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프레스 팀 - 책의 재발견

책의 재발견
쪽프레스 팀 - 김태웅 대표, 김미래 편집장
@jjokpress



쪽프레스의 ‘한쪽 책’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김미래(편집장) 줄곧 출판사에 적을 두다 보니 책 만드는 작업에 익숙해지는 단계에 있었다. 회사에서 책 만드는 매뉴얼을 익혔으니, 이 루틴에서 조금 다른 느낌의 책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김태웅(대표) 결과적으로는 책의 소프트웨어적인 정의(완결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는 가져가면서 물성, 하드웨어적인 정의(종이를 여러 장 엮어 맨 물건)에 변화를 주는 형태가 됐다. 즉 발췌가 아닌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를, 낱장에 담아 아코디언북으로 선보이게 된 것이 ‘한쪽책’이다. 

김미래 편집장의 경우 민음사에 있었다고 알고 있다.

김미래 천재교육에서 문학 교과서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열린책들, 지콜론북, 민음사, 텀블벅에 차례로 다녔다. 

쪽프레스 한쪽책에는 주로 어떤 것들이 담겨 있나.

김태웅 좋아하는 문학가들의 단편 소설로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보니 제재가 추출됐고, 이러한 동일한 주제에 대한 동시대 작가들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우리의 관심사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다 보니 현재는 소설과 만화를 주로 다루면서 수필, 시, 리뷰, 사진까지도 포괄하여 담는다.

한쪽책이 담을 수 있는 길이 면에서 근대 문학이 잘 맞았던 것인가.

김미래 길이의 측면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직접 경험해본, 좋아한다고 확신하는 것을 먼저 소개하고 싶었다. 분량이 짧은데도 충분히 무언가를 얻게 됐다는 감상을, 문학을 경험했다는 인상을 안기는 작품들이 있다. 그러므로 단 한 쪽에 담긴 책이지만, 이 독서 경험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느끼게끔 하는 작품을 독자에게 권하고 싶었다. 소설 입장에서도 좋을 것 같았다. 모파상의 단편 소설은 단편집 안에 묶이게 된다. 아주 유명한 몇 작품 빼고는 단편의 제목이 책의 제목이 되는 일이 흔하지 않다. 그러나 한쪽책일 때는 그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동시대 작가분들은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을 수도 있겠다. 작가분들이나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김태웅 독자분들의 경우, 보통 리플릿에 값이 매겨져 있지 않다 보니 행사장에서 무가지처럼 가져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밀봉되어 있는 내용물에 관해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았다. 시간이 흐르며 작업물이 쌓이다 보니 이것을 책이라고 받아들여 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났다.

김미래 작가분들에게는 그런 단편을 쓴 경험이 특별하거나 처음이라기보다는, 묵직한 책을 내본 경험이 없는 생소한 팀의 제안을 신뢰하는 과정이 더 생소하고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런 기획을 재미있게 봐주신 분들 중에는 먼저 참여 의사를 밝혀주신 경우도 많다.
스파인서울 내부 ©얼터앤얼터 이승현

그렇게 한쪽책 프로젝트를 ‘쪽프레스’로 이어오다가 ‘고트’라는 새로운 이름을 따로 선보였다. 고트는 어떤 방향성에서 나온 걸까.

김태웅 한쪽책의 초판 제작 부수가 늘고, 해외 아트북페어에서 쪽프레스가 초대받는 일도, 국내외 브랜드나 작가와의 협업도 느는 시기였다. 한쪽책으로 실험하고자 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느꼈을 때, 이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업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의식이 싹텄다. 낱장(한쪽)을 넘어서되, 내용적인 실험을 해본 것이 고트라고 할 수 있다. 고트의 첫 타이틀 《리버스 에지》는 만화책이다. 가볍고 값싼 종이로 만들고, 외서의 표지를 보통 그대로 쓰는 등, 만화책의 문법이랄까 관행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에서 벗어난 책으로 선보이려고 했다. 책표지에 타이틀도 없고, 뒤표지에 ‘불법복제를 금합니다.’라는 커다란 문구도 없다.

홍대 <전시공간>에서 고트의 책들이 전시된 것을 보았다. 책의 내용뿐 아니라 책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신경 쓰는 것이 느껴졌다. 독립 출판 서점에 가면 독자들이 흥미롭다고 느낄만한.

김미래 아까 질문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쪽프레스의 한쪽책은 순문학,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무겁고 낙서하면 안 될 것 같은 순문학의 권위를 되게 가벼운 형태에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의 구현이었다면, 고트는 장르와 꼴에 대한 관념을 실험한 결과다. 이를테면 만화책은 보통 문학책에 비해 쓰는 서체도, 지면(여백)도 한정되어 있고, 만듦새(주로 쓰는 종이나 가공의 범위), 책값이나 유통되는 형태도 꽤 정해져 있다. 쪽프레스라는 이름으로 문학을 리플릿처럼 다루며 무게를 더는 작업을 했다면, 장르나 서브컬처에 문학이나 아트북 이상의 무게를 매기는 프로젝트의 주체가 고트다.

어떻게 무게감을 주었나.

김미래 인물의 목소리에 따른 서체를 일일이 찾는다거나, 만화 번역가, 만화 디자이너 등 보통은 책 지면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실으려고 했다. 독자로서 의구심이 들었던 부분은 과감하게 관행을 깨려고 했고, 책을 만드는 작업 과정 요소마다의 무거움을 이해하는 만큼 작업자의 태도나 가치를 듣고자 했다. 책이라는 직육면체 물건에는 홍보를 위해 쓰이는 지면이 많지만, 이는 매대에 눕혀져 있는 것을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예를 들어 우리 책은 유가 이벤트 매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꽂혀 있는 경우, 즉 책등으로서 독자를 만나는 경우가 가장 많다.(지금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이곳의 이름도 책등, spine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요한 정보를 주로 책등에 한정하여 노출하고, 책 앞표지와 뒤표지 같은 널찍한 영역을 디자인의 무대로 남겨둔다.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젊은 서체 디자이너의 서체를 쓰기도 하는 등 유연하게 작업하는 만큼, 작업의 무게, 작업자들의 무게는 더해진다고 생각한다.

블루노트 컬렉터를 위한 지침서 ©쪽프레스
만화뿐 아니라 《블루노트 컬렉터를 위한 지침》이나 《나를 해체하는 방법》같은 인터뷰 북도 흥미로웠다.

김태웅 먼저 언급하신 책은 블루노트의 역사가 아닌 블루노트라는 레이블의 모든 앨범을 모은 사람의 에세이다. 어떻게 보면 블루노트의 메인 스토리가 아닌 변주격이다. 그러나 컬렉터라는 수용자가 책의 저자가 되고, 음반의 재발매와 레이블의 전성기를 일으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수용자에서 문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의 변신은, 우리가 늘 고민하고 배우려는 주제다.

타카노 후미코의 인터뷰북 역시 창작자의 가장 빛나는 순간보다는 창작자의 창작하지 않을 때의 정체성, 그 일상인과 창작자를 넘나드는 어려움과 노하우가 드러나는 콘텐츠라 재미있다. 오래도록 해체되지 않는 명작을 만든 사람이, 과감히 자기를 분해하고 갈라놓는 일에 대해서 들려줄 때, 독자는, 예비 창작자는 에너지를 전해 받게 된다. 이러한 내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인터뷰어의 역량도 무척 놀랍다. 두 권 다 화려한 스토리도 대중적인 관심사와도 먼 타이틀이다.

마이너한 것을 소개하다 보면 독립 출판사들이 겪는 공통된 어려움도 겪을 것 같다. 출판 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들 하는데 이에 관한 생각이나 해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미래 사양산업이란 아마 커다란 조직(기업)이 그 덩치를 유지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일컫기 위한 표현 같다. 보통 이런 말이 나오는 환경에서 작은 단위의 자유로운 개인과 조직은 한껏 생겨난다. 요즘은 물류창고만 해도, 1개월 기본이용료가 5만 원까지 내려갔다.(우리가 계약했던 4년 전만 해도 30만 원이 최저선이었다.) 인프라가 이만큼 작고 유연한 팀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팀들의 규모와 위력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

김태웅 한정된 자원으로 원하는 퍼포먼스를 끌어낸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라도 어렵다. 그러니까 독립, 인디라는 형용사가 붙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인디 레이블은 늘 안고 있는 어려움을, 본질적인 조건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목표한 바를 성취하면 된다. 단 남이 갖고 싶은, 누구나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아니라, 자기의 요구에서 그 목표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블루노트 컬렉터를 위한 지침서 ©쪽프레스
듣다 보니 독립적인 개인이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요새 브랜딩이라는 것도 개인화되는 추세이지 않나. 브랜딩에 비유한다면 조직 안과 밖에서의 일은 어떤 차이가 있나.

김미래 장르와 그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회사 안에 있을 때 더 유리한 편집자나 기획자가 있고, 회사 바깥에서 더 유리한 기획자가 있다. 고트의 책들을 대형 출판사 안에서 낸다고 하면 회사가 달가워하지 않을 요소들이 없지 않은데, 개인 입장에서는 또 감당할 만한, 감수할 만한 위험이자 흥미 요소이기도 하다.

트렌딩 이슈와 교집합을 이루는 어떤 것을 낼 때는 시스템 안에 있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판된 만화나 국내 미개봉된 영화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보여주려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공식을 이해해야 한다. 본인의 취향과 방향을 파악해보았을 때 자신에게 적합한 조직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혹시 겸업하고 있나.

김태웅 영상 일을 해왔고 지금도 병행한다.
김미래 겸업이라는 표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러 일을 겸한다. 쪽프레스로 들어오는 클라이언트잡을 수행하기도 하고, 개인으로도 대학 강의, 각종 책의 기획 및 편집, 카피라이팅이나 브랜딩, 인터뷰 같은 콘텐츠 일을 다룬다. 다만 쪽프레스의 자생이 어려워서 다양한 출처에서 연료를 공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 명의 클라이언트, 한 명의 사장님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는,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다채로운 창구를 만들어놓는 것이 잘 맞고 도움이 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어려울 테니.

김미래 이제 이게 뉴노멀이지 않나. 한 곳에 모두 충성하고 쏟아붓는 것보단. 그래야 번아웃이 없는 것 같다.

김태웅 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만 움직여진다. 아예 취직이란 옵션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웃음) 평생 프리랜서로만 살다 보니, 놀이라고 생각하면 집중을 못한다.

북저널리즘에서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둘 다 본업을 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로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스타일이나 마음가짐이 굉장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김태웅 나는 뭔가를 할 때 항상 얻고자 하는 것을 정하고 반응 보는 것을 즐긴다. 하고 싶으면 주저없이 진행한다. 일을 추진하고서 생기는 세부 조율은 미래 씨가 더 잘한다.

김미래 완전히 반대다. 나는 전문성을 쌓고 그 결과 타이틀 얻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내게 편집자란 정체성이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이를 얻기 위해 물리적으로 쌓아야 하는 시간을, 선배들을 존경한다. 그에 반해 태웅 씨는 새로운 방향으로 충격 주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요새 일에서의 독립성을 추구하려는 분들이 많다. 그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을까.

김미래 자기가 오래도록 헌신할 어떤 카테고리를 찾았다면 4대 보험을 받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아직 초년생일 때, 사람이나 환경적인 요인으로 이직하거나 관두었던 경험이 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작은 변수였다. 그 일을 지속하는 데 있어 회사라는 시스템 혹은 프리랜서라는 지위를 알맞게 활용하면, 한시적이고 물리적인 상황을 경력단절이나 위기로 삼지 않아도 된다.

김태웅 세상엔 안전한 울타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 시스템이나 조직이라고 말한다. 울타리 안은 외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친구도 많다. 드물지만 누군가는 울타리 밖으로 가고 싶어 한다. 내 경우가 그렇다. 원하는 것이 밖에 있다면 나와야 한다. 물론 밖은 위험도 많고 극복해야 할 것투성이며, 때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내가 헌신할 카테고리를 찾았다고 해도 확신은 쉽지 않다. ‘내가 되겠어?’ 싶은 마음 때문에. 이를 확신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김미래 반드시 잘될 거다. 어떤 사람이 굉장히 잘 써놓은 글을 보면, 이미 이것으로 충분한데 왜 내가 글을 써야 하지 싶어질 때가 있다. 이에 대해 엄청난 해답을 준 문장을 읽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었다. “If you cannot write well, you cannot think well; if you cannot think well, others will do your thinking for you.” 이미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규모 있게 살아간다고 해서 내가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 글을 대신 써줄 수 없고, 내가 할 일을 다른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이미 이렇게 문화적인 업적이 축적된 환경에서 감히 내가 헌신해야 할 소명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나라서'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믿고 내가 내 편이 되어주면 배반당하지 않을 것이다.

김태웅 헌신할 대상은 멀리 있지 않다. 자신이다.

앞으로 쪽프레스 팀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은?

김태웅 영상까지 콘텐츠를 넓히려고 한다. 책으로는 동시대 미국 시집과 영화감독 인터뷰집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보여주고 싶은,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이현구 에디터

*2021년 8월 24일에 이메일로 전해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