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임현아 화면해설작가 - 우리가 같은 장면에 웃을 수 있도록

©사진: 이성원

우리가 같은 장면에 웃을 수 있도록

이진희, 임현아 화면해설작가

소리만으로 내용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눈을 감고 들으면 빗소리인지 고기 굽는 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영상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화면해설작가다. 2001년 4월, 드라마 〈전원일기〉의 1000회로 우리나라 최초의 화면해설방송이 방영됐다. 21년이 지났지만 화면해설은 여전히 생소하다. 모두에게 닿는 화면해설을 꿈꾸는 이진희, 임현아 화면해설작가를 만났다.
화면해설작가는 어떤 일을 하나.

임현아(이하 임) 영상 속에 있는 시각 정보를 말로 전달하는 화면해설 서비스의 대본을 쓰는 작가다. 한 마디로 영상을 글로 풀어서 전달하는 사람이다.

이진희(이하 이) 드라마 속 배우들의 표정, 행동, 장소부터, 예능 속 대화에서 ‘이것, 저것’ 지칭하는 경우 등을 모두 풀어서 쓴다. 방송의 길라잡이가 되어서 시각장애인과 영상을 연결하는 번역가라고 할 수 있다.

화면해설작가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방송·라디오 구성작가를 오래 했다. 매일 쓰는 원고가 전파로 흩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화면해설작가 교육생 모집 공고를 봤고, 지금은 10년 차 화면해설작가가 됐다.

운명같이 화면해설작가가 됐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앞두고 우연히 화면해설작가 교육생 모집 공고를 접했다. 뭔지도 모르고 지원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대표작을 소개해달라.

드라마는 〈D.P.〉, 〈사내맞선〉, 〈나의 해방일지〉 등이 있고, 영화는 〈모가디슈〉, 〈리틀 포레스트〉 등이 있다.

 〈나는 몸신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최강야구〉 등 예능을 주로 했다. 다큐멘터리도 했다.

화면해설에서 중요한 건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즐거움을 우선한다. 웃긴 포인트, 긴장감 등 드라마의 재미 요소를 오롯이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시점에 웃고, 같은 시점에 감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몰입을 해치지 않고, 소리와 소리 사이에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한 부분이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야 하는데, 소리와 소리 사이에 들어가야 하니 문장의 길이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먹방의 경우 미각을 자극하는 건 후루룩 소리뿐 아니다. 접시인지 보울인지, 색깔은 무엇인지부터 어떤 채소에 쌈을 사먹는지, 고기를 참기름에 찍는지 쌈장에 찍는지까지... 설명하려면 끝없고 안 하려면 안 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최대한 궁금증을 남겨두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일 수 있게,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것이 화면해설작가의 역량이다.

그래서 편집본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공간 파악이다. 드라마의 경우 대본 정리를 하면서 1차 작업으로 틈을 만든다. 틈에 들어갈 수 있는 해설을 써놓고, 이제 주어진 시간에 맞춰서 문장 길이를 다듬는다. 말과 효과음 등 소리가 많이 들어가는 예능은 이 틈이 부족한 편이다.

화면해설은 제약이 많은 작업 같다.

〈나는 몸신이다〉를 하면서 난감했던 때가 기억난다. 출연자들이 치매 예방 운동을 하는 장면이었다.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 다르게 움직여야 하는 운동이었고, 출연자가 실수하는 게 웃음 포인트였다. 원래 어떤 동작이고, 어떤 출연자가 어떻게 실수했는지 다 설명하면서도 다른 출연자들의 웃음소리와 섞이면 안 됐다. 정말 어려웠던 작업이다.

또 말하면 안 되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작업한 드라마 〈빅마우스〉의 경우, 빅마우스가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 초반의 재미요소였다. 화면은 모든 사람을 의심할 수 있게끔 화면을 비추는데, 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의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만 묘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화면을 깊이 해설하기 위해서는 전문성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영상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요하는 경우도 있다. 브레이킹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다운〉의 화면해설 작업을 맡은 적이 있다. 댄스에 집중하다 보니 자막이 적었고, 그래서 정보값이 적었다. 블로그, 유튜브 등을 통해 세세하게 동작을 비교하면서 브레이킹 기술을 설명했다. 브레이킹 용어가 정말 많아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애니메이션 〈지오메카 비스트가디언〉 화면해설을 할 때였다. 다양한 변신 로봇이 나왔다. 서로 합체를 하기도 했다.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이 이어지고 떨어지는지 변신 과정을 알기 위해 직접 장난감을 사서 조립해본 적도 있다.

각자 맡는 방송 분야가 따로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산하 시각장애인미디어진흥원을 통해 의뢰가 들어오면, 적당하게 장르별로 작가를 배정한다. 일정에 따라서 조절할 수는 있지만, 작가에게 장르 선택 권한이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화면해설방송이 편성되나.
  
화면해설 방송을 만들지 말지 결정하는 건 방송사 고유권한이다. 기준도 방송사별로 달르다. 그래서 아쉬운 점이 많다. 지금은 이런 경우가 줄었지만  시청률에 따라 반응이 좋지 않은 드라마는 1~3회까지만 화면해설방송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정주행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또 느닷없이 중간화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뒷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앞 내용까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동료 권성아·김은주·홍미정 화면해설작가와 함께 펴낸 책, 《눈에 선하게》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으로서의 화면해설방송에 대해 말씀하셨다.

화면해설방송이 시작할 때 꼭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이란 문구가 나온다. 하지만 정말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인가, 화면해설 자체를 놓고 봤을 때 효용이 없는가?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다음 역을 알려주는 음성안내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이었다. 노선표의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는 노인, 글을 모르는 사람, 다른 일에 집중한 사람 등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화면해설도 그렇다.

드라마 팬들 사이의 새로운 문화도 주목해볼 만하다. 일부 로맨스 드라마 팬들은 ‘n차 관람’을 위해 서로 화면해설방송을 공유하기도 한다.

화면해설방송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건가.

 TV편성표 옆에 (해)라고 적혀 있으면 화면해설을 제공한다는 뜻이다. 통신사 별로 다르긴 한데, 리모콘의 특정 버튼을 길게 누르면 화면해설로 설정된다.

얼마 전 SNS에서 한 영화 팬이 〈헤어질 결심〉 화면해설 버전을 볼 수 있는지 찾는 글을 봤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가치봄 영화’라고 하는데, 극장상영작은 1년에 몇 편 안 된다. 화제작 정도만 하는 편이고, 상영관도 정해져 있고 상영 회차도 적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같이 보고 듣는 방송을 위해 또 무엇이 필요한가.

표현에 관한 부분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특정 브랜드명을 언급할 수 없다. 영화 〈퍼펙트맨〉이 명절특선영화로 방영된다고 하면, 아우디, BMW, 람보르기니 모두 ‘외제차’로 설명해야 하고 샤넬, 구찌는 모두 ‘명품 브랜드’로 설명해야 한다. 화면에서는 엠블럼이나 상표 디자인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화면해설방송에서는 다르다.

PPL도 직접 언급할 수 없다. 화면해설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왜 드라마 주인공이 자꾸 샌드위치를 먹는지, 왜 너도나도 스틱밤을 쓰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화면해설방송은 본방송이 아닌 주로 재방송부터 적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경기는 화면해설방송이 제작되기 어렵다. 이번 월드컵만 해도 그렇다. 지시대명사를 지양하는 등 기본적으로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묻고 싶다.

유튜브, 웹툰 등 화면해설의 영역이 확장하고 있다. 더 많이 발전하고 확장해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지도록 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모두 음성해설을 제공하고 있지만 국내 OTT는 없는 상황이다. 화면해설이 있는 버전, 없는 버전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화면해설이 보편화 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한 주 한 주 더 나은 화면해설을 쓰고 싶다.

글 정원진 에디터

* 2022년 12월 27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