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3.0
1화

프롤로그; 팬덤, 프로듀서가 되다

아이돌 산업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적으로 산업의 몫이었던 아이돌 그룹 제작과 기획에 팬덤이 참여한다. 팬덤은 점점 참여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팬의 역할을 강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스타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팬이 아이돌 기획에 참여하고, 활동에서 나오는 수익을 분배받는 모델도 등장했다.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 스노우엠(snowM)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아티스트, 기획사와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수익을 나누는 소셜 프로듀싱 플랫폼 ‘스노우 메이커스’를 론칭한다고 밝혔다. 팬들이 아이돌 제작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고 보상을 받는 모델이다.[1] 일반 유저들이 콘텐츠를 즐기면서 참여하고, 마케팅에서 서비스, 유통, 공연, 커머스까지 모든 단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2]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소통형 콘텐츠들은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활용한다. 팬덤은 단순 소비자에서 참여자를 거쳐, 이제 수익을 내는 경영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의 변화는 팬덤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 팬덤이 아이돌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산업이 이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플랫폼이 개발되고 있다.

팬덤은 진화했다. 현재 팬덤의 모습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그 변화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방영된 엠넷(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부터였다.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시청자의 투표로 11명의 데뷔 멤버를 결정하는 이 프로그램은 독특한 현상을 만들어 냈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서울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는 특정 연습생에게 투표하고 이를 인증하면 커피를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이벤트가 열렸다.[3] 연습생이 속한 기획사에서 실시한 프로모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팬이 개인 비용을 지불해 진행한 홍보였다. 〈프로듀스 101〉 시즌2의 마지막 생방송 당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각종 후기가 올라왔다. 지인들에게 직접 기프티콘을 보내며 투표를 유도했다는 이야기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음료수를 사주고 휴대폰을 빌려 문자 투표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각자 자발적인 홍보 전략을 펼친 팬들의 후기다. 마지막 생방송은 열띤 화제 속에서 총 120만 건의 투표수를 기록했고, 이를 통해 데뷔한 신인 그룹 ‘워너원(WANNA ONE)’은 데뷔 앨범의 초동 판매량만 41만 장에 달하는 대형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투표를 통해 내 손으로 직접 국가 대표 아이돌을 만드는, 이른바 국민 프로듀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2는 한국의 아이돌 업계와 팬덤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민이 직접 뽑는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로 방영된 미디어 콘텐츠는 수용자를 ‘국민 프로듀서’로 호명했고, 수용자는 프로듀서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아이돌을 직접 기획하고 홍보함으로써 응답했다.[4] 그 결과 〈프로듀스 101〉 시즌2는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TV 콘텐츠(비드라마 부문)로 기록됐고[5], 워너원은 데뷔와 동시에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이들은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서울의 대형 돔 구장에서 데뷔 쇼케이스를 개최하며 약 2만 개의 객석을 모두 채웠다.[6] 데뷔 앨범은 역대 아이돌 데뷔 앨범 초동 판매량 1위를 기록했고, 데뷔 곡은 음악 방송 15관왕을 차지했다.[7] 2017년 주요 연말 시상식에서는 신인상 및 남자 그룹상 등을 휩쓰는 성과를 거뒀다.[8] 2018년 5월까지도 ‘보이 그룹 브랜드 평판’ 1위와 ‘보이 그룹 개인 브랜드 평판’ 1위부터 6위까지를 차지했으며[9], ‘워너원 월드 투어 콘서트’의 서울 티켓 6만 석이 10분 만에 매진되는 등 엄청난 규모의 팬덤을 유지했다.[10] 그룹의 치솟는 인기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 출연과 은행, 화장품, 식품 등 20개 이상의 광고 모델 발탁으로 증명되었고,[11] 매니지먼트사 CJ E&M은 거대 기획사 반열에 올랐다.[12] ‘아이돌이 출연할 수 있는 예능이 궁금하다면 워너원의 출연 목록만 봐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는 기사[13]의 언급처럼 워너원의 인기는 대중음악계의 큰 사건이었다.[14]

‘워너원 현상’은 아이돌 그룹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팬들의 직접 투표를 통해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지고, 여러 소속사에 속한 멤버들이 프로젝트 그룹으로 함께 데뷔하는 것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프로젝트 그룹 전략은 I.O.I를 탄생시킨 〈프로듀스 101〉 시즌1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후 시즌2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팬들은 워너원으로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들의 조합을 기획하고 광고해 또 다른 프로젝트 그룹 ‘JBJ’를 탄생시켰다. JBJ는 프로그램 외부에서 팬들의 지지를 통해 아이돌 그룹이 결성되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 시즌1보다 확장된 영향력을 보여 주는 사례다.

팬덤의 형성 또한 이례적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연습생 후보를 데뷔시키기 위해 홍보 활동을 벌이고 소속사에 적극적인 요구를 한다. 다른 사람들의 투표를 독려하는 ‘영업’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그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팬덤이 형성된다.

그렇다면 팬덤의 문화는 왜,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팬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회·경제·문화적 조건과 함께 구성되며 변화해 왔다. 그 구성 과정을 살피면 새로운 팬덤의 특성을 밝힐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대중문화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아이돌 팬덤 현상의 위치를 분명히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프로듀스 101〉 시즌2 마지막 생방송을 통해 워너원의 데뷔 멤버 11인이 최종 결정되고 1년 후, 엠넷은 또다시 ‘국민 프로듀서’들을 불러들였다.
 
 “국민 프로듀서님, 여러분이 선택해 주신 얼굴입니다. (‘I.O.I’와 ‘WANNA ONE’ 멤버들 차례로 등장) 국민 프로듀서님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투표가 시작됩니다. 국민 프로듀서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15]

국민 프로듀서로서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미디어 산업은 다시 수용자를 투표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듀스 48〉 시즌3는 새로운 프로젝트 그룹 ‘아이즈원’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2019년 5월, 시즌 4의 시작과 함께 〈프로듀스 101〉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팬들의 투표로 데뷔가 결정되는 프로젝트 그룹 형태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프로젝트 그룹이 대중음악 아이돌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은 팬덤이 여기에 호응했다는 뜻이다. 프로젝트 그룹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하고, 아이돌 산업의 생태계 또한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나는 팬으로서 프로젝트 그룹과 3세대 팬덤 문화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팬덤 문화를 지켜본 팬으로서의 열정이 팬덤 연구를 이끌어 주었다. 최대한 많은 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고, 이 책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내가 만난 팬들은 참여를 통해 콘텐츠의 공백을 채우며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팬덤의 특성이 앞으로의 소비자와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 줄 것이라고 믿는다.
[1]
김주원, 〈스노우엠, 신규 팬덤 서포트 플랫폼 ‘스노우닥’ 론칭〉, 《서울경제》, 2019. 5. 21.
snowMakers, 〈snowMakers KR〉, 2019. 1. 22.
[2]
snowMakers, 〈About Us〉.
[3]
인터뷰 참여자 K(20대 후반, 3세대 팬덤 경험)가 들려준 실제 사례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4]
국민이 직접 뽑는 프로젝트 그룹은 일본의 유명 아이돌 ‘AKB48’ 시스템의 일부를 차용한 방식이다. AKB48은 일본의 유명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가 만든 시스템이다.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콘셉트로 하여 전용 극장에서 상시 라이브 공연을 하는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팬들이 마음에 드는 후보에 직접 투표하고 이를 통해 그룹 멤버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 방식을 통해 일본의 대표 여성 아이돌 그룹 ‘AKB48’이 탄생했다. 〈프로듀스 101〉은 AKB48 시스템에서 매년 총선거를 거쳐 1위를 한 멤버가 그룹의 중심인 ‘센터’를 차지하는 방식도 차용했다. 〈프로듀스 101〉 최종 투표에서 1위를 한 연습생은 데뷔하는 그룹의 ‘센터’ 자리와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팬들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데뷔뿐만 아니라 그룹 내 높은 순위에 올라 센터를 차지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게 만든다.
AKB48, 〈About AKB48〉.
[5]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 〈‘도깨비’ ‘프듀2’ 콘텐츠 영향력 1위〉, 스포츠동아, 2018. 1. 9.
[7]
[8]
홍승한, 〈2017 대세 신인 워너원, 서가대서도 날아오를까〉, 《스포츠서울》, 2018. 1. 25.
[12]
강명석‧김윤하‧미묘, 〈2017년의 기억 vol.2〉, 《W korea》, 2017. 12. 12.
[14]
강명석‧김윤하‧미묘, 〈2017년의 기억 vol.2〉, 《W korea》, 2017.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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