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
완결

늙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

늙음은 기술적 실패다


우리는 생물학과 유전학이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생명 공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구글(Google)은 죽음을 운명이 아닌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파악해 바이오 기업 칼리코(Calico)를 설립했고, 그 주역인 빌 마리스(Bill Maris) 전 구글 벤처스 CEO는 불멸을 굳게 믿으며 인간이 500세까지 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1] 미래 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은 서슴지 않고 과학의 주력 사업이 죽음을 격파하고 인간에게 영원한 젊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화를 극복하고 치료하려는 시도는 미용의 차원을 넘어 젊음의 유지, 불사와 같은 인간 기능 강화의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자를 되살리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는 세상의 질서를 허문다는 이유로 제우스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현대 사회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의술을 현실로 만들고자 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주인공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노화를 피하고 싶은 인간의 솔직한 욕망을 보여 준다. 젊은 시절 노화를 늦추는 약물 처방에 반대했던 그는 훗날 늙는 것이 싫어서 몰래 약을 먹기 시작한다. 기분을 돋우는 브롬화칼륨, 관절의 통증을 줄이는 살리실산염, 현기증을 예방하는 에르고스테롤, 숙면을 돕는 벨라도나 등이다. 위장이 편안하도록 향쑥 꽃을 달여 마시고, 심장 마비를 예방하기 위해 마늘을 꼭꼭 씹어 먹는다. 그의 친구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는 절대 노인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대로 60세에 자살한다. 우르비노 박사는 생타무르의 사인(死因)을 ‘노화 공포증’으로 진단한다. 운명을 수용하고 늙어 가는 대신, 노년기 없는 죽음을 택한 것이다.

노화와 죽음을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평균 수명의 놀라운 증가 추세에 기인한다. 1900년 47세였던 인간의 평균 수명은 2019년 현재 80세를 웃돈다. 물론 영아 사망률 감소, 보건 의료 체계의 발전 등으로 평균이 증가한 것이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인간의 수명이 점차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년마다 2년씩 늘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항노화와 수명 연장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노화가 “신이 미리 정해 놓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 아닌 자연 선택의 부작용이며, 어쩌면 조작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기술을 통한 “세상의 작동 방식에 관한 이해”[2]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람이 늙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은 기술적 실패에 불과한 것이다. 오랜 시간 철학자들은 늙는다는 것을 죽음에 가까워지며 삶을 성찰하는 과정으로 보고, 그에 따른 고통을 “의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당사자 자신에 대한 물음”[3]이라 여겼다. 하지만 노화가 운명의 영역에서 벗어나 치료 가능한 질병의 범주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이러한 시각은 이제 과거에 묻어야 할지도 모른다.

 

불편함, 질병이 되다


질병(disease)은 모든 인류의 문화와 언어 속에 존재해 왔다. 전 세계 언어에는 불-편함(dis-ease)과 같이 질병과 뜻이 같으면서 편안함(ease)의 결핍을 지칭하거나, 정신적·신체적 불-편함(dis-comfort)과 병약함(infirmity), 고통(dis-tress)을 가리키는 단어들이 남아 있다. 질병은 불편해진 사람의 상태를 뜻한다는 점에서 비정상(ab-normality)을 의미한다. 전문적 관점의 질병, 주관적 경험 차원의 병(illness), 객관적으로 입증된 장애를 가리키는 질환(sickness)으로 분류되던 장애의 세 차원은 현대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치료의 대상이 되는 의학적 조건으로 통합되었다.

기존에 의학적 문제가 아니었던 증상을 질병으로 정의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의료화다. 의료화는 주로 전쟁이나 전염병이 도는 시기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현대 복지 국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사회·도덕적인 문제를 질병으로 취급하기 위해 공중 보건, 정신병학이 활용되었다. 의료화의 핵심은 치료할 수 있게 된 특정 증상을 질병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과거에는 단순히 심리적 불편함이나 슬픔으로 치부되던 감정이 약물로 치료 가능해지면서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 정의되었다. 의료화를 시작으로 의학은 점차 사회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일찍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의료화의 절차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사실상 거의 모든 현상을 의료적 문제로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푸코의 우려는 의료화의 역사에서 일정 부분 현실이 됐다. 20세기 이전부터 국가에 대한 적대 행위는 통제해야 할 광기로 취급되었고, 이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정신 의학 분야가 발달했다.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의료화된 전쟁 신경증(war psychoneurosis)[4]은 영국에서 우생학과 결합해, 생존한 퇴역 군인의 출산을 막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부유층과 권력자 집단이 이성의 개념을 강화하는 데 의료화를 동원했다. 그리고 광인, 범죄 계층에 더해 여성과 빈자까지 이성이 없는 자들로 분류해 사회적으로 배제했다.

현대 사회로 진입한 후에도 의료화는 질병을 치료하기보다 질병의 범주를 확장해 병을 유포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병원이 병을 만든다》의 저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의료화가 일상생활에서 치료의 범주를 확대하고, 질병의 종류를 급증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그의 관점에서 기술은 의료화의 추진력이며, 새로운 진단 도구는 질병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기 위한 발명품이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질병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과잉 진단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특정 증상의 치료법을 개발한 제약 회사와 의사가 담합해 새로운 질병이 ‘발견’된다는 주장과 함께 의료화에 대한 비판은 더욱 힘을 얻었다.

의료화가 없던 질병을 만들고, 고통의 영향력을 키운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유효한 의학 진단과 오·남용된 진단 간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지는 모호하다. 그럼에도 사회 전반에서 통계학·위생학적 이유로, 또는 사회 전체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의료 및 건강 법령상의 의료화가 촉진되었다. 국가와 사회의 몫이었던 건강 보호에 대한 책임은 점차 개인의 의무로 옮아갔다. 권력의 전제적 힘이 의료화의 전 과정을 단독으로 통치하던 시대에서, 사회적 의무를 받아들인 개인이 자발적으로 의료화를 주도하는 시대로 나아간 것이다.[5]

 

잠재적 환자가 된 사람들


1980년대에 대두된 의료화의 주동자는 권위와 권력을 부여받은 의료직 종사자와 관련 전문직, 사회 캠페인을 이끈 이익 집단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아프다고 믿는 사람들의 모호한 증상을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약을 팔았다. 이 시기의 질병은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이 상호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 기업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정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질병 인식 캠페인은 제약 회사의 마케팅 전략과 맞물려 새로운 의약품 시장을 확장하는 데 쓰였다.[6] 결과적으로 정신적·육체적인 정상 범위와 관련해 어디까지를 의학 교육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어디부터 질병을 유포하는 마케팅의 범주로 보아야 하는지 모호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화의 전개 양상은 변곡점을 맞았다. 의학 기술의 노출, 매체의 발전, 능동적인 환자의 출현으로 이전의 하향식 의료화가 상향식 의료화로 대체된 것이다. 의사와 제약 회사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던 환자들은 인터넷상의 의학 지식 정보 등을 활용해 스스로 진단을 찾아내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거듭났다. 의료 사회학자 피터 콘래드(Peter Conrad)는 의료화 과정에서 의사들이 더 이상 대단한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7]

오늘날의 환자는 그 어느 때보다 주도적이다. 공중 보건이 진보하면서 건강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교육하고 조장한 결과다. 개인은 끝없이 특정 행동의 위험을 평가하고, 체력을 기른다. 건강에 대한 책임 부담은 현대인의 몸을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기 주도적 사업으로 만들었다.[8] 자유 복지 국가는 자본 시장의 신자유주의 정책하에서 개인의 책임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시민의 삶에 개입한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예방 의학과 건강 유지 프로그램에 돈을 쓰게 만들어 사회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현재 의료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소비자, 생명 기술, 관리 의료”이며, 그 외 “사회적 요소들은 단역을 맡을 뿐”[9]이다.

‘자기 주도적인 몸’의 개입으로 의료화에 대한 비판적 담론장은 점차 협소해질 뿐 아니라,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일례로 웰니스(wellness)는 신체‧정신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정도를 8개 요소(사회적, 감정적, 정신적, 지적, 신체적, 환경적, 재정적, 직업적 차원)로 나누어 표시한 것이다. 이는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자각하고 능동적으로 선택[10]하게 하는 동시에, 완벽한 몸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 웰빙(well-being) 제품 광고를 범람시킨다. 대중은 웰니스를 정상 모델로 받아들이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상태를 질병이라 여기기 쉽다. 인체를 완벽한 기계로 가정하고 모든 결함을 약으로 고쳐야 하는 질병으로 오해한다면 인간은 언제나 잠재적 환자인 셈이다.

 

노화와 질병 사이의 경계


질병과 노화는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특정 현상이 모든 개체에 예외 없이 발생하고,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며,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궁극적으로 육체적‧인지적 기능의 저하가 동반되어야 노화라고 할 수 있다.[11] 이처럼 신중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노화와 질병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상당히 모호하다. 특정한 몸의 변화가 노화를 촉발하는 원인인지 아니면 노화에 따른 결과인지도 불명확하다. 원인이든 결과든 노화와 관련된 증상을 제거하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국내의 한 건강 관련 매체는 노화 현상과 질병 신호를 구별하는 방법을 언급하는 기사를 냈다. 기사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온몸 이곳저곳이 쑤시거나 눈이 침침해지는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대부분이 “노화 현상으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것이 원인”이다. 그러나 “신체 이상 증세를 모두 평범한 노화 현상이라고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몸이 알려 주는 질병의 신호까지 놓칠 수도 있다”[12]며 평범한 노화 현상과 질병의 신호를 구분하는 법을 제시했다. 노화 현상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정 증상이 동반될 경우 질병의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노화 현상과 비슷하지만 질병의 신호일 수 있는 증상들을 가려내고, 위험을 경고하며 조기 진단을 권고한다.

노화 증상의 한 예로는 황동규의 시 〈비문〉에 등장하는 비문증(飛蚊症)을 들 수 있다. 비문증은 안구의 유리체에 혼탁이 생겨 망막에 그림자가 지는 증상이다. 눈앞에 모기가 나는 것 같은 현상을 겪던 시인은 어느 날 증세가 심해져 눈을 꽉 감았다 떴는데도 이물질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날건 말건!’이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그 후로 증세가 있을 때마다 이 말을 썼더니 효과가 있었다. ‘날건 말건!’은 눈앞에 비문이 보일 때마다 자신을 타이르는 주문과도 같다. 이 사건 이후로는 의식할 때만 모기가 날고, 보통 때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증상을 노화의 과정으로 수용하면서 덜 의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화 현상과 질병 신호를 구별하는 앞의 기사에 따르면, 비문증은 단순 노화 증상이 아니라 백내장, 녹내장과 나란히 질병의 전조 증상으로 분류된다. 발병이 의심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이물질의 개수가 늘어나거나 통증이 생길 경우, 망막이 안구 내벽으로부터 떨어져 들뜨는 망막 박리, 망막에 구멍이 생기는 망막 열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 자연스러운 노안 증상으로 취급되던 비문증은 의료화 과정을 통해 질병의 범주에 들어갔다.[13] 일반화된 노화의 정의와 질병 사이의 관계는 시대적 관점과 기술적 치료의 가능 여부에 따라 다르게 설정되는 것이다.

 

당연히 견뎌야 할 고통은 없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이어온 몸살과 몸살의 삶,
사로잡힘, 숨 막힘, 캄캄함, 그리고
불현듯 긴 숨 한번 들이쉬고, 그럼 어때!
이게 바로 삶의 맛이 아니었던가?
한줄기 바람에 준비 안 된 잎 하나 날려가듯
삶의 끝 채 못 보고 날려 가면 또 어때!

황동규의 시 〈그럼 어때!〉에서 60세를 넘긴 화자는 허약해진 노년의 몸을 의식한다. 그는 노화에 수반되는 고통스러운 증상들을 “삶의 맛”이라 표현하고 “그럼 어때!”라며 수용한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삶에서 고통의 역할을 중시한 철학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Hans Georg Gadamer)를 떠올리게 한다. 가다머는 2000년 하이델베르크 대학 병원에서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환자가 의학을 통해 도구화되지 않고, 고통에 대항해 스스로를 방어함으로써 직접 고통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고통을 제거하기보다, 고통을 끌어안은 채 극복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이자 100세 노인인 가다머의 주장은 그의 강연을 엮은 저서 《고통 - 의학적, 철학적, 치유적 관점에서 본 고통》의 부제처럼 다른 학문과 합의를 보는 데는 실패했다. 철학과 의학은 ‘고통의 의미’에 대해 뜻을 달리한다. 고통은 가다머의 평생 과제이기도 한 철학적 문제지만, 의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다. 철학에서 고통은 인간에게 부여된 과제이며,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 깊이 이해하게 하는 삶의 긍정적인 의미화 과정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고통이 빠르게 만성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학에서 고통은 조속히 제거되어야 할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과학과 의학 기술의 역할과 영향력이 커지면서 고통은 형이상학적 문제가 아닌 기술의 문제가 되었다. 생애 주기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여겼던 증상들은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규정되었고, 인간의 노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상생활이 불편한 상태를 의료적인 문제로 취급하고, 개인이 겪는 고통을 감소시키는 데 집중하면서 의학은 비로소 ‘선한 의지’를 인정받게 되었다. 고통을 제거하는 좋은 의료화가 공공의 감수성에까지 호응을 얻으면서 의료화는 기존의 비판적 시각을 벗어나게 되었다.

노화의 문제는 접근 방식과 문제의식에서 질병의 의료화와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그동안 사람이 나이가 들며 늙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노화는 세포 분열의 능력이 사라지고, 장기나 조직의 고유 기능이 점점 쇠퇴하고 결과적으로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이었다.[15] 젊을 때는 조직이나 세포가 만성 스트레스를 받아도 세포 분열이 증가해 손상을 치유하지만, 분열할 여력이 없으면 해당 부위의 기능이 감퇴돼 결국 죽는 것이다. 하지만 수명이 연장된 만큼 늙고 병든 몸을 지탱하는 고통의 기간도 길어지면서, 노화 연구는 노년기의 고통을 최대한 줄이고 늙음을 지연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노화는 더 이상 인간이 당연히 견뎌야 하는 고통이 아니다.

 

노화는 치료되어야 한다


그동안 노화 문제는 주류 학문 영역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사회학, 심리학, 사회 복지학에서 파생 연구로 분할된 노화 연구는 생물학적 노화 자체가 아닌 노인 계층에 대한 처우와 보건 관리에 집중됐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노화에 대한 생물학·과학적 접근으로서 자연 과학과 생명 과학 사이의 틈새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목할 것은 과학 기술 분야에서 노화가 점차 질병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의 힘이 노화의 비밀을 밝혀내면서 늙는 방식이 재정립되고 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 개체가 외부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나타나는 부적절한 적응 과정인 것이다. 현대 의학의 트렌드는 건강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정의하고, 질병의 사전 예방 차원에 중점을 둔다. 노화도 질병인 만큼 순응이 아닌 극복과 예방의 대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취급되던 증상들은 점차 의료적 처치의 대상이 되고 있다.[16]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근력과 근육량의 감소는 이제 의학적 치료의 대상이 됐다. ‘근육을 잃는다’는 뜻의 사르코피니아(sarcopenia)가 미국 질병 관리 본부(CDC)에서 질병으로 인용된 결과다. 정상적인 노화 과정의 대표 격인 만성 통증은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과 같은 병명을 부여받았다. 미국 식품 의약국(FDA)이 연령 관련 기억 장애(AAMI·Age-Associated Memory Impairment)를 질병으로 인정하면서, 기억력 테스트에서 하위 16퍼센트를 기록한 인구가 AAMI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모두 유전학, 생체 의료학 같은 이론적 도구가 의료화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한 결과다.

노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적 역할이 정당성을 얻자, 노화 연구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더 주목받고 있다. 그들에게 항노화 기술은 노년기로의 진입을 늦추거나 막아 주는 서비스로 인식된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 기술의 진보에 따라 미에 집착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노화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인간 강화에 대한 합리화로 볼 수 있다. 모든 개인은 10년 안에 유전 정보인 게놈(genome)을 의료 기록의 일부로 갖고, 의료진은 이를 바탕으로 위험한 질병을 사전에 알려 주고 건강을 최적화할 진단을 제공할 것이다. 예방 의학의 발전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 필요한 의약품을 처방하고, 환자에게 병에 걸리지 않을 책임을 요구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노화로 인한 고통을 최대한 늦추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항노화 기술의 현주소


현대인의 외모가 젊어지고 수명이 길어진 데는 의학 기술의 발전과 개입의 공이 크다. 모발 이식 수술이 흔해지고, 틀니는 치아 임플란트 시술로, 백내장 수술은 시력을 높이는 영구 렌즈 삽입술로 대체되었다. 얼굴과 손등의 기미와 검버섯은 레이저 시술로 쉽게 지울 수 있다. 유전자의 오류를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는 가위 크리스퍼(CRISPR)는 노화와 관련된 퇴행성 질병을 치료하고, 피부 노화 개선과 대머리 치료, 흰머리 감소 등 미용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이로써 인류는 늙지 않는 삶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이밖에도 노화 자체를 치료하려는 기술들이 임상 실험 단계에 있다. NAD(nicotinamide adenine dinucleotide)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 손상된 DNA의 수리와 세포 생존에 관여한다. 실험 팀은 늙은 쥐에게 NAD의 전구체를 먹여 젊은 쥐와 비슷한 수준의 NAD 수치를 확보했고, DNA 손상을 나타내는 분자 표지를 줄였다.[17] 텔로미어(telomere)에 관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양쪽 끝에 있는 염기 서열이다. 세포 분열로 젊음의 유지에 기여하는 텔로미어는 분열을 반복할수록 끝부분이 짧아지며 사멸한다. 과학자들은 인공적으로 텔로미어 길이를 연장시키는 효소인 텔로머라제(Telomerase)를 활용해 생쥐의 수명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텔로미어의 길이를 기준으로 한 수명 예측이 나이보다 정확하다는 결과가 도출되면서, 노화 정도나 사망 위험도의 지표(biomarker)를 텔로미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항노화 기술을 바라보는 국내외 매체가 역기능에 대한 언급 없이 장밋빛 미래만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국내에서 번역·출간되는 한 패션 잡지는 미용 담론 차원에서 항노화 기술을 소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미와 젊음에 초점을 맞춘 이 기사는 항노화를 돕는 NAD+ 분자의 생산을 돕는 보충제의 존재를 알리고, 텔로미어의 길이를 연장하거나 유지해 주는 텔로머라제 관리를 도입한 미용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또 10대 기증자의 젊은 피를 고령자에게 수혈해 젊음을 유지시키는 방법이 임상 실험 중이라고 덧붙인다.[18] 기사는 약 5억 원에 달하는 유전자 테라피 비용을 가리켜 ‘만만치 않은 비용’이라고 서술할 뿐,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태도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런 시술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에 의해 일상화되고 있다. 위험에 대한 경고는 신기술의 혜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이다. 과학이 삶의 문제에 개입하면서 발생하는 소비자의 요구만이 그들의 관심사다.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는 기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이미 여러 번 논쟁과 테스트를 거쳤기에 선택은 오로지 개인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특히 경제력의 문제라면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와 관행이 급변하는 시대에 개인의 선택이 외부의 조건과 무관하게 이루어지기란 어렵다. 노화를 거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


전 세계적으로 노화 방지 기술은 단순히 미용의 목적이 아닌 의학 차원에서 정복 가능한 유전적, 생체 의료적 개념으로서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건강, 미용, 젊음은 대중적 관심의 중심에 있다. 항노화 기술 수용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이런 현상은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연관된다. 급속한 고령화는 복지 문제는 물론 노년층의 사회·경제적 위치, 외모, 매너와 관련해 노인 배제를 넘어선 혐오를 양산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화에 대한 저항은 의료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는 수준이며, 항노화 기술에 품었던 의구심은 정당화된 확신으로 대체되고 있다.

특히 국내 언론은 노년층을 젊은 계층이 비용을 떠맡아야 하는 ‘짐’으로 정의하며 세대 갈등을 조장한다. 고령화를 다루는 기사들은 노년의 가장 그늘진 부분인 가난과 노쇠함을 부각하고, 이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원시킨다. 이런 프레임은 젊은 세대로부터 ‘늙어도 괜찮다’는 의식을 빼앗는다. 노년을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아닌, 통계적·사회학적 접근을 통해 객관화하는 태도는 노화 공포증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노년에 대한 추측으로 형성된 노화 공포증은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 차별을 야기한다. 노인을 비하하는 호칭인 ‘틀딱’ 또한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틀딱은 단지 틀니를 딱딱거린다는 신체적 조롱이 아니다. 노인의 무례하고 무력한 세대 성향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응집되어 혐오와 거부를 낳는 방식으로 확산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항노화 기술은 비노년 세대에게 앞으로 생물학적 노년기를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심어 주는 동시에, 젊음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진리를 엄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광고는 나이에 비해 젊고 쿨하며, 점잖고 세련된 태도의 노배우를 모범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자신을 가꾸는 노년의 스테레오 타입을 규범화한 이러한 이미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의 이상향이 노년층에게 그대로 적용된 결과다. 1930년대 팝송 〈Keep Young And Beautiful〉의 가사 “현명하다면 운동해서 살을 빼세요”, “매력을 가꾸세요, 그러면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팔에 안겨 있을 거예요”는 여전히 유효하며, 노년기에도 예외가 아니다.

잘 늙기 위해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노년층도 청년층만큼이나 자신의 삶을 가꾸는 법을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는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노년층은 광고, 통신, 영화에도 점점 자주 등장해 그들의 직업, 여가 활동, 건강, 여행, 축적한 부와 시간을 소비할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19] 늘어나는 수명에 대비해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는 대신, 노년층의 자발적 독립성을 조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노인들은 의료 보험 제도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스스로 운동과 식이 요법을 하고, 동시에 지속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것을 요구받는다.

한국 사회의 자발적, 비자발적 노인 혐오와 노화 거부는 개별 노인이 아닌 ‘늙어 가는 존재’와 노화 자체를 향해 있다. 노인은 완전히 다른 외계의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도래할 노년을 대리 경험시키는 젊은 세대의 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때 생기는 동일시는 ‘나도 늙으니까’라는 공감이 아닌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이다. 이런 정서가 노화에 대한 의료적 개입을 가속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길어진 노년기를 분화시키려는 움직임을 촉발했다고 볼 수 있다.

 

노인이기를 거부하다


현대의 노년은 노쇠함만으로 특징지을 수 없다. ‘아프면 늙은 것’이라는 정의는 60세 이상 연령층이 스스로를 늙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노인들은 덜 활발하고 덜 건강하다는 선입견에 반발한다. 기존의 인생 주기가 유년기, 청‧장년기, 노년기의 3기로 나뉘었다면, 이제는 노년기를 확대한 3기와 4기의 연령대 생성이 필요해진 것이다. 제3의 연령대와 제4의 연령대, 영-올드(young-old)와 올드-올드(old-old)와 같은 구분은 후기 인생을 이해하기 위하여 설정된 패러다임이다.

이렇게 탄생한 제3의 연령대는 노년의 가장 일반적인 골칫거리인 가난과 고독의 이미지를 걷어 내고 노인의 지위를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소비를 통한 성인 정체성과 라이프 스타일 유지에 중점을 둔다.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려는 성향이 강해 여가·문화적 참여에 적극적이며, 패션·건강·매너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에 따라 웰 에이징(well aging)의 규범이 새롭게 생성되고 있다. 노화 현상을 대하는 노년층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제3의 연령대는 미에 관심을 두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 행위를 요구한다. 외적인 노화에 저항해 젊음을 지킴으로써 제4의 연령대와는 다른 상대적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발맞춰 제약 회사는 물론, 피부과 병원 의사들까지 가담해 피부 노화를 해결하기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20] 화장품(cosmetic)과 의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인 코스메슈티컬(cosmeceutical)과 피부 과학(dermatology)과 화장품(cosmetics)의 합성어 더마코스메틱(dermacosmetic)은 젊은 계층만을 위한 상품이 아니다. 전 세계 안티에이징 시장은 2015년 기준 300조 원 규모에 달하며, 국내 시장은 12조 원 정도다. 이 중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 시장만 8조 9000억 원 규모다. 1990년대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울프(Naomi Wolf)가 지적한 ‘자기 혐오감을 이용해 개척할 수 있는 시장’은 여성에서 남성, 이제 노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제3의 연령대가 제4의 연령대와 자신을 구분하며 누리는 특권에는 대가가 따른다. 제3의 연령대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학 기술과 자발적 노력으로 개선될 우리의 노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노인 문제는 사회적 삶의 문제, 즉 노년층에 대한 복지 서비스와 일자리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 국내 60대 이상 인구의 경제 활동은 2018년을 기점으로 20대를 추월했고[21], 은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다. 노년 세대에 대한 불충분한 사회 복지 시스템이 늙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지식인들은 과거를 낭만화하기 쉬워서 누군가 역사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어떤 것에 관해 말할 때 그의 말에는 죽은 과거가 더 좋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많은 유토피아적인 사고에는 특히 이런 맹점이 있다. 과거가 현재보다 더 낫기 때문에 미래는 과거를 복원해야 한다. 50년 전이나 70년 전 도시 생활의 조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시각이지, 미래에 어떻게 좋은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지에 관한 길잡이가 아니다.[22]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도시 생활의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복원하려는 사고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 불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인간의 신체가 “수천 년 동안 퇴적된 진화사의 최종 결론”[23]이듯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우리는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무엇이 적절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해도, 그 방식은 언제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중이다. 노화에 대한 인식이 그랬듯 ‘자연적인 변화’를 긍정하는 규범들은 분명 현재의 상황에 맞는 다른 규범들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의료화에 대한 나쁘고 좋은 점도 달라진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학 지식에 대한 비판 또한 변화한다. 수용에서 참여로, 동의하는 동시에 맞서는 방식으로 자율적인 지식 형성의 과정을 거쳐 온 것이다.

분명한 것은 최근 의료화에 대한 담론이 30~40년 전에 비해 훨씬 낙관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화가 제약 회사의 이익을 앞세워 질병을 유포한다는 비판, 언론 매체를 통해 혁신적인 약물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를 제공해 건강에 대해 불필요한 강박을 심어 준다는 논쟁은 여전하다. 또한 과학 기술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이익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회 문제를 해석해야 하는지, 어떤 종류의 해결책이 가능한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한 결정이 외부 세력으로부터 강제되고 지시될 수 있다는 두려움 역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노화의 의료화는 가속화할 것이며, 항노화 기술은 멈추지 않고 발전할 것이다.

고통에 대항하고 관여하는 주체로서 삶에 대한 고유한 책임을 강조한 가다머의 주장은 이제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황동규의 시처럼 자신의 통증을 의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충분한 해법은 아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 자체가 이 시대에는 불가능하다. 젊어지는 것이 나쁜가?, 왜 늙어야 하나?, 고통을 계속해서 참을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세속화된 공공의 감수성은 경건하고 고귀한 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인류는 과거를 낭만화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 적합한 생활의 조건을 기획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 앞에 섰다.
[2]
마크 E. 윌리엄스(김성훈 譯), 《늙어감의 기술: 과학이 알려 주는 나이 드는 것의 비밀》, 현암사, 2017, 73-75쪽.
[3]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고통 - 의학적, 철학적, 치유적 관점에서 본 고통》, 철학과현실사, 2005, 17쪽.
[4]
전시에 군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상 체험 반응의 총칭. 몽롱상태와 같은 의식 장애, 운동 마비 등 광의의 전간 증세를 보이는 일이 많다. 1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5]
Robert A. Nye, 〈The Evolution of the Concept of Medicalization in the Late Twenties Century〉, 《Journal of History of the Behavioral Science》, Vol. 39, No. 2, 2003, p. 118.
[6]
Ray Moynihan·Iona Heath·David Henry, 〈Selling Sickness: the Pharmaceutical Industry and Disease Mongering〉, 《BMJ》, Vol. 324, 2002, p. 886.
[7]
Frederic W. Hafferty, 〈Medicalization Reconsidered〉, 《Society》, Vol. 43, No. 6, 2006, p. 41.
[8]
Robert A. Nye, 〈The Evolution of the Concept of Medicalization in the Late Twenties Century〉, 《Journal of History of the Behavioral Science》, Vol. 39, No. 2, 2003, p. 119.
[9]
Antonio Maturo, 〈Medicalization: Current Concept and Future Directions in a Bionic Society〉, 《Mens Sana Monographs》, Vol. 10, No. 1, 2012, p. 122.
[11]
임호준·한미영, 〈노화의 3대 비밀을 풀다: Part 1. 사람은 왜 늙는가?〉, 《헬스조선》, 2014. 7. 28.
[12]
이기상, 〈노화 현상 VS 질병 신호〉, 《헬스조선》, 2017. 4. 24.
[13]
Bjørn Hofmann, 〈Medicalization and overdiagnosis: different but alike〉, 《Med Health Care and Philos》, Vol. 19, 2016, p. 253.
[14]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공병혜 譯), 《고통 – 의학적, 철학적, 치유적 관점에서 본 고통》, 철학과현실사, 2005, 32쪽.
[15]
임호준·한미영, 〈노화의 3대 비밀을 풀다: Part 1. 사람은 왜 늙는가?〉, 《헬스조선》, 2014. 7. 28.
[16]
라메즈 남(남윤호 譯), 《인간의 미래》, 동아시아, 2007, 39-40쪽.
[17]
김병희, 〈세포 노화의 미스터리 풀렸다〉, 《The Science Times》, 2017. 12. 19.
[18]
Anne-Marie Guarnieri, 〈Future of Anti-Aging〉, 《Harper’s Bazzar》, 2018. 1.
[19]
Bridget Garnham, 《A New Ethic of ‘Older’: Subjectivity, surgery, and self-stylization》, New York: Routledge, 2017. p. 1
[20]
신규옥, 〈진정한 안티에이징이란〉, 《헬스조선》, 2017. 12. 3.
[21]
그러나 고려해야 할 점은 있다. 이 통계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의 변화뿐 아니라, 일자리 병목 현상의 영향도 다루고 있다.
박은하, 〈‘늙어서도 은퇴 못하는 시대’…60대 경제 활동 인구, 20대 첫 추월〉, 《경향신문》, 2018. 3. 11.
[22]
리처드 세넷(유강은 譯), 《무질서의 효용》, 다시봄, 2014, 87-88쪽.
[23]
캐서린 헤일스(허진 譯),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열린책들, 2013, 4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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