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네 과일 김도영 그래픽 디자이너 – 1퍼센트의 콘셉트와 99퍼센트의 진심

1퍼센트의 콘셉트와 99퍼센트의 진심

김씨네 과일 김도영 그래픽 디자이너


길거리에서 누군가 과일이 그려진 흰 티를 입고 있다면 십중팔구 이 사람이 만든 티다. 오픈런을 부르는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티를 만들까? 다마스 한가득 과일 대신 과일 티셔츠를 싣고 다니는 ‘김씨네 과일’ 김도영 그래픽 디자이너를 용산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원래 전공이 광고 쪽인데, 티셔츠 만드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우연히 친구들과 티를 맞춰 입었는데, 티셔츠가 자신을 표현하기에 정말 좋은 수단이라고 느꼈다. 뭘 좋아하는지, 뭘 말하고 싶은지를 직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소리 없이 강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시끄럽게 하거나 나서는 건 안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이었다.

비씨카드 콜라보 티를 구매해 입고 왔는데 이걸 입고 회사에 간 날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비씨카드와 협업은 어떻게 이뤄졌나.

비씨카드 측에서 먼저 연락을 줬다. 젊은 세대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싶어 했다. 오래전에 배우 김정은씨가 나와 “부자 되세요”라고 외친 광고를 소재로 협업해 보자고 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 수락했다.
BC카드 X 파도타기 ⓒ김도영 디자이너
티에 녹여낸 것이 참 많다. ‘DM 안 읽고 스토리 업로드 금지’ 같은 메시지를 적기도 하고 래퍼나 유명인들을 그려 넣기도 하고. 이건 과일 티와는 또 다른 접근 같다.

그렇다. 꼭 뭔가를 말하고 싶어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과일 티는 그냥 깊은 뜻 없이 귀엽고 단순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어 만들었다. 우연히 토마토를 넣어봤는데 귀엽더라. 말씀하신 ‘DM 안 읽고 스토리 업로드 금지’는 뭔가 21세기의 어떤 예의 같지 않나. 이런 건 좀 시대정신 같은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서의 티라면 말씀하신 ‘랩티’는 뭔가 아티스트들에 대한 팬심의 표현 수단이면서도 다른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랩티라는 게 예전에 유행한 록 그룹 티셔츠와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이슈를 담는 것 같기도 하고. 

기자분들이 어떻게 기사를 선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랩티와 비슷한 방식이 아닐까? 나 역시 관심 있는 인물과 이슈를 담아내고자 했다.
자신을 소재로 한 랩티를 입은 래퍼 빈지노 ⓒ김도영 디자이너
어떻게 보면 당사자를 희화화하는 작업일 수 있는데 걱정하거나 고려했던 부분은 없었나.

딱 한 번 촛불 집회와 관련해서 만들었던 적은 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어서 작업한 적 없다. 나는 그저 재미를 주고 싶을 뿐이다. 다만 재미를 주는 과정에서 누구를 조롱하거나 의도적으로 깔보고 나쁘게 표현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티셔츠에 오른 당사자들이 즐겁게 입을 수 있는 이유도 그 안에 악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판단을 열어주는 것에 가까운데, ‘와 이 사람 보세요. 지금 되게 웃기네요.’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티셔츠도 멋이 중요한 것 아닌가? 예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B급 감성이라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소위 ‘힙’함을 노리진 않았는지.

B급은 너무 피하고 싶은 표현이다. 항상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작업한다. B급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하면 나와 결이 맞지 않는 거고 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다. 대놓고 ‘나 멋있어’ 하는 건 진짜 안 좋아한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나름대로 유머를 섞어 만들 뿐이다.

과일 티로 넘어가 보자. 다마스로 닿는 곳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산다. 판매량은 어떤가?

정확히 체크해 본 적은 없지만 판매할 때마다 최소 몇백 장씩은 나간다.

늘 개시 임박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판매 공지를 하는 것 같다. 이는 전략인가?

늘 준비되는 대로 공지를 하는 거다. 여기서 바로바로 티셔츠를 찍기 때문에 판매할 물량이 준비되었다 판단이 될 때 즉흥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어떠한 전략적인 마케팅도 아니다.

멜론 머스크, 정신 체리시고, 힙합의 기본 라임 등 티셔츠 네이밍도 재밌다.

판매할 때 뭔가 적어두긴 해야 하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짓는 거다. 고민하면 오히려 재미없다. 멜론이 ‘멜론 머스크’일 때도 있고 ‘고당도 차트 1위 메론’일 때도 있다.
김씨네 과일 ⓒ김도영 디자이너
어떤 과일이 가장 인기가 많나.

복숭아, 체리, 아보카도, 수박. 특히 복숭아 M사이즈가 장난이 아니다. 다른 거 다섯 장 나갈 때 혼자 100장 나간다. 사실 과일이 20가지고 사이즈는 S부터 2XL까지 있다. 그렇다 보니 경우의 수가 100이라 재고 찾아주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과일 티셔츠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원하는 스타일로 입었으면 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디자인인데 왠지 사러 가지 못하면 지는 느낌이다.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걸까?

비단 티셔츠뿐 아니라 구매 경험이 주는 가치를 높게 봐주는 것 아닐까. 단순히 입으려고 산다기보다는 사러 오는 과정 자체를 즐겨주시는 것 같다. 구매하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사러 와서 사진도 찍고 인증샷도 올리는 그 과정 하나하나에서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다.

‘김씨네 과일’ 이전에도 다양한 프로덕트를 만들었다. 김씨네 과일로 입소문을 크게 타고 있는데 캐릭터를 어느 정도 굳힌 셈인가?

콘셉트가 아니다. ‘김씨네 과일가게’는 1퍼센트의 콘셉트와 99퍼센트의 진심으로 운영된다. 어떻게 보면 콘셉트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티셔츠 디자인에 어울리는 최적의 DP 방식을 찾아낸 것뿐이다. 최대한 실용적인 측면에서 생각한다. 작업 조끼를 입는 이유는 현금과 카드 용지를 보관하기가 편하기 때문이고, 모자를 쓰는 이유는 정말 햇볕이 뜨겁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콘셉트가 아닌 현실로 다가갈 수 있을까’, 이게 고민이다.

일종의 ‘부캐’라고 생각했는데, 답변을 들어보니 아닌 것 같다.

부캐 문화를 존중하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어차피 몸은 하나 아닌가. 어떻게 보면 부캐도 전략이고 마케팅인데, 나는 정공파다. 계산도 못 하고, 속도 조절도 못 한다. 오로지 목적지만 보고 뛰어가는 게 내 방식이다. 게임에서도 부캐를 안 만든다. 스탯(능력치)을 잘못 찍었더라도 한 캐릭터만 키운다. 말로만 ‘과일 판다’고 할 뿐, 진짜 과일을 판 건 아니지 않나. 내 정체성은 과일 장수가 아니라 티셔츠 파는 사람이다.

즉흥적이지만 분명한 자기 기준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드는 것과 다른 사람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 중 무엇을 우선하나.

별개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분명 나뉘어 있긴 할 거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전제로 깔려 있어야 한다. 그다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어떻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 두 개는 합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에게 재밌게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건지.

없다. 확신이 없으니까 열심히 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도 좋아하게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랩티가 그랬지만 사람들이 나를 통해 어떤 인물, 어떤 이슈를 알게 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제작자로서 보편적으로 사랑받고 싶나 아니면 코어팬을 확실하게 잡고 싶나?

당연히 코어팬이다. 더 깊게 소통할 수 있으니까. 개인적인 성취보다는 서로 상호작용하며 시너지가 오가는 게 좀 더 의미 있는 것 같다. 팬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재미를 느낀다. 내 잘난 맛에 하는 것은 전혀 없다.

현재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더 대량 생산을 한다든가 규모를 확장할 생각은 없나?

이미 발주를 1000~2000장씩 넣고 있다. 맨 처음 플리마켓에 참여할 때는 100장 정도 만들었는데, 점점 수요가 많아져서 규모가 거의 수직 상승이다. 웬만한 브랜드에서는 다 연락이 왔다. 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준비 중인 것도 많고, 협업하는 곳도 많이 생겨서 좀 벅차게 따라가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굳이 물어본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고 말하겠다. 뭔가를 예상하고 하는 것은 진짜 똑똑한 사람의 영역 같다. 주변에 가끔 그런 비범한 사람들이 있다. 머리를 잘 써서 니즈를 파악하고 계산하는 사람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나. 나도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수년간 디자인을 100가지 넘게 했는데 과일 티셔츠만큼 잘 된 게 없었다. 한 달만 지나도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의 수익을 뛰어넘을 거다. 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많이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까’를 고민하면서 몇 년을 버텼다. 비범한 디자인이나 전략 없이 내 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면 서로에게 더 이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랩티, AR 필터, 과일가게까지 달려왔다.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또 있나?

지금은 없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은 다 해봤다. 그래서 누구와 작업을 해보고 싶다거나, 얼마만큼 팔아보고 싶다거나 이런 건 전혀 없다. 그저 한 명이든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누군가에게 삶의 영감이 되거나 좋은 영향을 주는 것,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주는 것. 그게 전부다.

이현구 민혜린

* 2022년 7월 26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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