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 이명진 대표, 이아란 편집장 - 믿음직한 콘텐츠가 만드는 광장

믿음직한 콘텐츠가 만드는 광장

아루 이명진 대표, 이아란 편집장


“그녀에게 백 년을 더 주자. 자기만의 방과 연간 오백 파운드를 주자.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게 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을 빼버리게 하자. 그녀는 시인이 될 거야.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여성을 위한 성 지식 플랫폼 ‘자기만의방’을 운영하고 있는 팀 ‘아루’는 신뢰에 기반을 두고 콘텐츠 시장의 확장을 노린다.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혹은 정보를 찾느라 자신의 방을 돌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지식과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아루의 철학과 지향을 물었다.

플랫폼 ‘자기만의방’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한다.

이명진 대표 (이하 ‘명진’) ; 자기만의방은 여성을 위한 성 지식 커뮤니티다. 성 지식을 뿌리로 다양한 것들을 함께 하고 있다. 앱 내 ‘도서관’ 탭에서는 여성을 위한 지식을 가공해 콘텐츠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지식을 바탕으로 여성들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탭인 ‘서클’이 있다. ‘자기 방’ 탭에서는 본인이 읽었던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방을 꾸밀 수 있고, 월경 주기를 기록하거나 무드 트래킹을 할 수 있다. 도서관, 서클, 자기 방, 세 가지 공간으로 이뤄진 서비스다.

지식과 커뮤니티, 기록이 한 곳에 모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보인다. 세 가지 탭으로 구성한 이유가 무엇인가?

명진 ; 처음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제공하는 세 가지 기능이었다. 처음 플랫폼을 론칭했을 때는 커뮤니티가 없었다. 대신 콘텐츠를 제공하는 도서관을 중심에 두고 발전시켰다.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됐을 때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믿을 수 있는 대화가 오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지식 콘텐츠를 가장 먼저 열었다.
자기만의방 기능 ©arooo.co.kr
해외에도 코랄(Coral), 딥씨(Deepsea)와 같은 플랫폼은 있지만 정보-커뮤니티-기록 모두를 한 번에 운영하는 사례는 잘 못 봤다. 어쩌다 성 지식 콘텐츠 플랫폼을 생각하게 됐나?

명진
; 성 지식은 필요한 지식이다. 알기만 하면 금방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아이디어가 한 순간에 생각났다기보다는 인생을 살면서 막연히 ‘왜 이런 플랫폼은 없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전에 질염으로 1년 넘게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도저히 나을 기미가 안 보여서 산부인과에 갔는데, 1년 동안 고생하던 게 일주일 만에 낫더라. 이렇게 쉽게 낫는다는 걸 알았을 때의 쾌감도 컸지만, 돌이켜 보니 삶에서 경험했던 비슷한 일들이 많았다. 지금처럼 시장에 임팩트를 주거나,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이라는 것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내가 너무 불편한데,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출발했다.

이아란 편집장 (이하 ‘아란’) ; 나역시 처음부터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서비스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서비스를 열고나니 우리가 세상에 필요한 일을 했다는 깨달음이 빨리 오더라. VC에서도 먼저 연락이 오고, 굉장히 필요한 시장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성 지식이 비즈니스가 됐을 때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여성의 몸, 질병, 관계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콘텐츠를 만들 때 우선순위에 두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란 ; 몰랐던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이유 없이 갖고 있던 생각에 의문을 품게 해주는 것이 자기만의방이 추구하는 콘텐츠다. 몸을 다룬 콘텐츠 중에 ‘외음부를 씻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콘텐츠가 있다. 투표를 해본 결과 70퍼센트는 씻는 방법이 따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씻었는데, 아무도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거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에 의심을 품게 되면 다른 사람과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플랫폼에서 이런 방식의 말하기를 배우면, 다른 곳에서도 편히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듣다 보니 자료를 찾는 것만 해도 엄청난 작업일 것 같다. 어떻게 자료들을 모으고 편집하나?

아란 ; 대부분의 자료는 공신력 있는 곳에서 찾는다. 영국의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미국 제약 회사인 머크 사에서 펴내는 ‘MSD 매뉴얼’을 참고하고, 최신 자료의 경우 논문과 의학 저널 등을 이용한다. 기자 분들이나 에디터 분들이 콘텐츠 기사 쓸 때 자료 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크게 다를 것 같은데. (웃음) 외음부를 씻는 올바른 방법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지식이지 않나. 아이템 선정부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란 ; 초반 100가지 정도의 아이템은 미리 함께 리스트 업을 해뒀다. 리스트를 채우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새로운 지식들도 있어서 그런 부분은 다음에 다룰 아이템으로 추가해 뒀다. 외음부를 씻는 방법에 관한 콘텐츠도 마찬가지였다. 질염 치료에 대해 조사하다보면, 외음부를 바르게 씻으라는 조언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도 콘텐츠를 만들면서 알게 되는 것들을 더 조사하고, 새로운 정보를 넣고, 편집 방식을 고민하는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한다.

방대한 양을 다루는 콘텐츠인 만큼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편집 방식도 중요한 요소다.

명진 ;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여성의 건강을 위한 백과사전을 완성하겠다는 느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형태가 갖춰지면, 거기서 나오는 재미있는 질문을 뽑아서, 해당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짧은 콘텐츠들을 만들었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질문들에도 답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하나의 대화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루 인스타그램 ©arooo.co.kr
아란 ; 언제나 가장 힘든 것이 양을 덜어내는 절차다. 새로운 소식이거나 신박한 지식일 때는 무조건 넣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조사한 걸 버리는 과정이 힘들지만, 그걸 아까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덜어내고 버려도 길이가 너무 길어지거나 콘텐츠가 무거워지면 또 다른 콘텐츠로 기획한다. 사용자들이 정말 알고 싶어 하는 정보만 남기기 위해서 많이 읽고, 덜어내는 편이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최근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자기만의방의 커뮤니티는 무엇이 다른가?

명진 ; 편안한 분위기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규칙을 세세하게 정하는 것이 꼭 방법은 아닌 것 같더라. 어떤 건 하지 마시고, 어떤 것만 하라는 식의 룰을 만드는 게 세련된 방식이 아니라고 느꼈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방 플랫폼은 어떻게 말하고,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지에 대한 기준, 혹은 합의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플랫폼, 서비스, 콘텐츠와 비슷하게 소통한다. 때로는 답답한 질문이나 고민이 있어도 도서관 탭의 콘텐츠를 읽어보라는 식으로 간편하게 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기만의방 커뮤니티는 서비스와 콘텐츠로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 같다.

아란 ; 콘텐츠가 있기에 질문하는 이와 답하는 이의 비대칭 구조가 해소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커뮤니티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올바르게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나. 특히 성과 관련한 부분은 그러한 비대칭이 더 잘 나타나기 쉽다. 이런 부분을 콘텐츠가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커뮤니티 탭에서 자주 질문하는 콘텐츠를 모아 대신 묻고 답해주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유저들이 직접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올바른 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구축하고 싶다.

성인 여성만 가입이 가능하다. 어쩌면 많은 잠재 유저를 놓치고 시작하는 건데 망설이지는 않았나.

아란 ; 여성만 가입 가능한 게 단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모든 서비스는 뾰족한 타깃팅이 필요하다. ‘29cm’가 남성보다는 여성을, ‘와이즐리’가 여성보다는 남성을 타깃팅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성인 여성이 과연 작은 시장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모든 콘텐츠, 서비스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명진 ; 한편으로는 성에 대한 이야기나 몸과 관련한 정보는 왜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어려울까?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성과 관련한 정보를 모두가 이용하고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지 않은 공간이 될 것 같았다. 청소년에게는 이런 공간이 열리지 않은 것이 정말 아쉽다. 앱 스토어 정책 때문에 성적 내용이 들어가면 청소년 공개가 아예 안 된다. 최근 〈고딩엄빠〉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 있지 않나. 청소년을 위한 성 지식 공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웹 페이지를 리뉴얼 하면서 150개 콘텐츠를 추려 무료로 공개했다. 특별한 가입 절차 없이도 콘텐츠를 볼 수 있기에 청소년들도 접근 가능하다.

지난 6월,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팁스‧TIPS)에 최종 선정됐다.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명진 ; 아무래도 팁스가 정부 지원 사업이고, 심사위원의 나이대가 우리의 비전에 공감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장성 논리를 탄탄하게 짜려고 노력했다. 여성 중심의 서비스가 얼마나 성장 가능성이 큰지를 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지금 시장이 막 열리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이 시장을 우리가 장악할 수 있는 이유를 어필했다. 여성을 위한 지식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블루오션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성 지식 콘텐츠라는 것이 플랫폼의 정체성이다. 뾰족한 콘텐츠 정체성은 유저의 니즈를 반영하기 쉽지만, 그만큼 발행할 수 있는 콘텐츠가 고갈될 위험도 크다. 이 난점을 돌파할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명진 ; 아루 팀이 전달하는 콘텐츠는 알기만 하면 삶을 바꾸는데도 잘 모르는 지식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성격을 가진 정보는 성 지식 말고도 많다. 확장 계획을 갖고 있는 건 ‘그로우업(Grow Up)’이라는 섹터다. 지금 어플리케이션에도 그로우업에서 여성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문구들을 노출하고 있다. 여기서 출발해 여성이 어떻게 커리어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정보와 기준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로우업 ©arooo.co.kr
성 지식과 마찬가지로 커리어를 만드는 방식도 세상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창업자는 자기비판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었다. 어느 날 남자인 친구에게 내가 너무 자기비판을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하니, 이미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답하더라. 창업자에 대한 조언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금 그로우업에서 노출되는 문장들에서도 ‘조금 더 고민해봐’라는 말은 안 한다. ‘심플하게 생각’하라는 이야기나 ‘잘 하고 있다’는 결의 문장들이 많다. 여성들에게 필요하고, 여성들의 의식을 확장하는 콘텐츠로 확장하고 싶다. 이 역시 신뢰가 쌓여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이 유저에게 줄 수 있는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들린다. 커머스 분야 확장 계획도 이 신뢰에 기반을 두나?

명진 ; 맞다. 올해 말에는 좋은 섹스토이를 콘텐츠와 연결해 제공하려 한다. 자기만의방에 관련 콘텐츠가 정말 많다. 인터뷰 콘텐츠만 45개가 나갔다. 콘텐츠가 나갈 때마다 DM이나 유저 CS를 통해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이 ‘그래서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구매하는 과정이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다는 게 큰 이유였다. 이런 페인 포인트를 해결하고 싶다. 그로우업처럼 콘텐츠적인 확장도 분명히 하게 될 것 같다.

자기만의방이 어떤 플랫폼이 되기를 원하나?

아란 ; 정말 많이 이야기하고 생각했던 것이라 말하기 민망하기도 한데. (웃음) 처음 플랫폼을 만들 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모티프로 했었다. 《자기만의 방》이 문학 강의록을 엮은 책인데, 울프가 한 시인을 회고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있었지만 너무 많은 걸 신경 썼다. 100년 뒤 그녀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 시인은 자유롭고 온전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울프의 수필이 나온 게 1929년이니까 2029년이 딱 그로부터 100년 뒤다. 자기만의방을 이용하는 유저들이 ‘나도 알 수 있고, 할 수 있으니 더 많은 것에 팔을 뻗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으면 한다.

명진 ; 생각의 과정을 줄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너무 많이 고민한다. 최고의 물건을 찾기 위해서, 안전한 물건을 찾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자기만의방은 그런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줄 수 있고, 그 자체가 많은 이들의 인생을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여행을 자유롭게 하세요. 귀찮은 건 저희가 해드릴게요.” 이아란 편집장이 썼던 이 문장이 우리 플랫폼의 지향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김혜림 에디터

* 2022년 10월 25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