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의 구조
5화

거인들의 충돌

외환 위기와 중국의 부상


중국은 1997~1998년 동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적 차원의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 성공적인 정치경제적 발전의 모델로 여겨졌던 동아시아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고 지역 질서에 균열이 생기면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시작한 중국은 외환 위기 이후 대미 수출을 통해 급속하게 성장했다. 동아시아 위기 이후 중국은 동아시아 지역으로의 해외 투자 유입을 주도했고, 2001년에는 WTO에 가입하면서 세계 시장에 완전히 통합됐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대다수 지역 국가들의 제1 교역국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상당 부분 중국 경제와 연계되어 있었고,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도 더 커졌다. 동아시아 수출 경제가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국은 세계 경제 금융의 중심 미국에 대당(對當)하는 세계 경제 생산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경제 성장을 토대로 군 현대화와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도모했다. 먼저 국방 예산을 대대적으로 증액했다. 또 아시아 내륙 방위보다는 미국 견제에 적합한 새로운 무기 체계와 작전 개념을 확립하고자 했다. 군비 증가를 바탕으로 항공 모함을 추가로 건조하고 항모 전단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서 최신형 이지스 구축함과 핵잠수함을 도입했다. 미국 군사 전략의 핵심 기지인 괌을 고려해 미사일 전략도 대폭 강화했다. 스텔스 전투기, 공중 급유기 등 최신 장비를 도입하거나 개발했고, 전략핵 전력을 보강했다. 이를 통해 중국의 A2/AD 능력과 전력 투사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됐다.[1]

외환 위기 직후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에게 융자를 제공해 신뢰를 얻고자 했다. 또 미·일 동맹에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고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과 화평 발전을 추구한다는 신안보관을 제시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동남아 국가들의 불안을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중국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하는 동안 생긴 공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세안 지역 안보 포럼(ARF), 아시아 태평양 안보 협력 회의(CSCAP), 동남아 우호 협력 조약(TAC) 같은 안보 관련 지역 다자주의 제도에 적극 참여했고, 남중국해 행동 선언(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a Sea)을 채택해 동남아 국가들과의 협력 기조를 강화했다. 지금도 중국은 상하이 협력 기구(SCO), 아시아 교류 신뢰 구축 회의(CICA) 같은 다자 제도를 통해서 미국, 일본을 배제한 독자적인 지역 안보 협력 제도들을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은 지역 내 자유 무역 협정 확산을 주도하면서 지역 경제 통합을 둘러싼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1990년대 말부터 공세적으로 자유 무역 협정을 추진해 ASEAN, 호주, 뉴질랜드, 홍콩, 마카오, 타이완, 칠레, 한국 등과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한·중·일 자유 무역 협정도 추진 중이다. 나아가 중국은 EAFTA를 더 확대한 RCEP을 TPP에 대응하는 지역 경제 통합의 틀로 제시했다.

중국의 성장은 미국 중심의 지역 체계를 변형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도전으로 변화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에 기반한 군사적 현대화,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 확대로 동아시아 지역 체계는 물론,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수용했다. 중국이 경제적·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행위자임을 인정했고, 중국과의 고위급 대화와 전략 경제 대화를 제도화했다.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을 둘러싼 논의는 미·중 간 헤게모니 이행과 관련된 논의로 확대됐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계하에서 불가피하게 원치 않는 달러 자산을 매입, 누적해야 했다. 그 결과, 달러 가치 유지가 중국의 이익이 됐고, 미국의 구조적 우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는 이런 구조에 균열을 발생시켰다. 장기간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외환 보유고가 증가하면서 달러로부터 이탈하고자 하는 중국의 시도는 현실성을 갖게 됐다. 생산은 물론, 통화·금융에서도 중국의 우위가 곧 도래할 수 있다는 과감한 전망도 출현했다.

 

미·중 양국의 힘과 의도


금융 위기 이후의 미·중 관계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의 상대적 힘, 그리고 양국의 의도와 전략이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중국의 국방비가 급증하고 있지만, 아직 미국에 필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군사 기술의 측면에서 양국의 격차는 훨씬 더 크며, 중국 해공군력의 투사 범위는 여전히 동아시아 지역으로 제한되어 있다. 반면 미국은 재균형 전략 이후 아시아-태평양에서 병력과 장비를 증강했고, 트럼프 행정부도 2018년 정부 예산에서 국방비를 대폭 증가시켰다. 따라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토대로 미·중 갈등이나 헤게모니 이행을 전망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현실에서도 중국의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 SIPRI(SIPRI Yearbook)[2]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더 복잡한 쟁점을 제기한다. 1인당 국민 소득으로 표현되는 경제 발전의 수준이나 경제 구조에서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중국 경제는 국제 분업의 연쇄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있으며, 외국 설비와 자본, 나아가 외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현재 중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비용 경쟁력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저임금에 기초해 있으며, 경제 성장도 미국으로의 상품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동아시아 수출 경제는 신경제 붕괴 이후 전개된 금융 세계화의 새로운 국면에 편승해서 경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중국이 대미 수출을 통해서 축적한 달러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통화·금융 권력을 강화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미국 국채를 비롯해 중국이 축적한 달러 자산은 중국의 부이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부채를 발행하고 자국 금융 시장으로 세계의 자본을 유입시킬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미국의 국력이 여전히 우위에 있고, 중국이 단기간에 미국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중국의 발전은 미국 주도의 세계 체계에 순응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취약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중 적자의 폭이 지나치게 커진 상황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금융 위기 이후의 사태 전개는 미국의 우위가 갖는 불안정성을 보여 줬다. 미국은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협력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미국의 경제적 압력에 취약했던 일본, 서독 같은 과거의 채권국들과 달리 중국은 환율 조정을 비롯한 쟁점들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중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의 크기다.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2006년에 1조 달러를 돌파해 일본을 앞지르고 세계 1위를 기록했고, 2009년에는 2조 달러, 2011년에는 3조 달러, 2014년에는 4조 달러에 이르러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중국의 경기 침체, 위안화 평가 절상과 달러 평가 절하,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기대 등으로 인해서 감소 추세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2017년 이후에도 여전히 3조 달러를 소폭 하회하는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외환 보유액 중에서 65~70퍼센트가 정도가 달러화 표시 자산일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이 기축통화 발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 자산 보유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외환 보유고는 미국에 대한 의존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중국의 대외적 협상력을 보여 주는 지표다. 금융 공포의 균형이라는 개념이 상징하는 것처럼 현재 미·중 경제 관계는 상당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과도한 글로벌 불균형은 미·중 양국 모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지역 경제 통합의 틀을 둘러싼 경쟁도 이런 갈등의 한 단면이다. 중국의 전략은 미국을 배제한 지역주의를 강화하고, 미국으로부터 독자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글로벌 불균형 조정 부담을 아시아­태평양이라는 틀 속에서 분담하고자 한다. 미·중 관계의 경제적 구조가 어느 정도 더 지속될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미·중 관계의 핵심 쟁점인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과 지역 경제 질서의 재편은 당사자들에게 상당한 조정 비용을 유발하고, 지역적 차원에서도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쟁점이다.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을 둘러싼 갈등은 위안화 환율 조정 문제를 중심으로 표출됐다. 미국은 이중 적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주요 채권국들에게 환율 조정을 요구했다. 중국에게도 위안화 평가 절상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미국의 요구는 글로벌 불균형이 채권국들의 인위적인 통화 저평가, 즉 환율 조작과 과도한 저축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세계적 저축 과잉론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은 이를 근거로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 책임이 채권국들에게 있으며, 채권국 통화의 평가 절상을 통해서 글로벌 불균형이 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방만한 거시 경제 정책과 과소비가 위기의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또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위안화 절상은 중국의 경제 성장과 양립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중국의 외환 보유고가 증가하면서 미·중 갈등의 가능성도 더 커졌다. 미국은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총 다섯 차례의 전략 경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양국 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위안화 평가 절상, 중국의 금융 개혁 이슈를 매년 의제에 포함시켰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을 위한 공세적인 경제 전략을 천명하면서 중국에 대한 압박은 더 강화됐다. 환율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도 더 심화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위안화 평가 절상과 중국의 금융 개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미국 의회 역시 환율 조작과 관련된 일련의 입법을 통해서 중국을 압박했다. 2010년 9월 하원은 공정 무역을 위한 통화 개혁법(Currency Reform for Fair Trade)을 통과시켰다. 무역 상대국이 환율을 조작할 경우 이를 해당 정부의 부조금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상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이었다. 2011년 10월 상원에서는 환율 감독 개혁법(Currency Exchange Rate Oversight Reform Act)이 통과됐다.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 역시 위안화가 저평가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또 재무부는 G20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흑자국들이 외환 시장 개입 및 과도한 외환 보유를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위안화 환율이 중국의 경제 발전 단계와 거시 경제적 조건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외환을 달러화 표시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고, 전체 수출액의 25~30퍼센트를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연착륙이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 은행은 2005년 7월 달러에 연동되는 고정 환율 제도인 달러 페그(peg)제를 폐지하고 복수 통화 바스켓을 기반으로 하는 변동 환율제 채택을 발표했다. 금융 위기로 인해 사실상 고정 환율제로 복귀했던 기간(2008년 7월~2010년 5월)을 제외하면 중국은 관리 변동 환율제를 유지했다. 위안화 가치도 지속적으로 평가 절상되어 2005~2013년 사이에 변화 폭이 24퍼센트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위안화 평가 절상의 폭과 속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글로벌 불균형의 중국 책임론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달러 발권력을 고려했을 때 위안화 환율 조정의 무역 불균형 시정 효과만으로 글로벌 불균형을 조정하기는 힘들다. 위안화 환율 조정을 요구하는 미국의 진짜 의도는 무역 적자 감축이 아니라 중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 즉 미국 대외 부채액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글로벌 불균형 조정 비용을 전가하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환율 조정 요구를 통화·금융 권력을 활용한 조정 비용의 전가라고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은 플라자 합의의 선례처럼 위안화 평가 절상이 중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3] 중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나 자본 시장 개방 수준 같은 거시 경제적 조건은 플라자 합의 당시의 일본에 미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위안화 평가 절상과 급속한 금융 개방이 이뤄질 경우, 부정적인 효과는 중국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달러 중심의 국제 통화·금융 질서하에서 발전을 도모하던 기존 전략을 수정했다. 지역 체계, 나아가 세계 체계 차원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고 독립성을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반격; 위안화 국제화와 일대일로


중국의 이런 시도는 우선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당시 중국 인민 은행 총재 저우샤오촨(周小川)은 일국의 통화인 달러에 기초한 국제 통화 체제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면서 IMF의 SDR이 기축통화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또한 달러화 중심의 국제 통화·금융 체제가 다원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위안화 국제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위안화가 세계 경제에서 지불 수단, 회계 단위,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첫 단계로 중국은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 광저우, 선전, 주하이, 둥관 등 주요 도시에서 위안화 무역 결제를 도입했다. 이후 홍콩, 마카오, ASEAN 간의 무역에서도 위안화 결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했고, 이를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위안화 무역 결제액은 2009년 36억 위안에서 2015년 10조 위안 수준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중국은 금융 시장 개혁을 위한 조치들도 시행하고 있다. 국제 투자에서 위안화 표시 자산의 비중을 확대하고, 나아가 위안화가 준비 통화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금융 개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홍콩, 타이페이, 싱가포르, 런던, 서울 등에는 위안화 역외 시장이 개설됐다. 2007년 홍콩에서 위안화 채권이 최초로 발행된 이후 프랑스, 스위스, 독일, 싱가포르 등에 위안화 채권 시장이 개설됐다. 그 결과 위안화 표시 자산의 거래와 보유가 확대됐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등 지역 내의 통화·금융 협력 시도나 중국이 공세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양자·다자 간 통화 스와프 협정도 위안화의 국제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4] 2015년 현재 중국은 33개 국가와 3조 위안을 넘어서는 규모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시도는 단기간에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2013년 결제 규모에서 세계 10위권 밖에 머물렀던 위안화는 2016년에 무역 융자액에서 세계 2위, 국제 결제액에서 세계 4위, 국제 은행 간 대출액에서 세계 6위를 차지하는 주요 통화로 부상했다. 또 2016년부터는 위안화가 IMF의 SDR 통화 바스켓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는 위안화가 국제 통화 체제에서 유의미한 준비 자산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또 중국은 2016년 IMF 쿼터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 국가가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제 금융 제도의 거버넌스 구조 개혁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5]

일대일로 전략에서는 중국의 야심이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일대일로 전략은 자국 중심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카자흐스탄과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권과 중국-남중국해-동남아-인도양-유럽을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제안한 것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중국은 이를 통해 해외 투자 수요를 창출하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또 상하이 협력 기구(SCO), ASEAN+1(중국), 중국-아랍 협력 포럼(CASCF),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Forum on China-Africa Cooperation) 등 다자 제도들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17년 5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일대일로 국제 협력 정상 포럼에는 130여 개 국가가 참석했고, 2019년 현재 80여 개 국가가 일대일로 전략에 참여하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은 위안화 국제화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은 위안화의 사용 범위를 지역적·세계적 차원에서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AIIB는 시진핑 주석이 2014년 APEC 정상 회의에서 일대일로 전략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중국은 IMF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금융 기구는 물론, 아시아 개발 은행(ADB) 같은 지역 통화 협력체들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비판하면서 AIIB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다수 유럽 국가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2019년 현재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는 예비 회원국 27개국을 포함하여 총 97개국이며, 중국은 투자 자금의 32퍼센트와 투표권의 2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중국의 이런 시도는 신흥국들로부터 일정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6]

일대일로 전략은 달러와 미국 시장에 대한 의존성이 야기하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중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 준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강대국들은 자국의 통화를 일정한 수준에서 국제 통화로 유통시키려 했다.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통화를 발행하는 국가는 이로부터 상당한 정치적·경제적 이익과 영향력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통화·금융 질서에 대한 지배력은 헤게모니 국가가 갖는 권력의 핵심이기도 했다.

한 국가의 통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기축통화 발행국이 정치적 안정과 확고한 안보를 유지해 통화의 미래 가치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개방적이고 발전된 금융 시장을 유지해 거래의 용이성과 자산 가치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폭넓은 거래 네트워크를 보유해 다른 행위자들도 이 통화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예상이 대다수의 행위자들 사이에 공유돼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통화는 가치가 부분적으로 변동되더라도 구조적인 우위를 누릴 수 있다.

중국의 경제 규모나 달러 자산 보유액은 과거 다른 국가들의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런 점에서 위안화 국제화 시도는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에 대한 실질적인 도전이다. 그러나 달러를 상대화하려는 중국의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 국내 금융 제도의 개혁, 자본 통제의 철폐 등 선결돼야 할 문제가 많다. 양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금융 시장이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에 비할 수준은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 스스로도 위안화의 국제화는 지역 통화로서 위안화의 ‘잠재력’에 관한 것일 뿐 기축통화 달러를 대체하는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7]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적·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육상 실크로드에서는 상하이 협력 기구를 바탕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했다. 해상 실크로드에서는 인도양과 남중국해에서 정치적 영향력과 군사력을 증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스리랑카, 파키스탄, 미얀마의 주요 항구들에 대한 개발 및 운영권을 확보했고, 태국과는 운하 건설에 합의했다.

나아가 중국은 인도양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진주 목걸이 전략(String of Pearl Strategy)을 추진하고 있다. 진주 목걸이 전략은 인도양에서 중국-남중국해-방글라데시-스리랑카-파키스탄-아덴만-케냐-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연결하는 해군 기지 네트워크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해군 병력 및 장비를 대폭 증강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인민 해방군 잠수함이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에 최초로 정박했고, 아덴만에는 최초의 해외 군사 기지가 건설됐다. 파키스탄, 오만, 세이셸 등에도 중국의 군사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와 자원, 인구를 가진 국가이며, 군사·안보적으로 독립성을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하에서 발전을 도모한 서독이나 일본, 동아시아 신흥 공업국들과 달리 국제 관계에서 근본적인 힘의 이동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변수다.

그러나 군사·안보적 측면에서도 중국의 전략적 레토릭이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에서 사실상 핵심이 되는 지역은 남중국해다. 남중국해에서는 영유권 분쟁을 비롯한 지역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으며, 미국도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강력한 개입 의지를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남중국해는 일대일로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동시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지역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의 군사적 취약성이 드러나거나 미·중 간의 군사적 갈등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위험이 있다.

금융 위기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통화·금융 권력에 기반한 미국의 구조적 우위는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 또 미국은 경제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와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중 양국 사이의 헤게모니 이행이 단기간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 전환에서 동아시아 지역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미국이 강력한 동아시아 전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글로벌 불균형의 조정과 통화·금융 권력의 유지를 핵심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새로운 전략은 중국을 비롯한 지역 국가들에게 상당한 비용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강력한 군사·안보적 개입은 독자적인 지역 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자국의 정치·경제적 발전과 연계시키고자 하는 중국의 발전 전략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1]
1980년대 초반 확립된 중국의 도련(島鏈) 전략은 2010년까지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남중국해-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제1 도련선을, 2020년까지 일본-사이판-괌-인도네시아를 연결하는 제2 도련선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다는 전략 구상이었다. 이는 현재까지도 중국 해양 전략의 기본 틀로 유지되고 있지만, 중국의 현실적인 역량을 고려해서 제1 도련선과 제2 도련선에 대한 통제 역량 확보 시기가 각각 2020년과 2050년으로 조정됐다.
[2]
중국의 경우 정부 공식 통계가 아니라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SIPRI)가 추정한 수치다. SIPRI와 더불어 대표적인 군사·안보 관련 싱크탱크인 국제 전략 연구소(IISS) 자료에서는 중국의 군비 지출액이 SIPRI의 추정치에 비해 조금 낮은 수준으로,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비해서는 조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3]
1985년의 플라자 합의로 엔화는 34.1퍼센트 평가 절상되었고, 그 결과 일본의 제조업은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고 위기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급속한 엔고로 인한 수출 산업 침체 및 불황을 우려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대규모 자금이 금융 및 부동산 투기로 이어져 버블 경제를 형성했는데, 1990년 그 버블이 붕괴하면서 일본 경제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침체 국면으로 진입했다.
[4]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는 1997~98년 외환 위기 이후 ASEAN+3 국가들이 체결한 통화 스와프 협정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CMI를 다자화하기 위한 시도가 지속되었고, 2007~2008년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CMIM에 관한 합의가 도출되어 공동 기금이 조성되었다. 이에 따라 중국과 일본이 각각 32퍼센트, ASEAN이 20퍼센트, 한국이 16퍼센트의 분담금을 부담하게 되었다.
[5]
SDR의 가치는 IMF가 5년마다 정하는 표준 바스켓(standard basket)에 포함된 주요 통화의 가치와 연계해서 결정된다. 2016년 표준 바스켓 통화의 구성 비율은 달러화 41.73퍼센트, 유로화 30.93퍼센트, 위안화 10.92퍼센트, 엔화 8.33퍼센트, 파운드화 8.09퍼센트로 위안화의 비중이 적지 않다. 한편, IMF 쿼터가 변경되기 전인 2015년 중국의 쿼터는 4.00으로 미국(17.68), 일본(6.56), 독일(6.12), 프랑스·영국(각각 4.51)에 이은 6위였으나 2015년 12월 쿼터 변경으로 미국(17.41), 일본(6.46)에 이어 6.39의 쿼터로 3위 국가가 되었다. 이는 IMF의 의사 결정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졌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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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국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의 신개발 은행NDB 창립과 위기 대응 기금(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 설치를 주도했으며, SCO 개발 은행(SCO Development Bank)의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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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국제화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Eric Helleiner and Jonathan Kirshner, eds., 《The Great Wall of Money: Power and Politics in China’s International Monetary Relations》, Cornell University Press, 2014.
Robert Minikin and Kelvin Lau, 《The Offshore Renminbi: The Rise of the Chinese Currency and Its Global Future》, John Wiley & Son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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