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그랬어》 김규항 대표 -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고래가 그랬어》 김규항 대표


아이들을 좋아하는가?

정서적으로는 간단치 않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에게 필요한 게 뭔가를 고민한다는 의미에서라면, 좋아하는 게 맞다.

《고래가 그랬어》는 어린이 교양지를 표방한다. 《고그》가 생각하는 교양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동무와 함께 하는 마음이다. 어른 표현으로 사유와 연대인데, 교양의 전통적 의미와는 좀 다른 셈이다. 고그는 교양이 사회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지향한다고 할 때, 개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이라 본다. 20여 년 전 신자유주의 바람으로 한국 교육의 주제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서 ‘얼마 짜리가 되는가’로 완전히 바뀌고는 사라진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고그는 그걸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작은 놀이터라 할 수 있다.

시대적 특성인지 한때 《소년중앙》, 《새소년》 등 아이들을 위한 잡지들이 많지 않았나.

그 잡지들은 상업지였음에도 고그 창간 무렵엔 폐간한 상태였다. 현재도 어린이 잡지는 대부분 교과 학습이나 입시와 직접 관련을 갖는 것들이다. 교양지를 표방하는 고그가 여전히 발행되고 있는 건 특별한 상황인 셈이다.

《고래가 그랬어》라는 이름이 독특하다. 유래는 무엇인가.

창간 준비하면서 후보에 오른 제호들은 역시 어른 관점에서 어린이를 상징하는 것들, 풀이 어떻고 별이 어떻고 꿈이 어떻고 하는 것들이었다. ‘고래가 그랬어’는 우연히 나온 제목인데 좋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하굣길에 설문을 진행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모든 아이들이 ‘고래가 그랬어’를 선택했다. 어른들은 잡지 제호가 잡지의 정체성이나 내용을 함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호기심과 호감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고래가 그랬어’라는 이름의 유래를 묻는 어린이는 없었다. 

‘고그’라는 약칭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나를 포함해서 고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래’라고 불렀다. 그런데 언젠가 아이들이 ‘고그’라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이름을 앞글자를 떼서 줄여 부르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 일종의 586 문화인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난쏘공이라 한다든가. 그러나 이 경우는 달랐다. 아이들에게 ‘고그’는 단지 약칭을 넘어 애칭이었다. 군말 없이 따라 부르게 되었다.

《고그》가 말하는 ‘아이’는 몇 살인가?

독자를 초등학교 3~6학년쯤으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독자는 더 넓다. 고그를 읽는 유치원생도 있고, 토론용 텍스트로 고그를 구독하는 대학생 동아리도 있다.

어린이 책을 만드는 《고그》만의 관점은 무엇인가?

대개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하는 건 어른의 관점에서 어린이에게 좋은 책이다. 어린이는 자신에게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릴 능력이 부족하다는 전제가 있다. 또 지갑을 여는 사람은 어른이다. 상품은 사용자가 누구든 구매자의 마음을 움직일 때 잘 팔리니 어른 관점으로 제작된다. 고그는 어린이 책의 주인은 어린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제작 시 주제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는지?

아이들의 생활과 관련된 온갖 것들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래 토론’의 경우 편집팀이 직접 아이들을 찾아가 토론하고 내용을 거의 그대로 싣는다.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 아이 두 명이 토론할 때도 있었다. 최근의 토론 주제로는 일회용품, 패스트 패션, 타투 등이 있었다.

매달 아이들을 직접 찾아갈 정도면 팀원분들이 아이들을 좋아할 것 같다. 《고래가 그랬어》엔 어떤 사람들이 일하나?

좋은 사람들이다. 편집장과 디자인 팀장은 함께 일한 지 15년이 되어간다. 창간을 주도했고 대표를 맡은 나에겐 《고래가 그랬어》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한 공감이 고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의무는 아니다. 그걸 착각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표지 디자인이 일정한 포맷 없이 매번 바뀌는 것이 독특하다. 어떻게 작가를 섭외하고 그림을 구상하는지?

고그는 아이가 고그를 만나는 일이 매달 일어나는 ‘미적 체험’이라고 본다. 표지는 고그의 얼굴인 만큼 엄선된 작가들과 작업한다. 보통 ‘일러스트’라 하면 작가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단 의뢰된 그림이다. 우리는 ‘아이들 좋아할 만한 것이되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달라 말한다. 요구하는 주제도 없고 소재도 없다. 그래서 어린이 잡지 같지 않아 보인다는 말도 종종 나온다. 역시 어른들의 말일 뿐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과, 작가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 두 가지는 충돌하는 가치 아닌가?

작가 개인이 그리고 싶은 건 고유하고 분명한 것이다. 반면 아이들이 이런 걸 좋아할 것 같다는 건 추정이자 바람이다. 충돌이라기보단 아이들이 내 그림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라는 작가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작가들이 고그 표지 작업을 유난히 즐거워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일각에선 《고그》의 표현이 노골적이란 비판도 있다.

인권 이야기, 특히 동성애를 다룰 때 그랬다. 사무실 앞에서 기독교 단체가 찾아와 일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맑고 깨끗한 걸 들려주고 보여 주고 싶어 한다. 물론 공감하는데 그게 위선이 되어선 곤란하다. 누구든 아이였을 때를 떠올려 본다면, 아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미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맑고 깨끗한 것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정직한 노력이 아닐까.

비즈니스 모델은 대다수의 출판업계가 고민하는 문제다. 운영의 어려움은 없었나.

많았다. 그런데 비즈니스의 정체성이 다르다. 고그는 주식회사이다. 주식회사는 가장 일반적인 기업 형태이고 그 목표는 이윤 축적과 성장이다. 그런데 고그는 성장이 아니라 건전한 지속을 목표로 한다. 150여 명의 주주들도 그런 취지에 동의한다. 그분들에게 주주 배당은 돈이 아니라 사회의 미래다. 그리고 고래동무라는 후원 구독 단체가 있다. 전국의 지역 아동 센터, 보육원 2500여 곳에서 아이들이 고래동무를 통해 고그를 만난다. 후원자들끼리 고래이모, 고래삼촌이라고 부른다.

고래이모, 고래삼촌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대부분은 개인 후원자들이고 연령, 성별, 직업은 다양하다. 이념 스펙트럼도 넓어서 우파를 자임하는 분들도 꽤 있다. 아이들의 미래엔 좌우가 없다. 고래동무는 ‘속 깊은 연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후원받는 아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린이가 적절한 교육과 문화 환경을 누리는 건 당연한 권리일 뿐이다. 코로나 전엔 연말이면 ‘고래 동무의 밤’을 했다. 모여서 공연도 보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분위기가 참 각별했다. 어서 재개되길 빈다.

어른 말고 아이가 좋아하는 아동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고래가 그랬어》도 결국 어른이 만드는 잡지 아닌가?

물론 한계는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고그가 아이들에게 그리 대단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성스럽게 만들지만,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소통하고 관계하는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안다. 이 사람들이 뭘 하려는 건지. 날 가르치려 드는 건지, 단지 뭘 팔아먹으려는 건지, 진짜로 나를 생각하는 건지. 아이들이 ‘고그는 내 편’이라고 말할 때 안도하게 된다.

확장의 욕심은 없는가.

내가 생각하는 《고래가 그랬어》의 확장은 돈 주고 구독할 수 있든 없든 고그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국 정도의 경제 수준을 가진 나라는 어디든, 고그 정도 잡지라면 공공 도서관엔 기본적으로 다 들어간다. 그럼 아이들이 구독하지 않고도 볼 수 있다. 국가가 그걸 안 하니 고래이모 삼촌들이 나서서 십시일반으로 하는 것이다. 지역 공부방에 가면 《고그》 한 권을 두고 서른 명의 아이들이 차례를 기다렸다 읽는다. 구독을 해서 집에서 혼자 읽는 게 편하긴 하지만, 함께 읽는 것도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현재 지역 아동 센터의 절반 정도 들어가고 있다. 나머지 절반이 고민이다.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도, 아이들을 만나는 자리 자체가 의미 있지 않은지?

오래전에 그런 행사를 몇 번 했다. 방학 때 ‘고래 인문학교’를 연다든지. 의미도 있고 반응도 아주 좋았지만 지속을 못 한 이유가 있다. 우선 제한된 아이들에게만 기회가 간다. 그런 행사에 올 수 있는 아이들은 대개 서울에 사는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이다. 또 하나는 아이들이 방학에도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학원 다니느라 고생인데, 우리가 숙제를 하나 더 늘리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고민할 문제지만, 일단 매달 발행되는 《고래가 그랬어》에 집중하는 게 보편적 태도라 생각하고 있다.

2003년 창간인 만큼, 이미 성인이 된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창간 독자는 20대를 넘기고 있다. 고그 독자가 고래동무 후원자로 돌아오는 일이 종종 생긴다. 고래동무 가입 절차에 후원 동기를 쓰는 란이 있는데 ‘어릴 때 고그 를 본 게 참 좋았고 지금 아이들도 보면 좋겠다’고 쓴다. 참 반갑고 감사하다.

아이들은 늘 성장한다. 아이들이 커서 《고그》를 떠나는 게 슬프진 않은가.

성장은 떠남 아닌가. 떠나고 또 새 독자가 들어오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우리로선 언제나 비슷한 또래의 독자들이다. 그들 인생에서 몇 년을 글과 그림으로 만나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고그》의 목표는 무엇인가?

아까 고그가 아이들에게 그리 대단한 게 아니고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라 했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고그의 목표가 단독으로 있다기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여러 노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나은 사회라는 게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근래 많은 사람이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공감하지만 경제적 불평등보다 더 나쁜 건 경제가 삶의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교육에서도 근래 경쟁의 공정성 이야기가 많은데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에 경쟁만 남았다는 것이다. 누구도 교육이란 무엇인가 질문하지 않는다. 그 질문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이어져 있다.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회다. 인생이 단지 나를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면,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하다. 사회를 좀 더 긴 안목으로 역사적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고래가 그랬어》를 구독하려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맙게도 아이들은 대체로 고그를 재미있어 한다. 그러나 당연히 모든 아이는 아니다. 간혹 ‘고그는 참 좋은 잡지인데 아이가 잘 안 본다’며 걱정하는 분을 만난다. 오히려 아이의 취향 발견 아닌가. 주저 없이 구독 중단하시는 게 좋다. 아이에게 고그보다 훨씬 더 좋은 건 놀이다.

이다혜 에디터

* 2022년 1월 11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