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핑크퐁컴퍼니 권빛나 CSO - 미묘한 세대를 위한 애니메이션

미묘한 세대를 위한 애니메이션

더핑크퐁컴퍼니 권빛나 CSO

전 세계 유튜브 조회 수 1위, ‘핑크퐁 아기상어’로 이름을 알린 더핑크퐁컴퍼니가 지난해 말부터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한다. MZ세대를 공략한 물범 애니메이션, ‘씰룩’이다. 춤추고 수영하고 잠자는 물범들을 보고 있다면 인간 세계에선 누릴 수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기분에 빠져든다.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은 무엇이 다르고, 더핑크퐁컴퍼니는 어떤 확장을 꿈꾸나? 더핑크퐁컴퍼니 권빛나 사업전략총괄이사를 직접 만나 봤다. 
핑크퐁 아기상어로 유명한 기존 더핑크퐁컴퍼니 채널이 있다. 왜 새로운 채널을 만들었나?

일차적으로 타깃 확장이다. 위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다들 잠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봤을 때 자신이 한 크고작은 실수들을 돌이키며 속상해하지 않나. 아이들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Silly(바보 같은)’에서 착안한 ‘We can be little Seally’를 내세운 것도 그 때문이다.

씰룩은 어떤 콘텐츠인가?

물범을 관찰하는 과몰입 콘셉트 애니메이션이다. 다양한 3D 물범 캐릭터들이 극지방을 살아가는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밀리언볼트와 함께 공개했다. 더핑크퐁컴퍼니가 캐릭터·음원·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사업화 전략 전반을 총괄하고, 밀리언볼트가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과몰입 콘셉트라는 게 재밌다. 페이크 다큐 형식의 인스타툰으로 처음 물범들을 소개했다.

경력 10년차 직장인이 퇴사하고 인간 세계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떠난다. 극지방이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그의 얼음집 문을 두드린다. 씰룩에 등장하는 물범들이다. 일과 삶에 지친 직장인이 물범들의 바보같은 행동들을 보며 힐링하는 시점이다. 씰룩 세계관에 대한 설명은 이 계정으로 보충한다. 관찰자 시점에서 물범 세계의 비하인드, 유머러스한 물범 일러스트 등을 올리고 있다. 캐릭터 도감 형식의 게시물도 준비 중이다.

타깃을 MZ로 하며 기존 애니메이션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나.

콘텐츠 호흡을 짧게 했다. 한 편이 90초 분량이다. 짧은 시간 안에도 재밌는 서사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숏폼에 익숙한 세대를 공략했고, 이는 지표로도 드러난다. 틱톡 계정은 유튜브 채널 개설 이후에 만들었는데, 모객 속도는 압도적으로 빨랐다. 오늘(3월 7일) 기준 틱톡 팔로워는 51만 명, 유튜브 구독자는 32만 명이다. 
포맷적으로 어떤 시도를 하는지 궁금하다.

소위 ‘MZ세대가 좋아하는’ 트렌드에 탑승한 콘텐츠들은 여과없이 만들었다. ASMR 콘텐츠나, 비트박스 영상 등이다. 신나는 EDM이 나오고 노란색 시바범이 거기에 맞춰 춤을 추는 1시간짜리 영상이 있다. 이건 어른들이 일할 때 BGM이 필요하면 유튜브를 틀어놓는 수요를 겨냥했다. 부분적으로도 세대를 공략한 요소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아웃트로에서 구독을 누르라는 메시지를 넣을 때, 기존 채널과 달리 그 버튼이 엄청 빠르게 지나가서 못 누르게 만들었다.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넣어 청개구리 심리를 자극하고자 했다.

기존 제작한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씰룩 캐릭터들은 말이 없다.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크다. ‘핑크퐁’, ‘아기상어’ 등은 수십 개 언어로 더빙하거나 주요 국가용 채널을 따로 개설해야 했다. 씰룩은 그럴 필요 없다. 또 기존 기획 의도가 ‘고자극 일상에 쉼표 같은 콘텐츠를 선사하는 것’이었다. 언어의 장벽이 없으니 누구나 쉽게 위로받을 수 있다. 감정은 대사가 아닌 다른 요소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예컨대 물범이 ‘엉’ 소리를 낼 때, 그 사운드 안에서도 사실 감정선이 다 있다. (웃음)

말 없는 대신 표정 묘사가 극도로 세밀하다. 사람보다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씰룩은 성인을 타깃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러다 보니 섬세하다. 키즈 콘텐츠는 모션이 크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게끔 동작도 크고 화면 전환도 빠르게 한다. 반면 씰룩에선 디테일한 요소를 숨겨 놔서 오히려 그걸 발견하는 재미를 더했다. 예컨대 어떤 인트로에선 물범이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모션이 있다. 아이들은 알아채기 어렵지만, 어른들은 그런 미묘한 움직임에서 반응한다. 
다 비슷하게 생긴 물범들인데 각자의 외모와 성격이 조금씩 다른 게 매력이었다.

MZ세대는 아이들보다 취향이 뾰족하고 구체적이다. ‘아기상어’와 같은 콘텐츠는 전 세계 누구나 아이라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많이 넣었다. 구분하기 쉬운 화려한 색감의 캐릭터, 따라하기 쉬운 율동 등이다. 반대로 씰룩의 물범들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누가 누구인지, 다른 에피소드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놓치기 쉽다. 비슷한 물범들 중에서도 내가 더 마음 가는 캐릭터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범에 달린 태그 넘버로 캐릭터를 기억하거나 팬심을 밝히고, 몇 번 물범의 에피소드를 더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댓글로 종종 달린다.

키즈 콘텐츠와 달리 반응도 즉각적이겠다. 플랫폼 사용이 익숙한 세대와 소통하는 것 아닌가.

각 채널의 실시간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고, 콘텐츠 제작 시에도 많이 참고한다. 유튜브의 ‘커뮤니티’ 탭에서 씰룩의 물범 다섯 마리를 올려 두고 인기 투표를 진행한 적 있다. 내 최애는 가장 귀엽다 생각한 ‘뚱범(Chubby Seal)’이었고 다른 사람들 눈에도 뚱범이 1위일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1위는 아기범(Baby Seal)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아기범을 처음 제작할 때 미워 보이진 않을지, 고민이 많았던 터라 구독자 반응이 의외였다. 최근 ‘평범’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두 편 릴리즈했는데 반응이 좋아 어떻게 다음 에피소드에 녹일지 고민 중이다. 초기 캐릭터는 팀의 아이디어와 토의에서 나오지만 그 캐릭터를 디벨롭하는 과정에선 팬덤의 반응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외에도 기획할 때 염두에 두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

문화권에 따라 취향이 탈 수 있는 요소는 선을 지킨다. 다같이 공감되는 포인트를 만들고, 과도한 B급 감성은 지양하고 있다. 감수 과정에서 최우선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누군가를 비하하는 요소가 없는지다. 이건 키즈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다. 더핑크퐁컴퍼니 차원에서 문화감수 TF도 따로 두고 있다. 코미디라는 장르 특성상 재미와 상처는 한 끗 차이다. 적절한 농도의 웃음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게 진짜 코믹의 정수라 생각한다.

다른 채널로의 확장 계획도 있는지?

게임이나 장편 콘텐츠, 음원 사업 등 콘텐츠적인 가능성은 당연히 열어 두고 있다. 참여형 콘텐츠들도 더 디벨롭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AR 기술을 통해 유저 얼굴에 맞춰, 사진과 영상을 찍어 공유할 수 있는 필터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이외에도 카카오톡 이모티콘이나 팝업스토어 등 온오프라인 굿즈들도 제작을 염두하고 있다. 포맷 차원의 확장을 넘어 더핑크퐁컴퍼니가 키즈 패밀리 IP 외에 다른 것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콘텐츠의 비결은 무엇일까.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곧 소통의 세대다. 내가 무언가에 참여한다는 효용감, 팬덤으로서 이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만족감이 중요하다. 핑크퐁이 잘하는 건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이 뭔지를 캐치하는 것이다. 반응이 좋은 콘텐츠는 그게 왜 공감되는지 정답을 찾고 그걸 디벨롭한다. 지역별 조회수나 댓글, 좋아요 수 등 데이터가 주는 의미를 파고든다.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들을 통해 이 세대의 미묘한 취향을 읽어나가고 싶다.

더핑크퐁컴퍼니가 계획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접점을 넓히며 팬덤을 만나는 것이다. 어릴 때 아기상어를 보고 자랐다면, 어른이 되어선 씰룩을 보며 함께 힐링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다혜 에디터

* 2023년 3월 7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Close