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 - 법학자의 시선으로 본 차별금지법

법학자의 시선으로 본 차별금지법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


지난 5월 25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어떤 의미를 갖는 자리였는지 설명해 달라.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건 2007년 참여정부 때다. 이후 15년간 발의는 여러 차례 됐으나 국회 차원의 공식적인 진전은 한번도 없던 차, 이번 공청회는 국회 차원에서 조치를 취한 첫 번째 발걸음이다. 이제는 국회 차원의 노력을 보여 주지 않을 수 없게 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진술인으로 참석하셨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우선 여야 합의의 자리가 아니라 민주당 단독으로 개최한 공청회였다. 그러다 보니 찬반 논의가 치열하게 오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측이, 그 필요성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갖는 계기였다. 공청회 자체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다기보단 다음 수순을 밟아나갈 기틀이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주로 강조하고 오신 부분이 무엇이었나.

세부적인 내용보단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는 점을 피력했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하면 과거엔 부정적인 의견이 꽤 많이 나왔다. 그러나 최근엔 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기독교, 개신교 측에서도 찬성하는 목소리가 꽤 많이 나오고 있다. 시민 사회가 쌓아온 노력의 결과물에, 이제는 국회가 숟가락만 얹으면 될 시점이다.

이번 공청회에 국민의힘은 참석하지 않았다. 차별금지법을 두고 정치권은 오랜 공방을 벌여 왔는데, 이 공방을 지켜보는 학자로서의 시선이 궁금하다.

차별금지법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갖춰야 하는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부 쟁점에 관해선 약간의 온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마나 강하게 규제할 것인가, 예외 사항에 대해선 얼마나 구체적으로 규정할 것인가 등이다. 다만 그런 이견에 대해 충분히 생산적인 논의를 벌일 수도 있는데 그 토론을 벌일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초 대선 후보 시절, 한 인터뷰에서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고 답변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다.

”구조적인 차별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개별적인 사건의 피해자를 구제하고 차별에 대응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차별을 규제하는 개별적인 법안들이 이미 있지 않나.

개별 법안엔 두 가지 맹점이 있다. 효율성과 효과성이다. 우선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사유’와 ‘영역’으로 규정한다. 차별의 사유는 성별, 장애, 연령 등 차별이 기인하는 배경이다. 차별의 영역은 고용, 교육, 재화 등 차별이 발생하는 분야다. 예컨대 남녀고용평등법은 성별(사유)과, 고용(영역)이, 연령차별금지법은 연령(사유)과 고용(영역)이 맞물려 있다.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 법안들은 이 두 가지를 조합해서 만든 것인데, 그러다 보면 산술적으로 수십 가지 조합이 나온다. 반면 차별금지법 특정 사유와 영역에 한정된 것이 아닌 포괄적인 입법이다. 법 집행의 효율을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효과성은 무얼 의미하나.

포괄적인 법안이 마련되어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인 피해자 구제가 가능하다. 차별의 ‘사유’와 ‘영역’은 복합적일 경우가 많다. 어떤 여성이 회사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가정하자. 차별의 근거가 그가 여성이기 때문인지, 비정규직이기 때문인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인지 판단하기 모호할 때가 있다. 각각의 차별을 구제하는 기관도 달라서, 내가 차별을 당했을 때 어떤 법에 근거해 어떤 기관을 찾아가야 할지 피해자 입장에서 어려울 때가 많다. 포괄적인 법과 단일한 시정 기구가 이런 피해자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은 여러 차례 회자됐으나 오랜 시간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쳐 왔다.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큰 것보단 찬성 세력이 법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법안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 보니 국회 안건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편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로는 종교계와 경영계의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보수 개신교 측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경영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다.

경영계의 목소리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지적이 흥미롭다. 경영 활동 위축에 대한 우려 때문인가.

그렇다. 경영계 측에선 당연히 우려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차별금지법 제정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차별하지 않기 위해 기업이 부담을 지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동안 기업에서는 학력을 근거로 사람을 쉽게 구분해 왔다. 예컨대 ‘(고졸자는 우리 회사에 적합한 기준을 갖췄을 리 없으니) 대졸 이상만 지원 가능하다’는 고용 기준 같은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기업에선 이러한 기준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채용 시스템을 다듬는 데 약간의 비용과 시간이 들 수 있지만 자의적인 기준으로 운용해왔던 지금까지의 채용 구조가 오히려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이를 개선할 단초가 차별금지법에 있다.

종교계의 입장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경영계의 우려는 존중하되 그것이 차별금지법 반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면, 종교계는 조금 다르다. 일부 종교계의 경우 법안에 대한 명백한 오해를 바탕으로 차별금지법을 저지하는 경우가 많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목사가 설교하다가 잡혀간다거나 하는 식이다. 교회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장소가 아니다. 잘못된 근거에 의한 무조건적인 반대 입장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오히려 합리적인 우려의 목소리는 가려지는 상황이다.

합리적인 우려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예컨대 종교계 학교에서 차별금지법은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종교 재단이 설립한 학교라고 해도 초중등교육법이나 고등교육법에 따라 설립됐다면 종교의 자유만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물론 종교적 관점의 설립 이념은 존중돼야 하지만 국가 교육 시스템에 의거해 지원과 관리 감독을 받는 학교는 사회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규정이 현재 차별금지법안에는 다소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더 구체화하자는 주장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추가적인 논의를 통해 언제든지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종교적 행사의 참여나 종교적 행위를 강요하는 행위, 특정 종교 과목의 수강을 강요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고, 특정 종교 과목의 수업을 원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하여 이를 대체할 과목을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 이런 식으로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구체화하자는 의견이라면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입장 중에서는 이런 식으로 합리적인 지적을 하는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표현의 자유’ 또한 차별금지법을 논할 때 으레 등장하는 이슈다.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표현을 침해하는 법이 아니”라고 밝혔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차별금지법은 오로지 고용, 교육, 재화·용역, 행정 서비스 4개 영역으로 한정돼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길거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차별금지법과 무관하다. 예를 들어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이 규제하는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말을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하는 것은 표현이 아닌 차별이 될 수 있다. 같은 문장이라도 상황에 따른 무게감과 영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차별금지법은 모든 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표현이 특정 영역에서 차별의 효과를 낳게 될 때 이를 규제하는 것이다.

다소 개인적인 질문을 드린다. 우리나라에서 차금법에 가장 앞장서 목소리를 내는 분이시다. 교수님께 차별금지법은 어떤 의미인지, 10년 넘게 꾸준히 목소리를 내시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사연이나 특정 계기가 있다기보단 너무 답답했다.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들은 매우 많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래서 ‘이것만 통과하면 다 해결될 거다’가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라고 하면서 이것 하나 못 만든다면 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 차별금지법이 내게 얼마큼 중요한가,를 묻는다면 이 법 자체가 획기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보단 화력을 집중시키는 시발점이자 후속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초석이라 생각한다.

후속 과제로는 무엇이 있나.

개별 조직의 역할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성희롱 규제를 떠올리면 된다. 현재 법적으로 성희롱을 금지하고 또 피해 사례 발생 시 인권위가 조사하도록 규제가 마련돼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기관의 태도와 실천이다. 학교, 회사, 부처가 먼저 나설 때 성희롱이 근절된다. 차별도 같은 맥락이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으니 국가가 알아서 처리하겠지’가 아니라, 개별 기관에서 차별 금지 코드를 만들고 교육 센터를 운영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차별을 근절할 해결책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인가, 개별 기관의 구체적인 노력인가’는 우문이다. 양자택일이 아닌 병행의 문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피해자 구제’다. 차별받은 피해자가 구제를 호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차별금지법의 아주 부분적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개별 사건에 대한 피해 구제도 매우 중요하지만, 진정이 제기되고 소송이 증가하는 과정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며 ‘차별은 잘못된 것이구나’를 인지하고 경계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 내용의 대부분은 차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차별을 예방하고 그 조건을 조성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즉 차별이 발생하는 문화 자체가 변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것엔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큰 것보단 찬성 세력의 입장이 미온한 탓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차별금지법이 나와는 동떨어진 문제라고 생각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차별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현재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정체성이 언제 어떻게 훼손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고, 해외로 이주하면 비주류가 되고, 전쟁이 발생하면 난민이 될 수 있다. 또 차별금지법을 단순히 윤리나 당위의 관점이 아닌 사회적 투자의 관점으로도 보길 제안해 본다.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그에 따른 비용을 수반한다. 예컨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국가에서, 이주민과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이 범죄나 폭동으로 이어지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사례를 우리는 여럿 목도했다.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애초에 그 갈등을 막는 것이다. 평화롭고 안전한 미래 사회를 바라는 시민이라면, 차별금지법에 지지를 보내야 한다. 

이다혜 에디터

* 2022년 5월 31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