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과일이 가장 인기가 많나.
복숭아, 체리, 아보카도, 수박. 특히 복숭아 M사이즈가 장난이 아니다. 다른 거 다섯 장 나갈 때 혼자 100장 나간다. 사실 과일이 20가지고 사이즈는 S부터 2XL까지 있다. 그렇다 보니 경우의 수가 100이라 재고 찾아주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과일 티셔츠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원하는 스타일로 입었으면 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디자인인데 왠지 사러 가지 못하면 지는 느낌이다.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걸까?
비단 티셔츠뿐 아니라 구매 경험이 주는 가치를 높게 봐주는 것 아닐까. 단순히 입으려고 산다기보다는 사러 오는 과정 자체를 즐겨주시는 것 같다. 구매하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사러 와서 사진도 찍고 인증샷도 올리는 그 과정 하나하나에서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다.
‘김씨네 과일’ 이전에도 다양한 프로덕트를 만들었다. 김씨네 과일로 입소문을 크게 타고 있는데 캐릭터를 어느 정도 굳힌 셈인가?
콘셉트가 아니다. ‘김씨네 과일가게’는 1퍼센트의 콘셉트와 99퍼센트의 진심으로 운영된다. 어떻게 보면 콘셉트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티셔츠 디자인에 어울리는 최적의 DP 방식을 찾아낸 것뿐이다. 최대한 실용적인 측면에서 생각한다. 작업 조끼를 입는 이유는 현금과 카드 용지를 보관하기가 편하기 때문이고, 모자를 쓰는 이유는 정말 햇볕이 뜨겁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콘셉트가 아닌 현실로 다가갈 수 있을까’, 이게 고민이다.
일종의 ‘부캐’라고 생각했는데, 답변을 들어보니 아닌 것 같다.
부캐 문화를 존중하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어차피 몸은 하나 아닌가. 어떻게 보면 부캐도 전략이고 마케팅인데, 나는 정공파다. 계산도 못 하고, 속도 조절도 못 한다. 오로지 목적지만 보고 뛰어가는 게 내 방식이다. 게임에서도 부캐를 안 만든다. 스탯(능력치)을 잘못 찍었더라도 한 캐릭터만 키운다. 말로만 ‘과일 판다’고 할 뿐, 진짜 과일을 판 건 아니지 않나. 내 정체성은 과일 장수가 아니라 티셔츠 파는 사람이다.
즉흥적이지만 분명한 자기 기준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과 다른 사람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 중 무엇을 우선하나.
별개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분명 나뉘어 있긴 할 거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전제로 깔려 있어야 한다. 그다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어떻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 두 개는 합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에게 재밌게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건지.
없다. 확신이 없으니까 열심히 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게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랩티가 그랬지만 사람들이 나를 통해 어떤 인물, 어떤 이슈를 알게 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제작자로서 보편적으로 사랑받고 싶나 아니면 코어팬을 확실하게 잡고 싶나?
당연히 코어팬이다. 더 깊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 개인적인 성취보다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시너지가 오가는 게 좀 더 의미 있는 것 같다. 팬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재미를 느낀다. 내 잘난 맛에 하는 것은 전혀 없다.
현재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더 대량 생산을 한다든가 규모를 확장할 생각은 없나?
이미 발주를 1000~2000장씩 넣고 있다. 맨 처음 플리마켓에 참여할 때는 100장 정도 만들었는데, 점점 수요가 많아져서 규모가 거의 수직 상승이다. 웬만한 브랜드에서는 다 연락이 왔다. 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준비 중인 것도 많고, 협업하는 곳도 많이 생겨서 좀 벅차게 따라가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굳이 물어본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고 말하겠다. 뭔가를 예상하고 하는 것은 진짜 똑똑한 사람의 영역 같다. 주변에 가끔 그런 비범한 사람들이 있다. 머리를 잘 써서 니즈를 파악하고 계산하는 사람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나도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수년간 디자인을 100가지 넘게 했는데 과일 티셔츠만큼 잘 된 게 없었다. 한 달만 지나도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의 수익을 뛰어넘을 거다. 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많이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까’를 고민하면서 몇 년을 버텼다. 비범한 디자인이나 전략 없이 내 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면 서로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랩티, AR 필터, 과일가게까지 달려왔다.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또 있나?
지금은 없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은 다 해봤다. 그래서 누구와 작업을 해보고 싶다거나, 얼마만큼 팔아보고 싶다거나 이런 건 전혀 없다. 그저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누군가에게 삶의 영감이 되거나 좋은 영향을 주는 것,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주는 것. 그게 전부다.
글
이현구 민혜린
* 2022년 7월 26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