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오늘 - 힙지로의 소요학파

힙지로의 소요학파
연구소 오늘


‘소요서가’는 무얼 하는 곳인가.

‘연구소 오늘’에서 운영하는 철학 전문 서점이다. 사람들에겐 을지로 세운상가에 위치한 소요서가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외에도 철학 아카데미와 출판사를 운영 중이다. 

‘연구소 오늘’엔 어떤 사람들이 있나.

철학을 좋아하는, 철학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철학에 뜻이 있다 해서 거창한 게 아니다. 작년 봄, 철학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작은 공부 모임을 꾸린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자 ‘연구소 오늘’을 설립했고, 현재는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운영한다. 구성원들은 목수, 회계사, 예술가, 철학 전공자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다. 특정 구성원이 이끄는 방식 대신, 각자가 가진 재능을 조금씩 기부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역할이 정해져 있지 않은데도 다들 본인 분야에서의 오랜 경험이 있어 팀에 기여하는 바가 뚜렷하다.
 
소요서가 로고. 간판이 없는 대신 전면 유리창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북저널리즘 이다혜

 ‘소요서가’라는 이름엔 어떤 의미가 담겼나.

‘소요’는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을 지닌 단어다. 예쁜 어감에서도 그 느낌이 드러나지 않는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 장자가 말한 ‘소요’ 등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단어지만 무엇보다 우리 팀의 성격과도, 이곳 을지로의 성격과도 잘 맞는다. 소요서가가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소요하다가 만나는 지점이자, 하릴없이 청계천을 산책하다 들른 자유로운 영혼들이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을지로라는 공간을 택한 것도 그래서인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종로파였다(웃음). 그렇지만 이전에 독서 모임 장소로 이용하던 사무실이 을지로와 가깝기도 했고, 지역의 분위기도 을지로가 우리 팀과 잘 맞다. 을지로는 화려한 고층 빌딩들 사이로 낙후된 세운, 대림 상가가 공존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오래됨을 위하는 척하면서도 재개발이란 미명 아래 오히려 그 오래됨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지 않은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철학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 고민의 장소로 ‘도심 속의 섬’과 같은 을지로를 정했다.

소위 힙지로라고도 불린다.

그렇더라. 20대의 시선으로 본다면 을지로는 마치 외국처럼 보일 것 같다. 옛날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낮은 슬레이트 지붕들, 60~70년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공업 골목들. 젊은 세대가 많이 간다는 홍대, 강남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일 테다. 을지로는 도심과 슬럼가 사이에 걸친 새로운 공간 같다. ‘힙지로’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그래서 아닐까. 보존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두 가지 도시적 특성의 경계를 젊은 층이 잘 소비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주 고객은 20대인 건가.

20-30대가 많지만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다. 우연히 들어오는 분들도 있지만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다. 인문 계열 대학생 분들 혹은 교수님 등 식자층이 많이 오지만 이외에도 철학에 애정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다. 을지로에 작업실을 둔 예술인 분들이 지나가다 보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소요서가 외벽. ©북저널리즘 이다혜
 
간판이 없는데도 알고 찾아오는 것이 신기하다.


그게 우리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간판 대신 건물 외벽에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7개국어로 적혀 있다. 어떤 학문이든 스스로에 대해 묻기 마련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등. 하지만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유독 각별한 질문이다. 그 질문 자체가 이미 철학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님들에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의 방향을 내세우는 것보단, 스스로 질문해보길 권유하고 싶다. 

그럼 그 질문을 공유하는 곳이 ‘아카데미 소요’인가.

철학을 가르칠 순 없으나 철학함을 가르칠 순 있다는 칸트의 유명한 말처럼, 그렇다.(웃음)

아카데미 소요는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인가.

연구소 오늘에서 월 2회 진행하는 철학 강연이다. 현재는 ‘서양 철학사’를 주제로 매달 한 명의 철학자를 선정해, 1년간 서양 철학사를 개괄할 예정이다. 지난 8월 첫 아카데미에선 《티마이오스》를 통해 플라톤을 다뤘고, 9월엔 《형이상학》 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다뤘다. 10월에는 스토아학파의 유기체적 유물론에 대한 강의가 예정되어 있다. 순서대로라면 내년 상반기에는 칸트, 니체 등 좀더 친숙한 근대철학자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시중 강연들보다 다소 아카데믹한 구성이다.

우리는 대중들을 위해서도 그런 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철학 애호가들을 위한 많은 강연들이 주로 인기 있는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곤 하는데, 학교 밖에서도 서양 철학사를 보편적인 시각으로 개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래야 소위 스타 철학자들에 대한 강의도 일반인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다. 아카데미 강연자 분들을 모두 원서의 역자로 구성하려 노력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소요서가 전경. 간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북저널리즘 이다혜
 
아카데미만 진행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서점을 연 이유가 있나.

우리는 추상적인 생각들을 현실과 연결 짓는 과정이 가치 있다고 여긴다. ‘연구소 오늘’이라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문제들을 끝없이 고민한다. 예컨대 손님들이 가장 유심히 보는 서점 입구 쪽엔 오늘날 많이 이슈가 되는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큐레이션 해 두었다. 창가 쪽 코너 또한 그때그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정해 1~2주 간격으로 큐레이션 해둔다. 이번 주의 주제는 ‘몸’이지만, 다음주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식들은 자유롭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점에 들어오면 그 자유로운 생각들이 변하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다양한 개념을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얼마나 근사한 경험인가. 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사유의 물질화’ 경험이다.

하지만 철학이 비인기 학문이라는 말도 있는데. 왜 하필 철학 전문 서점인가.

철학이 정말 비인기 학문일까? 대학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학교 외부에서 철학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실 철학을 둘러싼 대학 안팎의 풍경은 모순이 아니다. 철학이 대학에서는 교양 과목으로 인식되며 전문성을 상실해가고 사회에서는 인기있는 상품으로만 소비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을 ‘공인된 전문가’의 전유물로 축소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오히려 대학 외부에서 비전문가를 위한 철학 전문 서점을 열어 누구나 ‘철학함’의 계기를 가지길 희망한다. 

매출에 대한 압박은 없는가.

서점을 열기 전부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철학 책들은 다른 책들보다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다. 애초 유통사의 마진율이 높기 때문이다. 콜렉션의 깊이도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서 정가제 때문에 독립서점은 대형 서점만큼 다양한 책들을 입고해 놓지 못한다. 그래서 독립서점들은 제한된 예술, 인문〮사회 분야에서 큐레이션을 시도하고 이외엔 독립 출판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생긴다. 형식상으론 독립을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론 독립적일 수 없는 불가피함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결론은 철학 한 분야에서만큼은 깊이 있는 콜렉션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우리 목표가 ‘서점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었다면 애초에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만의 콜렉션을 추구하자’는 구성원들간의 합의가 있었기에 전문 서점을 지향할 수 있었다.
내부 서가. 원서는 철학자별로 정리돼 있다. ©북저널리즘 이다혜
서점 중앙에 위치한 신간 코너. 이외에도 주제별 큐레이션을 만날 수 있다. ©북저널리즘 이다혜

 
그렇다면 소요서가만의 큐레이션은 어떤 것인가.

전문 서점이라고 전적으로 전문 서적만 있지는 않다. 크게 세 파트로 나누자면 입문서, 원서, 해설서가 있다. 입문서를 입구와 가장 가까운 서가에 배치했다. 일반적인 철학 개론서 외에도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면 장르에 구애 없이 함께 배치했다. 원서의 경우 찾기 쉽게 철학자별로 서가를 나눴고, 원서를 깊게 읽고 싶은 손님들께 함께 읽기 좋은 해설서를 추천한다. 이외에도 절판되어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초판본, 매주 교체하는 주제별 큐레이션 코너가 마련돼 있다. 철학에 관심이나 애정이 있는 손님이 왔을 때 본인이 생각하는 주제에 맞춰 추천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다.

출판도 염두에 두고 있다 들었다. 어떤 책들을 출간 예정인가.

우선은 역서다. 크게는 철학과 예술 분야의 책들을 준비하고 있다. 앙리 베르그손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과 같은 철학 원전과, 요제프 보이스의 대담집처럼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저작들의 출판을 준비 중이다.

서점, 아카데미, 출판.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요서가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작은 목표는 각 세부 사업들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진행 중인 아카데미 소요를 독립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럴 경우 서양 철학사 외에도 동양 철학사를 개괄하는 강의도 가능할 것이고, 철학자 한 명을 깊이 있게 다루는 강의나 세미나도 개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목표는 본격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현재의 출판, 서점, 아카데미는 이를 위한 연습이라 봐도 무방하다. 장기적으로는 연구소 오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의 현대성에 관한 주제들을 정해 연구자들을 섭외하고, 지원하고, 그 성과를 출판과 강연 형태로 대중들에게도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생각한다.

학회를 생각하는 것인가?

규정하기 어렵다. 시민대학일 수도 있고 학문 공동체일 수 있지만 아직 구상 단계다. 중요한 건 형태보다 내용일 것인데, 우리의 ‘오늘’을 성찰하는 연구를 염두에 둔다. 우리가 소요서가라는 사업 브랜드를 내세우는 대신 ‘연구소 오늘’로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유다.

철학 텍스트는 '언제 읽어도 좋은' 고전이다. 다르게 말하면 '언제 읽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있다. '지금, 깊이' 읽는 콘텐츠를 지향하는 북저널리즘의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철학책이 있는가.

특정 텍스트를 추천하는 것이 소요서가를 대표하는 것 같아 꺼려진다. 그래서 10월 아카데미 소요에서 함께 읽는 책을 추천하자는 전략적인 판단을 내렸다. 현재 아카데미 소요에선 스토아 학파를 다루며 에픽테토스의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을 읽고 있다. 에픽테토스는 후기 스토아 철학자로, 노예면서 절름발이였다. 에픽테토스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이 벗어날 수 없는 구속들을 우주를 사유하는 보편적 이성의 힘으로 넘어서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현실 속 저마다의 자리가 있겠으나,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쉽게 설명하려 했지만, 책을 직접 읽는 것만큼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일독을 추천한다.

글 이다혜 에디터

* 2021년 10월 12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