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아시아 오기출 상임이사 - 나무는 사람의 발자국을 좋아한다.

나무는 사람의 발자국을 좋아한다
푸른아시아 오기출 상임이사


6월 17일 사막화 방지의 날을 맞아, 푸른아시아 오기출 상임이사를 찾았다. 푸른아시아는 사막화 현상이 심각했던 몽골 바얀누르(Bayannuur) 지역의 생태계 복원을 이뤄 낸 기후 대응 NGO다. 각종 환경 서적으로 한 벽면이 빼곡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오 이사는 따뜻한 차와 미소로 반겨 주었다.
푸른아시아가 출범한 것은 1998년, IMF가 터진 직후다. 소위 ‘먹고살기 바쁜 시절’이었을 텐데 기후 대응에 뛰어든 동기가 궁금하다.

당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몽골 다섯 개 국가의 시민 운동가들이 모여 ‘아시아의 위기’를 주제로 연구 모임을 진행했다. 모임의 결론은 두 가지, 금융 위기와 기후 위기였다. 일본은 1997년도 교토의정서 채택으로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국민적 붐이 일었던 반면, 한국에선 기후 위기를 얘기하면 “1000년 뒤 일어날 일을 지금 미리 걱정한다”며 비난 받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환경 시민 단체 ‘푸른아시아’를 설립하고, 몽골에서 첫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왜 하필 몽골로 갔나.

그당시 온도가 가장 급속히 오른 나라였다. 1999년 12월 기준, 전 세계 기온은 산업 혁명 시대와 비교해 0.6℃ 오른 반면 몽골은 1.9℃ 올랐다. 압도적인 수치다. 당시 몽골 영토의 약 90퍼센트 이상이 사막화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이는 대한민국 영토의 16배 정도 되는 면적이다. 사막화 현장의 심각성을 직접 확인하고자 2000년, 무작정 몽골로 향했다.

당시 몽골의 상황은 어땠는가?

육안으로 봐도 사막화 현상이 매우 심각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몽골 시민들의 의식이었다. 그들의 유목 문화에서 나무는 ‘뽑아야 할 대상’이었다. 덤불 뒤에 숨어 있던 늑대가 가축을 습격할지도 모르고, 전쟁이 날 경우를 대비해 시야는 늘 탁 트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몽골 바얀누르 지역. 사막화 현상으로 기후 난민이 대거 발생했다. ⓒ푸른아시아
그런데 어떻게 나무를 심기 시작할 수 있었나. 그들 문화의 정체성과 충돌하는 가치 아닌가.

아마 몽골인들은 그 광경을 ‘외국인과 함께하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우리의 첫 시도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Ulaanbaatar)에서 시벨리안 포플러라는 묘목을 심는 것이었다. 처음엔 몽골 시민들은 멋진 옷을 차려 입고 와서 우리가 나무 심는 광경을 신기한 눈빛으로 구경만 하다 갔다. 우리가 나무 심는 것을 몇 년간 지속하며 점차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당시 우리 NGO는 몽골 주민들과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며 친밀감이 쌓인 것도 한몫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지내며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나무를 심어도, 그중 대다수가 죽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나무 심기 운동이 무의미했다는 말인가?

나무를 심는 데 1의 노력이 든다면, 가꾸는 것엔 100의 노력이 든다. 우리나라와 일본 NGO의 협력으로 바가누르(Baganuur)라는 지역에서 3년 간 3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 나무들은 모두 죽어 있더라. 심기만 하고 관리를 못하니 해외 NGO들이 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도루묵이었다. 그 지역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함께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아이들이 먼 우물에서 페트병에 물을 직접 길어와 나무에 물을 줬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키울 때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정성을 쏟자 나무가 정말 잘 자랐다. 나무는 사람의 발자국을 좋아한다는 걸 그때 느꼈다.

외부인이 아닌 그 지역 사람들이 직접 나무를 심는 공동체 모델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만한 동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시 몽골 주민의 절반 가량이 실업자였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데다 사막화까지 급속히 진행되며, 경제 위기와 기후 위기가 겹친 탓이다. 2002년 기준 몽골에선 연간 1000만 마리의 가축이 굶어 죽으며 약 2만 가구가 재산을 잃어버렸다. 말하자면 ‘기후 난민’이다. 처음엔 이들에게 매달 월급을 주는 대가로 나무를 심는 것을 제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 월급제가 영원할 수는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단체가 몽골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면, 몽골 사회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이 눈에 선했다. 나무를 심어도 월급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나무는 곧장 땔감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그래서 2007년, 울란바타르 서쪽으로 20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사막화 지역 바얀누르(Bayanuur)에서 처음으로 협동 조합 모델을 시도했다.

기존 월급제 모델로부터 무엇이 달라진 건가?

모든 결정은 몽골 시민들이 하도록 했다. 바얀누르 지역의 40여 가구가 모여 무엇을 심을지, 누가 언제 어떻게 나무를 관리할지, 나무 열매를 판매한 수익은 어떻게 배분할지를 직접 결정하는 조합이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2008년 5월, 감자 1.5톤을 심었을 때였다. 그해 가을 약 2톤의 수확량이 나왔다. 사실 매우 적은 수확량임에도 불구하고 40가구의 시민이 한자리에 모여 분배량을 두고 몇 시간을 회의하는 그 진지한 모습에 나는 무척 감동했다. 수확량의 60퍼센트는 가족 수대로 나누고, 10퍼센트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배분하고, 나머지 30퍼센트는 내년 농사를 위해 남기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날 다른 지역에 볼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가 하루 뒤 바얀노르로 돌아왔을 때, 감자를 단 한 톨도 허투루 하지 않고 정확히 배분해 놓은 모습에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당시 몽골 시민들에겐 ‘열심히 일해 봐야 상류층이 가져간다’라는 뿌리 깊은 회의감이 있었다. 우리 NGO의 목적은 ‘내가 결정한 것의 성과는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결과는 6년 만인 2013년, 바얀누르 지역의 모든 생태계를 원상 복구하는 데 이르렀다.
2013년, 삼림이 회복된 바얀누르 지역. 첫 번째 사진과 동일한 장소, 각도에서 찍었다. ⓒ푸른아시아
생태계가 회복되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본 만큼 너무 뿌듯했겠다.

가장 기뻤던 것은 황폐화된 바얀누르를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더라는 것이다. 녹지가 되살아나는 고향을 보며 다시 옛날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에게 생겼던 것 같다.

모든 결정권을 시민이 가졌다면, 푸른아시아와 같은 외부 NGO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우선 나무를 심는 기본적인 방법을 교육하고, 그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다. 몽골 정부와 난민 사이에서 중재 역할도 맡았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에게 기후 위기의 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몽골 시민들은 대다수 “우리가 게을러서 우리 영토가 이렇게 황폐화됐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나’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현재 그들 삶의 터전이 파괴된 이유가 개인의 불성실이 아닌 기후 변화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걸 알려 줬다.

구조적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이다. ‘선진국’을 얘기하면 보통 미국과 유럽을 떠올리지만, 아시아 내의  선진국-개발 도상국 관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연간 160억 톤 가량인데 그중 90억 톤은 중국이, 30억 톤은 인도가, 10억 톤은 일본, 7억 톤은 한국이 배출한다. 나머지 나라들의 배출량은 다 합쳐야 20억 톤 가량이다. 그럼에도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기후 위기에 대처할 사회적 인프라가 마련되지 않은 개발 도상국들이다. 몽골이 대표적이다.

기후 위기의 책임과 피해를 논할 때 으레 등장하는 것이 탄소 배출권이다. 현재 가장 실질적으로 논의되는 해결책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의도는 좋으나 적절하게 사용될지는 의문이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합산해 0으로 상쇄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탄소를 줄이는 정책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있다. 또 UN 측에서 탄소 배출량의 증감을 모니터링하지만 그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인상이 강하다. 탄소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실제로 얼마큼 줄었는지 알기 어렵고, 기관이 내놓는 데이터에만 의존해야 하는데 그 수치를 신뢰하기는 아직 어려운 단계다. 탄소 배출권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하나의 엔진이라고만 생각한다. 그 배후에 숨겨진 훨씬 큰 정책적 기후 위기에 주목해야 한다.

정책적 기후 위기란 무엇인가?

우리는 기후 위기를 두 가지로 정의한다. 하나는 사막, 폭염과 같은 물리적 기후 위기다.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은 기후 정책들이 실패했을 때 우리에게 몰려올 정책적 기후 위기다. 나는 후자의 심각성을 훨씬 크게 본다. 탄소 국경세를 예로 들자. 유럽 연합이 2026년 1월 1일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철강, 시멘트를 비롯한 다섯 개 품목에 한해 탄소 국경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쉽게 말해 “우리에게 수출하려면 탄소세를 내라”는 것인데, 이는 물류 공급망을 자국 역내에 포섭하려는 것이다.

기후 위기가 경제 공황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인가.

그렇다. 예컨대 현재 포스코가 수출하는 대금의 영업 이익률은 약 8퍼센트다. 그런데 유럽이 제시하는 탄소 거래 가격은 1톤당 최대 100달러 수준이다. 해당 가격으로 계산 시 포스코가 쇠 1톤을 수출할 때 지불해야 할 탄소 국경세는 제품 가격의 13퍼센트다. 탄소세(13퍼센트)가 이익(8퍼센트)을 초과하는 말도 안 되는 구조다. 그렇다고 현재 한국이 RE100 시스템을 본격 도입할 수 있는가. 그렇지도 않다. 결국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 기업 입장에선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을 때, 기업은 외국으로 떠난다. 피해를 보는 것은 남아 있는 노동자를 비롯해 그 지역 사회다. 만일 이 현상이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난다면 국가 전체가 휘청이게 될 것이다. 즉 기후 위기보다 가혹한 것은 기후 행동 실패다. 단순히 재난의 발발이 아닌 경제 시스템의 마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 폭염, 프랑스 가뭄 등으로 기후 위기 식량난이 대두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말씀하신 경제 시스템의 균열뿐 아니라, 식량 위기 및 안보 위협과도 뗄 수 없는 문제 같다.

아프리카 대륙을 보자. 기후 변화가 급격한 지역과 식량 폭동이 빈발하는 지역은 겹친다. 즉 기후 위기가 만들어 낸 빈곤이 테러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는 식량의 식민지화와 연결된다. 2007년도 이전에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땅을 빌렸다. 그런데 2008 금융 위기와 기후 위기가 겹치며 식량난이 제기되며, 이젠 대자본들이 땅을 빌리고 있다. 선진국이 농업 개발을 위해 식량이 부족한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가 소작을 하는 랜드 그래빙(land grabbing)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외국 대기업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농사를 지은 뒤 수확물을 자국으로 수출하고 나면, 해당 지역 시민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은 자연스레 극히 한정되고 이는 지역 사회 분열로 이어진다.
아프리카 내 기후 위기와 식량 폭동의 상관 관계를 다룬 2019 UN 환경 보고서. 왼쪽부터 '사막화 취약 지역(2008)', '식량 폭동 지역(2007-2008)', '테러 공격 지역(2012)'.
기후 위기를 마주한 해외 실정을 주로 얘기했다. 국내의 상황을 살펴 보자. 오랜 시간 환경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온 활동가로서, 우리나라의 현 기후 위기 대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소형 원전(Small Modular Reator, SMR)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떠오르는 것이 우려스럽다. 최근 국내 소형 원전이 주목받는 근거는 유럽형 택소노미에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EU 집행위원회가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분류한 녹색 분류체계(Taxonomy)를 회원국들에게 보내 논란이 됐다. 그런데 해당 조항을 자세히 살펴 보면 핵심은 ‘원전이 친환경이다’가 아니라 ‘원전을 사용하지 말자’다.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부지와 예산 등을 보고할 의무’, ‘신규 원전이든, 기존 원전이든 방사능 사고를 견딜 수 있는 연료를 사용할 의무’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이행하지 못할 시 2025년부터는 그린 택소노미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상술한 두 의무를 이행할 기술력을 갖춘 나라는 현재 유럽을 포함해 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한국은 방사능 폐기물을 해결할 부지도, 자금도 없다. 원자력으로 차세대 반도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매체가 희망을 말하지만, 그렇게 만든 상품은 모두 녹색 상품에서 제외되고 결국 엄청난 세금을 떠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형 원전만큼 인류가 필요로 하는 양의 에너지를 생산할 기술적 대안은 아직 없지 않나. 일각에선 ‘빌 게이츠도 투자하는 대체 에너지’라며 소형 원전의 가능성을 높이 사는데.

빌 게이츠가 소형 원전에 투자하는 것은 환경학자 바츨라프 스밀(Vaclav Smill)의 영향이 크다. 소형 원전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 초소형 원전 잠수함을 육지에다가도 만들어 보자며 시작됐다. 70년이 지나도록 실패했다. 우선 너무 비싸다. 한 개의 대형 원전을 12개의 소형 원전으로 쪼개어 짓는다고 가정할 때 원전 하나당 한화 약 2조 원, 총 24조 원의 비용이 든다. 대형 원전 하나를 짓는 데 평균 7조 원 가량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세 배 넘는 비용이다. 소형 원전의 또다른 난점은 수리가 어렵다는 점이다. 원전에서 고장이 가장 잦은 부분은 가압수형 원자로의 터빈 제조기다. 이곳이 고장나면 원전은 스톱된다. 대형 원전은 분해해서 고칠 수라도 있는데 소형 원전은 이 부분이 일체형으로 되어 있다. 즉 수리가 어려워 폐기해야 한다. 이 모든 단점을 알면서도 빌 게이츠든 한국 정부든, 소형 원전에 투자하는 이유는 기후 위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기보단 비즈니스적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하기 어렵지만, 한 번 성공하면 엄청난 돈이 된다. 소형 원전을 둘러싼 논쟁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바츨라프 스밀의 《에너지란 무엇인가(Energy and Civilization)》를 추천한다. 참고로 스밀은 빌 게이츠의 ‘가장 좋아하는 작가(my favorite author)’로 알려져 있다.
환경학자 바츨라프 스밀의 저서, 《Energy and Civilization》와 《Growth》.
탄소 배출권도 신뢰하기 어렵고, 탄소세도 위험하고, 소형 원전도 답이 아니라면.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대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시민 공동체의 역할을 확대하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 정부의 해상 풍력 사업에 가장 크게 반발하는 것은 어민 단체다. 또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스마트 그린 스쿨을 시범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학부모 측의 반발이 거셌다. 정부가 추진한 그린 뉴딜(Green Deal)이 순탄히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의 핵심은 시민의 반대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시민이 주도하는 그린 뉴딜을 해야 한다. 2025년까지 정부는 수소차, 전기차를 비롯해 ‘그린 뉴딜 5대 과제’에 90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30퍼센트만이라도 시민과 공동체에 투자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탄탄한 시민 공동체가 갖춰진 사회는 어떤 모습이리라 기대하는가.

과거 IMF 때 금모으기운동을 한 것처럼, 시민 차원의 에너지모으기운동을 할 수 있다. 누구든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게 판매하는 등 에너지 전환이 제도화되는 것이다. 시민 사회가 주도한다면 RE100은 못해도 RE30은 할 수 있다. 또 기후 위기는 거시적으로 불평등과 맞닿아 있다. 이를 포착하고, 경제적 정의를 통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자 한 것이 미국 뉴욕시다. 지난 2019년에는 기후 및 지역 사회 보호법(Climate and Community Protection Act)을 제정했다. 결국 기후 위기를 비즈니스적 관점이 아닌 인류적 관점으로 본다면 원전보단 토양에, 기업보단 시민 사회에 투자해야 한다.

저서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에서 기후 위기의 대응책으로 ‘나무 10그루 심기 운동’을 제시했다. 왜 그렇게 나무를 강조하는지도 궁금하다.

지난해 6월 13일 G7 정상 회담에서 결정된 내용 중 ‘기후와 환경’ 부문에서, 2030년까지 적어도 30퍼센트의 토양 및 해양 생태계를 보존·보호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즉 에너지 전환, 전기차와 같은 아이템만이 답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토지와 바다를 비롯해 자연 자체를 보존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토양을 살리는 나무는 우리 스스로를 ‘파괴’의 존재에서 ‘살림’의 존재로 달리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준다. 몽골의 바얀누르 지역을 보며 느꼈다.

바얀누르 공동체의 요즘이 궁금하다. 현재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나?

현재 약 200가구, 1000여 명의 몽골 시민이 공동체를 꾸려 살고 있다. 울란바토르에 위치한 푸른아시아 센터에선 시민들이 농업과 임업을 배울 수 있다. 한 달간 양묘장에서 직접 나무를 키워 보고, 그 임금을 현금이 아닌 묘목으로 준다. 자신의 고향으로 가져가 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농작물을 가공하는 공장, 그리고 농작물을 사고팔 수 있는 마켓을 위한 시설도 짓는 중이다. 가공과 유통, 판매가 모두 한곳에서 이뤄지고 수익이 그 지역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목표다. 우리는 함께 나무를 심지도, 그들의 수확물을 팔아 주지도 않는다. 기후 난민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 자본의 개입보단 지속 가능한 모델의 도입이었다. 그 모델에 시민이 적응하는 순간 단단한 공동체가 꾸려진다. 우리가 만들고자 노력한 것은 바로 그 모델이다.

이다혜 에디터

* 2022년 6월 14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