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맛을 찾아 드립니다
2화

높이 높이 자라라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농부

IGS가 운영하는 영국 스코틀랜드 최초의 수직 농장.
이 건물의 외관은 높이가 좀 더 높은, 금속 외양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벌레들을 막기 위해 고안된 거대한 공기 차단 설비와 만화경 같은 화려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중앙 통로의 측면에는 두 쌍의 타워가 세워져 있다. 각 타워에는 딸기, 케일, 붉은 상추, 고수 등이 자라고 있는 십여 개의 선반이 쌓여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선반들은 각기 다른 색깔들의 생기 넘치는 빛을 흠뻑 받고 있다. 대부분은 파란색과 자홍색이다. 이 인공 에덴 농장을 책임지고 있는 더글러스 엘더(Douglas Elder)가 식품 검사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몇 가지 지시를 내리자 기계에서 짧은 윙윙 소리가 나면서 풍성한 녹색 바질로 가득한 선반이 미끄러져 나왔다.

엘더는 스코틀랜드 던디(Dundee) 근처의 인버고우리(Invergowrie) 지역에 본사를 둔 수직 농업 회사 인텔리전트 그로스 솔루션(IGS)의 제품 매니저다. 그가 운영하는 농장의 9미터 높이 타워는 각각 40제곱미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반을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타워는 최대 350제곱미터의 재배 면적을 제공한다. 엘더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각 선반 위에 있는 LED 조명 1000개의 색상과 밝기를 조정했다. 앱으로 온도와 습도, 환기는 물론 농작물을 생산하는 수경 시스템의 물과 영양분을 조절할 수 있다. 든든한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엘더는 거의 혼자서 농장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식물 공장의 힘


이런 종류의 수직적 농업은 그 자체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 용어의 시작은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최초의 상업용 수직 농장이 건설되기까지는 한 세기가 걸렸지만 말이다. 현재의 수직 농장 사업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구글의 수장이었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수직 농장 회사 플렌티(Plenty)에 2억 달러(2425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6월에는 영국의 온라인 식료품점 오카도(Ocado)가 자동화된 유통 창고 내에서 신선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수직 농장 사업에 1700만 파운드(248억 8200만 원)를 쏟아부었다.

수직적 농업을 효율적인 “식물 공장(plant factories)”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투자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IGS 생산 유닛의 첨단 기술 LED 조명은 낭비되는 광자가 없는 최적의 환경을 만든다. 수경 농법과 재활용 시스템에서 손실되는 물 전부는 결과적으로 식물의 일부가 된다. 여러 개의 타워로 구성되는 농장은 모든 시스템이 모듈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규모의 확대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IGS가 내년 초부터 납품을 시작하려 하는 대부분의 시스템은 10개 이상의 타워로 구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비닐하우스가 재배하지 못하는 농산물을 수직 농장이 얼마나 키워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수직 농장은 확실히 더 압축적이다. 땅이 비싼 도시 지역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도시 소비자에게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은 수직 농업의 가장 큰 기회 요인 중 하나로 자주 홍보되고 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농법은 빛과 열을 공짜로 사용한다. 뉴욕과 시카고의 건물 지붕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운영하는 도시 농장 기업 고담 그린스(Gotham Greens)의 공동 창업자인 비라지 푸리(Viraji Puri)는 현대적인 비닐하우스는 태양열 보조 LED 조명을 활용해 식물의 생장 시기를 연장하고 수경 재배로 물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식재료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데 필요한 이동 거리를 의미하는 ‘푸드 마일’ 측면에서는 고담 그린스가 운영하는 뉴욕 브루클린의 옥상 비닐하우스만큼 거리가 짧은 곳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바로 아래층의 유기농 마트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에 공급되고 있다.

수직 농업의 가장 큰 단점은 많은 수의 LED 조명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전기의 높은 비용이다. 샐러드 채소나 허브처럼 가치가 높지만 상하기 쉬운 농산물을 생산할 때만 상업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직 농업 시장은 주목을 받고 있다. 품종이 광범위하게 확장된다면, 수직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너무 비쌀 수도 있다. 2014년 미국 코넬대 생물환경공학과 명예교수 루이스 올브라이트(Louis Albright)는 수직 농장에서 재배된 밀로 만든 빵 한 덩어리의 가격이 약 23달러(2만 7800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블루 이즈 더 컬러[1]


전기를 절약하는 한 가지 방법은 일반 백색광의 전체 스펙트럼 대신 식물이 필요로 하는 색상만 생성하는 LED 조명을 활용하는 것이다. 식물은 엽록소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녹색인데, 엽록소는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 있는 파랑과 붉은 파장을 흡수해 광합성에 사용하면서 스펙트럼의 중간에 있는 녹색 빛을 반사한다.
IGS의 수직 농장에서 키운 바질의 성장 과정을 담은 타임랩스 영상.
인버고우리의 IGS 수직 농장은 이런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이 농장은 고도로 조절되는 LED 조명을 사용한다. IGS의 CEO 데이비드 파쿼(David Farquhar)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의 조명은 대부분 파란색과 빨간색 파장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연구원들은 이제 식물 발달의 다양한 단계에서 또 다른 색깔의 빛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제공되는 충분한 녹색 빛은 더 높은 수확량으로 이어진다. 시의적절한 적외선은 채소 잎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조명을 활용해 파란색과 빨간색이 혼합된 다양한 종류의 색깔을 만들 수도 있다.

IGS는 LED 조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저전압 배전 시스템을 개발했다. 파쿼는 이 시스템이 기존 수직 농장의 에너지 비용을 거의 절반으로 줄여 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갖춘 네 개의 타워는 연간 15~25톤의 허브, 샐러드용 채소, 과일과 일반 채소를 생산할 수 있다. IGS는 이 생산량이 네 개의 타워가 운용하는 재배 면적과 비슷한 규모의 수평적 토양에 설치된 기존의 비닐하우스보다 2~3배 많은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보조 조명과 난방 설비를 갖추고 있어 생산량 조절도 가능하다. 게다가 이 시스템에서는 모든 품종의 킬로그램당 생산 비용이 거의 비슷하다.

인버고우리 농장의 임무 중 하나는 개별 작물에 특화된 조명 체계를 개발하는 일이다. 또 다른 임무는 각기 다른 작물들이 선호하는 기후 조건을 맞춤형으로 제어하는 알고리즘 개발이다. 수직 농장에서 재배되는 모든 품종의 수확량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 작물에 특화된 ‘날씨 레시피’를 설계하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모든 과정은 효율성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관개는 저장한 빗물에 의존한다. 정화해서 재활용하는 빗물은 수확할 때마다 단 5퍼센트만 손실된다. 그 5퍼센트의 대부분은 식물이 함유하고 있는 수분이다. 환기 시스템은 폐쇄 루프를 활용해 습도와 산소 농도를 관리하면서 LED 조명을 켜고 난 뒤 남은 열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운영비를 줄여 수직 농장의 수익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회사는 무, 순무 등 일부 뿌리채소를 재배하면서 수익성 목표 달성에 성공했다. 밀과 쌀 등 대량 생산되는 작물은 수직 농법으로는 결코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크고, 무거운 작물들은 타워에서 키우기가 어렵다. 현존하는 기술로는 수직 농장에서 완전히 다 키운 감자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스코틀랜드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식물 과학 연구 센터인 제임스 허튼 연구소의 콜린 캠벨(Colin Campbell) 소장은 수직 농법에 적합한 작물로 씨감자를 꼽았다. 이 연구소는 IGS 본사 인근에 거점을 두고 IGS와 함께 일하고 있다. 캠벨 소장은 전 세계의 많은 대지에서 감자 낭포 선충 같은 해충과 질병으로 인한 부담과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해충과 질병 모두를 차단할 수 있는 수직형 농장의 통제된 환경은 넓지만 유해한 야외 환경보다 더 효율적으로 씨감자를 퍼뜨릴 수 있다. 이렇게 자란 씨감자는 밭으로 옮겨졌을 때,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다.

연구소는 또 일반적인 집중 농업 시스템의 가혹한 환경에서 밀려나 사라진 옛 품종들을 포함해 실내 생장에 특화된 품종을 찾고 있다. 캠벨 소장은 연구소의 유전자 은행을 둘러보면서 수직 농장의 안전한 환경이 오랫동안 잊혔던 과일과 채소들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새로운 기술과 시스템은 사라진 맛의 문을 열어젖히면서 미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슈퍼마켓 매대에서 자라고 있는 이국적인 품종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베를린의 인팜(Infarm)이라는 기업은 매장, 창고, 레스토랑에 설치해 원격으로 통제하면서 농산물을 키울 수 있는 수직 농법 캐비닛을 판매하고 있다. 제노바 바질, 페루 민트 등 이국적인 허브와 샐러드 채소들의 다 자란 잎사귀를 따고 나면 인팜의 생장 센터에서 자란 모종이 다시 공급된다.

수직 농장이 전 세계를 먹여 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농산물을 제공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수직 농업 시스템이 더욱 발전하면, 소형 버전의 선반을 부엌에 설치할 수도 있다. 물론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듯, LED 조명 아래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부엌에 설치될 미니 농장은 한때 ‘윈도 박스(window box·창가에 설치된 화단)’라고 불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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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푸드 #스타트업 #도시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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