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4화

다크 나이트와 조커는 정말 다른가?

“너로 인해 내가 완성된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을 향한 조커의 대사

 

오바마와 트럼프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오바마와 트럼프만큼 완벽하게 이질적인 존재를 찾기는 어렵다. 출신 배경에서부터 정치 스타일, 패션, 음악 취향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공통점이 없다. 정치 노선에서도 오바마는 클린턴의 계보를 잇는 제국의 다크 나이트이고자 했고, 트럼프는 이를 기득권이라 규정하며 흔들고 조롱하는 조커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오바마와 트럼프는 제국이 황혼기를 맞이했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든 이 시대의 결에 맞추고자 기존 패러다임의 혁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의외로 통하는 바가 있다.

사실 오바마와 트럼프에게는 혁신해야 할 공통의 기성 질서가 있다. 이는 클린턴의 리버럴 개입주의와 부시의 신보수주의로 상징되는 워싱턴 기득권이다. 오바마의 측근 벤 로즈(Ben Rhodes)의 회고록인 《있는 그대로의 세계(The World As It Is)》를 보면 실제로 임기 동안 한 치도 교과서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외교 안보 라인의 완고한 주류 엘리트에 오바마는 진절머리를 낸 것으로 알려진다. 벤 로즈는 이 책에서 이들 기득권을 한 줌의 무리를 의미하는 ‘블로브(Blob)’라고 지칭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는 오바마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세상을 미국식으로 개종하려는 기존 워싱턴 주류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다. 그는 심지어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국인 북한에 대해서도 대동강 변에 트럼프 타워만 세울 수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범죄에는 눈을 감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당적을 떠나 클린턴, 부시 2세가 제국의 번영에 대한 낙관주의 계보라면 오바마, 트럼프는 제국의 퇴조에 대한 비관주의 계보다. 전자가 현상 유지파라면 후자는 혁신파다. 단, 혁신의 강도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트럼프의 집요한 중국 때리기에 놀란 지식인들은 이를 트럼프와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등 주변 참모들 특유의 난폭한 패권주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왜 오바마가 유약하다는 비난을 감수해 가면서 집요하게 중동에서 발을 빼려 했는지, 그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바마는 어떻게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단계적 철군을 진행해 시리아라는 진흙탕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 자국민에게 잔혹한 화학 가스를 사용한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해 클린턴 시기 같으면 당연히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군사 개입을 추구했을 텐데 오바마는 유약하다는 비난을 받아가면서 시리아와 외교적 협상으로 문제를 봉합했다. 시리아에 개입하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노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집권 민주당 내 많은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보장하면서까지 이란 정부와 타협했다. 항상 제국의 강력한 힘과 오만 속에서 상대의 선(先)양보를 강조했던 미국의 패턴으로 보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은 물론, 평화적 핵 이용권의 보장은 엄청난 양보가 아닐 수 없다. 상대적으로 매파이자 현상 유지파인 힐러리는 당시 이란과의 협상을 불편해했다. 결국 오바마는 의회의 높은 문턱을 고려해 이란과의 협정 대신 합의라는 낮은 수준의 타결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는 이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해 버렸다. 북한에 대해서는 기존의 절묘했던 이란 합의보다 훨씬 높은 문턱을 제시하고 있다.

오바마는 도대체 왜 자신의 정치 자본을 크게 훼손해 가면서까지 중동에서 발을 빼려 했을까? 유약한 기질 때문일까? 천만에. 오바마는 자신에게 미리 수여한 노벨 평화상 수상 자리에서 정의의 전쟁을 태연히 역설하여 심사위원들을 경악하게 한 인물이다. 답은 미국 중심의 제국에 맞서 깨어나는 용, 즉 중화 제국의 부상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호전적 전쟁 위협으로 파국을 막기 위해 타협한 측면이 강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근저에는 항상 중국 변수가 있었다. 트럼프와 달리 학습에 매우 능한 오바마는 집권 초기의 낙관주의와 달리 미국 제국의 퇴조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나토에 가입하도록 하는 부시의 노선을 승인한 확장주의자 오바마는 후보 시절의 오바마다.

오바마는 미국이 걸프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우방국들의 팔을 비틀어 전쟁 비용을 부담시키고 확장적인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 갔다. 동맹들은 오바마의 개인적인 매력에는 매혹되었지만 실제 어젠다에서는 그리 협력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중국이라는 길들여지지 않는 거대한 용의 부상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중국이 자유 민주주의 네트워크 속에서 길들여질 것으로 순진하게 믿었던 클린턴 진영의 환상을 계속 유지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달라졌다.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공세적 태도는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오바마의 주변 리버럴 참모들은 점차 중국에 강경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오바마의 핵심 참모인 국가 안보 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인 제프리 베이더(Jeffrey Bader)는 클린턴 시기의 대중 협력 관계에 기대를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보다 전략적인 경쟁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시진핑을 만나서는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강한 경고를 보냈고, 기후 변화에 대비한 탄소 배출량 의무 감축과 검증 약속 같은 전향적 조치를 주문했다. 물론 시진핑은 여기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중국은 이미 시진핑 시대에 접어들면서 방어적인 도광양회(韬光养晦)를 벗어나 확장적 제국으로의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여전히 선진국의 책임과 윤리에는 관심이 적었다. 그 덕분에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 변화 회의는 아무런 실속 없이 끝났다. 오바마의 무능에 실망한 NGO 운동가들은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2010년 아세안 지역 포럼에서는 힐러리 국무장관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이슈화해 중국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선언하기도 했다. 결국 2012년 미국 신국방 전략 지침은 아시아·태평양을 최우선 관심 지역으로 분류하고 이 지역에서 군사 전력을 대폭 확충하기 시작했다. 사실 오바마 시절을 회고해 보면 오늘날 트럼프의 난폭한 중국 길들이기는 중국이 이미 오바마 시절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들은 트럼프를 과소평가했느니 하면서 부정확하고 지엽적인 반성에 그치고 있다.

 

고상한 거짓말과 천박한 진실


물론 오바마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TPP는 오바마의 국제주의와 트럼프의 보호주의라는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로 인용된다. 사실 트럼프는 집권하면 결국 협정의 강점을 학습할 것이라는 일각의 희망적 생각과 달리 이를 단칼에 거부해 버렸다. 하지만 트럼프가 애초에 전혀 이해하지 못한 점은 사실 이 협정의 핵심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오바마의 신의 한 수였다는 사실이다. 오바마가 2015년 한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협정은 노동과 환경 부문에서 아태 지역에 엄격한 표준을 만들어 중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네트워크에 사실상 편입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1] 오로지 오바마의 유산을 뒤집어 정치적 점수 획득에만 혈안이 된 트럼프의 눈에는 TPP가 그저 중국에 무임승차를 제공하는 세계 무역 기구(WTO)나 IMF와 같은 유약한 장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트럼프가 그토록 미워했던 TPP가 자신이 북미 자유 무역 협정(나프타·NAFTA) 재협상 업적으로 내세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서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통상 문제 전문가인 대구대 김양희 교수는 《동향과 전망》 2019년 봄호에서 USMCA는 오바마의 중국 견제 목적이 매우 강화된 형태로 구현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지적 재산권 문제는 당연하고 중국의 국유 기업에 대한 견제 장치까지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과도한 미국 무역 의존에 시달리는 캐나다 등이 중국과의 양자 FTA를 시도할 가능성조차 효과적으로 봉쇄했다. 처음에는 격렬히 반발하던 캐나다도 미국 무역 의존도라는 약점을 가지고 난폭하게 흔드는 트럼프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USMCA는 사실상 중국 봉쇄 조약이자 향후 미국의 패권주의에 기반한 모든 양자 협정의 기준선이다. 결국 이 무역 협정만 놓고 보면 오바마가 세련되게 중국을 옭아매려고 시도했던 것을 트럼프는 난폭한 방식으로 완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혼돈의 세계에서는 난폭함이 합리주의를 이긴다.

오바마와 트럼프의 또 다른 큰 차이로 지적되는 북미 정상 회담 성사조차도 사실 미묘한 맥락을 살펴보면 연속성이 존재한다. 이단아인 오바마와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에서 둘 다 독재자와 조건 없이 못 만날 것이 없다는 말을 해 구설수를 빚었다. 오바마가 애초에 북한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은 것은 북한이 주장하는 위성 발사가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유사하게 악의 축으로 간주되는 이란과는 빅딜을 감행했다. 중동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한반도에서는 사이버 전쟁 같은 저강도 전쟁을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압박과 비공개 군사주의 노선을 이어 가던 트럼프는 북한의 ICBM 완성이라는 예상치 못한 수세적 조건에서 대화로 선회했다. 사실 이전의 클린턴, 부시도 트럼프와 같은 딜(deal)을 추구했다. 매우 다른 이념 성향의 대통령이지만 둘 다 압박과 군사주의를 시도하다가 무용함을 깨닫고 집권 후반기 단계별 상호주의로 선회했던 것이다. 클린턴 시절 페리(William Perry) 전 국방장관이 주도한 페리 프로세스가 바로 그것이다. 애초에 북한에 경제적으로 매력적인 미래를 보여 주면 쉽게 포기하고 나올 것이라 착각했던 트럼프는 싱가포르 정상 회담 이후 한동안 진전이 없어 국내외적으로 큰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북한에 대해 선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은 과거 정부들이 시도한 낯익은 실험이다. 하지만 트럼프도 전임 정부처럼 다시 페리 프로세스를 중요한 옵션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국가 안보 이슈에서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이 크게 좌우하기에는 오랜 역사적 맥락과 상호 전략적 관계의 지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오바마의 달콤한 공감과 소통 능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유주의는 적법성과 불법성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양극화와 문화 정체성의 괴리가 극심한 사회에서 공감과 합의만으로 사회가 작동되지는 않는다. 오바마의 자유주의는 다크 나이트가 불법성에 의존하는 것 같은 강한 자유주의다. 그는 출범 초기에 NGO 운동가들을 초대해 놓고 ‘예방적 구금’의 필요성을 역설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실 피터 프레이즈가 《네 가지 미래(Four Futures)》에서 지적하듯 오바마 정부 시절은 범죄 혐의가 있는 이들을 예방적으로 자동 추적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발달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시대였다. 디닌(Patrick Deneen) 또한 《왜 자유주의가 실패했는가(Why Liberalism Failed)》에서 오늘날 자유주의가 팽창하는 감시 권력과 법적 강제, 경찰력 및 행정적 통제력이 동반되는 거대한 ‘딥 스테이트(Deep State)’에 의존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오바마와 트럼프의 차이는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의 차이다. 오바마는 세련되게 중국의 부상을 누르고자 하고, 트럼프는 난폭하게 꺾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오바마가 상호 협력과 견제의 강온 양면 전술을 구사했다면, 트럼프는 봉쇄를 통한 일방적 항복을 선호한다. 트럼프의 봉쇄 노선은 오늘날 인도·태평양까지 대대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공화당의 영웅인 레이건이 고르바초프와 1987년 체결한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탈퇴 움직임, 우주 전략 사령부 창설을 통한 중국과의 신(新)냉전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트럼프의 시대는 위에서 언급한 팔 비틀기를 통한 USMCA의 대성공이나 국가 비상사태 선언 조치가 말해 주듯 우아함이 아니라 난폭함의 시기다. 과거 레이건의 일본 팔 비틀기를 통한 플라자 합의 및 스타워즈 구상 시절처럼 말이다.

레이건과 트럼프의 공통점은 이 마초적 행보가 사실은 불안감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원래 자기 힘에 자신 있는 조폭 두목들은 유연한 법이다. 하지만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중국은 과거 일본처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덩치가 아니다. 트럼프의 야심 찬 리쇼어링(Reshoring·제조업 본국 불러들이기 전략)에도 불구하고 실적은 미미하다. 멕시코와의 양자 협정에서 자동차 생산 공장의 높은 임금 수준을 강제하는 시도가 과연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불러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미국의 대표적인 첨단 기업인 애플은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고, 그렇다고 임금 수준이 높은 미국으로 생산지를 옮겨 오기도 힘들다. 길게 보면 중국 및 동맹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난폭한 패권 휘두르기는 세계 경제 사슬 구조를 교란하고 미국 반대 세력을 결집하는 등 트럼프의 자기 발등 찍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와 이후 등장할 제2의 트럼프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디스토피아 시대의 조커인 이들에게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작은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얼마든지 더 큰 파괴적 전투를 통해 우리 모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이들은 오바마 유형의 노선이 가지는 취약함을 너무나 잘 안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듯 오바마주의는 무너져 가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 적법한 절차도 가끔 포기해야 한다. 때로는 다크 나이트가 고담 시민들을 속이듯이 ‘고상한 거짓말(Noble Lie)’도 해야 한다. 디닌은 오늘날 극소수 엘리트에만 혜택을 주는 기득권 체제로 인해 이 거짓 약속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연속성의 불편한 진실과 약점을 파고들면서 조커, 트럼프는 다크 나이트, 오바마주의와의 대결을 즐기고 있다. 오바마주의는 트럼프가 화려하게 등장할 무대를 제공한다.

영화에서 분노와 당혹감에 찬 다크 나이트에게 조커는 ‘나는 너 없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외친다. “너로 인해 내가 완성된다!”

지금 우리는 다크 나이트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1]
Kai Ryssdal, 〈The full interview: President Obama defends the TPP〉, 《Marketplace》, 2015.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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