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주의 운동가 단하야 호발릐그 - 우리는 지금도 전장으로 끌려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전장으로 끌려가고 있다

탈식민주의 운동가 단하야 호발릐그

러시아에는 190개가 넘는 다양한 아시아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투바 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의 아시아계 자치 공화국이다.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러시아 중심의 동화 정책을 펴며 소수 민족을 탄압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이는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지난 2022년 9월 21일 부분 동원령을 내렸는데 타깃은 주로 러시아 내 소수 민족이었다. 《더디플로맷》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소수 민족 지역에서 슬라브 지역보다 서너 배 더 많은 남성을 데려갔으며 동원으로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가 20퍼센트 감소하기도 했다. 투바 공화국 출신의 탈식민주의 운동가 단하야 호발릐그(Dankhaiaa Khovalyg)와 화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투바 공화국은 많은 한국인에게 생소한 곳이다.

아시아계 소수 민족 투바인이 사는 러시아 연방의 자치 공화국이다. 시베리아 남부로 몽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17~18세기 러시아 제국이 투바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무역 식민지화를 진행했고 결국 1914년 러시아 제국의 피보호국이 되었으며 1944년 결국 소련에 합병된 역사가 있다. 러시아는 투바 말고도 주변 여러 소수 민족 공화국을 식민지화했다. 연방 내 공화국에 대한 탄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탈식민주의와 반전 운동을 비롯해 많은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안다. 자신을 소개해달라.

단하야 호발릐그다. 투바 공화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작가이자 운동가이고 ‘공화국이 말한다(Республика Говорит)’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얼마 전부터 제작하고 있다. ‘독사 저널(Doxa Journal)’이라는 반정부·반전(反戰) 미디어에서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서적 등 다양한 집필 활동을 한다. 그 외에 탈식민지화 및 반전 운동에 관련한 자원봉사를 한다. 자세한 언급은 어렵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3월부터 남편과 함께 독일에 이민했다.
 
2022년 12월 베를린에서 개최된 전쟁 반대 이니셔티브 회의(Antiwar initiatives congress)의 소수 민족 운동가들 ⓒNew Tuva
집필한 서적이나 글의 내용이 궁금하다.

러시아 제국주의, 탈식민주의에 대한 단편 소설을 두 권 출간했고 《알듸나》라는 제목의 자전 소설을 작업 중이다. 투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모스크바에서 2000년대를 보낸 후 독일에 이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여담이지만 2000년대 초반은 러시아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다. 다민족 국가 대표들에게 매우 위험한 시기였고 스킨헤드 등으로 인해 범죄나 살해 사건이 많았다. 이외에 ‘어두움’을 주제로 한 동화 시리즈에 참여 예정이며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러시아의 아시아 공화국 식민지화에 대한 논문 발표를 앞두고 있다.

팟캐스트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나?

러시아 연방에는 수많은 소수 민족 공화국이 속해 있지만 이들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인식이 많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내용을 다룬다. 주로 각 공화국의 문화와 역사적인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러시아 내 소수 민족 비율은 어느 정도 되나?

러시아는 인구 조사를 잘 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마지막 인구 조사는 2010년에 있었는데 당시 러시아 연방 내 950만 명의 아시아계 소수 민족이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 전체 인구의 6.5퍼센트 정도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 80퍼센트가 흔히 생각하는 백인 러시아인인 루스키 민족이고 나머지 20퍼센트가 아시아인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들이다. 러시아 내에 많게는 190개의 여러 아시아계 민족이 있는데 주로 차별당하는 것은 몽골로이드(Mongoloids)로 쉽게 말해 몽골의 후손이다. 대표적인 민족은 야쿠티야, 부랴티야, 투바, 칼미키야, 알타이 등이다. 이들 공화국은 작게는 몇만에서 몇십만 인구밖에 되지 않는다. 고려인 인구보다도 훨씬 적다.

원래 이렇게 인구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 동화 정책의 영향인가?

그렇다. 러시아 제국이 이들을 식민지화하며 그 과정에서 인구가 섞이기 시작했다. 공화국 땅에 러시아 학교와 문화 센터가 지어지며 언어 사용을 금지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스탈린 체제에서는 루시피케이션(Russification, 러시아화)이 진행되며 민족주의 성향의 공화국 엘리트들을 숙청했고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민족은 탄압하거나 강제 이주시켰다. 소련이 남긴 기록을 보면 대부분 공화국이 자발적으로 러시아에 복속되길 원했다고 적혀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식민지화의 역사를 간단히 짚어주면 좋겠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무역 식민지화다. 시베리아는 가축이나 모피가 많이 나는데 이는 러시아나 유럽 등지에서 비싸게 거래됐다. 러시아 상인들은 시베리아에 건너와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맺어 헐값에 사 갔다. 대가로 지급한 것은 소수 민족에게 없는 생필품이나 권총 몇 자루였다. 그러다 무역을 러시아 화폐로만 하게 하는 등 계약은 점점 불공정해져 갔다. 날이 갈수록 착취와 수탈이 심해졌지만 공화국 대부분이 이미 경제적 의존을 멈출 수 없는 상태였다. 두 번째로는 군사적 식민지화인데 이는 쉽게 무역화가 되지 않은 공화국들을 강제로 합병한 것을 말한다.

러시아 내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차별적 시선이 강하다. 그 뿌리는 러시아의 제국주의에 있는 것 같다. 러시아는 다문화 사회지만 러시아인들은 민족적 주인 의식이 있다. 러시아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를 보면 러시아인들이 아시아 공화국의 구원자처럼 그려지고 있다. 문화·교육·의료를 가지고 왔으며 매독을 퇴치하고 빈곤에서 구했다는 식이다. 슬픈 건 이런 인식이 소수 민족 전반에도 퍼져 패배주의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러시아인 보다 못났다거나, 무시를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사실상 2등 국민처럼 살아가고 있다.

국가가 가스라이팅을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여기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 마침 1943년 오늘(12월 28일) 소련에서는 특별 작전이 있었다. 칼미키야 사람들을 나치 독일의 부역자로 낙인찍으며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이다. 한겨울에 옷도 제대로 주지 않고 시베리아로 13년간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는 칼미크인이 식인종이라거나 전염병 환자라는 등 소문을 퍼뜨렸다. 학살에 가까운 조치였다. 이후 칼미크인들은 러시아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언어와 전통을 버리게 됐다. 과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앞서 언급한 2000년대 초반에도 혐오 정서가 넘쳐났다.

2000년대 초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나?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이나 러시아 공군의 날 같은 경우 대학교나 회사에서 아시아계 학생이나 직원이 결석해도 모두 이해해줬다.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슬라브인 외모가 아닌 사람은 구타를 당하거나 살해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 시골이나 공화국 영토 내의 일이 아니라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처럼 러시아의 대도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도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나?

요새는 미디어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지만 잔재는 남아있다. 강력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가 러시아인이면 굳이 민족이 언급되지 않지만, 루스키 민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민족 이름이 언급된다. 임대 아파트를 구할 때도 슬라브 민족만 살 수 있다는 내용이 공공연히 적혀 있다. 슬라브 민족의 이름을 달고 유창한 러시아어로 통화한 후 아파트를 보러 가도 외모를 보면 바로 계약을 거부당한다. 나 역시 모스크바에서 학교에 다녀 투바어를 못 하고 오히려 러시아어를 잘하는데도 모스크바에서 다양한 차별을 경험했다.
Russia mobilises national minorities to fight against Ukraine and die ⓒUATV English
이번 러시아 부분 동원령에서도 아시아 소수 민족의 동원 비율이 높았다고 알려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를 기억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비(非)나치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러시아 내부나 우리 아시아계 공화국들 사이에선 러시아를 비나치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러시아군의 비율을 보면 70퍼센트가 러시아인이고 30퍼센트가 아시아인이다. 아시아인이 훨씬 많이 징집된 거다. 더 무서운 것은 사망률이다. 러시아인보다 아시아인의 사망률이 훨씬 더 높다. 최전선에 아시아인들을 주로 투입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아시아계 소수 민족 사망률은 얼마나 되나?

조금씩 다르지만 특히 부랴티야, 투바, 사하(야쿠티야) 공화국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투바의 경우 인구가 30만 명인데 벌써 123명이 죽었다. 비교를 위해 말하지만 모스크바는 인구가 1200만 명인데 이 중 56명이 죽었다. 모스크바보다 인구가 40배 적은 투바에서 사망자 수가 두 배 높은 것이다. 부랴티야인이라면 러시아인에 비해 사망할 확률이 7.8배 높고 투바인은 10.4배나 높다. 인종 청소에 가까운 엄청난 숫자다.

동원령 이후 많은 러시아인이 국외 도피하지 않았나. 아시아인들은 왜 그럴 수 없었나.

징집도 징집이지만 계약직 군사로 복부 중인 경우도 많다. 전장에는 이들이 우선적으로 보내진다. 이미 수년간 전쟁 상황을 대비해 러시아의 국영 미디어들은 공화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이나 범죄로 사망률이 높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식이다. 아시아계 계약직 군인들도 실제 군 내에서 사회·경제적으로 러시아에 속박되어 있다 보니 전장에 보내질 때도 반항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들에겐 계약 군인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투바 출신 군인들이 주로 차출되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중이라는 기사가 많다.

왜 하필 투바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많이 차출되나?

여기엔 러시아화의 역사가 담겨 있다. 투바는 사얀산맥 동부에 있어 철도 등을 설치하기에 불리한 조건이다. 따라서 인프라 개발이나 경제적 지원이 별로 없었고 식민지화도 다른 공화국에 비해 늦게 이뤄졌다. 이 때문에 투바는 다른 공화국에 비해 자신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많다. 투바인의 90퍼센트가 투바어를 제1 언어로 구사하고 러시아어를 제2 언어로 여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가 워낙 소수 민족이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투바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통신병으로 기용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공개한 러시아 통신병의 라디오 시그널에서 투바어가 나와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23년을 러시아 탈식민지화의 해로 선포한 소수 민족 운동가들의 신년사 ⓒFree Buryatia Foundation
안타까운 일이다. 탈식민주의 운동의 핵심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 민족의 언어와 이름을 되살리는 것이다. 일례로 야쿠티야인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이름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대부분 러시아의 성과 이름을 쓴다. 민족의 역사를 계속해 기록하고 언급하지 않으면 우리의 뿌리는 제국주의에 짓밟히게 된다.

소수 민족 운동가들의 활약상이 궁금하다.

프리(Free) 부랴티야, 프리 칼미키야, 프리 야쿠티야 재단 등 탈식민주의 운동 재단 및 아시안오브러시아(Asian of Russia) 재단은 지난 2022년 9월 부분 동원령 때 우리 민족의 계약직 군사들의 부당 계약을 해지하는 것을 도왔고 징집령이 내려진 인원들이 피신시키기도 했다.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모두 러시아로부터의 아픔이 있는 국가들이라 따뜻한 연대 의식이 발휘됐다.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등 러시아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없나.

소련 해체 직후엔 많았다. 일례로 칼미키야는 공화국 가운데서도 독립 의지가 높던 곳이다. 그런데 칼미키야 바로 옆이 그 체첸이었다. 체첸 전쟁이 언제든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셜 미디어에 반전에 관련된 작은 캡션만 달아도 경찰서에 끌려갈 수 있으며, 우리와 같은 운동가들도 현지는 위험해 주로 외국에서 활동한다. 상황이 이러니 통일된 목소리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국민들은 여력조차 없다. 오랜 경제적 종속으로 공화국 대부분은 매우 가난하다.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생존의 문제가 더 급하다. 전기도 없어서 장작을 사는 곳이 많고, 장작을 살 돈조차 없어 허덕인다. 매슬로우의 피라미드를 떠올리면 쉽다. 사실 러시아 연방의 많은 소수 민족 공화국들은 천연 광물이 많아 부유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자원은 모두 모스크바에서 끌어들인 후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재분배한다.

탈식민주의 운동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

낮은 교육률과 미디어 리터러시다. 대도시나 외국에 나가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는다. 최소한 이런 운동에 관심을 가지려면 미디어를 많이 접해야 하는데 언론 통제도 심하고 디지털 접근성도 떨어져 국민 대부분이 뉴스조차 잘 못 본다. 자유 언론을 보려면 VPN을 설치해 우회해야 하는데 이걸 할 줄 아는 이들은 대도시에서 교육을 받았던 젊은이들 소수에 불과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시안오브러시아의 미디어 활동이 인상적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벌써 12.5만 팔로워가 모였다.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반가운 일이다. 지금은 재단이지만 2018년 이전에는 아시아 공화국들의 문화 교류 인스타그램으로 시작했다. 한 부랴티야인 남편과 투바인 아내가 만들었다. 보통 소수 민족들이 각자의 문화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고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부는 각 공화국을 방문하며 문화·언어·종교 등 일상생활에 대한 영상을 계속 업로드했다. 지금까지 러시아 내 아시아계 소수 민족의 통합적 미디어가 전혀 없던 차에 우리에게 중요한 스피커가 되어준 것 같아 인기가 많았다. 전쟁 전에도 팔로워가 10만이었다.

지금과 같이 반전 및 사회 운동 재단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미디어를 넘어 사회 활동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이후부터 재단으로 기능했다. 주로 문화 콘텐츠를 다뤘지만 사회 문제도 하나둘씩 다루기 시작하며 사람들이 이곳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가령 공화국의 한 지역에서 집을 철거하며 원래 살던 사람들을 내쫓은 일이 있었는데 정부에서는 쉬쉬하려 했지만 아시안오브러시아가 끝까지 밝혀 결국 시 정부는 철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군인 아들이나 남편을 찾는다는 연락이 정말 많이 왔다. 군인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반전 운동과 법률 지원을 담당하게 됐다. 지금은 아시아계 공화국 자원봉사자들의 핵심 네트워크다.

창립자를 향한 위협도 있었을 것 같다.

전쟁 이후 러시아 연방 보안국에서 경찰과 보안국 사람들이 찾아와 나흘 동안 창립자 부부의 집 주변을 맴돌며 그들을 찾아내려고 했다. 시골집의 어머니와 친척들마저 끌고 가 이 부부가 민족의 배신자라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하게 하는 등 협박이 이어졌다. 다행히 부부는 새벽에 유럽으로 간신히 탈출해 아시안오브러시아를 재단으로 등록하는 절차까지 마칠 수 있었다.

이 인터뷰를 접할 한국인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나.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러시아에선 우리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도 위험하므로 우리에겐 외국 미디어와 소통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여담이지만 러시아엔 케이팝이나 한류 문화에 대한 인기가 높다. 우리에게도 너무 고무적인 일이다. 러시아에서 늘 아시아계라고 차별받았는데 우리와 외모가 닮은 아시아 강국이 러시아에서 많은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덩달아 자랑스럽고 신기했으며 애정을 갖게 됐다. 우리가 너무나 자랑스러워 하는 한국에서 관심을 기울여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기쁘다.

이현구 에디터, 통역 정소은 번역가

* 2023년 1월 17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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