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 –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경기 참여를 논하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경기 참여를 논하다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


지난 6월, 국제수영연맹(FINA)이 ‘리아 토머스(Liah Thomas)’라는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여성부 경기 출전을 금지한 일이 있었다. 12세 이전에 성전환을 완료해야 여성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생긴 것이다. 이로 인해 토머스는 차기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여성부 스포츠 경기 참가는 최근 미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박한희 변호사는 한국의 오픈리 트랜스젠더다.

한국에선 아직 자신을 드러낸 트랜스젠더 선수가 없지만 향후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모두가 스포츠를 자유롭게 즐기는 사회가 되려면 단단한 토대와 선제적 논의가 필요하다. 제23회 서울퀴어퍼레이드(SQP)를 앞두고 있지만 이제껏 트랜스젠더의 목소리는 사회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의미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관련 기사 보러가기
퀴어 여성 게임즈라는 성 소수자 스포츠 대회를 주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퀴어 여성 게임즈는 여성·성 소수자 단체인 ‘퀴어여성네트워크’에서 2018년, 2019년에 두 번 개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다가 올해부터 다시 진행 예정인데, 이 대회는 성별 구분 없이 진행된다. 명목은 여성·성 소수자 생활 체육 대회지만, 굳이 성별을 나눠서 여성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게 아니라 남성 성 소수자도 같이 뛸 수 있게 한다.

신체적 차이에 의한 문제는 없었나?

실제로 2018년도에 남성 동성애자들도 팀을 이뤄 참여했는데, 불리하다며 항의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그분들(여성들)이 더 잘 뛸 것 같았다. (웃음) 그 친구들은 평소에 전혀 운동을 안 하지만 그냥 체육대회 한다니까 재밌어 보여서 온 평범한 아저씨들이었다. 꼴등했다. (웃음)
2018년 퀴어 여성 게임즈의 계주 대회. 박한희 변호사 제공.
항의가 무색했겠다. (웃음)

생활 체육 리그에서는 당연히 그렇지 않나, 평소에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지 남성이라고 무조건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근력 대결도 아니고 달리기 대결이라면 더더욱. 경기가 끝나고 나니 처음에 항의했던 사람들이 머쓱해 하기도 했다. 운동으로 남성을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었겠지만 직접 해 보니까 아니었던 거다. 중요한 건 본인의 숙련도와 트레이닝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을 거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역도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첫 트랜스젠더 여성은 로렐 허버드였다. 당시를 기억하는지.

2020년 도쿄 올림픽이었다. 로렐 허버드의 출전을 두고 언론에서 정말 말이 많았다. 공정성 논란을 제기하기도 하고 트랜스젠더의 스포츠 참여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허버드의 경기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결국 메달 획득에도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논란이 흐지부지됐다.

허버드의 사례는 그렇지만 리아 토머스는 타 선수에 비해 기록 차이가 월등하다. 일부러 속도를 조절해 논란을 완화한다는 의혹도 있다.

성적이 좋으니 허버드와 다르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리아 토머스가 비단 트랜스젠더라서 우승을 한 건지 아니면 원래 수영을 잘했던 사람인데 거기에 어떤 신체 능력이 더해져 우승한 것인지 등을 엄밀하게 봐야 한다. 트랜스젠더 여성 혹은 트랜스젠더 남성이 취하는 어떤 이득이 있을 테지만, 그 이득이 정말 스포츠가 허용하는 공정을 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기 참여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보통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경기력이 더 좋다고 하지만 종목마다 다르다. 역도처럼 단시간에 근력을 발휘하는 운동인지, 육상처럼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인지, 수영처럼 근력과 지구력이 다 필요한 종합적인 운동인지에 따라 호르몬의 영향이 모두 차등이 있다. 당연히 개인의 조건과 경기력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 논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특정 생각이 전제된다는 점이다.

어떤 생각 말인가?

단순히 ‘과거에 남성이었으니까 무조건 더 잘할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논리는 위험하다. 이는 곧 여성들은 무슨 짓을 해도 남성에게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 자체를 일률적으로 제한할 게 아니라 종목과 선수의 특수성을 각기 면밀하게 판단하고 세밀하게 보는 게 중요하다.

이분법적 시각이 위험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해도 스포츠는 작은 요소 하나에도 매우 예민하지 않겠나.

공정함을 위해 어떤 선을 긋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엘리트 스포츠 특성상 기준이 필요한 것은 공감한다. 다만 성별에 따른 구분이 반드시 공정한 것처럼 손쉽게 선을 긋는 게 옳은가? 그 안에 굉장히 복잡한 역동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는 이미 너무 공정해서 더 이상 손댈 것도 없는데 갑자기 트랜스젠더가 들어와 이를 교란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더 포괄적인 차원에서의 ‘공정’을 논의해야 한다. “과연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공정한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에도 공정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의미인가?

스포츠는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포츠는 타고난 신체 능력을 다투는 일이다. 선수마다 처한 과학적·사회적 조건도 다르다. 더 좋은 조건 속에서 더 좋은 트레이닝을 받는 사람이 분명 있고, 사회 경제적 조건 때문에 그런 트레이닝이 뒷받침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장비를 이용하는 스포츠에선 장비의 질에 따라서 경기력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이는 어떻게 볼 것인가. 엄밀히 말하면 스포츠는 모두가 동등한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조건을 통제한 상태에서 오로지 순수한 노력과 능력만으로 다투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장비 문제를 제외하고 변인의 통제 범위를 크게 벗어난 대표적 사례가 있을까?

신체 변형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루마니아의 테니스 선수 시모나 할렘은 가슴 크기가 경기에 방해가 되자 가슴 축소 수술을 받았다. 일종의 수술을 통해 신체를 바꾸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경기력과 경쟁력이 향상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약간 화제가 됐을 뿐이다.

듣고 보니 트랜스젠더만을 문제 삼는 것이 이상하다.

트랜스젠더 스포츠 선수라고 하더라도 리아 토머스나 로렐 허버드처럼 엘리트 스포츠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운동을 전혀 못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웃음) 내 헬스 코치는 역도 엘리트 선출 여성인데 내가 아무리 호르몬을 투여해도 못 이길 것 같다. (웃음)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다.

성 소수자라는 개념으로 묶이고 있지만 사실 각자의 경험과 배경은 모두 고유한 것 아니겠나.

그렇다. 개개인을 ‘성 소수자’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범주화하고 끝내버리는 것은 인종 논리와도 같다. ‘흑인이면 다 이럴 거야, 동남아 사람이면 다 이럴 거야, 성 소수자들은 다 문란할 거야.’ 다수자들은 이런 선입견에서 자유롭다. ‘넌 이성애자니까 당연히 이럴 거야’라고 전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게 동성애자에게 가면 ‘동성애자는 다 이런 사람들이다’가 된다. 개인의 고유성은 지워진다.

이런 잘못된 라벨을 떼고 개인의 특성을 봐야 하는데 그걸 가로막는 것이 차별 아니겠나. 이들이 차별받는 것은 이들의 성적 지향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성적 지향을 거부하는 사회 때문이 아니냐는 거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최근 이동권 투쟁을 하는데,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이동을 못 하는 것인가 아니면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버스, 도로의 턱 낮춤이 없어서인가? 이를 도치시켜 이해해 버리니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다.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트랜스젠더 선수들을 모아 독립리그를 창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독립리그와 전환한 성의 리그를 뛰는 것 중 세계의 트랜스젠더 선수들은 어떤 입장일까?

모든 트랜스젠더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전환한 성의 리그를 뛰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닐까. 게다가 독립리그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가 커밍아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성 소수자들은 그런 것들을 계속 경험한다, “너희들끼리만 있어라. 퀴어 너희들끼리 비슷하잖아. 비슷한 애들끼리 알아서 재밌게 살아라. 우리한테는 끼지 마라. 너희가 성 소수자라는 걸 드러내지 마라. 그냥 내 눈에 띄지 마라.” 독립리그라는 건 이런 의미로 가 버릴 가능성이 크다.

차별 리그로 변질될 우려에 공감한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기능할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스포츠에는 지원이 필요하다. 독립리그가 과연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보러 올까? 패럴림픽만 해도 올림픽에 비해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장애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패럴림픽은 주목받지 못하는데, 심지어 트랜스젠더 리그라니.. 리그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자본도 투여되지 않을 것이고, 관심도 없을 것이 자명하다. 그야말로 ‘치워버리는’ 느낌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결국 과거 흑백 인종 차별 시대의 분리 정책(separate but equal)과 같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공립학교의 흑백 분리 교육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걸 ‘브라운 판결’이라고 한다. 즉 다수의 집단에서 소수자 집단을 분리하고 배제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판결이다. 현실적인 면에서도 이념적인 면에서도 독립리그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현재로서는 통합 리그로 진행하는 게 맞다고 본다.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모든 영역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 금지 원칙론이다. 스포츠라고 특별히 다른 바가 없다. 스포츠에서도 누구든 차별받지 않고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IOC 헌장에도 성적 지향으로 선수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는 성적 지향만 언급되어 있지만 성별 정체성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즉, 스포츠에서도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라 원하는 성별의 리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합리그 진행 시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이번 리아 토머스 사건으로 촉발된 로커 룸(locker room) 문제다. 성 중립 화장실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로커 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국 오레곤대학교는 좀 진보적인 편인데 크게 남성, 여성으로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그 안에는 다 개인 로커 룸을 제공한다. 옷 가게의 피팅 룸을 떠올리면 쉽다. 더 넓은 면적이 필요하지만 이게 트랜스젠더만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순 없다. 남과 같이 옷을 갈아입기 싫은 사람도 있지 않나. 흉터가 있거나 몸에 콤플렉스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도 존중되는 것이다. 마련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면 이용객 중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과의 협의를 통해 별도 공간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그래도 그게 1차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본 원칙은 성별 정체성에 따라 쓰도록 하되 어려움이 있으면 협상하고 함께 노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목욕탕이나 헬스장 샤워실에서 불편한 경험이 있었다. 북저널리즘 책 《왜 차별금지법인가》에서 “차별은 모두의 문제다”라고 하는 것이 생각난다.

사실 차별금지법이 단순히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논리가 아니라,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모두의 입장에서 그 논의를 진행해보자는 아이디어 아닌가. 로커 룸도 모두의 프라이버시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트랜스젠더만의 이슈는 아니다.

제도적 개선과 과학적 입증, 사회 인식 변화 중 어떤 것이 먼저일까. 접근법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동시에 모두 필요하다. 과학적 입증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트랜스젠더에 관한 과학적 데이터가 너무 적다. 2011년에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호르몬 치료(HRT, 호르몬 대체 요법)를 받은 후의 육상 능력을 측정하는 실험이 있었다. 이게 이번에 IOC가 트랜스젠더 선수의 출전을 위해 조건으로 내건 호르몬 수치(출전 전 12개월 동안 리터당 10나노몰 유지)의 기준이 됐는데 샘플이 고작 열 몇 명이었다. 애초에 표본을 모을 수 없었던 거다. 커밍아웃과 호르몬 측정까지 응해줘야 하는데 사회 분위기가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악순환이다.

과학적으로 뭔갈 입증하려면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사회 인식이 변하려면 제도가 변해야 하고, 제도는 다시 과학적 입증을 필요로 한다. 다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꼭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 문제가 마찬가지다.

지금은 제도가 먼저 위협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FINA의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다.

리아 토머스 개인에 대한 상세한 논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FINA 규정은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IOC의 이념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제도는 상징적인 것이다. “네가 수영 선수를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전에 이미 성 정체성을 확립해야 해.” 이건 불가능하다. 이러한 제도가 가진 함의엔 해악이 있다. 트랜스젠더에게 “너희는 공정한 스포츠에 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는 관련 논의가 얼마나 이뤄지고 있나.

작년 문재인 정부 때 스포츠 혁신위원회가 출범해 몇 차례 권고안을 냈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표방하며 스포츠 기본법 제정을 권고한 건데, 이미 유네스코가 1960년대에 제시했던 내용이다.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의 스포츠 기본법이 만들어졌다. 제도라는 기본 틀은 갖춰졌는데 실천은 안 한다. 지금 인권위에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있다. 나도 여기 참여하고 있는데, 차별 금지 가이드라인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스포츠 관련된 인권 논의가 너무 더딘 상태다.
2019년 퀴어 여성 게임즈의 농구 대회. 박한희 변호사 제공.
앞으로 한국 엘리트 스포츠에서 트랜스젠더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

아직 학교 수업도 제대로 못 듣고 자퇴하는 트랜스젠더가 많기 때문에 엘리트 스포츠 선수가 나올지는 사실 회의적이다.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 특성상 학교에서부터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쉽지 않다. 사실 지금 생활 체육이나 사회인 스포츠에서는 성 소수자들이 꽤 많이 뛰고 있다. 다만 커밍아웃을 하면 같이 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절대 말하지 않는데, 생활 스포츠라는 게 운동 끝나고 술도 한잔 마시며 노는 재미도 있지 않나. 그래서 성 소수자들끼리 스포츠 팀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참여 기준이 어떠니 제도가 어떠니 하며 정책을 만들더라도 먼저 이런 문화적인 부분부터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터뷰 이현구·민혜린, 글 이현구

* 2022년 7월 14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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