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10화

숙달 목표; 과정을 목표로 삼아 도전하라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레전드는 모두 한국 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야구 선수들보다 뛰어난 결과를 보여 준 최고의 선수들이다. 그러나 레전드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룬 위대한 결과를 얘기하기보다는 힘들었던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정태는 야구를 하면서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특별히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는 매일의 연습량 그 자체가 목표였다. 연습 과정을 성실하게 이행해 나가는 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기에 연습 과정만 지켜 나갈 수 있다면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저는 ‘무조건 열심히’입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저는 다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결과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한테 목표는 ‘내가 연습을 얼마나 하겠다’ 그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니까. 뭐가 되겠다, 타격왕이 되겠다, 이번 시즌엔 타율을 여기까지 끌어올리겠다, 이런 목표를 설정해서 가면 피곤하니까. 내 목표는 노력이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도전하는 거. 그것만 설정해 놓으면, 시합에 나가면 자동적으로 강해집니다. 준비만 탄탄히 하면 (결과로서의) 목표는 필요 없습니다.
 
박정태는 골프에서 퍼팅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대부분의 골퍼들은 퍼팅할 때 저 멀리 있는 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 앞의 공을 본다. 공을 제대로 보고 치기만 한다면 그 공은 원하는 곳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야구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오늘 내가 해야 할 훈련, 오늘 내가 해야 할 노력, 하루하루의 연습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매일 연습 목표를 정해 놓고 그 과정만 잘 연결시키면, 결과적으로 잘하고 못하고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 달 목표, 주간 목표, 이런 거는 정해져 있으면 그대로 연결만 시키고, 내가 연결만 쭉 시켜 놓으면 잘하고 못하고는 신경 쓸 필요 없거든. 고대로만 쭉 가면 되니까. 잘했다 못했다 생각하다가는 괜히 쓸데없는 감정에 치우쳐가 연습도 안 되고 집중도 안 되니까. 그냥 시합과 관계없이 나는 과정만 쭉 지켜보니까. 과정이 중요한 거지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안 되더라도 후회 안 돼요. 아, 다시 또 이렇게 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시작하는 거죠. 결과를 생각하게 되면 꼭 노력을 안 합니다. 절대 그렇더라고요. 그냥 묵묵하게 가는 애들이 잘하지. 실패해가 억울해하고 이런 애들은. 그날 연습 안 하고 집에 가요. 속상해하다가 혼자 열 받고, 감정 조절 안 되어가지고 페이스를 잃는 거예요.
 
연습 과정을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행동하는 것은 박정태의 정신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늘 훈련 과정에 의미를 두고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실수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은 없었어요. 불안보다는 ‘꼭 보여 줘야 되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준비를 안 했다면 당연히 불안했을 텐데. 저는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물론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다고 해서 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전드는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이 기울인 노력과 도전하는 행동에 의미를 두었다. 과정이 탄탄했다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노력을 많이 하면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과정이 탄탄해지면 잘할 수밖에 없지만, 혹 못하더라도… 후회는 안 되죠. 그게 제가 노력을 많이 해봐서 얻은 결과예요. 실패를 해도, 성적이 나빠도, 바로 정리가 되죠. 그리고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요. 좌절보다는. 준비를 많이 하게 되면 그렇게 돼요. 그런데 준비를 안 한 이들은 좌절을 하고 시간 낭비를 많이 해요. 하지만 노력을 많이 하고 지면 단번에 빠져나올 수가 있죠.
 
송진우는 기록의 사나이다. 210승, 3003이닝, 2048탈삼진 등 KBO 사상 최고 기록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21년 동안 공을 던지면서 그는 투수가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기록을 세웠다. 그런 그에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물었다.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공 하나하나에 혼을 실어서 던진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던졌다기보다는 ‘하루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을 던졌을 뿐이라고 했다. 결과를 바라보기보다는 과정을 충실히 지켜가다 보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나이 먹어서는 뭐… 하루하루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던졌어요. 뒷일 생각 안 하고요. 사실 150승까지도 못할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100승 할 때까지가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때가 97년, 98년 그때예요. 정~말 노력했어요. 죽도록 맞으면서 막 했고. 그래서 150승은 생각도 못했고, 선 감독님(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갖고 계신 게 146승인데, 100승 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할 게 없는 거야. 최다 승 깨진다 하니까, 그래서 일단 도전한 거죠. 성공하고 말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도전하는 데 의의를 두고, 150승 해보겠다. 그런데 150승 하니까, 또 목표가 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높지만 200승, 그걸 한번 넘어 보겠다, 까짓것! 그렇게 된 거예요.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진 거예요. 물론 나에 대한 자신감도 없진 않았겠죠. 중간중간 이기면서 자신감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하루하루, 공 하나하나 열심히 던진 거… 그거예요. 1년 1년 하다 보면 기록이 쌓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들은 원대한 목표를 얘기하지만, 저는 어떤 큰 목표치를 정해 놓기보다는 공 하나하나, 거기에 혼을 실어서 던졌던 것이 결국 이렇게 이어져 온 것 같아요.
 
송진우는 자신의 기록 중 200승보다는 3000이닝에 더 큰 의미를 둔다고 했다. 3000이닝은 단순히 잘 던져서만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부상 없이 꾸준하게 좋은 수행을 보여야만 가능하다. 송진우가 꾸준히 과정을 지켜 가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저는 200승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3000이닝에 더 큰 의미를 둬요. 3000이닝이라는 건 부상 없이 꾸준하게,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던져야 그렇게 나올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3000이닝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요즘 투수들 (한 해에) 150이닝 던지면 많이 던지는 건데. 150이닝을 20년을 던져야 되는 거니까요. 내가 하나하나 던졌지만, 저는 결과를 의식했다기보다는 던지는 과정 자체에 최선을 다했어요. 그게 쌓이고 보니까 정말 큰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용수는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주문이나 자기 암시 같은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오늘을 열심히 하지 않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을 꺼냈다. 오늘이 쌓여서 내일이 되는 것이다. 이는 원대한 목표나 성공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열심히 하는 것, 일상의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숙달 목표(mastery goal)[1]를 지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운동장에 나갈 때 ‘오늘 한번 죽자, 내일은 없다’ 항상 생각해요. 왜냐! 오늘 한번 열심히 해가지고 잘했으면 내일 또 팬들이 기다리고 하지만, 오늘 못하고서 내일을 기다린다? 그건 아니죠.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긴 하지만, 오늘 정말 잘하려고 했는데 안 됐어. ‘아 내일 하면 되지?’ 그런데 다쳤다면? 내일이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깐 저는 내일을 보지 않고 오늘, 지금, 할 수 있는 순간, 정말 죽을 때까지 해요. 후회 없이. 왜냐. 오늘 해놓아야 내일 또 즐겁게 하고 다음을 기다릴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매일매일이 쌓여서 내일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기회도 오는 거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후회 없이. 오늘을 열심히 하지 않고 내일을 기약할 수는 없는 거라고 봐요.
 
‘연습 과정만 지켜 나갈 수 있다면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 하나하나에 혼을 실어서 던진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오늘을 열심히 하지 않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와 같은 레전드의 말은 어떤 일을 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숙달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지향하는 동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강력한 숙달 목표를 가진 선수들이 결국 더 나은 경기력을 보이며 자신의 운동 수행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숙달 목표의 지향은 레전드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임하고 중요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데에 전략적 대처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의 실력을 재능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화가 난다. 내가 이제까지 쌓아 온 노력이 아까워서다.
페드로 마르티네스
[1]
숙달 목표(mastery goal)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새로운 과제를 익히며 새로운 것을 이해하려는 욕구다. 숙달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과제를 선택할 때, 비록 실패할지언정 새롭고 유용한 것을 배울 수 있는 도전적인 과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