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전쟁의 후반전
2화

인터넷을 바꾼 것은 곡물 가격 정보가 아니라 영화다

여가는 어떻게 인터넷 시장을 흔들고 있나

ⒸJohn Holoroft
인도 라자스탄(Rajasthan)주의 중심부에는 17세기에 건립된 궁전 발치에 자리 잡은 마드호가르(Madhogarh)라는 이름의 그림 같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아동 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40세의 인드라 샤르마(Indra Sharma)는 3년 전 주민 대표로부터 워크숍에 참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인터넷과 관련한 워크숍이었어요.” 샤르마는 인터넷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서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녀를 비롯해 인근 마을에서 몇 명의 여성이 모였다. 스마트폰을 하나씩 나눠 받은 이들은 기본적인 사용법을 교육받았다.

“처음에 배운 건 스마트폰을 켜고 끄는 거였어요.” 이웃 마을의 교사인 24살의 산토시 샤르마(Santosh Sharma)의 말이다(인드라 샤르마와는 인척 관계가 아니다). 일단 켜고 끄는 것을 숙지하고 나서는, 핵심적인 것들을 익혀 나갔다. “셀카 찍는 법, 왓츠앱, 페이스북, 유튜브 사용법, 검색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이들이 교육받았던 2016년 9월에는 인근에서 휴대 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마드호가르의 샤르마가 말했다. “요즘에는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마하바랏(Mahabharat)’을 보면서 걸어가는 걸 볼 수 있어요.” ‘마하바랏’은 동명의 힌두 대서사시를 원작으로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다. 그녀의 집에서 내려가다 보니 나무 그늘 아래에 앉은 세 명의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루도(ludo)[1]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도 이동 통신 당국에 따르면, 광대역 무선 통신망 가입자 수는 2016년 말부터 2018년 말 사이 2억 1800만 명에서 5억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인도에서는 최저가 스마트폰이 3500루피(5만 9500원) 정도로, 인도 시골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결코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샤르마는 말한다. “모두가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있어요. 가격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소수이긴 하지만 가격을 신경 쓰는 사람들도 있다. 릴라이언스 지오(Reliance Jio)는 단돈 1500루피(2만 5500원)면 손에 넣을 수 있는 휴대 전화를 내놨다. 터치스크린이 아니어서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앱을 실행할 수는 있다. 릴라이언스 그룹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통신사 지오(Jio)는 단말기뿐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데이터 사용료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기존 사업자들과의 경쟁 속에 모바일 데이터 패키지 요금은 2년 새 94퍼센트나 떨어졌다. 가입자 1인당 월 사용량은 8.8기가바이트로 열 배 폭증했다. 현재 인도인의 스마트폰 데이터 사용량은 미국인의 세 배에 달한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휴대폰 데이터 사용국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데이터는 이 나라에서 사세요 / 각국의 모바일 데이터 1기가바이트당 평균 요금 / 2018년 11월 기준(단위: 달러) / 출처: Cable.co.uk
규모와 속도 면에서 인도가 약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릴라이언스 지오가 촉발시킨 가격 전쟁이 있다. 이는 세계적 추세와는 다른 행보였다. 유엔의 부속 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의 비율은 2018년에 50퍼센트를 넘어섰다. 물론 나머지 절반의 인구가 앞선 절반만큼 빠르게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유한한 세계에서 기하급수적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그러나 향후 7년간 약 7억 1000만 명의 사람들이 새롭게 인터넷에 접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지난 7년 동안 증가한 신규 사용자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이긴 하지만 여전히 엄청난 규모다. 오늘 태어난 아기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을 때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을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 가능성은 갈수록 더 희박해지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 / 인터넷 사용 인구(단위: 퍼센트) /고소득 국가, 중국, 세계, 인도, 저개발 국가(위쪽부터) / 출처: ITU
이러한 성장의 대부분은 개발 도상국에서 이뤄질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인구의 81퍼센트인 10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 크지 않은 시장이다. 중국은 58퍼센트인 8억 명으로 여전히 성장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중국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다른 지역의 인터넷 사용자 비율은 인구 대비 39퍼센트에 불과하다. 앞으로 새로운 10억 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등장할 이 지역에서는 추가로 10억 명, 그 이후에도 또 10억 명의 사용자가 더 등장할 수 있다(표1 참조). 이들이 인터넷 인구로 편입되면서 인터넷의 성격 역시 달라질 것이다.

 

유한 계급론


나머지 절반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영어와 중국어가 아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들은 다른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바일 기기를 통해 온라인에 접속할 것이다.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이 소유한 인도의 미디어 기업 스타인디아(Star India)가 2015년에 출시한 핫스타(Hotstar)는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트리밍 앱이다. 성공의 비결은 인도 가정에서 스마트폰이 ‘세컨드 스크린’이 될 것이라는 예측에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 세컨드 스크린이 아니라 퍼스트 스크린이 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케이블에 연결돼 있는 커다란 모니터는 현재의 젊은이들이 유선 전화와 브라운관 TV를 생각하는 것처럼 낯선 존재가 될 것이다.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괜찮은 하드웨어도 이러한 추세를 이끌고 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저가 스마트폰은 2007년에 첫선을 보인 아이폰보다도 더 많은 배터리 양과 기능을 갖고 있다. 가격은 아이폰의 10분의 1 수준이거나 더 싼 것들도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에게 고성능 프로세서나 수백만 화소의 카메라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페이스북 인도의 신임 대표이자 핫스타의 전직 대표였던 아지트 모한(Ajit Mohan)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서비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채팅과 동영상과 스토리텔링이다.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현재의 모바일 인터넷은 이런 서비스들을 훨씬 잘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연락하며 지내고 싶어 하고, 재미를 얻고 싶어 하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얼마나 벌고, 어디에서 사는지는 상관이 없다. 선진국에서도, 중국에서도,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가난할수록 전화기 한 대가 다른 어떤 대안보다 더 나은 욕구 충족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 따분한 시간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는 좋은 수단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대학교 교수 파얄 아로라(Payal Arora)에 따르면, 인터넷은 가난한 사람들의 레저 경제(leisure economy)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가난한 세계의 인터넷에 대한 논의는 거의 언제나 지역 개발과 관련한 실용과 구호의 측면에서 다뤄졌다. 구호 기구와 국제 단체, 거대 테크 기업들은 스스로와 후원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을 탈출하려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농부들은 곡물 가격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여성들은 모성 보건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어야 하고, 학생들은 온라인 강좌를 열심히 수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페이스북이 빈곤 국가의 인터넷 제공 사업을 목적으로 만든 웹사이트 internet.org는 전형적인 사례다. “작물을 기르는 농부들이 정확하게 날씨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 교과서가 없는 아이에게 백과사전이 생긴다면 어떤 능력을 갖게 될지 상상해 보세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활용할수록 더 좋은 세상이 열립니다.” 아로라 교수는 저서 《새로운 10억 명의 사용자들(The Next Billion Users)》에서 서양인들이 빈곤을 “인터넷을 쓸 때 놀지 않고 일을 할 충분한 이유”로 본다고 지적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아로라 교수는 세계 전역에서 진행한 수년간의 현지 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사람들은 온라인에 접속하면 일보다는 놀이를, 노동보다는 여가를 택한다.” 개발 정책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 블랙베리가 보급되면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이폰의 채팅과 게임 앱이었다. 물론 가치 있게 사용하는 사례는 따라온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부수적인 것이지 핵심은 아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2000년대 후반, 브라질 정부는 수천 곳에 정부 지원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그 결과 가난한 지역의 인터넷 접속률은 60퍼센트까지 올랐다. 인터넷 카페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도 어울려 놀고 싶어 한다. 구글에서 처음 내놓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오르컷(Orkut)은 2010년대 초 브라질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브라질은 현재 인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페이스북 사용자가 많은 나라다. 여론 조사 기관 라티노바로메트로(Latinobarometro)에 따르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하루에 한 끼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극빈층 세 명 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브라질인들의 인터넷 사용에 관해 연구하는 인류학자 줄리아노 스파이어(Juliano Spyer)는 브라질 북동부 바이아(Bahia)주의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스마트폰 요금을 내는 이유가 스마트폰을 일종의 사회적 유동성(social mobility)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10억 명의 즐길 거리


앙골라(Angola)에서는 위키피디아와 페이스북의 데이터 사용료가 무료다. 허가받은 버전의 앱을 다운받으면 데이터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을 전부 무료로 이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앱과 괜찮은 앱은 무료로 쓸 수 있다. 앙골라 국민들은 이런 무료 서비스를 이용해서 불법 영화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컨설팅 업체 카리부디지털(Caribou Digital)의 2015년 디지털 이용 행태 연구에 따르면, “잠비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원하는 것은 엔터테인먼트였고, 다른 것들은 모두 그다음이었다.”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온라인 활동에 관해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친구나 가족들과 연락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17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잘 볼 수 있고, 또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바로 인도일 것이다. 비교적 개방적인 시장인 데다, 신규 유입자의 규모가 크고,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저소득층 인구가 있는 인도는 나머지 절반의 인터넷 인구를 겨냥하는 기업들의 테스트 베드다. 시장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면서, 관련 기업들은 세계의 나머지 절반이 원하는 신상품과 새로운 서비스들을 빠르게 내놓고 있다.

다시 마드호가르로 돌아가 보자. 샤르마는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버스로 서너 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는 아들 자이푸르(Jaipur)와 영상 통화를 한다. 교사인 젊은 샤르마는 왓츠앱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접속하고, 유튜브와 틱톡으로 영상을 시청한다. 틱톡은 중국 기업이 소유한 소셜 앱으로, 2017년 론칭 이후 10억 회 이상 다운로드되었다. 전 세계 틱톡 사용자의 상당수는 대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가르치는 교실의 수업 과정을 확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타임패스 용도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타임패스(timepass)’는 시간을 때운다는 의미의 인도식 영어 표현이다.

타임패스는 인터넷의 핵심이다. 구글과 애플의 앱스토어 양쪽 모두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상위 25개 앱은 대부분 게임이다(두 기업 모두 올해 신규 유료 게임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텐센트가 중국의 인터넷 강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게임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에게 타임패스 용도로 사용되면서 시가 총액 세계 6위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튜브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타임패스에 쓸 수 있는 통로다. 포트나이트, 왓츠앱,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 최근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신규 앱들은 모두 타임패스에 목적을 두고 있다. 15초짜리 영상을 올리는 틱톡은 핵심 목적이 타임패스인데, 주로 시골에 사는 심심한 아이들이 실없는 영상으로 시청자를 모으고 있다.
우리 사이의 격차 / 스마트폰 사용 유형(한 달에 1회 이상), 2018년 기준(단위: 퍼센트) / 파란색: 선진국, 빨간색: 개발 도상국 / 출처: GSMA 인텔리전스
타임패스 콘텐츠는 선진국과 가난한 나라에서 모두 즐기고 있다(표2 참조).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시장에 따라 다르다. 사용자들이 충분한 돈을 갖고 있다면, 사업자는 사용자의 관심을 광고주에게 판매할 수 있다. 사용자들이 가난하다면, 사업자는 사용자들이 직접 비용을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타임패스 사용자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동영상 시청이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양의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 2016년 인도에서 1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은 20개에 불과했다. 현재는 600개다. 발리우드의 영화 제작사이자 음반사인 티시리즈(T-Series)는 올해, 앞선 수년 동안 정상을 차지해 온 스웨덴의 유튜버 퓨디파이(PewDiePie)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이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보즈푸리(Bhojpuri)어를 사용하는 채널이 전 세계 유튜브 상위 50위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즈푸리어는 인도에서도 일부 저개발 지역에서만 사용되는 언어다. 구글은 인도 전체에서 발생하는 모바일 트래픽의 4분의 3이 동영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영상은 사용자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마드호가르의 샤르마는 레시피를 찾는 용도로 유튜브를 사용한다. 이 마을 남자 주민들을 설득했던 포인트도 바로 레시피였다. 이곳 남자들은 아내가 스마트폰을 갖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태도가 바뀌었다. 변화가 일어난 곳은 부엌만이 아니다. 수많은 인도인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은밀하게 포르노를 보고 있다. 이전까지는 쉽지 않았던 일이다. 포르노 웹사이트 폰허브(PornHub)는 인도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의 90퍼센트가 모바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해당 사이트 모바일 트래픽은 75퍼센트다.

모든 나라에서 인도처럼 저렴한 데이터 요금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글의 ‘10억 명의 새로운 유저들’ 사업 부문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샤피로(David Shapiro)는 동영상 시청 트렌드는 국가에 상관없이 보편적이라고 말한다. 만약 모바일 광대역 통신 요금이 비싸다면, 사람들은 와이파이에 연결되어 있을 때 동영상을 다운로드한 뒤, 오프라인 모드에서 시청한다.

 

틱톡 스타를 탄생시킨 타임패스


동영상은 인터넷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의 한 종류가 아니다. 나머지 절반의 사용자 다수에게 동영상은 인터넷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구글보다 유튜브를 시작 화면으로 설정하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유튜브는 오락거리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찾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저널리스트 스니그다 푸남(Snigdha Poonam)이 인도의 시골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집필한 저서를 언급했을 때,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책을 검색했다.

나머지 절반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문맹인 경우가 많다는 점은 동영상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모르는 언어라면 글보다는 동영상이 더 이해하기 쉽다.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리는 용도로도 글보다는 동영상이 더 간편하다. 그리고 글자를 입력하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왓츠앱의 음성 메시지 사용량이 문자 메시지보다 많다는 사실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준다. 선진국에 아마존 에코와 같은 값비싼 AI 스피커가 있다면,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쓰는 모바일 음성 입력 체계가 있다. 인도의 신규 인터넷 사용자들은 흔히 음성 명령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전화를 걸 때에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음악 스트리밍 앱 가아나(Gaana)는 음성을 기본 검색 방식으로 설정한 새로운 디자인을 내놨다. “저는 처음에는 텍스트 검색이 아니라 음성 검색을 기본으로 설정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음성 검색은 현재 비음성 검색만큼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타임스인터넷(Times Internet) 대표인 사트얀 가즈와니(Satyan Gajwani)의 말이다. 타임스인터넷은 가아나를 소유한 미디어 재벌 타임스 오브 인디아(Times of India)의 자회사다.

여가에 활용되는 기능은 일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뭄바이에서 우버 기사로 일하는 무케시(Mukesh)는 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음성 입력과 음성 길 안내로 차량 호출 앱을 사용한다. 메시지를 보내야 할 일이 있으면 우선 음성 텍스트 변환 앱에 말을 하고 그 결과를 복사해서 메시지 앱의 화면에 붙여 넣은 다음, 손님에게 자신의 의도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며 메시지를 보낸다. 대부분은 잘 전달된다. 저소득층 사용자들도 인터넷으로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다만 그것은 우선순위가 아니고 부차적인 문제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타임패스 활동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은 아직 불분명하다. 최근 1년간 구글의 수익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6퍼센트이고, 캐나다와 남미는 6퍼센트다. 아시아는 1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북아메리카 수익은 아시아보다 12배나 더 많다. 아시아 지역의 수익은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신흥 지역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다. 하지만 향후 4년 동안 페이스북 성장세의 90퍼센트는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에서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새로운 고민을 낳는다. 이 지역 사람들의 경제력이 떨어져서 광고주의 관심을 얻기 어렵다는 문제뿐 아니라, 광고를 할 만한 상품 자체가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구글의 샤피로는 나머지 절반의 사용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이 구글에게 있어 “실존적인” 문제라고 설명한다.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의 86퍼센트가 쓰는 운영 체제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있는 구글은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의 마운틴뷰(구글의 본사가 위치한 지역)가 아닌 뭄바이 사용자들을 겨냥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관점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 앞서 언급되었던 라자스탄의 워크숍은 ‘인터넷 사아티(internet saathi)’라는 구글의 사업이었다. 인터넷 사아티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사업으로 ‘인터넷 친구’라는 의미다. 샤피로의 부서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떤 것을 원하게 될지를 파악하기 위해 개발 도상국에 팀원들을 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글은 인도의 스마트폰 사용자 3분의 1이 저장 공간 부족을 알리는 경고음 때문에 잠을 깨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구글은 불필요한 데이터를 정리할 수 있는 파일스(Files)라는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구글은 또 인도 국영 철도와 영리 목적의 업무 제휴를 맺고 인도의 기차역에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이 사업은 인도 외 6개국으로 확대되었다. 신제품 디자인을 다룬 구글의 보고서는 빈곤국에서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에 바로 반응하는 사용자 환경이 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구글은 디자이너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컬러, 사운드, 텍스트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스타일리시한 요소들을 사용하는 서양적 관점의 미학은 새로운 환경에서는 많이 배제될 것이다.”

하지만 구글로부터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받고 있는 이들조차도 새로운 인터넷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측면을 검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폰과 달리, 안드로이드 기기 다수에는 메모리 카드와 같은 외부 저장 장치에 연결하는 포트가 있다. 사용자들이 메모리 카드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파악한 구글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저장 공간을 정리하는 파일스라는 앱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좀 더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도인들이 메모리 카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스마트폰의 저장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골목 구석에 있는 가게에서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불법 영화와 음악들이 들어 있는 메모리 카드를 구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내장된 MX플레이어라는 앱으로 재생을 한다. 이 앱은 매일 120만 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설치되고 있는데, 그중 3분의 2는 메모리 카드를 통해 설치된다. 서양에서 대부분의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앱을 내려받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타임스인터넷은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시장에 접근하는 하나의 기회로 봤다. 타임스인터넷은 작년에 MX플레이어를 1억 4000만 달러(1654억 1000만 원)에 인수했고, 영화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했다. MX플레이어는 현재 저렴한 동영상을 좋아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기업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기회였다. 가즈와니 대표의 말처럼, 대도시가 아닌 지역의 신흥 소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에는 도시를 타깃으로 삼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베이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기업들로서는 채택하기 힘든 전략일 것이다. 좀 더 유사한 환경이라고 할 수도 있는 뭄바이의 기업들에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가격 민감도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지오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투자 자문 회사 샌포드 C. 번스타인의 크리스 레인(Chris Lane)은 전력 생산에서 소매 부문까지 모든 영역에 손을 대고 있는 재벌 기업 릴라이언스가 인도에 통신망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에 들인 비용만 370억 달러(43조 715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그렇게 해서 현재와 같은 아주 저렴한 데이터 요금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오는 모바일 네트워크에서 영화, 음악, 텔레비전, 스포츠 스트리밍, 뉴스를 비롯한 콘텐츠 포털, 채팅, 클라우드 저장 공간, 결제, 자체 앱스토어, 지오 프라임이라는 이름의 연간 요금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모든 종류의 타임패스가 지나는 톨게이트를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독특한 전략은 아니다. 세계 모바일 네트워크 운용사들의 협회인 GSMA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는 콘텐츠를 이동 통신 사업자들의 다음 목표로 지목하면서 유료 TV가 분명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오가 다른 사업자들과 달랐던 점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수백억 달러를 들여서 직접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호사를 부릴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지오는 통신망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가입 초기 무료 데이터를 제공하며, 인프라 확보에 주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레인은 이러한 전략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소비자들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에게는 스트림이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의 사용자들에 대해 알아 두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일이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인도에서 휴대 전화로 전화를 걸면 일반적인 신호음 대신에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통화 연결음’이라고 부르는 이 음악은 전화를 받는 상대방이 직접 사용료를 내고 선택하는 서비스다.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이 연결음 서비스가 인도의 이동 통신 사업자들에게 막대한 돈을 벌어다 주는 효자 노릇을 했다. 2012년 3월까지 3년간 통화 연결음 서비스 수익은 820억 루피(1조 3950억 원)에 달한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듣는 음악에 사람들은 이런 막대한 돈을 지불했다.
자기 자신이 소비하지 않는 서비스에 월정액 요금을 지불하게 만든 강력한 요인은 바로 자기표현 욕구다.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는 저소득층 대상의 새로운 인터넷 사업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타임스인터넷은 ‘테마’라는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약간의 요금을 내면 스마트폰 앱의 모양을 취향에 맞게 설정할 수 있는 서비스다. 1루피(17원) 정도에 친구나 연인에게 메시지와 함께 음악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 아이디어도 있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들은 작은 금액을 거대한 시장 규모로 모으는 방식이다.

엔터테인먼트,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자기표현 욕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도나 그와 비슷한 나라의 가정에서는 대가족이 한 대의 텔레비전을 함께 시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자가 보고 싶은 방송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할머니가 선택한 채널을 억지로 봐야만 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커다란 진전이다. 카리부디지털의 대규모 조사에 응했던 우간다의 다니엘은 이렇게 말한다. “집에 가면 형제들이 아주 많아요. TV가 하나 있고, 라디오가 하나 있는데 그건 숙모가 차지하고 있죠. 숙모는 자리를 뜰 때면 항상 이렇게 말해요. ‘라디오는 부징고(Bujingo·설교) 채널에 그대로 두렴.’ 라디오로 음악을 듣고 싶어도 싸움이 날까 봐 그러질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듣고 싶을 때, 제가 직접 선택할 수 있죠.”

나머지 절반의 사용자들에게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사생활 그 자체와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사용자들은 거대 테크 기업들의 사생활 침해에 바짝 긴장하고 있지만, 개발 도상국의 시골 마을에 사는 젊은 인터넷 사용자들은 가족이나 이웃, 참견쟁이들의 감시의 눈에서 벗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는 사회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구애하고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로맨스의 장이 열리고 있다. 이제 외국에 나가 본 적이 없어도 전 세계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들, 주로 이주 노동자들은 가족과 계속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됐다.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풍부한 사회 관계를 맺고, 수억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면서 인류의 총체적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물론 위험도 있다. 부유한 나라들에서 소셜 미디어의 정치화, 정치의 소셜 미디어화가 일어나는 것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모두 같은 위험 부담을 마주해 나가면서, 세계의 부자와 빈자들은 경험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왓츠앱으로 채팅을 하고, 인스타그램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유튜브로 동영상을 시청하고, 틱톡으로 타임패스를 할 것이다. 여가를 보내는 능력은 점점 평등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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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윷놀이와 비슷한 서양의 보드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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