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라는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수 있을까

©Paul Blow
글로벌 디지털 통화는 해외 송금을 문자 메시지 전송만큼이나 쉽게 만들어 줄 것이다. 디지털 통화는 수수료와 송금 지연, 현금 흐름을 막는 그 어떤 장애도 제거할 수 있다. 또 저개발국 주민들이 금융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고생해서 번 월급이 통제 불능인 물가 상승으로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을 막아 줄 수도 있다. 온라인 서비스 분야의 인터넷처럼, 글로벌 디지털 통화는 금융 혁신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것이 바로 지난 6월 18일 페이스북이 약속한 것들이다. 페이스북은 1년 내로 고대 로마 시대 중량 단위에서 이름을 딴 ‘리브라’라는 새 통화를 출시한다. 리브라는 여러 로마 언어들에서 영국의 파운드(pound)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이기도 했다.[1] 아니나 다를까, 페이스북은 암호(crypto) 혹은 블록체인 같은 트렌디한 단어들을 쏟아 냈다. 페이스북은 실리콘밸리에선 이미 진부해진 이런 표현들을 쓰면서 스스로의 임무가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돈을 벌거나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일은 부차적인 일 같았다.

페이스북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인 잠재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잠재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어서다. 만약 페이스북 이용자 24억 명의 예금 가운데 일부가 리브라로 전환된다면, 리브라는 널리 유통될 수 있다. 만약 이 통화가 넓은 범위에서 통용된다면, 발행 기관은 전례 없이 막중한 권한을 가질 수도 있다. 페이스북의 부주의한 개인 정보 관리, 가짜 뉴스 확산에 대한 묵인, 그리고 또 다른 과실들이 암묵적인 상식으로 퍼져 나가면서 정책 입안자, 이용자 그리고 잠재적인 파트너 사이에서 페이스북의 신뢰도는 낮은 편이다. 그래서 페이스북은 금융과 기술 분야, 비영리 단체에서 선정한 거물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에 리브라 운영을 맡기기로 했다. 세계 금융 시스템이 맞닥뜨릴 결과는 어마어마할 수 있다.(3화 참조) 페이스북의 사업 역시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만일 프로젝트가 시제품에 부합한다면 리브라를 사고팔거나 보유하는 것, 또 보내고 받는 일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다. 거래는 페이스북의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나 페이스북이 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메신저 겸 소셜 네트워크 앱인 왓츠앱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분리된 자체 앱을 통해서도 가능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익숙한 이야기다. 메신저 앱은 이미 미국에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왓츠앱은 인도에서 비슷한 기능을 시범 서비스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서비스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는 아니다. 그리고 이용자의 은행 계좌를 요구한다. 해외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 등 핀테크 회사들은 200달러를 송금하는 데 4~5퍼센트의 수수료를 떼 간다. 이는 세계 최대 송금 결제 네트워크인 웨스턴유니온(Western Union)보다 3분의 1 정도 낮은 수수료다. 그러나 리브라는 훨씬 더 저렴할 뿐 아니라 이용자의 은행 계좌도 요구하지 않는다. 벤모(Venmo·페이팔의 디지털 송금 서비스)보다는 비트코인에 가깝다.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리브라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 화폐와 다르다. 리브라는 몇 분이 아니라 몇 초 만에, 또 수수료 몇 달러가 아니라 거의 공짜로 거래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리브라 시스템이 초기에 초당 1000건, 시간이 지나면 그 이상의 거래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트코인의 초당 7건에 비하면 빠른 속도다. 리브라는 법정 화폐로 살 수 있는데, 구매 대금은 리브라를 뒷받침하고 있는 준비금을 충전할 것이다. 이런 방식은 투기에 따른 가격 급변동을 방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페이스북은 직접적인 수익은 아니더라도 엄청난 수익원을 얻게 될 것이다. 한 국가 안에서 발생하는 송금 수수료는 그다지 큰 매출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리브라는 페이스북이 온라인 광고에 더 많은 광고비를 매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페이스북 이용자가 광고 상품을 더 쉽고 간단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3월 메시지 앱과 관련해 “프라이버시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리브라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페이스북이 광고 타깃으로 활용할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결제 및 기타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의 대형 애플리케이션 위챗(WeChat)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위챗의 야망은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기술적, 재정적 측면에서 페이스북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 같은 야심 찬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창업 초기 “빨리 움직이고 낡은 틀을 깨뜨리는 것”을 모토로 했던 페이스북의 문화는 이제 조금은 도덕적으로 바뀌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말이다. 조심스런 소비자들은 최근까지 이용자 개인 정보를 여기저기 흘려 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자신의 돈을 맡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편리한 화폐라고 해도 이용자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면 물건을 파는 상인들 역시 굳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리브라 컨소시엄 얘기를 해보자.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될 이 협회는 페이스북의 위임을 받아 리브라가 출시되기 전까지 달러 등 경화로 채워진 리브라 준비금을 관리할 예정이다. 페이스북은 물망에 오른 100개 기업 가운데 전도유망한 28개 회사를 창립 멤버로 등록했다. 각 업체는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분권화한 시스템에서 리브라 발행을 위한 노드(node)를 운영하게 된다.[2] 이 협회에는 비자(Visa), 스트라이프(Stripe) 등 금융 기업, 스포티파이(Spotify), 우버(Uber) 등 온라인 서비스 기업, 앵커리지(Anchorage), 코인베이스(Coinbase) 등 암호 화폐 지갑,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유니온 스퀘어 벤처스(Union Square Ventures) 등 벤처 캐피털, 키바(Kiva), 머시코(Mercy Corps) 등 비영리 단체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은행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달리 말하면 리브라는 현존하는 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자유주의적 대안이 아니라 보완재란 뜻이다.

과거에는 지켜지지 않았지만,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개인 정보와 금융 정보를 분리해서 보관하겠다는 약속에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 자회사 격인 전자 지갑 칼리브라(Calibra)를 만들기로 했다. 칼리브라 애플리케이션으로 리브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애플이나 구글 플랫폼에서 칼리브라를 활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애플과 구글이 페이스북 메신저나 왓츠앱–더 나아가 페이스북이 리브라에 참여하도록 요청한 다른 앱 제공자들-을 앱스토어에서 배제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다른 암호 화폐 상장에 관여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사기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리브라의 성공을 위해 리브라 협회는 새 통화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상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할 것이다. 인센티브는 협회에 참여하는 회원사들이 일회적으로 지불하는 1000만 달러(115억 6000만 원)의 수수료로 충당할 것이다. 결국 페이스북은 협회 회원사뿐 아니라 어떤 회사든 통화를 만들어 내고, 송금하고,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블록체인(소유 구조를 추적하는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상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이 지점에서 리브라는 뒤틀린 문제들과 지나친 자유주의를 제거한 비트코인으로 변할 것이다.

 

경화(Hard currency)


가변성이 큰 프로젝트에서는 많은 부분이 잘못될 수 있다. 페이스북은 시제품을 시험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술은 검증되지 않았다. 회의론자들은 100개의 노드로 이뤄진 시스템이 초당 수천 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해커들은 틀림없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리브라 협회 내부의 역학 문제도 있다. 페이스북은 나머지 99개 리브라 회원사들에게 통제를 포기할 준비가 되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결정들은 회원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억지로라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보 기술의 역사는 내부 갈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좌초한 계획들로 가득 차 있다.

가장 큰 장벽은 정치적인 부분이다. 페이스북은 많은 규제 당국자와 상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 지갑의 제공자는 자금 세탁 방지법과 같은 국내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 메신저 및 왓츠앱과 통합될 칼리브라는 리브라 론칭 초기에 시장 지배적인 전자 지갑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는 공정한 경쟁과 관련한 우려를 촉발시킬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새 통화가 점점 힘을 얻고 분권화하면서 사그라들 수 있지만, 금융 안정성에 대한 불안은 또 다른 문제로 부상할 것이다.

리브라의 성공은 전혀 보장돼 있지 않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얻는 것은 있다. 페이스북이 앞으로 어떻게 통제될 수 있을지 청사진을 제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리브라 협회의 주요 임무는 블록체인을 감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 운영하는) 칼리브라가 정보에 접근하는 특권을 누릴 수 없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용자 대표, 광고주, 정보 보안 당국자 등이 참여하는 ‘페이스북 협회’가 구성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페이스북 협회의 임무는 페이스북 이용자와 그들의 친구 관계를 담고 있는 또 다른 정보 체계인 ‘소셜 그래프’를 감독하는 일이다. 또 이용자들이 다른 종류의 소셜 네트워크에 게시물을 올리고, 다른 소셜 네트워크 이용자가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릴 수 있음을 보장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정보 체계와는 별개로 페이스북을 규율하는 ‘헌법’에 대한 요구는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 대선부터 미얀마 집단 학살 문제까지 전 세계의 이슈에 이 소셜 네트워크가 미치는 영향력이 명백해지고 있어서다. 저커버그 역시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 페이스북은 지난 2009년 개인 정보 보호 정책에 큰 변화를 주기 위한 이용자 투표를 진행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글로벌 민주주의 움직임과 맞물려 이 실험은 폐기됐다. 지난해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독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콘텐츠 심의 위원회’를 꾸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위원회는 발언의 수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일종의 대법원이다.

리브라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데이비드 마커스(David Marcus)는 리브라가 페이스북에 본보기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리브라는 ‘성년이 되는 것(a coming of age)’과 같다. 우리가 통제해선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과 비슷하다. 운영의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도전적인 출발과 같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견제와 균형은 확실히 페이스북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만일 새 디지털 통화가 페이스북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던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라면 역설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1]
영국의 화폐 단위 파운드는 고대 로마에서 무게를 재는 단위였던 ‘리브라 폰도(Libra pondo)’에서 유래했다.
[2]
각 업체가 현금이나 채권을 준비금에 채워 넣고 리브라로 교환해 가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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