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제국주의
10화

에필로그; 창조적 파괴와 상상력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속적으로 도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과거로부터의 수평적 진보가 아니며 일련의 우연한 사건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맞물린 수직적 진보의 결과다.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과거의 연장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미래는 현재와 전혀 다른, 낯선 차원의 세계일 것이다. 현재는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미래에는 보편적 준칙이 될 수 있으며, 지금은 필수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 앞으로 쓸모를 잃고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법칙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도 적용된다.

흥미로운 것은 마땅한 시대적 흐름으로 여겨지는 역사의 궤적이 변곡점에 위치한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급진적인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시대 사람들이 믿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어떤 시대를 가장 객관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집단은 바로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가 도약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너무나 빈번하게 어리석은 (당시에는 합당하다고 생각했던) 선택을 되풀이해 왔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리석음의 역사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반복된다. 최초로 자동차가 거리를 누빌 때, 당시 사람들이 “이제 마차를 대체할 편리한 운송 수단이 생겼으니 삶의 질이 향상되겠군”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사람들은 기괴한 소음을 내고 검은 연기를 내뿜는 ‘말 없는 마차(초창기에는 자동차라는 단어도 없었다.)’ 가 마차의 운행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며 낯설게 여겼다. 실제로 자동차 원조국 영국은 마차를 배려하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고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자동차가 온다는 것을 알리도록 규정한 ‘붉은 깃발 법’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당시에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규제를 만들었다. 그 결과, 영국은 자동차 산업 주도권을 독일과 미국에 완전히 넘겨주고 말았다.

이 책에서 각별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역사다. 역사는 훌륭한 스승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현상을 올바르게 통찰할 수 있다. 처칠이 말했듯이 우리는 역사를 더 멀리 돌아볼수록 미래를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제국주의의 역사, 인터넷의 역사, 화폐의 역사,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역사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종합해 봤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새로운 디지털 제국주의의 시대가 개막했다는 것이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트코인이 디지털 제국주의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보수적인 정부 관계자들은 여전히 비트코인을 사기로 취급하며 반쪽짜리 블록체인 산업 육성책만 내놓고 있다. 현지 금융 기업들은 비트코인 때문에 금융 헤게모니가 글로벌 디지털 플랫폼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탈중앙화를 부르짖는 블록체인 커뮤니티 내 이상주의자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시장에 진입한 투자자 및 협잡꾼들은 돈벌이만 궁리할 뿐 애초에 산업의 중장기적 발전에는 관심이 없다.

정보화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역량은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는 일이다. 하찮은 정보의 쓰레기 더미에서 중요한 것만을 선별해 이를 바탕으로 통찰하고 종합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 그러나 매일 쏟아지는 정보 폭격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 이는 블록체인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자산 가격, 전 세계 인플루언서들이 올리는 트윗, 근거 없는 단기 전망, 시장 조작을 위한 선동, 가짜 뉴스, 과도한 마케팅과 같은 소음이 주의를 분산시키고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 책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현상에 관한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는 것을 돕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사고의 전환과 인식의 확장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비트코인은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피라미드 사기가 아니다. 또한, 순진한 이상주의자들이 기대하는 낭만적인 사이버 유토피아를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업화와 규제의 단계를 거쳐 제국주의의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신호가 발생하고 있다. 다만 소음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

이 책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상’이다. 괴테가 상상력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비유했듯이, 나는 인간의 상상하는 능력이야말로 다른 종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종이다.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토대가 되는 사회, 과학, 예술, 정치, 법, 문화, 경제는 모두 상상의 질서다.

인간이 상상력을 발휘해 전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해 내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 때, 우리는 이것을 혁신이라고 부른다. 혁신은 낡은 것을 파괴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는 혁신의 양면성을 두고 창조적 파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창조적 파괴를 위해 혁신가는 인습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혁신가의 운명은 예술가의 그것과 비슷하다. 일이 계획대로 풀릴 경우 아찔한 성공을 맛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싸늘한 무관심과 조소만이 기다릴 뿐이다.

문제는 혁신을 제약하는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지위가 높은 의사 결정권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관리, 영업, 정치 능력은 탁월하지만 상상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 이들의 가장 큰 결함이다. 만약 이런 부류의 사람이 집단의 리더 역할을 한다면 그 집단은 고인 물이라는 증거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혁신을 제약하는 집단은 반드시 쇠락한다.

대런 애스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를 창조적 파괴와 연관 짓는다. 기득권 보호를 위해 창조적 파괴를 봉쇄하는 것은 착취적 경제·정치 제도를 낳고 이는 국가를 망하게 한다. 다시 말해, 변화를 두려워하고 혁신을 제약하며 기득권 유지에만 골몰하는 수구주의는 뿌리 뽑아야 할 악이라는 것이다.

블록체인 업계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국내 현실에 참담함을 느꼈다. 창조적 파괴에 대한 몰이해, 뿌리 깊은 관료주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교묘하게 획책된 규제, 껍데기뿐인 혁신 정책, 세계화와 디지털화에 대한 무지, 불투명한 거버넌스, 탁상공론, 보신주의, 선택에 책임을 지지 않는 엘리트 등등. 이는 특정 개인, 집단, 정당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미 고착화된 사회 구조적 문제다. 내가 이 문제를 목도하며 느낀 감정은 분노나 좌절감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점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등장하는 실패한 국가들의 전철을 밟아 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디지털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기업과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창조적 파괴를 행해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변화의 속도 또한 전례 없는 수준으로 빨라지고 있다. 창조적 파괴를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앞서 언급한 사회 구조적 문제들로 인해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되기 어려운 여건이다. 이대로 가다간 혁신을 추구하는 국내 기업들은 점점 글로벌 제국의 부름에 응답하며 해외로 나가려고 할 것이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고 이미 앞을 내다보는 혁신가들은 기회를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이해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20년 안에 사람들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없는 삶을 불편해할 것이다. 마치 인터넷처럼 말이다. 세계는 다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부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지닌 연장을 갈고 닦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길 바란다.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뒤늦게나마 접하게 된 것은 진정으로 행운이었다. 어떠한 대상에 이토록 즐겁게 몰입하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내가 블록체인 산업에서 일하면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선한 영감과 지적인 자극을 얻었다는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 이들이 존재하지 없었다면 이 책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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