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가까이 찍은 영화다. 드디어 개봉된 소감이 궁금하다.
과정은 외로웠으나 결과물이 성대하게 나와 감사하다. 나의 삶을 누군가 다큐멘터리로 담아 준다는 것은 살면서 누리기 힘든 경험이지 않나. 여한이 없다.
출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처음엔 이일하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우선 감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촬영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극영화가 아니고 다큐 영화라서 3~5년을 촬영해야 한다더라. 그런데 한편으론 이게 내게 주어진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온 모든 공연은 결국에 사라질 것이고, 어딘가에 내 사진이 걸려 있겠으나 나는 한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라도 영화 촬영을 결심했다.
나의 모든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줘야한다는 점이 일견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힘들었다. 단순히 쇼만 담는 것이면 그 장면만 액팅하면 되는데, 이건 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거잖나. 나중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은 어차피 나중에 편집될 것 같은데, 지금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포인트 있는 대화만이 셀렉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는 매우 잔인한 장르다. 긴 시간을 찍었지만 잘려 나간 부분이 많다.
잘린 부분 중, 이것만큼은 영화에 담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장면이 있는지?
고향 시골집에 갔을 때 드랙 분장을 하고 경운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처음 분장을 하고 나와 아빠에게 보여 주자 “도깨비 같다”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엄마와 함께 깔깔 웃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담고 싶은 순간이었는데 생략됐다. 바로 뒤에 진지한 나레이션이 나오는 부분이라, 그 타임라인의 분위기가 흐려질 염려였던 듯하다.
아쉽진 않았는가. 감독님께 원하는 장면을 넣자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관객과는 또 다른, 감독의 시선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다들 사진 찍어 봐서 알겠지만 본인 마음에 안 드는 얼굴들은 많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다. 넣고 싶은 장면이 있는 만큼, 못 나와서 생략하고 싶은 장면도 있었지만 그대로 뒀다. 까탈스럽게 굴고 싶진 않았다.
반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할로윈 쇼가 끝나고 기진맥진한 채로 아침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화려한 모습뿐이다. 쇼가 끝나면 관객은 떠나고, 나만의 외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남들이 알지 못하던 내 모습, 내가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는지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