 정규직 복귀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미국의 특징은 기업과 개인이 1:1로 직무와 능력에 따라 계약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사람을 뽑을 때도 기수로 뽑고, 임금도 단체로 정해집니다. 그러나 1:1 계약 상황에서는 여성이 자신이 처한 환경과 능력에 맞추어 계약할 수 있기에 업무 역량에 따라 계약 내용이 달라지더라도 정규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공공 보육 정책이 부족한 나라이지만, 그래서 인건비가 낮은 베이비시터 등의 돌봄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아이를 대부분 엄마가 돌보기 때문에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높아져도 돌봄 시장이 그만큼 커지지 못했는데요. 미국에서는 정규직 급여 수준의 여유가 있다면 아이를 엄마가 돌보지 않아도 됩니다. 집에 있는 것보다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더 나은 선택지입니다. 미국에서는 노동 시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이 미래의 가정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일할 수 있도록 


회의 시간에 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저녁 대신 점심 회식을 하자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실장님께서 “아, 그렇죠. 여자 박사님들은 아이를 봐야 하니까 칼퇴근해야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다시 답했습니다. “실장님, 아이를 가진 부모든 아니든 요즘은 대체로 저녁 회식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많이 당황하시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성차별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이 존재합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부모님이 고등학교 보내 준다고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사교육에 투자하지 않을 수가 없고, 모두가 명문대 입학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도, 이전 세대보다 잘살기는 힘듭니다. 이런 세대를 위해 일자리 정책이 더 필요합니다. 여성이 주변 노동 시장에 머물지 않고, 핵심 노동 시장에서 일할 기회를 공정하게 줘야 합니다.

저는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이죠. 유명한 연구원도 아니고, 시도의 조그만 연구원에서 시정 연구를 합니다. 그래도 내일도 나가서 일할 거예요. 입사한 이래로 일요일에 거의 매번 출근했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저의 삶의 질은 최고입니다. 꿈꾸던 자리에서 일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께도 그런 사회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일하겠습니다. 
 

토크; 원하는 일터에서 원하는 만큼 일하기 위해


곽민해: 박사님의 발표를 통해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이해했다면, 이번에는 그래서 지금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최성은 박사님과 함께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님께서 토크 패널로 나오셨습니다. 최성은 박사님께서는 여성 정책을 만드는 공공 파트에 있고, 김미진 대표님께서는 여성 취업을 위해 기업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만큼 민간 파트의 현황에 대해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김미진: 안녕하세요, 위커넥트 대표 김미진입니다. 위커넥트는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한데도 일을 하지 못하는 경력 보유 여성들이 스타트업이나 소셜 벤처 등에서 유연하게 일할 수 있도록 채용 기회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보통 기업은 근로 조건이 경직된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경력을 갖춘 여성들이 공백 이전에 하던 일을 이어서 하기가 어렵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병행하기도 힘듭니다. 위커넥트는 이런 여성들을 위해 기업의 문턱을 낮추고 기회를 여는 일을 합니다.

곽: 김미진 대표님께 먼저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성의 일과 커리어 문제에서 기업이 굉장히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구체적으로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김: 위커넥트를 처음 알게 된 회사에게 저희의 후보자를 설명할 때 훌륭한 경력과 탁월한 역량을 보유하고도 육아로 인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고학력 인재이자 경력 공백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제대로 된 실력 평가를 받지 못하는 숨은 실력자라고 설명합니다.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는 경력 보유 여성을 누가 먼저 채용해서 전문성을 강화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라고요.

현재는 여성 인재에게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성과를 높이는 좋은 전략이라는 것을 기업들이 조금씩 알아 가고 있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야기를 잘해도 이전 채용 방식을 따르던 기업에서는 납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서비스 초기에는 ‘위커넥트 후보자들이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 보여 줘야지’라는 마음이 컸어요. 위커넥트를 통해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한 파트너들의 역량 덕에 ‘위커넥트를 통해 채용한 경력 보유 여성들은 일을 잘한다’는 선례들이 쌓였습니다.

특히 변화가 빠른 스타트업과 같은 조직에서는 경력 보유 여성을 유연하게 채용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식과 행동 변화가 가장 더딘 곳은 공공 기관과 대기업이에요.

최성은: 중요한 말씀을 하셨어요. 정부와 기업이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지를 알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까 미국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2000년대 미국에 첨단 산업 바람이 불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는 위기감이 도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들이 다양성 전략을 펼치며 성별이나 인종을 가리지 않고 능력만 있다면 채용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대상이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이 교육 내용에 대한 흡수도 빠르고 성과도 좋았기 때문이죠. 기업에서 차별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니 여성이 두각을 드러낸 겁니다. 한국 기업들도 어떻게 하면 우수한 여성 인력을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해요.

곽: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지난 발표에서 정부의 여성 정책에 공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런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 궁금합니다.

최: 성 인지 예산서라는 게 있습니다. 예산을 편성, 심의할 때도 양성이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예산이 잘 편성되기 위해 가이드가 되는 기술서를 쓰는데, 이를 성별 영향 평가서라고 합니다. 성 인지 예산과 성별 영향 평가는 대표적인 성 주류화 제도예요.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운영돼야 여성이 얼마나 정책 혜택을 덜 받고, 남성이 더 받는지 제대로 살펴볼 수 있을 텐데, 공무원 중에는 여전히 제도의 필요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 주류화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거고요.

또 다른 과제는 직업 시장에서의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겁니다. 새로 일하기 센터(이하 새일센터)라고 경력 보유 여성과 일자리를 연결하는 일을 하는 정부 지원 사업이 있습니다. 문제는 고학력 여성이 재취업하고 싶을 만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인데요. 새일센터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의 평균 월급이 160만 원~180만 원입니다. 경력 공백 이전에 300만 원을 받던 여성들에게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정부가 더 많은 수요처를 발굴해야 하고, 공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위커넥트처럼 좋은 사업을 하는 젊은 세대를 지원해야 합니다. 여성 친화적인 기업에 포상도 해주고, 세제 인센티브도 주면 좋겠습니다.

곽: 두 분 모두 여성이 기업과 국가의 생산성에 필수적이라는 합의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일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부에서 여성 정책이나 지원 기관을 늘리고 있지만, 운영 인력이나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최: 우리 사회의 일과 삶 균형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여성 정책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만의 일이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성 인지 예산서도, 성별 영향 평가도 여가부에서 시행하는 제도이니 ‘또 피곤하게 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거죠. 여성 문제가 중심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중앙 정부의 여성 정책은 여성가족부에서 대부분 맡고 있어요. 일각에서는 여가부를 없애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이 주장이 여성 정책을 없애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결국 전제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제가 다음 연구를 발표할 때는 남녀가 반반 정도로 왔으면 해요. 여성들이 같은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성별을 가지고 있거나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도 한자리에 모여서 비판을 하든 대화를 하든 승부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곽: 기업은 여성의 일자리와 경력 단절에 대한 책임이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김: 통계청에서 매년 여성의 경력 단절 수치와 원인을 분석한 자료를 냅니다. 주된 원인을 여성의 결혼, 임신, 출산, 육아로 꼽고요. 저는 이런 통계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경력 단절의 원인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할 수 있어서입니다. 경력 단절이나 공백을 실제로 경험한 분들이 가장 크게 절감하는 이유는 근로 조건, 즉 장시간 노동 문화나 9시 출근-6시 퇴근이라는 경직된 근로 시간, 성차별적인 직장 문화였습니다. 경력 단절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다는 거예요.

여성 채용이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면에서 현명한 투자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조직 내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단체 카탈리스트(Catalyst)가 미국의 경제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과 재무 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여성 관리자 비율을 일시적으로 늘리거나 상징적으로 여성 임원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지속해서 여성 인력을 활용하고 기업 내에서 여성을 관리자나 임원급으로 육성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더 많은 여성이 일터를 떠나도 돌아올 곳이 있고, 또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여러 선택지가 있는 게 중요합니다.

곽: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어요. 앞서 여성이 육아 휴직을 더 많이 사용하는 배경에는 임금 격차라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런 현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여성은 근로 의욕이 낮다’거나 ‘여성은 리더십이 부족해 고위직에 못 올라가는 것’이라는 편견에 동화되는 것 같습니다. 여성 인력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합의를 만들기 위해 참고할 만한 선례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 여러분, 스웨덴 아시죠? 스웨덴이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100만 명 이상이 해외 이민을 갔을 정도로 척박한 나라였는데, 이제는 살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오릅니다. 스웨덴은 남자든 여자든 경제를 이끌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세우고 출발했죠. 그 나라도 모성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육아 휴직을 관대하게 주기는 했지만, 여자만 휴가를 쓴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부부가 서로의 육아 휴직을 양도할 수 있는 부모 휴가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래도 엄마만 육아 휴직을 쓰는 건 변하지 않았어요.

누구나 일하는 것이 당연한데, 여자들만 일을 못 하고 있으면 안 되니까 육아 휴직을 쓰지 않는 남성에 페널티를 주고 남녀 모두 육아 휴직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보육 정책에서도 ‘국가가 아이와 노인을 돌볼 테니 보통의 성인은 나가서 일하라’는 것이 스웨덴의 정책 기조입니다. 우리나라 교육부에서 차용한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문구도 스웨덴에서 처음 만든 말일 거예요. 스웨덴은 아이 돌봄이 부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곽: 육아 휴직을 남녀 모두 쓰는 것의 중요성, 여성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독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 지속해서 말씀해 주고 계신데요. 파트타임 등 유연한 일자리에 대해서는 그렇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자리마저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있으니까요.

김: 위커넥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었어요. 문득 ‘여성의 경력 단절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하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여성에게 일과 가정 모두 다 해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꼴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여성을 더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고, 불평등한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죠. 고민이 깊어질 때쯤 함께 스터디를 하던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그 위험을 인식하고 사업을 하는 것과, 전혀 모른 상태에서 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라며 이런 말을 해줬어요. “지금은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선택지조차 없잖아. 네가 일단 선택 가능한 옵션을 만들어 두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면 돼.”

그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커넥트의 파트너 중에는 일주일에 20시간만 일하거나 주3일 근무, 원격 근무 등 다양한 형태로 일하고 있는 분들이 생겼어요. 가끔 위커넥트의 파트너들을 만나면 각 회사 대표님이 없을 때 조용히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하실 거 아니잖아요?” 한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일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겠지만, 저는 이미 퇴사를 한 번 이상 경험했다면 나만의 커리어 항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 20시간만 일해도, 다음에는 풀타임이나 프리랜서로 일할 수도, N개의 직업을 가질 수도 있어요. 위커넥트가 지금의 일을 통해 다음으로 향하는 여정을 만드는 데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죠. 물론 이런 커리어 고민이 여성에게만 해당하고, 남성에게는 그 누구도 시간제 일자리를 권유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죠. 해결할 것이 참 많습니다.

최: 시간제 일자리의 필요성은 당연히 인정합니다. 시간제 일자리가 여성에게 궁극적으로 독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일자리의 가치는 개개인에게 다 달라요. 그 일자리가 함정이 아닌 가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있고요. 대학원을 졸업한 이들에게 시간 강사는 대표적인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인데요. 제 경험으로 이야기하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며 강의 시장도 경쟁이 치열한 곳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학위를 받은 대학에서 강의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선배들의 일자리를 뺏는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저와 전혀 친분이 없고, 수업도 안 들었던 젊은 교수가 학과장이 되더니 룰을 바꾼 거예요. 모든 박사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강의 평가가 높은 사람만 살아남고 낮은 사람은 퇴출당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운 좋게 모교에서 강의할 수 있었고, 강의 경험이 지금의 커리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시간제 일자리는 다행히 가교형이었던 거죠. 이런 자리라면 얼마든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여성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하는 위커넥트 같은 플랫폼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곽: 20대 여성들은 결혼이나 출산 등이 커리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너무 많이 들어 왔기도 하고, 또 새로운 삶의 형태로서도 비혼이나 비출산을 지향합니다. 지금의 여성 정책은 대체로 육아 정책, 가족 정책 이런 방향으로 맞춰져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김: 현재 정부 정책은 남성과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 흔히 ‘정상 가족’을 상정하고 있어요. 전 앞으로 비혼 여성과 남성, 무자녀 기혼 부부가 빠르게 늘어날 거로 전망해요. 특히 비혼 여성의 일자리 문제는 곧 매우 심각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는 일본을 10년, 20년 주기로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데요. 일본은 비혼 여성이 노쇠한 부모를 돌보느라 일자리를 잃고, 부모가 사망한 이후 빈곤 상태에 이르는 비율이 크게 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도 유자녀 기혼 부부 중심으로 정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실제로 통계청에서 2017년에 내놓은 장래 가구 추계 자료에 따르면 2030년~2040년쯤에는 1인 가구가 모든 가구 유형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거라고 합니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과 제도가 1인 가구가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제도나 정책도 혼자서는 못 가요. 일자리, 복지, 고용 안정성 등과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1인 가구의 일자리와 더불어 복지 정책이나 전반적인 제도 방향이 인구 가계 추계와 같은 속도로 전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의 응답;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려면 남성에 준하는 능력을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뛰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전제가 사실일까요?

김: 권리, 책임, 의무를 포함해 동등한 조건을 말할 때 가장 자주 쓰는 비교 방식이 임금일 텐데요.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가 한국입니다. 한국 고용 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성별 임금 격차는 남성 프리미엄(남성이라는 이유로 생산성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과 여성 손실분(여성이라는 이유로 생산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이라는 설명할 수 없는 요인 47.9퍼센트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요인 52.1퍼센트가 합쳐진 결과라고 합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연령, 근속 연수, 학력, 규모 등이죠.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를 이루는 절반의 요인이 남성 프리미엄과 여성 손실이기 때문에 개인의 차원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일과 커리어를 고민하는 상황에서는 ‘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공감합니다. 저는 남성보다 더 뛰어난 여성만이 남성과 같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차별은 언제나 존재해 왔고, 이것을 뛰어넘는 것이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 시대라면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나만의 성취와 성공의 기준을 세우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 항로에서 얻은 기술과 재료로 다음을 모색하되, 회사와 직급이라는 타이틀보다는 나만의 전문성 서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커리어 비전을 기반으로 꼼꼼하게 연구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다른 하나의 방법은 나의 동료가 경험하는 불합리함, 후배가 겪을 수 있는 차별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 즉 연대입니다.

최: 사회 규범 탓인지는 몰라도 여성들이 유독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습니다. 저도 아이 낳고 학교 돌아왔을 때 그랬어요. 아이가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처음 1년 동안 언어 기능이 많이 퇴화합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맘마”, “우리 딸, 뽀뽀”, “사랑해” 정도가 전부니까요. 학교에 갔더니 단어가 생각이 안 나요. 그리고 수업을 듣는데, 어린 학생들이 저는 잘 모르는 통계 툴을 사용하고 학회 발표도 열심히 하더라고요.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이 낳기 전이었다면 동료와의 격차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거예요. 잠을 덜 자고 하면 되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다급해졌어요. 저는 집에 가면 젖비린내 풍기면서 아이 밥을 먹여야 했으니까요. 그런 시간을 겪으며 제가 얻은 교훈은 나만의 절대적인 시계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자꾸 남과 나를 비교하면 필요 이상으로 위축돼요. 때로는 옆 친구와 관계를 끊고, 나만의 계획에 따라 성취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도 용기 내서 해외 학회도 신청하고, 남편 끌고 아이 업고 홍콩에서 발표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하니까 어느 순간 회복이 되더라고요. 원래 썼던 말도 잘 나오고, 강의 평가에서도 1등을 하고, 블라인드 경쟁에서 해외 유학파를 제치고 뽑히는 일도 생기더라고요. 자기만의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칭찬하며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면 좋겠어요. 서른여덟에 첫 정규직 직장을 가진 저를 보면서요.

사회적 경제 분야의 일자리가 여성 일자리의 대안이 될 거라고 보시나요? 사회적 경제 분야가 임금이 적지만 진입 장벽이 낮아서 여성들이 쉽게 투입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최: 전제 자체는 반대해요. 사회적 경제 분야가 진입 장벽이 낮다는 건 해보지 않은 분들의 이야기라고 봐요. 하지만 각 시도에서 지원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도전할 기회가 많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취지를 잘 살리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도 기여하고, 국가는 공공이 다 해결할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돌볼 수 있어요. 다만 급여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고, 창업을 권하기 전에 폐업의 안전망을 만들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작할 때만 보조금을 주고 끝내지 말고, 사업 과정마다 컨설팅을 지원하고 실패했을 때 재기할 수 있는 안전망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와 같은 프로세스가 자리 잡히면 괜찮은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커넥트를 통해서 채용된 파트너, 혹은 일반적으로 경력 보유 여성이 공백 이후 일을 시작했을 때 이전 임금 대비 얼마 정도의 급여를 받나요? 위커넥트에서 급여 설계에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나요?

김: 위커넥트는 채용 확정된 파트너의 급여를 정할 때 절대 관여하지 않습니다, 급여는 그 회사의 고유한 기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제로 채용하는 경우, 어떻게 급여를 계산해야 할지 고민하는 대표님들이나 채용 담당자에게는 가이드라인을 제안합니다. 주 40시간 풀타임 대비 비율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풀타임으로 근무했을 때 연봉이 4000만 원이라면 주 30시간 근무할 경우 75퍼센트에 해당하는 3000만 원으로 계산하는 것이죠.

영국에 위커넥트와 유사한 타임와이즈 잡스(Timewise Jobs)라는 채용 플랫폼이 있습니다. 타임와이즈 잡스에 들어가면 수백여 건의 채용 공고가 등록되어 있는데, 급여란에 ‘pro rata’라는 표현이 즐비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풀타임 급여를 일하는 시간만큼 비율로 계산해서 지급한다는 의미입니다.

저희도 파트너가 정규직이되 시간제로 채용되는 경우 근로 계약서에 근로 시간과 이에 따른 급여, 일한 시간(비율)에 따른 급여라고 명시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그래야 추후 이직 시 연봉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습니다.

위커넥트에서 경력 보유 여성이나, 유연 근로 채용 경험이 없는 기업도 만나신 적이 있나요? 어떤 점에 집중해 설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 위커넥트가 2018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할 때는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인식하고, 가치를 수용해 줄 가능성이 높은 소셜 벤처 위주로 채용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소셜 벤처라도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왜 그런 상황에 놓였는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도 있었고, 반대로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수혜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40여 명의 파트너가 생긴 2018년 2월 현재는 저희를 통해 채용한 회사도, 그렇지 않은 회사도 경력 보유 여성을 채용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저희 후보자를 포함해 많은 경력 여성이 전문 숙련보다는 일반 숙련을 익혀 온 경향이 있어요. 어디에서나 잘 적응하고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이기는 하지만 각 회사의 핵심 직무를 더 많이 수행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해요. 그러려면 경력 보유 여성을 유연하게 채용하되, 임금 수준이나 여러 근로 조건이 대기업과 비교해서도 나쁘지 않은 기업들이 더 늘어나야 합니다.

15년 동안 직장 일을 했고, 7살과 5살 된 자녀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편과 육아를 9대 1로 분담하며 버텼고, 어머니께서 지방에서 올라와서 아이들을 봐주셨어요. 회사에서 앞으로 더 올라가려면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연로하신 부모님 대신 부부끼리 육아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시간제 일자리를 택하면 지금까지 해온 것이 다 무너질까 고민입니다.

최: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더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저는 입학 전까지 부모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남편과 아이를 봤어요. 대학 내의 직장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었고, 연구원이라 칼퇴근도 가능했어요. 초등학교 입학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 대전으로 이사하며 급하게 구한 이모님께 아이를 맡겼는데, 문제가 조금 있었어요. 아이도 새 학기 증후군을 심하게 앓아서, 시어머니의 도움을 2개월 넘게 받았습니다. 물론 돌봄 비용을 지불하고요.

시어머니마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지금은 다시 도우미를 구했어요. 저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돌봄 비용으로 씁니다. 아이가 혼자서 등·하교 가능한 나이가 될 때까지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고 일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지만 아이를 돌봐 줄 분을 구하고, 15년 경력을 이어가시기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곽: 이제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기 오신 이유와 고민은 다 다르겠지만, 원하는 자리에서 원하는 만큼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 저희가 행사를 기획한 이유는 ‘우리 너무 힘들어, 화가 나’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변화를 위해 더 집중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위해서였어요. 정부와 기업,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보고 싶었어요. 각자의 상황과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같이 연대하고 도우며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그런 자리를 계속 만들 테니까 관심 부탁드리고, 위커넥트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후보자들과 함께하세요!

최: 빨리 나이 들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30대는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슬픈 시간이었어요. 최성은이라는 여자에게 부여되는 역할 갈등으로 인해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친한 선배가 제 사주를 보시더니, 30대가 안 좋다고 했어요. 중년부터는 잘 풀린다고 위로해주기는 했어도 큰 기대가 없었는데요. 저에게는 서른 여덟이 중년의 시작이었어요. 열심히 일하고 싶은 직장을 얻었고, 책을 내고, 오늘처럼 찬란한 자리에도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도 이런 기회가 생기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고, 나만 힘든 것 같지만 김미진 대표님처럼 좋은 취지를 가지고 일하는 분들과 저의 글을 세상으로 끄집어내 준 에디터님처럼 세상에는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의 찬란한 순간에 저에게 꼭 연락 주세요. 언제든 응원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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